왕씨(1150)
(1150 ~ 1185)
1. 개요
고려의 왕족으로 공화후 왕영과 승경궁공주 왕씨의 장녀다. 왕씨의 묘지명을 가리킬 때는 '왕영녀왕씨(王瑛女王氏)'묘지명이라고 한다.
2. 생애
왕씨의 모친 승경궁주는 왕씨가 이갈이(齠齔)를 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죽었고, 왕씨는 부친 공화후의 손에 자란다. 비녀를 꽂을 나이가 되고 시간이 더 흘러 결국 혼기(摽梅)[1] 를 놓치고 말았는데, 그래도 부지런하게 부친 공화후를 섬긴다. 한편 왕씨는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화엄경 등 불경 읽기를 일과로 삼았으며, 삼계(三界, 중생의 세계)에 싫증을 느끼고 극락정토에서 태어나기를 바랐다.
명종 15년(1185) 36세의 나이에 병마에 시달리다 1월 13일 정유일에 개경 남쪽 창신사(彰信寺)에서 죽는다. 명종과 태자 왕오는 왕씨의 죽음을 슬퍼하며 제물 등을 하사한다. 1월 30일 갑인일에 성주사(聖住寺) 동쪽 기슭에서 화장된다. 2월 초8일에 개성부 경내의 운개사(雲開寺)에 임시로 안치된 나머지 유골은 25일 운개사에서 동북쪽으로 100보정도 떨어진 곳에서 장사된다. 같은 해 제작된 왕씨 묘지명의 내용을 분석하면 작자는 왕씨의 동생 광릉공 왕면(王沔)인 것으로 추정된다. #
3. 가족관계
3.1. 조상
왕씨의 조부 강릉공과 외조부 인종은 겹사돈이다. 왕씨의 고모인, 강릉공의 딸들은 인종의 아들 의종, 명종, 신종과 결혼해 왕후가 된다.
왕씨의 모친 승경궁주는 인종과 공예태후의 딸로, 의종 2년(1148) 승경궁주로 책봉되기 전에는 상공주(上公主)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