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 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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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d004d><colcolor=#fff> '''이름'''
브룩 실즈 (Brooke Shields)
'''본명'''
브룩 크리스타 실즈 (Brooke Christa Shields)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65년 5월 31일 (58세)
미국 뉴욕 주 뉴욕 맨해튼
'''학력'''
드와이트-앵글우드 스쿨 (졸업) (-1983)
프린스턴 대학교 불어과 (학사) (1983-1987)
'''직업'''
배우, 모델
'''활동'''
1966년 – 현재
'''신장'''
183cm
'''배우자'''
안드레 애거시 (1997 결혼 – 1999 이혼)
크리스 헨치 (2001 결혼 – 현재)
'''자녀'''
장녀 로완 프란시스 헨치(2003년생, 21세)
차녀 그리어 하몬드 헨치(2006년생, 18세)
'''링크'''

1. 소개
2. 생애
3. 커리어


1. 소개


'''1980년대, 리즈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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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배우이자 모델.
1980년대~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었던 여배우들 중 하나였다. 엄청난 외모의 소유자로, 매우 아름다운 리즈시절을 가진 배우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현재는 나이 문제+약물 문제로 인해서 외모가 역변했다. 동시에 1980년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던 여배우였다.
1980년대 중후반에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왕조현과 함께 한국 남학생들의 책받침에 모셔져 있던 여신 사천왕들 중 한명이자 필두격 여배우. 사실 천녀유혼으로 왕조현이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그리고 브룩 쉴즈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학교 근처 브로마이드를 파는 지역에 이 세명의 브로마이드를 취급하지 않는다면 아예 가게인지 의심을 해볼 정도였다. 이 넷 중에서도 브룩 실즈가 가장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녀의 리즈시절 영화를 한편이라도 감상해본다면 제2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이다.
짙은 눈썹과 183cm라는 아주 큰 키, 풍성한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며 아기 때부터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이미 얼굴이 완성형인데, 아직 아기인데도 짙고 또렷한 눈썹과 커다란 눈망울, 오똑한 콧대를 보면 알 수 있다.
비즈한국 기사에서 세기의 미녀, 브룩 실즈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2. 생애


뉴욕에서 최상류층 부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 프랭크로부터는 이탈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의 혈통을, 어머니 테리로부터는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웨일스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그야말로 플래티넘 수저였다. 그러나 실즈의 부모는 실즈가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이혼했다.
아버지쪽으로 그 유명한 보르자 가문메디치 가문의 피가 흐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즈의 친할머니가 이탈리아 귀족이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귀족 및 기타 유럽 왕실 및 귀족의 후손이다.
이 때문에 한때 큰 키, 미모, 유명세, 지능, 학벌에 가문까지 좋은 실즈를 모나코 왕실에서 며느리감으로 점지하기도. 물론 알베르 공 꼴에[2] 실즈가 아깝다며 당연히 거부했지만, 사실 알베르 공하고 잠깐의 로맨스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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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알베르 2세와 함께'''
그 외에도 1980년대 초 '''마이클 잭슨'''과 염문을 뿌리기도 하였다. 실제로 둘은 1990년대가 지나서도 굉장히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5]

3. 커리어


5세부터 끼를 보였다고 하나, 첫 데뷔는 무려 1살 때인 1966년아이보리 비누 선전에 나왔다. 물론 화장품 회사의 대표였던 아버지와 여배우였던 어머니의 빽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애초에 본인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후 아역 배우로 성공했고, 1978년 '''12살에는 성매매 소녀 역'''을 맡은 <프리티 베이비>라는 영화에 나와 연기력으로 호평받았다. 그러나 12살이라는 나이에 누드신과 미성년자 아동을 성적 대상화한 이 영화의 윤리적 문제는 지금도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 실즈의 어머니인 테리 실즈가 진짜 아주 골때리는 극성 엄마라는 점이다. 자신의 포기한 연예인으로서의 성공을 딸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 하는 전형적 케이스. 유치원도 아직 안 갈 나이의 아이들을 치아교정염색, 컬러렌즈, 스프레이 태닝과 네일아트 등으로 뒤덮어 어린이 미인대회에 내보내고 유명인이라도 나타나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인 여성이 아주 아주 특별한 날에나 할 법한 꽃단장으로 꾸민 어린 딸을 데려가 인사시켜 인맥맺으려는 그런 극성 엄마들이 미국에서도 비판의 대상인데... 실즈의 엄마는 그보다도 한 수 위다. 사춘기도 안 온 딸에게 누드 촬영을 강요한 것. <프리티 베이비> 영화를 찍을 당시 극중 실즈의 엄마 역의 수전 서랜던이 어린 아이에게 이런 역과 포즈를 요구하는 것은 진짜 아닌데라고 촬영을 망설이는데, 막상 실즈의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심지어 영화 촬영 중 극중 어린 창녀 역에 맞추어 화보를 찍자고 플레이보이와 연락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플레이보이도 단번에 거절했다. 그나마 1970년대 미국이어서 그 아줌마는 감방에는 안 갔다. 하지만 플레이보이만 안 찍었다 뿐이지, 아동 포르노라고 욕먹어도 할 말 없는 수준의 화보를 숱하게 찍었다. 이런 탓에 브룩 실즈의 과거 영상 같은 것을 보면 코멘트에 그녀의 어머니 욕이 절반을 차지한다(...)
14살에는 패션잡지인 보그#s-1지의 표지모델이 될 정도로 빼어나고도 동년배들에 비해 굉장히 성숙한 미모를 자랑했다. 특히 183cm의 장신에서 나오는 우월한 기럭지가 백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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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아름다운 롱다리가 돋보인다. 15살 때 나온 캘빈 클라인 진 광고사진. 광고문구가 ''' '캘빈 클라인 진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라는 자극적인 내용이라 여기저기서 외설시비로 금지먹기도 했다. 광고영상 모음집
1980년에는 영화 《블루 라군(푸른 산호초)》(The Blue Lagoon)에 출연했는데, 15살 미성년자임에도 엄청난 수위의 노출과 적나라한 성관계 묘사가 나와 논쟁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많은 논란을 불렀고 의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는데, 실즈는 베드신은 대역을 썼다고 증언. 여담이지만 피비 케이츠가 주연한 《파라다이스#s-2.2》는 이 영화와 매우 비슷한 스토리다.[6] 그리고 역시 미성년자 연인의 성관계를 묘사해서 큰 파장을 불렀다.
이후 《끝없는 사랑》(Endless love)라는 주제가만 유명한 동명의 영화 《끝없는 사랑》에 출연했다. 그리고 실즈는 이 영화로 최초의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유명 배우답지 않게 색기있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바다가 배경인 TV영화 《템프테이션》(Wet Gold)에서 원피스 수영복 차림으로 나와 육감적인 몸매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7]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해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1987년에 졸업했다. 이 당시 마이클 잭슨과 공개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이 당시에 첫 섹스를 했다고 밝혔는데, 그 유력한 상대는 당시 프린스턴 동기이자 TV시리즈 슈퍼맨의 주연이던 딘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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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지 표지.
다만 '''딱 여기까지가 전성기였다'''
이후 출연한 《사하라》는 대차게 말아 먹었고, 그녀의 팬이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투자로 제작한 《브랜다 스타》(1991)는 이런 저런 제작사의 사정으로 개봉도 못했다가 나중에 몇몇 극장에서 상영하여 1,600만 달러 제작비를 날린 8만 달러 정도 수익에 그쳤다. 그리고 2차 시장으로 나온 이 영화 평가는 최악으로 골든 라즈베리 여러 후보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1992년 초, SBS 초기 외화로 더빙 방영하고 <애니메이터>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오기도 했다. 1989년에 그녀가 카메오로 나온 《캐논볼 3》도 거기서 거기.
아역 배우의 한계인지 더이상 정상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그저 그런 배우가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실즈의 섹시한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배역 제의가 많았는데, 실즈는 자신의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어질까봐 계속 거절했고, 그러다보니 영화계에서 점점 출연할 기회가 뜸해진 것.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연예계 활동을 한지라 이미지 소모가 너무 많아 식상감이 온 탓도 있다. 전형적인 아역 딜레마.
사실 조디 포스터, 나탈리 포트만 등 아역 출신같이 타고난 연기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얼굴 마담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가지는 역을 자처한 제니 매카시 같은 노력도[8] 없었다. 한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짐 캐리같이 감독을 스토킹급으로 따라다니면서 흥행실패를 각오하고 새로운 이미지의 배역에 도전하지도 않았다. 애나 패퀸이나 아만다 사이프리드같이 흥행은 둘째쳐도 경력을 위해 난해하지만 작품성은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를 찾아다니는 위험도 무릅쓰지 않았다.
어찌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자체로 관심을 얻고 유명인들이 꼬이다보니 노력의 필요성도 없어져서 중요한 터닝포인트의 기회를 놓친 케이스.
성인이 된 후 "지나치게 노출연기에 몸을 사린다"는 비판을 받자, 1996년에는 성인이 되고 난 후 처음으로 잡지용 누드사진을 찍은 바 있다. 참고로 실즈는 미성년자일 때 누드사진을 찍은 바 있다. (위에 나왔다시피 연예인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된 정신나간 모친 때문이다. 당연히 딸 팔아먹었다고 욕 엄청 먹었다.)
영화 주연으로는 1990년대는 거의 출연하지 못했고, 조연으로 TV 시트콤이나 영화에만 간간히 얼굴을 내비치는 정도. 그 때문인지 우울증에 걸려서 꽤 고생도 했다고.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래도 조연이나마 꾸준히 TV와 영화에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녀의 제2의 전성기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였다''' 물론 한창때인 1980년대 초반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연기력도 향상되고 비록 TV배역이지만 립스틱 정글 등의 인기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한다. 비슷한 사례로 한창의 미모의 시기를 슬럼프로 보내고 나이가 들어 연기력으로 재승부에 성공한 사례로 제니퍼 코넬리, 다이앤 레인이 있다.
1988년에 한국에 한국계 코미디언 쟈니 윤, 유명한 코미디언 밥 호프와 함께 올림픽 기념 공연 겸 주한미군 위문을 위해 방한한 적이 있다. 쟈니 윤과 꽤 친하다고. 이때 윤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긴 했는데, 노래실력은 외모에 못 미쳤다는게 중론.[9] 자니윤 웰컴쇼 출연영상
1997년에 테니스 스타인 안드레 애거시와 결혼한 후 2년 만에 아이없이 이혼했고(동거는 1993년부터 시작), 현재는 TV 작가인 크리스 헨치와 부부이고, 두 이 있다.
인공수정 및 우울증약의 부작용으로 호르몬 이상이 생겨 외모가 많이 변했다.[10] 말단 비대증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호르몬제의 부작용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실즈의 키가 웬만한 여자 농구선수랑 비슷한 183cm이다! 그래서 이런 소문이 퍼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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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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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뉴욕에 있는 H마트(한국 상점 중 하나)에 들른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이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한식세계화"를 위해 3억 2천만 원을 받고 섭외받아 한 연출이라고 한다. 기사1 기사2
나루히토 천황이 영국 유학 시절에 그녀의 사진을 기숙사 벽 한 켠에다가 붙여놓았던 적이 있고 나루히토가 영국 유학을 끝마치고 일본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11] 유학 과정에서 사귄 미국인 친구네 집을 방문했을 때 친구의 요청으로 브룩 실즈와 만났고 이 만남에 대해서 나루히토는 기자들 앞에서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 이후 브룩 실즈의 1990년 방일 당시에 다시 만난 적이 있어서 이때 일본 언론에서 "나루히토가 브룩 실즈와 결혼하는 게 아니냐"는 찌라시도 돈 적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나루히토가 실즈의 팬인 것은 잘 알려져서 한 외국 기자가 당시 기준으로 결혼하지 않은 나루히토에게 "쉴즈에게 청혼할 생각은 없냐"고 묻자, 나루히토는 깔끔하게 "저는 외국인과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라 대답했다. 나루히토는 1986년부터 외교관 오와다 마사코에게 반해 있었고, 마사코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7년이나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1993년에 결혼했다.


[1] 사실 상류층 혈통은 아버지로부터이다. 어머니 테리 쉴즈는 그냥 평범한 중산층 출신의 배우였다. 그래서 부모는 결혼부터 아버지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고, 어머니의 임신으로 혼인 신고를 했지만, 브룩 쉴즈가 태어난 직후 바로 이혼하였다.[2] 더러운 사생활 및 대머리 유전(…) 그레이스 켈리의 세 자녀 중 가장 켈리와 닮은 자식이라는 평이 어디로 안 가는지 젊은 시절엔 제법 준수한 편이었지만(사실 모나코 왕가는 켈리의 우월한 외모 덕에 후손들이 미남미녀가 된 케이스다.), 사진에서도 보다시피 젊은데 벌써 탈모가 오는 게 보인다...[3] 다만 브룩 쉴즈의 전성기가 더 짧다. 마이클 잭슨은 정확히 1990년대 중후반까지이고, 브룩 쉴즈는 1980년대 후반까지.[4] 브룩 쉴즈의 경우는 약물로 인한 것이고, 마이클 잭슨의 경우는 백반증과 일부 성형, 루푸스 등이다.[5] 이 둘은 유년기에 극성 부모 밑에서 일하느라 어린 시절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점과 압도적인 1980년대 초의 전성기,[3] 젊은 시절과 나이 들어서의 외모가 매우 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다.[4] 이 공통점들 때문에 친해졌을 수도 있다.[6] 파라다이스는 1982년작. 블루라군이 원조다.[7] 미국은 이런 면에선 꽤 관대하다. 그래서 아역 배우들은 쉽게 명문대에 입학한다. 아역 배우 출신인 조디 포스터예일 대학을 나오고 나탈리 포트만하버드 대학을 나왔다. 하지만 브룩 실즈는 경우가 다르다. 조디 포스터는 외국어 사립 고등학교 수석 출신으로 아역배우가 아니더라도 명문대 진학 가능성이 높은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브룩 실즈는 특례로서 일반적인 커리큘럼의 학생이 아니었다.[8]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한 샤를리즈 테론 같은 배우도 미모로 재능이 덮어지는 면이 없지 않자, <몬스터> 같은 영화에서 20kg 이상 일부러 체중을 늘리고 노메이크업으로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싸구려 창녀 역을 자처했다.[9] 올림픽 개막 3개월전에 일화의 음료 브랜드인 맥콜의 단독 협찬으로 쇼를 개최했으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조용필도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10] [image][11] 원래 일본 왕족들은 영국 유학을 마칠 때 일본으로 오지 않고 여행을 한 번 하고 돌아오는데, 카코 공주도 그걸 이용해서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가 이때 집안 분위기가 개판 오분전이라 이를 포기하고 바로 일본으로 돌아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