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숙왕후

 

'''고려의 역대 왕후'''
의조
원창왕후
'''→'''
'''세조비
위숙왕후'''
'''→'''
태조
신혜왕후
장화왕후
신명순성왕태후
신정왕태후
신성왕태후
정덕왕후
'''고려 왕조 삼대조'''
'''3대'''
'''2대'''
'''1대'''
정화왕후
원창왕후
'''위숙왕후'''
'''威肅王后 韓氏
위숙왕후 한씨'''

'''시호'''
'''위숙왕후(威肅王后)'''
'''성씨'''
한씨(韓氏)
'''남편'''
세조 위무대왕
'''아들'''
태조 신성대왕
'''능호'''
창릉(昌陵)
'''태조와의 관계: 어머니'''
1. 개요
2. 각종 기록
2.1. 태조실록
2.2. 편년강목
2.3. 평가
3. 시호


1. 개요


고려왕조의 세번째 추존왕후. 태조 신성왕의 1대조, 친어머니다.
고려사 고려세계에서 인용한 편년강목에서만 약간의 기록이 남아있다.

2. 각종 기록



2.1. 태조실록


고려실록은 단 한줄의 기사만 있었던 걸로 보인다. 태조의 아버지 세조 위무대왕의 아내를 위숙왕후로 추존했다는 기사만 있다.

2.2. 편년강목



정화왕후 진의, 원창왕후 저민의완 다르게 이름이 전해지지 않고 성씨만 남아있다.
세조 왕륭이 꿈 속에서 한 여인을 보았다. 이후 왕륭이 영안성에 갔을 때 이 여인을 실제로 만났고, 곧바로 대쉬해 결혼에 성공했다.
근데 아무도 이 여인의 정체에 대해 몰라 세간에선 꿈의 부인, '몽부인(夢夫人)'이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사가 인용한 편년강목엔

'''그가 '삼한지모(三韓之母)'이기에 성(姓)을 한씨(韓氏)로 하였다.'''

고려사 고려세계 편년강목 중.

라고 한다.
이후엔 송악에 들른 도선의 말을 왕륭에게 전달한다.

2.3. 평가


위숙왕후는 원창왕후 저민의완 다르게 가문의 힘이 그닥 세진 않았던걸로 보인다. 원창왕후는 이름과 용녀 전설, 평주 출신이라는 부연 기록이 남아있는 방면 위숙왕후는 몽부인 전설 외엔 별다른 기록이 없다.
어디 출신인지, 이름은 뭔지가 나오지 않고 왕륭의 세력지인 영안성에서 만났다는걸 보면 약한 가문 출신이라는 것이 추측된다. 비록 귀족만이 가졌던 성씨를 가졌지만 '성을 한씨로 하였다.'란 기록은 위숙왕후가 원래 성씨가 없었는데 훗날 추가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3. 시호


고려사 최초로 국왕과 앞 시호를 맞춘 왕후다. 고려 국왕과 왕후의 대표시호를 자세히 보면 앞글자가 전부 동일하다.
위숙왕후의 경우는 ''''威숙왕후''''와 ''''세조 威무대왕''''이 동일하다. 비슷하게 아들 ''''태조 神성대왕''''은 장화왕후 빼고 모든 왕후와 神 자 돌림을 맞췄음을 알 수 있다. 혜종 義공대왕義화왕후, 정종 文명대왕과 文공왕후, 文성왕후, 광종 大성대왕大목왕후......
이 시호 맞춤 전통은 고종 安효대왕과 安혜왕태후, 원종 順효대왕順경태후 때까지 쭉 이어지다 충선왕대 고려가 독자적 시호를 올리지 못하게 되며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