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마르소
1. 개요
멜로영화계의 원조 여주인공이자 1980~1990년대의 대한민국 청소년들을 사로잡은 외국 미인 여배우(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왕조현 등등)들 중 하나. 브룩 실즈는 90년대 들어서 호르몬 이상으로 외모가 망가져서, 피비 케이츠는 케빈 클라인과 결혼 후 은퇴하여 철저하게 잊힌 것과 달리 그녀는 꾸준히 활동을 하며 헐리우드까지 진출하였다. 여담으로 모니카 벨루치와 친한지 둘이 같이 찍은 사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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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현재 57세로 이제는 20대 시절 때와 같은 청순미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대신 기품이 느껴지는 미모이다. 그래도 타고난 신체조건은 어디 가지 않아서 2014년 개봉한 "어떤 만남"이란 영화에서는 베드신을 소화했는데 여전한 몸매를 보여주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국내에서 더빙되어 방송될 때는 송도영, 정경애가 전담하여 소피 마르소의 역할을 맡았다. 가끔은 최덕희, 문선희 등이 맡기도 했다.
2. 일생
본명은 소피 다니엘 실비 모퓌(Sophie Danièle Sylvie Maupu). 1966년 11월 17일 파리, 가게 종업원인 시몬 모리세(Simone Morisset)와 트럭 운전수인 브누아 모퓌(Benoît Maupu) 사이에서 첫째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마르소 가족은 노동자 계급의 삶을 살았는데, 이것은 그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주중에 가족의 식당 일을 도왔으며, 주말에는 에손(Essonne) 주의 베르 르 프티(Vert-le-Petit)에 위치한 작은 집인 라 카반(La Cabane)에서 지냈다. 그러나 9살 때 부모는 이혼했다.
1980년 2월, 14세였던 마르소와 그녀의 어머니는 10대를 위한 모델 에이전시에 그녀의 사진을 가지고 갔으나 어떠한 연락도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같은 때 클로드 피노토(Claude Pinoteau) 감독 영화 라붐(La Boum, the party)의 캐스팅 감독이었던 프랑수아즈 메니드레(Françoise Menidrey)는 마르소가 사진을 제출한 모델 에이전시에게 해당 프로젝트를 위한 배우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고 에이전시는 소피 마르소를 추천한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카메라 테스트와 면접을 거친 후, 고몽(Gaumont)[1] 영화사의 알랭 푸아레(Alain Poiré)와 장기 계약을 맺었다.
10대 청춘물인 라붐(1980년)은 프랑스에서만 450만의 관객을,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1500만 명의 관객을 기록[2] 할 정도로 대히트했고, 1981년에는 프랑스 가수 프랑수아 발레리(François Valéry)와 같이 델라노에(Delanoë) 작사의 곡인 "Dream in Blue"로 가수로도 데뷔하였다. 1982년, 16세가 된 마르소는 라붐 2에 출연한 후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고몽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100만 프랑스 프랑(현재 40억 이상 예상)을 빌려 고몽(Gaumont)과의 독점 계약을 해지했다.( )
속편격인 라붐 2(1982년)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일대에서 매우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물론, 일본, 대한민국 등 아시아에서도 공식적으로 개봉되면서[3] 소피 마르소의 외모에 반한 남성팬들이 차례로 등장, 그녀의 얼굴이 나온 책받침, 영화 포스터 등이 불티나게 팔리는 등 8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서양 여배우 중의 하나가 되었다. 당시 소피 마르소의 인기는 푸른 산호초로 가장 아름다운 헐리우드 여배우로 평가받던 브룩 쉴즈(Brook Shields)나 피비 케이츠와 함께 책받침 여신으로 불렸을 정도였다.
라붐 2의 흥행으로 소피 마르소는 프랑스와 유럽의 국민 아이돌로 떠올랐지만 한편으로는 전문적인 연기 수업을 받지 않고 얼굴로만 뜬 배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소피 마르소는 "아이돌"로 각인된 자신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 라붐 시리즈의 차기작으로 1984년 제라르 드빠르디유, 카트린 드뇌브가 공동 주연한 Fort Saganne(사강의 요새)로 대규모 블록버스터에도 진출했고 같은 해 10월에 개봉한 Joyeuse Pâques(행복한 부활절)에서는 시크하고 반항적인 불량소녀로 나왔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자 소피 마르소는 "L'Amour Braque(1985)", "Police(1985)", "Descente aux Enfers(1986)"(한국 개봉명 : 지옥에 빠진 육체) 등에서 연이어 노출 연기를 선보임으로써 완전한 이미지 변신을 하기 시작한다. 특히 지옥에 빠진 육체에서 소피 마르소는 라붐에서 아버지 역으로 나왔던 클로드 브라쇠르(Claude Brasseur)와 부부로 출연하여 전신누드가 포함된 정사신을 펼쳐서 그녀의 청순한 모습을 기억하던 팬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이후 소피 마르소는 1988년, 라붐의 감독인 클로드 피노토(Claude Pinoteau)의 신작 "L'Etudiante"(한국개봉명: 유 콜 잇 러브)과 사극 Chouans에 출연하면서 로맨틱한 여주인공으로 돌아온다. 노르웨이의 여가수 캐롤라인 크루거(Karoline Krüger)가 부른 'You call it love'가 잔잔히 깔리면서 스키 마스크와 모자를 벗고 아름다운 얼굴선과 함께 깨끗한 피부를 드러내는 영화의 오프닝은 소피 마르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극중에서 소피 마르소가 몰리에르의 "인간혐오자Le Misanthrope", 알프레드 드 뮈세의 "사랑은 장난으로 하지 마오On ne badine pas avec l'amour"와 같은 희곡 작품들을 언급하는 등 그녀의 지적인 모습 또한 못 남성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사극 Chouans!에서 맡은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로도 국제 로맨틱 영화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로맨틱한 여배우상을 수상하였다.
1989년부터 소피 마르소는 자신보다 26살 연상인 폴란드 출신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줄랍스키(Andrzej Żuławski, 1940.11.22-2016.02.17)와 동거를 시작하였고 1995년 6월에는 아들 뱅상 (Vincent)이 태어났다.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과의 인연은 그가 1985년에 감독한 영화 L'Amour Braque(1985)에 출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990년에는 두 사람이 만든 회사의 3번째 필름인 "Pacific Palisades" 와 "La Note Bleue"에 출연했다. 1991년, 마르소는 유리디체(Eurydice) 극장에서 공연된 조지 버나드 쇼의 유명한 희곡 피그말리온에서 주연인 엘자 돌리틀 역으로 출연하여 연극 무대에도 진출, 최고의 신인 여배우를 위한 상인 몰리에르 상을 받았다. 1993년에는 뱅상 페레[4] 와 함께 로맨틱 코메디 "팡팡"(Fanfan)을 통해 못말리는 천방지축 아가씨를 연기하였다.
1994년의 "La Fille de D'Artagnan"(달타냥의 딸)을 기점으로 다시 덜 로맨틱한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소피 마르소는 1995년 멜 깁슨 감독,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에서 이사벨 공주 역으로 출연 헐리우드를 포함한 국제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유명한 프랑스 영화감독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와 빔 벤더스(Wim Wenders)와 함께 영화 Beyond the Clouds에서 국제적 배우로서 호흡을 맞췄다.
1997년, 그녀는 영국에서 윌리엄 니콜슨과 영화 "Firelight"를, 프랑스에서 베라 벨몽드와 영화 Marquise을 촬영하고 버나드 로즈와 러시아에서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를 찍었다.
1999년 한여름 밤의 꿈에서 히폴리타를 연기했으며, 007 영화 "The World Is Not Enough(국내에는 007 언리미티드)"에서 악녀 본드걸인 엘렉트라 킹을 연기했다.
2000년에 안드레이 줄랍스키와 마지막으로 팀을 이룬 영화 "La Fidélité(한국개봉명: 피델리티)"를 찍고 2001년 그와 이혼한 마르소는 프로듀서 짐 렘리와 사귀면서 2002년 런던에서 그녀의 두 번째 아이인 줄리엣을 낳았고 2002년 영화 <사랑한다고 말해줘/Parlez-moi D'amour>를 감독하여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이후 짐 렘리와 헤어진 그녀는 2007년에 개봉한 자신의 2번째 감독 영화 <트리비알>에 주연으로 출연한 미국계 프랑스인인 동료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5] 와 2012년 결혼했다가 2014년 이혼했다.
이처럼 청순하기만한 얼굴과 달리 직접 영화감독을 맡기도 하고 '거짓말장이'라는 제목의,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반자전적인 소설을 쓰기도 하는 등 지적인 면도 많이 갖추고 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에는 영어로 된 작품도 많은데 영어대사를 완벽히 소화해 내는 것으로 보아 영어능력도 수준급인 듯. 2009년에는 크리스챤 디올의 화장품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
노동자 계급 가정 출신이라서 그런지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투표에서 노골적으로 백인우월주의를 내건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 펜이 예상을 뒤엎고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뛰어들었다. [6]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브리지트 바르도의 재단이 한국의 개고기 식용을 반대하는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에 보내는 항의문에 소피 마르소는 나탈리 베이, 장폴 벨몽도, 축구선수 에마뉘엘 프티와 함께 서명했다. 당시 기사 물론 바르도의 한국을 경멸하는 견해까지 지지한다기보다는 동물보호 측면에서만 공감을 해서 그런 것으로 보이며, 상술한 정치 성향이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4년에는 동거녀와의 결별로 이어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열애 스캔들과 관련해 "올랑드는 비열한 겁쟁이"라는 거침없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2016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인권 탄압과 관련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 서훈을 거부했다.
3. 한국에서의 인기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로 프랑스 영화는 거의 개봉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지도는 웬만한 미국 배우 못지않다. 국내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시한 미인 투표에서 1위로 뽑힌 적도 있다.
80년대 후반 화장품 CF를 위해 처음 방한하였다. CF 촬영 당시 개런티 2억을 받았다고 말이 많았는데 이는 2억원이 당시 한국 영화 평균 제작비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당시 외국인 모델로 가장 시초로 일컬어지는 주윤발은 500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강남의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 가격이 5000만 원 정도 하던 시절이다. 홍콩(같은 동아시아)과 프랑스(서유럽)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가격 차는 있을 법도 하지만. 무리해서 초청한 모델인 건 확실. 이때 한국 스탭들과 같이 뒤풀이를 했는데 한국인들은 소피 마르소가 술을 못하거나 아니면 한두 잔 할 줄 알았는데, 매실주를 한 병 다 마시고도 전혀 술기운이 돌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1991년 La Note bleue (푸른 노트, 쇼팽의 푸른 노트)가 한국에 개봉하자 소피 마르소는 영화 홍보를 위해 방한하였는데 그녀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극장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때도 소피 마르소가 대통령과 같이 왔는데 당시 소피 마르소를 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을 보고 프랑수아 미테랑은 그 사람들이 다 자기를 보러 온 줄 착각하고 통역사 최정화 씨에게 "마드모아젤, 내가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소."라고 대단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4. 작품
4.1. 배우로서
- La Boum (파티, 라붐), 1980 : 빅 베레톤
- La Boum 2 (라붐 2), 1982: 빅 베레톤
- Fort Saganne (사강의 요새), 1984: Madeleine de Saint-Ilette
- Joyeuses Pâques (행복한 부활절, 나이스 줄리), 1984: 줄리
- L'Amour braque (광기의 사랑, 격정), 1985: 마리
- Police (경찰, 폴리스), 1985: Norya
- Descente aux enfers (지옥으로의 강하, 지옥에 빠진 육체), 1986: Lola Kolber
- L'Étudiante (여학생, 유 콜 잇 러브), 1988: 발렌틴 에즈퀴라
- Chouans! (혁명가의 연인), 1988: Céline
- Mes nuits sont plus belles que vos jours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1989: Blanche
- Pacific Palisades (고요한 펠리세이드)1990: Bernadette
- Pour Sacha (사챠를 위해), 1991: 로라
- La Note bleue (푸른 노트, 쇼팽의 푸른 노트), 1991: Solange Sand
- Fanfan & Alexandre (팡팡), 1993: Fanfan
- La Fille de d'Artagnan (달타냥의 딸), 1994: Eloïse d'Artagnan
- 브레이브 하트 (Braveheart), 1995: 이사벨라 공주
- Al di là delle nuvole (구름 저편에) 1995
- Anna Karenina (안나 카레니나), 1997: 안나 카레나나
- Marquise (베라 벨몽드와 같이), 1997: Marquise du Parc
- Firelight (윌리엄 니콜라스와 같이), 1997: Élisabeth Laurier
- Lost & Found, 1999: Lila Dubois
- A Midsummer Night's Dream, 1999: 히폴리타
- 007 언리미티드 (007: The World Is Not Enough), 1999: 엘렉트라 킹
- La Fidélité (충성), 2000: Clélia
- Belphégor, Le fantôme du Louvre (벨페고르, 루브르의 유령), 2001: 리사
- Alex and Emma, 2003: Polina Delacroix
- Je reste!, 2003: Marie-Dominique Delpire
- Les clefs de bagnole (자동차 열쇠들), 2003
- A ce soir, 2004: Nelly
- Anthony Zimmer (안소니 짐머), 2005: 키아라 만초니
- La Disparue de Deauville, 2007: Lucie/Victoria
- Les Femmes de l'Ombre (피메일 에이전트), 2008
- LOL (크게 웃다), 2008
- De l'autre côté du lit, 2008
- Don't Look Back, 2009
- L'Âge de raison (디어 미), 2010
- La France Sauvage, 2011
- Un bonheur n'arrive jamais seul, 2012
- Le Cerveau d'Hugo, 2012
- Arrêtez-moi, 2013
- Une rencontre, 2014
- Tu veux ou tu veux pas, 2014
- La Taularde, 2016
4.2. 작가와 감독으로서
- L'Aube à l'envers, 1995 (단편 영화)
- Parlez-moi d'amour (사랑한다고 말해줘) 2002
- La Disparue de Deauville (트리비알) 2007 (출연, 각본도)
4.3. 저자로서
- Sophie Marceau (1996). Menteuse.(거짓말하는 여자) Paris: Editions Stock. (거짓말쟁이의 여성형)
[1] 프랑스의 배우인 레아 세두는 이 회사의 CEO인 니콜라스 세두의 증손녀다.[2] 이 기록은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이 개봉하기 전까지 장장 8개월 간 깨지지 않았다.[3] 프랑스 측에서 정식 판권을 받아 대한민국의 극장에서 라붐 1이 정식 개봉된 것은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2013년 개봉한 것이 최초였고 1989년 금성비디오에서 출시한 라붐 비디오는 해적판이었다. 라붐 2는 만들어진 지 4년 만인 1986년에 극장에서 공식 개봉했으나 극장 흥행 자체는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자체보다 소피 마르소와 영화의 주제가 "Reality"(라붐 1), "Your eyes(라붐 2)"이 더 알려졌다. 참고로 "리얼리티 Reality"와 "유얼 아이즈 Your Eyes", "유 콜 잇 러브 You call it love", 세 노래 모두 블라디미르 코스마 Vladimir Cosma라는 프랑스의 음악가가 만들었다.[4] 프랑스에서 주로 활약한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명배우. 주로 작가주의 영화에 출연하였지만 '크로우2'에서는 액션배우로 주연을 맡기도 했다. [5] '하이랜더' 시리즈의 주인공 코너 맥클라우드 역을 맡았던 배우이다. 프랑스 배우인 탓에 크리스토퍼 랑베르라는 프랑스 발음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고향은 미국이며 프랑스계도 아니다. 배우 활동만 프랑스에서 하는 것. 미국 여배우 다이안 레인의 전 남편이기도 하다.[6] 르펜이 결선투표에 진출하자 프랑스 전역에서 '''공화국을 사수하자'''면서 르펜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소피 마르소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예인, 스포츠스타들도 대놓고 르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네딘 지단은 부모님이 알제리 출신이라서 그런지(지단 본인은 마르세유 출신이다.) 국민전선을 극구 반대하면서 혹여 장 마리 르 펜이 당선되면 은퇴해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르 펜은 대놓고 아프리카계를 욕했다는 것...) 반면 보신탕을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브리지트 바르도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정당을 골수적으로 지지한다. 투표 결과는 르펜의 참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