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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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출신의 배우. 하지만 전성기에는 홍콩에서 활약해서 홍콩 배우로 알려져 있다. 홍콩으로 건너와서 이런저런 역을 맡다가 1987년 천녀유혼의 섭소천 역으로 출연해 동아시아권에서 가히 '''중화권 미녀 여배우의 대명사'''였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끈 홍콩의 배우이다.
80년 후반 중고생들의 책받침에 많이 모셔져 있었던 대표적 여신 중 한명이다.[5]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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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선수 시절의 왕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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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영화 심동(연애일기)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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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 할아버지 왕인봉(王仁峰, 1887-1967)은 쑨원과 같이 국민혁명을 하던 혁명가였고(다만 대만으로 넘어오지는 않고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의 대륙에 머물렀다. 신해혁명 후 장제스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교육자로 헌신했기 때문에 공산당 치하에서도 존경을 받으며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민대표직을 역임했다 ), 할아버지 왕국번은 국민당의 악명높은 특무-정보기관인 조사통계국에 있었다. 하지만 대륙이 공산당에 넘어가자 대만으로 도피해 왔다. 이렇게 대만의 명문가 집안이긴 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농구선수였고, 왕조현은 아버지로부터 큰 키를 물려받았다.
타이베이현 숭광여중(崇光女中), 타이베이시 회생중(懷生國民中學)으로 전학(그 때 농구부 가입), 다시 타이베이국광예고(臺北國光藝校)로 전학, 수료하였다.
청소년기에는 비교적 큰 키(172cm)로[6] 농구를 했다고 하며, 이 때문에 대만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실은 아버지가 대만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었던 것이 와전되었다고 한다. 중학생 때 아버지의 권유로 잠깐 시작했다가, 2년 뒤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한 케이스라 대표로 뽑힐 만큼 엄청난 실력은 아니었다고 한다.
(길거리 캐스팅 후)15살때 첫 광고 아디다스운동화(愛迪達球鞋), 16살(국광예고 재학시) 타이완에서, 첫 영화 '금년 호숫가는 아주 추울 것 같아'(今年的湖畔會很冷)을 촬영하였고, 이 영화가 금마장(金馬獎) 영화제에서 세 부문 노미네이트되며, 당시 홍콩 쇼브라더스(香港邵氏電影公司) 대표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왕조현과 계약하며 홍콩으로 가서 활동하게 된다.
이후 홍콩의 영화사인 쇼브라더스의 픽업으로, 홍콩으로 건너와 1984년 '올해에 호반은 추울 것이다'(금년호반회흔랭)이란 영화로 데뷔하였다.[7] 이후 여러 영화에 출연하는데, 그중 하나가 주윤발과 함께 나오는 <의개운천>이 있다.
출세작은 1987년에 장국영과 함께 출연한 '천녀유혼'.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며[8] 이후 많은 작품에 출연하였다. 이중 한국에 알려진 작품으로는 '천녀유혼 1,2,3', '정전자', '신유성호접검', '동방불패2', '청사', '살수호접몽' 등이 있다.
천녀유혼이 큰 인기를 끌자 그녀의 다른 출연작들도 국내에 많이 들어왔는데, 주윤발과 함께한 '대장부일기', '장단각지연' 같은 가벼운 분위기의 중국식 코미디 영화는 물론 '의개운천' 같은 영화도 왕조현의 이름을 내세우게 된다.
<의개운천>은 1986년 왕조현이 뜨기 전에 에스케이프걸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되었으나, 천녀유혼으로 왕조현의 인기가 커지자 영웅본색, 천녀유혼, 지존무상 같이 4글자 한자 제목인 원제 의개운천으로 바꾸어 소개되었다.
90년대에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은 했으나, 비슷한 역할의 다작 출연으로 이미지 소모가 심했고 연기력도 특출나지 못해서 예전만큼의 인기를 얻진 못했다. 기본적으로 홍콩 탑 여배우들은 정점에서 재벌 등과 결혼하고 은퇴하는게 거의 고정된 루트인데[9] 왕조현은 미혼으로 계속 영화판에 남아있다가 사그라든 것. 어떻게 보면 천녀유혼으로 이미지가 고정된 데다가, 너무나도 외모가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배역이 잘 안가서 사그라든 탓도 있다. 이는 책받침 여신이었던 브룩 실즈나 피비 케이츠도 마찬가지로, 연기력 없는 외모는 나이가 들면 사그라든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해 준 것이다.
여기에 유부남이었던 임건악과의 스캔들로 얼룩져(...) 그녀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1994년 은퇴를 선언했으나 1997년 다시 복귀하여 일본영화 북경원인에도 출연했다. 덕분에 일본 진출설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2002년 '미려상해'(개봉은 2004년) 촬영을 끝으로 돌연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 독신으로 조용히 생활 중이다.
《 출연영화 》
[ 1980년대 ]
1984년 今年的湖畔會很冷
1985년 再見七日情, 打工皇帝
1986년 義蓋雲天, 心動, 俾鬼捉
1987년 標錯參, 殺妻二人組, 偶然, 旗袍裡的秘密, 芳草碧連天, 衛斯理傳奇, 殺手蝴蝶夢, 倩女幽魂
1988년 大飯店(金裝大酒店), 畫中仙, 霹靂大喇叭, 城市特警,長短腳之戀, 夢過界
1989년 法中情, 潘金蓮之前世今生, 大丈夫日記, 合家歡, 打工狂想曲(蝸年上班族), 都市獵人, 驚魂記, 阿群, 賭神, 飛越陰陽界
[ 1990년대 ]
1990년 最佳戰友(中日南北和), 血洗洪花亭(黑幫輓歌), 無名家族(決死英雄戰), 千年女妖, 倩女幽魂Ⅱ:人間道, 摩登如來神掌, 青春奇俠, 浪漫殺手自由人, 絕橋智多星(龍虎大老千), 殺手無名(都市煞星), 東方老虎, 阿嬰
1991년 追日, 倩女幽魂Ⅲ:道道道, 鬼幹部(魔中仙), 千人斬,豪門夜宴, 天地玄門(穿梭時空五百年), 香港教父(衝擊天子門生), 靈狐, 隔世情(魔畫情)
1992년 畫皮之陰陽法王, 廟街十二少, 賭城大亨之新哥傳奇,賭城大亨II之至尊無敵, 城市獵人
1993년 芝士火腿, 水滸傳之英雄本色, 射鵰英雄傳之東成西就,東方不敗之風雲再起, 新流星蝴蝶劍, 青蛇
1994년 東邪西毒 (역할분 편집, 삭제)
1998년 北京原人
[ 2000년대 ]
2001년 遊園驚夢
2004년 美麗上海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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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주윤발[10] 의 2탄 격인 "안녕하세요! 왕조현입니다~"라는 음료광고로도 인상이 깊다.
별명으로 長腿姐姐(롱다리 아가씨)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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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한국 방문을 했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했던 사진인데 왼쪽 뒤에 카키색 옷 입은 사람은 이경규.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에 캐스팅 되었다는 이야기가 동사서독 제작 당시 있었는데 정작 완성된 동사서독에는 왕조현이 나오지 않았으며, 동사서독 제작이 늦어지는 동안 동사서독 출연진을 데려다가 만든(...) 유진위 감독의 '동성서취'에는 왕조현이 출연했다. 여담으로 한국의 여배우 심혜진도 왕가위 영화를 촬영하러 갔다가 왕가위 감독 특유의 즉흥적이면서도 시간 끄는 제작 방식 때문에 결국 하차한 적이 있다.
2004년 왕조현이 엄청나게 뚱뚱해진 모습으로 거리를 걷던 모습이 파파라치에게 찍힌 뒤에 '절친했던 장국영의 자살 후 충격 탓에 우울증으로 인한 약물 과다 복용 후유증 때문이다.' '연예계를 떠난 후 캐나다에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고 있어서 그렇다.', '영화 복귀를 준비 중이며 이를 위해 억지로 몸집을 불린 것이다.' 등등의 소문이 무성했었으나 결국 정확한 사실을 밝히진 못했고, 그 모습을 보고는 "나의 섭소천은 저렇지 않아!"라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2010년에는 다시 예전에 날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측근의 증언으로는 왕조현이 단 것을 좋아하며, 살이 쉽게 찌고 쉽게 빠지는 체질이라고.
2013년 홍콩에서 찍힌 파파라치를 보면 보톡스를 맞기라도 한건지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부어있어서 많은 팬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본인도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나중에 캐나다로 돌아가기 위해 홍콩 공항에 도착했을 땐 아이패드로 최대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도 했다. 게다가 대만,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 언론에서는 아예 한술 더 떠서 왕조현이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차원에서 성형을 했다는 루머까지 돌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루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지, 아예 왕조현 본인이 이에 대해 해명하며 자신은 교통사고도 당한 적도 없고 무탈하고 건강하게 잘지내고 있다는 셀프카메라를 공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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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3일, SNS를 통해서 사진과 함께 새해 인사를 올렸다.
한때 비구니로 출가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사생아 출산설도 한 때 이슈였으나 후속 기사가 안 뜨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루머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다만, 2017년 새해 인사에는 '아미타불'이 적혀 있는 걸로 봐서는 불교에 귀의한 것으로 보인다. 비구니로 출가했다는 루머도 왕조현이 불교 신자가 되면서 생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왕조현 본인은 굉장히 독실한 불교신자이기도 하다. 캐나다로 이민간지 한참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국인 대만에 대규모 불교 집회가 열리면 그곳에 참석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기도 하고, 심지어 2015년에는 육도관음(六度觀音) 불교 음반을 직접 녹음하여 발매하기까지도 했다. 왕조현이 살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쪽 교민들 증언에 의하면 왕조현은 가끔 밴쿠버 리치먼드[11] 에 있는 중국식 절에 나타날 때가 있다고 한다.
법호 : 行覺(행각)
캐나다 靈嚴山寺(영암산사-정토종)
주소 : 0060 No.5 Rd., Richmond,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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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현이 2015년 대만에서 발매한 육도관음(六度觀音)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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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마이클 잭슨이 앨범 Bad를 발매 전 홍콩에 방문했을 때 사진을 같이 찍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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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입은 왕조현. 일밤에 출연했을 당시 모습이다.
90년대에 영화 홍보차 내한하여 주병진의 토크콘서트에 출연한 바 있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주윤발이라고 한다.
[1] Wong은 王의 광동어 발음을 영문으로 표기한 것이다.[2] 음력 1966년 12월 21일[3] 비록 캐나다로 이민을 간 지 오래되었지만, 파파라치들에게 공항에서 찍힌 사진을 보면 여전히 중화민국 여권을 손에 들고다니는 것을 보아 중화민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중화민국, 캐나다 둘 다 복수국적이 허용이 되는 나라들이다.[4] 중국어 위키피디아 참조. 하지만 2013년 홍콩 공항에서 캐나다로 돌아가는 모습이 파파라치들에게 찍혀있을때도 캐나다 여권이 아닌 대만 여권이 손에 들려있었던 것을 보아 캐나다 시민권자가 아닌 영주권자일 수도 있다.[5] 나머지는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브룩 실즈.[6] 80년대 한국에서는 키 178센티라는 말도 돌았다.[7] 국내에서 비디오로도 출시된 적이 있는데, 90년도에 왕조현의 '사랑이야기'란 제목으로 출시되었다.[8] 이 때 그녀의 나이가 한국 기준으로 고작 21세였다. 1월생이라 빠른 67년이라 쳐도 22세.[9] 임청하, 종초홍, 서자기, 이가흔 등등...[10] 국내 최초의 외국인 광고 배우.[11] 밴쿠버에서 중국계들이 가장 많이 모여살고 있는 동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