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 왕가위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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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칸 영화제 '''
[image]
'''감독상'''
<color=#373a3c> ''' 제49회
(19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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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373a3c> ''' 제50회
(1997년) '''
<color=#373a3c>
<color=#373a3c> ''' 제51회
(1998년) '''
코엔 형제
(파고)

'''왕가위
(춘광사설)'''

존 부어만
(제너럴)


''' 역대 대만 금마장 시상식'''
[image]
'''감독상'''
<color=#373a3c> '''제27회
(1990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28회
(1991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29회
(1992년)'''
옌하오
(권권훙천)

'''왕가위
(아비정전)'''

왕동
(무언적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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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홍콩 금상장 시상식'''
[image]
'''감독상'''
<color=#373a3c> '''제9회
(1990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10회
(1991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11회
(1992년)'''
오우삼
(첩혈쌍웅)

'''왕가위
(아비정전)'''

서극
(황비홍)

<color=#373a3c> '''제13회
(1994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14회
(1995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15회
(1996년)'''
얼퉁성
(신불료정)

'''왕가위
(중경삼림)'''

허안화
(여인사십)

<color=#373a3c> '''제32회
(2013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33회
(2014년)'''
<color=#373a3c>
<color=#373a3c> '''제34회
(2015년)'''
럼록만
(콜드 워)

'''왕가위
(일대종사)'''

허안화
(황금시대)

}}}
[image]
  • 검은 선글라스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image]
  • 선글라스를 안 쓴 맨 얼굴
[image]
'''이름'''
왕가위(王家衛, 간체: 王家卫)
'''영문명'''
Wong Kar-wai
'''출생'''
1958년 7월 17일, [image]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
'''신체'''
183cm[1]
'''국적'''
[image] 홍콩 특별행정구
'''직업'''
감독,극작가,프로듀서
'''학력'''
홍콩이공대학교 (학사) (1976년-1980년)
'''종교'''
불교
1. 개요
2. 특징
3. 한국에서의 인기
4. 비판
5. 필모그래피
6. 수상 경력
7. 여담


1. 개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홍콩의 영화감독. 1958년 7월 17일 상하이에서 태어나 5살때 홍콩으로 이주해 자랐다. 대학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다.

2. 특징


왕가위 감독은 독특한 영상미와 허무, 고독을 다룬 주제로 90년대 중후반에 엄청난 붐을 일으켰으며, '''90년대 문화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최고 감독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아 왔다. 미국에서 나왔던 '중경삼림' 렌탈 비디오와 DVD를 보면 앞부분에 쿠엔틴 타란티노가 나와서 영화평을 한다. 타란티노 본인이 워낙 영화광인 이유도 있지만 타란티노를 통해 북미에서 배급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중화권 인물 최초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며, 2012년 '일대종사' 북미 개봉 때는 마틴 스콜세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홍보대사 노릇을 해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하거나 낡은 느낌을 주지 않고 젊은층에게 꾸준히 어필하는 특징을 가졌다. 지금도 왕가위 감독이 영화 무대인사나 좌담회를 하면 젊은 영화팬들이 많이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권의 젊은층에서 그의 꾸준한 인기는 놀라울 정도다. 중경삼림의 경우, 개봉했던 1994년에서 무려 24년이 지난 2018년 부터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영화이다. 물론 90년대 일본에서도 왕가위 감독 작품은 인지도가 있는 편이었지만, 오히려 그때보다 현재가 반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넷플릭스 시장을 크게 성공 시키는데 공로를 세운 영화로 설명된다. 일본에서 아시아 국가 문화 컨텐츠로 따지면 역대 최고 흥행. 어린 일본 여성 중에 중경삼림을 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설명이 나오는데, 2부의 시작을 알리는 배경 음악 캘리포니아 드림이 나오면서 양조위가 걸어오는 장면을 수백번 돌려 보기도 하고 그냥 계속 눈물이 나온다는 감상평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지만 현재 상황에 대한 절망과 80년대~9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탄의 감성을 이 영화에 모두 쏟아 내고 있다. 사회 현상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필름의 프레임에서 중간중간 프레임들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동일한 프레임을 채워 넣음으로써 인물의 동작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이고, 인물/사물의 윤곽선과 빛은 잔상을 남기면서 흘러가는 스텝프린팅 기법으로 유명한 감독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왕가위 감독, 그리고 그와 같이 여러 차례 일한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처음 도입한 기법은 아니고, 이미 뮤직비디오와 CF에서 쓰이던 기법이었으나, 영화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시간이라는 요소를 강조함으로써 영화를 "기억에 관한 예술"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은 왕가위 감독이다. 왕가위 감독은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 그의 여러 작품에서 이 스텝프린팅 기법을 통해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냈다.
한동안 작품이 없더니 아마존닷컴 프라임 비디오에서 ‘Tong Wars’라는 드라마를 준비 중이었으나 취소 되었다. 20세기 미국의 중국인 이민자들을 다룬 시대극으로 왕가위 감독은 연출만 맡고 각본은 하우스의 프로듀서 중 하나인 폴 애터내시오가 맡기 때문에 왕가위 감독의 작품으로 봐야할지는 의문이다.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Blossoms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아직 캐스팅도 안 된 상태고 작업 방식을 생각해보면 기약이 없는 상태.

3. 한국에서의 인기


국내 CF들 소수가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을 참고했다. 한 예로 김선아가 나와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는 광고 멘트로 유명한 화장품 CF는 '타락천사'의 한 장면을 따라한 것. 그 당시 온갖 영상물들이 왕가위 특유의 핸드헬드와 스텝 프린팅 촬영 기법을 따라하며 도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TV문학관같은 단막극 드라마까지 그랬으니 말 다 했다.
지금은 폐간된 키노스크린 등 영화잡지에선 수시로 왕가위 감독 특집 기사를 실었으며, 영화 평론가 정성일은 왕가위 감독의 열혈팬이자 영업왕(..)으로 불릴정도로 왕가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정성일은 왕가위 DVD의 코멘터리를 담당했고 국내에서 왕가위 감독과 함께 GV 대담을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화 속 OST 인기도 굉장해서, '중경삼림'에 삽입된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히트치자 이 곡을 부른 마마스 앤 파파스는 내한 공연을 갖기도 했다. 이렇듯 왕가위 감독이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고, 마니아층도 두텁게 형성된 감독이다.
다만 대중적인 흥행감독은 아니다. 왕가위 감독 영화들은 아주 망했다가 아니면 그냥 그랬다 흥행 정도를 거둔게 전부다. 중경삼림은 한국에서는 서울 18만 관객을 기록했다.(타락천사 16만명, 동사서독 14만명) 90년대 당시 서울 흥행집계만 추산되었다고 해도 당시 서울 20만 이상은 봐야 흥행했다던 시절이다. 하지만 극장보다는 비디오로 꾸준히 인기와 마니아를 모았다. 이 문서만 해도 일부 광팬이 도배했을 만큼.

4. 비판


탐미주의 감독들이 잘 듣는 비판이지만, "너무 미장센에만 힘을 쏟아부어 정작 스토리는 빈약하다"든가, "영화를 찍으려고 연출력을 발휘하는게 아니라 연출력 자랑하려고 영화를 찍는 느낌"이라든가, "미장센 빼고는 남는게 뭐냐?" 등의 지적을 자주 듣는다.
2046 때부터 가열된 비판인데, 이 영화를 기점으로 영화들이 스토리가 상당히 난해하고 혼란스러워졌다.[2]
연출 자체(촬영 기법과 독백 등)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라 취향이 안 맞는 사람에게는 "유치하다", "허세 부리는 것 같다."는 식의 악평을 받기도 한다.

5. 필모그래피



'''연도'''
'''제목'''
'''역할'''
'''비고'''
'''제작'''
'''연출'''
'''각본'''
'''기획'''
'''원안'''
1988년
열혈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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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90년
'''아비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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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중경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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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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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타락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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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춘광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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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0년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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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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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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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07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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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동사서독 리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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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일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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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
블러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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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상 경력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1년
제 28회 금마장
'''감독상'''
아비정전
제 10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1994년
제 5회 스톡홀름영화제
FIPRESCI 심사위원
중경삼림
1995년
제 14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1997년
'''제 50회 칸 영화제'''
'''감독상'''
춘광사설
2000년
제 13회 유럽영화상
유럽영화아카데미 비유럽영화상
화양연화
2008년
제 19회 스톡홀름영화제
비전상

2013년
제 50회 금마장
관객상
일대종사
2014년
제 8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최우수작품상
최우수감독상
제 33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제 23회 중국금계백화영화제
작품상
제 45회 인도국제영화제
공로상

2006년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

7. 여담


[image]
  • 왕가위 감독의 어린시절 가족사진.
  • 중화권에서 활동하는 배우 양가휘와 이름이 비슷해 혼동할 수 있다.
  • 장신소두인지라 실물로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다. 왕가위 감독이 등장하는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웬만한 남자배우들보다 키가 크다.
  • 어머니가 굉장한 영화광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왕가위는 어릴 때부터 여러 나라의 영화를 접하며 자랐는데, 제일 처음 봤던 한국 영화최무룡, 김지미 주연 1962년작 양귀비라고 한다.
  • 그의 페르소나로 90년대는 장국영양조위가 꼽혔다. 그러나 화양연화와 장국영의 사망을 기점으로 양조위가 독보적인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로 자리 잡는다.
  • 주성치가 주연한 영화 서유기 월광보합은 왕가위에 대한 오마주가 많이 등장한다. 춘삼십랑에 반한 이당가의 대사 ‘사랑의 유효 기간을 만년으로 하겠다’는 ‘중경삼림’의 명대사를 패러디한 것이며, 지존보가 월광보합을 발견한 순간과 관세음보살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에서는 ‘동사서독’의 배경 음악이 사용되었다.
  • 영화 제작시 즉흥적이고 시간을 끄는 면모가 있다고 한다. 춘광사설 촬영시에도 한 달 동안 어떠한 장면도 촬영하지 않고 배우들을 숙소에 대기시켜서 배우들이 하차 직전까지 갔었다. 우리나라의 배우 심혜진도 왕가위의 영화[6]에 캐스팅된 적이 있는데, 너무 질질 끌어 중도 하차했다는 얘기도 있다. 왕가위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동사서독도 감독의 이런 성향을 피해가지 못했는데, 그 덕분에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막장 코미디 영화와 왕가위의 또 다른 대표작이 태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화양연화 역시 칸 시사회까지 찍고 또 찍고 편집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
  • 영화 춘광사설(春光乍洩)의 제작 과정이 담긴 영상이다. 왕가위 특유의 대책없는 기다림에 지칠대로 지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영상 왕가위는 원래 시나리오 없이 촬영하는 일이 빈번하며, 왕가위와 오랫동안 영화 촬영을 한 양조위는 이런 작업 방식에 익숙해질 만한 데도 짜증날 때가 더 많다고 밝혔다. 춘광사설을 찍을 때는 시나리오도 보지 못하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무작정 떠났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배우들이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하는 감독으로 손꼽힌다. 동아시아권 배우 중에선 일본의 기무라 타쿠야, 한국의 송혜교가 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 1995년 12월 당시 중경삼림, 타락천사가 인기를 얻고 있던 한국을 방문했고, 당시 촬영중이었던 은행나무 침대의 출연진과 만남을 가졌다. 이후에도 한국을 자주 방문한 편이다.
  • 한국에서 '홍콩 느와르'라 부르는 명칭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90년 영화 잡지 로드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인데, 당시 한국 시장이 홍콩에서 큰 시장이 되면서 한국적인 입맛에 맞게 영웅본색 아류작이 나오는 거 같다고 말한 바 있다.
  • 왕가위에게 50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 '춘광사설'은 97년 국내에서 수입불가 판결을 받은 적 있다. 공연윤리위원회에서 동성애를 이유로 들어 수입불가 판정을 내린 것. 논란 끝에 결국 재심의를 받아 1년 늦게 개봉했다. 당시 동성애에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던 국내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는 대목.
  • 영상미와 음악선곡에 탁월한 센스를 갖고 있다. 그의 미적 감각과 탐미적인 분위기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화장품 브랜드와 작업이 잦은 편이다. 2007년 디올의 향수 '미드나잇 포이즌' 광고의 감독을 맡았으며, 에바 그린이 출연했다. 2011년에는 남성 영화감독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화장품 브랜드 슈에무라와 콜라보를 하여 홀리데이 컬렉션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화장품 외에도 BMW의 영화 광고 The Follow편을 감독하기도 했다.[7] 클라이브 오웬, 미키 루크, 포레스트 휘태커 등이 출연했다. 2019년에는 입생로랑의 이미지 광고를 찍었다.
  • 2017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문라이트의 감독 배리 젠킨스는 왕가위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문라이트를 보면 왕가위 작품을 연상시키는 영상미와 음악 선곡을 느낄 수 있다. #
  • 김완선이 왕가위 감독을 짝사랑 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대 초반 홍콩 측의 러브콜을 받고 홍콩에서 배우 및 가수 활동을 시도했었는데, 업무 관계로 자주 교류를 한 왕가위 감독의 지적인 매력에 반했다고 한다. 심지어 왕가위가 너무 보고싶어서 그의 집 앞까지 찾아가 서성일 정도였다고 하니 굉장히 깊게 빠졌었던듯. #국내기사 그러나 당시 왕가위는 19살 때부터 사귄 연인과 10년 가까이 연애 후 결혼한 유부남이었다(...)
  • 2013년작 일대종사에 출연한 송혜교와 친분을 계속 맺고 있는 것 같다. 2017년 송혜교송중기 커플의 결혼식에 축하선물로 금팔찌를 보내준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선물받은 팔찌를 나란히 끼고 찍은 인증샷을 올려 감사를 전했다. 2019년에는 본격적인 중화권 활동을 위해 왕가위의 에이젼시와 계약을 맺었으며, 해당 에이젼시는 양조위, 장만옥도 소속되어 있다.
  • 2000년대 초반 SBS와 손잡고 TV극을 만들어보겠다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무산된 듯하다. 그 이후 소식은 없다. #
  • 일대종사 이후로 7년이 지나도록 신작이 없었다. 계속 신작에 대한 소문만 들려오다가 2020년 8월에 프로듀서 겸 총감독으로 참여하는 첫 티비 드라마 "번화"의 소식이 알려졌다. 주연은 중국배우 호가.
  • 중경삼림의 속편인 '중경삼림 2020'을 준비 중이다. 왕가위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했고 완성했다고 하며,중국 국가영화국으로부터 심의를 통과하여 촬영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 4월에 촬영 허가를 신청한 지 5개월 만에 비준을 얻었다고 하며, 시놉시스도 공개되었다. "90년대 홍콩, 실연당한 경찰 223은 우연히 금발의 여성 킬러를 만나 따뜻한 하룻밤을 보낸다. 역시 마찬가지로 실연을 겪은 경찰 663은 어떤 몽중인의 침입으로 인해 일상이 점차 변화된다. 2036년 충칭, 소년 샤오첸과 메이는 유전자에 의해 짝이 정해지는 것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운명을 찾기로 결심한다."

  •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그의 작품들이 리마스터로 재개봉하자 단숨에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다. 현재에도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입증한 셈.

[1] 프로필상 키이고, 187~8cm 새뮤얼 L. 잭슨에 꿀리지 않는 키로 보아서 실제 키는 187~8cm으로 보인다.# 존 파워스가 적은 인터뷰집에는 180cm로 소개되어 있다.[2] 이건 우리나라의 이명세 감독도 자주 듣는 비판이다.[3] 대만에서 수입하면서 붙여진 제목으로, 한국은 1989년에 대만판을 수입하면서 제목도 대만판 제목으로 수입하였다. 원래 제목은 몽콕 카르멘(旺角卡問;한국어로 읽으면 왕각가문이다. 한국에서는 卡이 '잡(지킬 잡)'으로 많이 읽혀서 그런지 몽콕잡문이라고 적힌 곳이 많다. 卡은 이 음역자로 쓰일 때는 '가(음역자 가)'로 읽는 것이 맞으며, '卡問(간체자로 卡门)'이라는 단어는 카르멘(Carmen)을 음차한 단어기에 영화의 제목은 '몽콕 카르멘 혹은 몽콕가문'으로 읽어야 한다.)[4] 국내에선 <해피투게더>란 제목으로 알려져 있음.[5] 옴니버스 단편-그녀의 손길[6] 2046이라고 한다.[7] 하나의 스토리를 조각내어 각 타이틀마다 여러 명감독들이 각자 감독해서 완성한 옴니버스 필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