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노 아키코
与謝野晶子 (よさの あきこ)
(1878~1942)
출신 : 오사카부 사카이 시
주요 활동 분야 : 와카(그 중 단카)
가족 : 남편 요사노 뎃칸(与謝野鉄幹)
메이지 시대~쇼와 시대(일본 제국)에 활동했던 여성 와카 작가이다. 메이지 시대 대표적 신여성 중 한 명이었고, 여성문학 및 여성해방운동에 관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결혼 전 성은 호(鳳).
1878년, 오사카의 사카이 시 가이쵸의 화과자점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돕느라 바쁜 생활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늦게 일이 끝나고 나서도 부모의 눈을 피해 가며 여러 문학 작품을 읽어 왔다. 그 때 일본의 고전 명작이라 불리우는 겐지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 에이가모노가타리[1] 등을 탐독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제국대학에 들어간 오빠가 보내주었던 당대의 문예 잡지들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요사노 아키코는 관서 지방의 문학회에 입회하면서부터 시작됐는데, 당대의 유명한 시인 '요사노 뎃칸'[2] 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요사노 뎃칸과 그 제자들과 함께 묘조(明星)라는 동인잡지를 중심으로[3] 활동한다. 그리고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스승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에 관해 같은 문하생이자 친구인 야마가와 도미코(山川登美子)와 요사노 뎃칸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 유명하다. 당시 아키코는 20세 초반. 그런데 요사노 뎃칸은 이미 부인이 있었다. 심지어 뎃칸과 그 부인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다. 더 웃긴 것은 뎃칸은 처음에 아키코보다는 도미코에게 더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단 셋이서 교토 여행까지 가는 등, 한국 막장 드라마에서도 재현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경쟁자였던 도미코는 아버지의 강요로 강제적으로 혼사가 정해지고, 이 막장 드라마의 최후는 아키코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4] 어쨌든 아키코 때문에 뎃칸은 이혼까지 하게 된다. 결국 사랑싸움에서 승리한 요사노 아키코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기 때문에 결국 본가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다. 참고 사이트
어쨌든 그 엄청났던 연애 이후 가집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헝클어진 머리칼(みだれ髪, 미다레가미)'이다. 자전적 성격의 시집으로서, 작가 자신의 연애 경험이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당대 여성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담대하고 과감한 표현을 사용하였기에 큰 이슈가 되었다. 제목에서도 추론할 수 있는 점은 여성이 격한 정사 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표현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고, 샤워 후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뜻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쨌든 관능미 넘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은 확실하다.
실제 내용면에서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연애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듯 자유분방한 연애 관념, 정열적이고 풍부한 가풍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의지 등을 표현한 시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표현이 저급한 것도 아니었고 참신하고 미적이었기 때문에 당대의 젊은 남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꼰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이름을 날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한다. 그리하여 얻게 된 별명은 ''''정열의 가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아직 봉건적 관습을 타파하지 못했던 당시 시대상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러일전쟁에 참전하게 된 동생의 무사귀환을 기리며 쓴 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1904)가 또 다른 의미로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된다. 요사노 아키코가 이 단카를 발표했던 시기는 한참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라, 동정론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작품 활동이 뜸해진 요사노 뎃칸을 대신해서 잡지 '묘조'의 간행에도 힘써 왔다고 한다. 말년에는 등단 초기에 보여주었던 불꽃 같은 문체나 패기는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사색적이고 깊이가 생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특히 관심을 보였던 부분이 여성인권 신장이었다. 직접 학교를 세울 정도로 교육 쪽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시가문학 뿐 아니라 소설, 수필, 고전 연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겐지모노가타리의 구어판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고전문학의 현대어화에 노력했는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현대어역본과 더불어 양대 역본으로 칭송받는다.
1942년 뇌일혈로 사망하기까지 그녀는 20권, 5만 여 수의 단가를 남겼다. 참고로 뎃칸은 아키코보다 7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그에 대한 만가(挽歌,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많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반전시의 대표시로 손꼽히고, 일본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는 발표 당시 수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일단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게 비애국자, 역적 등 극딜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쟁에 끌려간 청년들의 가족들에게는 공감을 충분히 샀던 내용이기도 하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내용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당시에 '감히' 폐하를 들먹이며 직접 전투도 안 나가는 주제에!, 폐하가 죽이라면 죽여야지 어디서 '죽이다 죽으라고 태어났느냐' 라고 하는 등... 다분히 반항적이고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가 깊어 보인다.
하지만 요사노 아키코의 이후 행보를 보면 만주국으로 가서 종군위문을 하거나, 태평양전쟁 당시 개전시를 쓰는 등 완벽히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단순히 동생의 안위가 걱정되어 빡쳐서 쓴 시인지, 정말 전쟁을 멈추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쓴 시인지 불분명한 모습이 있지만, 말년에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만화 및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 독스의 무장 탐정사의 일원으로 나온다. 거기에 나온 이능력은 그녀의 대표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 빈사상태의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의사로 나온다. 당시 신여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성격 또한 당차게 설정되어있다.
1988년작 일본 영화 <화의 란(華の乱)>에서도 등장하는데 일본의 국민 여배우인 요시나가 사유리가 연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극중 요시나가 사유리가 연기한 요사노 아키코가 실제 인물의 얼굴과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미스캐스팅이라는 거.
(1878~1942)
1. 개요
출신 : 오사카부 사카이 시
주요 활동 분야 : 와카(그 중 단카)
가족 : 남편 요사노 뎃칸(与謝野鉄幹)
메이지 시대~쇼와 시대(일본 제국)에 활동했던 여성 와카 작가이다. 메이지 시대 대표적 신여성 중 한 명이었고, 여성문학 및 여성해방운동에 관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결혼 전 성은 호(鳳).
2. 유년시절
1878년, 오사카의 사카이 시 가이쵸의 화과자점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돕느라 바쁜 생활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늦게 일이 끝나고 나서도 부모의 눈을 피해 가며 여러 문학 작품을 읽어 왔다. 그 때 일본의 고전 명작이라 불리우는 겐지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 에이가모노가타리[1] 등을 탐독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제국대학에 들어간 오빠가 보내주었던 당대의 문예 잡지들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3. 남편 요사노 뎃칸과의 만남
요사노 아키코는 관서 지방의 문학회에 입회하면서부터 시작됐는데, 당대의 유명한 시인 '요사노 뎃칸'[2] 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요사노 뎃칸과 그 제자들과 함께 묘조(明星)라는 동인잡지를 중심으로[3] 활동한다. 그리고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스승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에 관해 같은 문하생이자 친구인 야마가와 도미코(山川登美子)와 요사노 뎃칸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 유명하다. 당시 아키코는 20세 초반. 그런데 요사노 뎃칸은 이미 부인이 있었다. 심지어 뎃칸과 그 부인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다. 더 웃긴 것은 뎃칸은 처음에 아키코보다는 도미코에게 더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단 셋이서 교토 여행까지 가는 등, 한국 막장 드라마에서도 재현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경쟁자였던 도미코는 아버지의 강요로 강제적으로 혼사가 정해지고, 이 막장 드라마의 최후는 아키코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4] 어쨌든 아키코 때문에 뎃칸은 이혼까지 하게 된다. 결국 사랑싸움에서 승리한 요사노 아키코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기 때문에 결국 본가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다. 참고 사이트
4. 작품 활동과 말년
어쨌든 그 엄청났던 연애 이후 가집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헝클어진 머리칼(みだれ髪, 미다레가미)'이다. 자전적 성격의 시집으로서, 작가 자신의 연애 경험이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당대 여성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담대하고 과감한 표현을 사용하였기에 큰 이슈가 되었다. 제목에서도 추론할 수 있는 점은 여성이 격한 정사 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표현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고, 샤워 후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뜻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쨌든 관능미 넘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은 확실하다.
실제 내용면에서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연애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듯 자유분방한 연애 관념, 정열적이고 풍부한 가풍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의지 등을 표현한 시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표현이 저급한 것도 아니었고 참신하고 미적이었기 때문에 당대의 젊은 남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꼰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이름을 날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한다. 그리하여 얻게 된 별명은 ''''정열의 가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아직 봉건적 관습을 타파하지 못했던 당시 시대상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러일전쟁에 참전하게 된 동생의 무사귀환을 기리며 쓴 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1904)가 또 다른 의미로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된다. 요사노 아키코가 이 단카를 발표했던 시기는 한참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라, 동정론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작품 활동이 뜸해진 요사노 뎃칸을 대신해서 잡지 '묘조'의 간행에도 힘써 왔다고 한다. 말년에는 등단 초기에 보여주었던 불꽃 같은 문체나 패기는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사색적이고 깊이가 생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특히 관심을 보였던 부분이 여성인권 신장이었다. 직접 학교를 세울 정도로 교육 쪽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시가문학 뿐 아니라 소설, 수필, 고전 연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겐지모노가타리의 구어판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고전문학의 현대어화에 노력했는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현대어역본과 더불어 양대 역본으로 칭송받는다.
1942년 뇌일혈로 사망하기까지 그녀는 20권, 5만 여 수의 단가를 남겼다. 참고로 뎃칸은 아키코보다 7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그에 대한 만가(挽歌,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많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5. 반전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
지금은 반전시의 대표시로 손꼽히고, 일본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는 발표 당시 수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일단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게 비애국자, 역적 등 극딜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쟁에 끌려간 청년들의 가족들에게는 공감을 충분히 샀던 내용이기도 하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내용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당시에 '감히' 폐하를 들먹이며 직접 전투도 안 나가는 주제에!, 폐하가 죽이라면 죽여야지 어디서 '죽이다 죽으라고 태어났느냐' 라고 하는 등... 다분히 반항적이고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가 깊어 보인다.
하지만 요사노 아키코의 이후 행보를 보면 만주국으로 가서 종군위문을 하거나, 태평양전쟁 당시 개전시를 쓰는 등 완벽히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단순히 동생의 안위가 걱정되어 빡쳐서 쓴 시인지, 정말 전쟁을 멈추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쓴 시인지 불분명한 모습이 있지만, 말년에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6. 창작물
만화 및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 독스의 무장 탐정사의 일원으로 나온다. 거기에 나온 이능력은 그녀의 대표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 빈사상태의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의사로 나온다. 당시 신여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성격 또한 당차게 설정되어있다.
1988년작 일본 영화 <화의 란(華の乱)>에서도 등장하는데 일본의 국민 여배우인 요시나가 사유리가 연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극중 요시나가 사유리가 연기한 요사노 아키코가 실제 인물의 얼굴과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미스캐스팅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