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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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관료. 이정공의 아들로 이숙의 동생이다.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계양군 개국백의 작위를 받았으며, 치사한 뒤에는 공작이 되고 공신의 칭호를 받는다.
2. 생애
본관은 부평. 과거에 급제하고 승진해 호부원외랑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여러 군현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선종 4년(1087) 각도에 출추사를 파견했는데, 상서병부원외랑 이위는 경주도, 상주도에 보내진다. 그러나 선종과 뜻이 달라 면직되고 광주목의 부사를 지낸다.
광주목부사로 부임하고 청렴하고 근면하게 백성을 돌보므로 부사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숙종이 즉위한 해에 개경으로 불러 상서우사원외랑으로 임명한다. 숙종 3년(1098) 태자를 세우자 첨사부 전내에 임명된다. 숙종 5년(1100) 급사중에 오르고, 여진 동번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숙종 9년(1104) 직문하성에서 서북면행영병마사에 임명된다. 그 외에 숙종 재위중 비서감 지상서이부사, 어사대부까지 지낸다.
이위는 예종 시기에도 승진을 거듭했다. 예종 원년(1106) 동지추밀원사, 검교사공#s-2.1에 올랐다. 예종 3년(1107) 5월에는 지공거로 진사를 뽑았다. 예종 4년(1109) 참지정사, 예종 5년(1110) 형부상서를 역임하고 송나라 사신을 맞이했으며 관직이 중서시랑평장사 판호부사 겸 서경유수사에 이른다. 예종 7년(1112)에 수사도 수국사,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에 임명되고 김경용(金慶庸), 오연총(吳延寵)과 함께 재상이 된다. 이듬해 예종 8년(1113) 김경용이 수태부에 오르고 이위는 오연총과 함께 수태위에 임명된다. 둘은 예종 9년(1114) 공신호도 함께 받는데, 이위는 좌리공신이었다.
예종 11년(1116)에는 서경 천도를 바란 예종의 서경 행차에 따랐으며, 같은 해 수태보 문하시중 판상서이부사에 임명된다. 예종 12년(1117) 태부로 승진, 계양백(계양군 개국백) 식읍 2천호 식실봉 3백호에 봉해진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이듬해 바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인종 즉위년(1122) 이자겸이 협모안사공신호를 받을 때 광국공신호를 받고, 작위는 계양공으로 높아졌다. 이자겸 축출 이후 인종 5년(1127) 외손녀가 인종비로 간택되자 관직에 중서령이 더해지고 진정공신호에 식읍 2천5백호, 식실봉 5백호를 받는다.
3. 평가
고려사의 이위 열전에 따르면 재산 늘리기를 좋아해 집안의 쌀과 소금의 입출까지도 알 정도였다고 한다. 같은 내용을 고려사절요에서는 '집안은 귀하고 성했지만 재산을 불렸고 인색했다.'[2] 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