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고려)
李頲
(1025 ~ 1077)
1. 개요
고려 정종, 문종 시기의 문벌귀족.
2. 생애
본관은 인주. 수주 소성현 출신이다. 이자연과 계림국대부인 김씨의 장남으로 현종 16년(1025) 출생한다. 본인의 묘지명에 따르면 시 짓기를 취미로 삼아 과거로 급제할 만했지만 이자연이 과거 응시를 불허해 어쩔 수 없이 음서로 관직에 나간다. 정종 11년(1045) 내고부사, 문종 2년(1048) 예빈성주부, 문종 4년(1050) 합문지후에 오른다.
문종 7년(1053) 상서고공원외랑을 지내다가 양주에 지방관으로 3년동안 파견되며,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상서호부원외랑을 지낸다. 문종 10년(1056) (상서호부)정랑으로 승진하고 붉은 어대를 하사받았으며 위위소경 지합문사에 임명된다. 문종 13년(1059) 상서우승, 14년(1060) 상서이부시랑에 임명되고 자금색 어대를 받는다. 문종 16년(1062) 전중감 지상서이부사를 거쳐 문종 18년(1064) 처음으로 동지중추원사 겸 삼사사의 요직에 오른다.
문종 22년(1068) 우산기상시, 문종 24년(1070) 호부상서 중추사[1] 에 임명되고 이듬해 이부상서로 바뀐다. 문종 26년(1072) 참지정사 판삼사사 주국에 임명되고 문종 28년(1074) 권서경유수사에 임명된다. 문종 29년(1075) 관직이 중대부 중서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 판상서병부사 서북면병마사 겸 서경유수사 상주국에 이른다. 관직 생활 30년만에 하급 관리에서 재상이 된 것이다.
문종 31년(1077) 처 왕씨가 죽고 얼마 뒤 다리에 병이 난다. 이정의 집은 문종이 보낸 어의를 비롯해 태자와 후비, 왕족 등 문병객이 드나드느라 북새통을 이룬다. 5월에 문종은 이정에게 수태사 겸 문하시중 벼슬을 내려 물러나게 했는데, 이정은 같은 날 개경 불은사에서 53세의 나이로 죽는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만큼 이정은 죽기 전까지도 아미타불을 외며 보살 팔계를 받는다. 문종은 정헌(貞憲) 시호를 추증했으며, 불교 장례법에 따라 그 달에 서기산에서 화장되고, 10월에 다시 양주 임진현 백악의 선산에서 다시 장례가 치뤄진다.
3. 문장
40년을 시를 썼다지만 남아있는 작품은 본인의 묘지명에 인용된 위의 시 뿐이다.三五年來養病姿, 素喰君祿合人譏. 15년동안 병이 심해지는데, 임금이 내린 녹을 부질없이 먹으니 모두가 비웃는구나.
稍同南國休文瘦, 徒羡西河子夏肥. 점점 남조의 휴문[2]
처럼 여위니, 다만 부러운것은 서하[3] 의 자하의 살찜이로다.只學因縁精進切, 縱逢花酒極歡稀. 다만 인연을 배워 불도에 정진함이 간절하여, 설령 화주를 맞이하더라도 지극한 기쁨이 드물구나.
今春偶失糟糠伴, 梁上翻嫌雙燕飛. 올 봄 우연히 조강의 반려를 잃으니, 들보 위 나부끼는 제비 한 쌍을 미워하노라.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남긴 시.
4. 가족관계
- 본인: 이정
- 처: 상당현군 왕씨
왕원묘지명에 따르면 이정의 딸이 조선공과의 사이에서 왕원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