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
1. 개요
구약성경 유딧[1] 에 등장하는 인물로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Holofernes, הולופרנס)의 목을 벤 여인. 여러 화가들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기에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잔인하고 생생한 표정묘사가 살아있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딧과, 황홀한 표정으로 적장의 목을 들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딧이 유명하다. [2]
유딧은 실제 역사와는 배치되는 부분이 많다. 네부카드네자르는 바빌론 왕인데 아시리아를 다스리고 있고 홀로페르네스는 전형적인 페르시아 이름이다. 그래서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라기보다는 유다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쓰인 문학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일단 '유디트'라는 이름부터가 '유다 여자'라는 뜻이다.
2. 내용
유디트는 유대의 산악도시 베툴리아에 살았던 아름답고 정숙한 과부였는데, 홀로페르네스가 지휘하는 아시리아 군대가 베툴리아를 침략하자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아시리아 군에 거짓으로 투항하여 연회를 즐긴다. 그리고 홀로페르네스와 단 둘이 남게 된 유디트는 만취한 홀로페르네스가 잠들자 그의 칼로 목을 베어 하녀와 함께 수급을 거두어 달아난다.
아무리 홀로페르네스가 방심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엄청난 활약이다. '''민간인 두 명이 적진 한가운데 잠입하여 야전 지휘관을 죽이고 증거까지 챙겨서 무사히 탈출'''한 것이다! 유디트의 활약으로 용기를 얻은 유대의 군대가, 어이없이 대장을 잃은 아시리아 군대를 물리친 것은 당연한 전개.
성경에서는 그냥 위의 서술 이상의 묘사는 나오지 않지만,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한 상태로 유딧과 '''단 둘이''' 남았고 자다가 '''침대에서''' 참수당했다는 상황이 미인에게 유혹당해 즐기고 퍼자다가 살해당한 것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유딧을 봐도 홀로페르네스가 유딧과 동침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내용이 있다.
물론 유딧 본인은 이를 부정한다."이윽고 유딧이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유딧 때문에 홀로페르네스의 마음은 들뜨고 정신은 아뜩해졌다. 그는 유딧과 동침하고픈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그를 처음 본 날부터 유혹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유딧 12.18)
총사령관이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그 수급까지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것을 저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어떠한 비밀스러운 이유로 호위를 물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유딧은 자신의 조국을 구한 '''영웅'''이며 '''성녀'''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영웅의 이미지보다는 성적 매력을 이용하여 남자를 파멸시킨 팜므 파탈(요부)의 이미지가 씌워진다."제가 저의 길을 걸어갈 때에 저를 지켜 주신, 살아 계신 주님을 걸고 말합니다. 저의 얼굴이 그를 유혹하여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저에게 죄를 저질러 저를 부정하게 만들거나 수치스럽게 만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딧 13.16)
다만 이는 지나치게 성적 판타지가 씌워진 해석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사실 진짜로 성관계를 행했는지 아닌지는 모르는 상황이고, 홀로페르네스는 그럴 의도가 있었어도 유딧이 그 전에 술을 꽐라가 되도록 퍼먹이거나 술에 약을 타 재워버린 후 쓱싹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또한 유딧이 하녀를 대동할 정도의 부유한 여성이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뇌물 등을 미끼로 던지며 단독 면담을 요구했을 수도 있다. 홀로페르네스가 유딧을 어떻게 생각했든 간에, 투항자에게 뇌물을 받아먹는 상황이었다면 호위를 물릴 만하다.
주인공인 유딧과 홀로페르네스에 관한 묘사에서 성 역할의 용해溶解는 주목할 만하다. 이야기는 성경 전승들에 의해, 그리고 남성들이 꼴지어온 문학과 사회에 의해 규정된 틀들을 변형시키는데, 그러나 결국 그 경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책 전반부에서 명령을 완수하는, 세상 곳곳에서 살해하고 약탈하고 황폐화시키는 대군의 우두머리로서 으레 승리를 거두어 온 대장군으로 묘사되는 홀로페르네스가, 유딧이 등장하면서부터는 한낱 유약한 사인私人으로 묘사되거니와, 천막 안에서 여인들에게나 어울리는 사치스러운 모기장 아래 누워 쉬며B.Schumitz, ''Männlichkeit'' 참조)[3]
내시의 보살핌을 받고, 욕정을 품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꾀어 보려 하며, 심지어는 여자처럼 말하고(11,23; 룻기 1,16의 인용), 결국에는 제 자신이 희생물이 되어 버린다.반면 유딧은 비록 과부지만 부유하며(구약성경에서 유일하다!) 자주적이다. 원로들을 제 집에 오게 하여 책망하는 설교를 하고, 전략적 의도를 지니고 몸치장을 하며(10,4), 모든 결정적 계획을 결단하고 책임지며, 행진에서는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도 이끌고(15,13), 성전에 봉헌물을 바치고 노획물을 나누며, 몸종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근친들에게 유산을 나누어 준다.
-헬무트 엥겔Helmut Engel, "유딧기",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520-521쪽
3. 후대의 영향
유딧의 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작품을 탄생시켰다. 대부분이 살해당한 남성의 목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작품은 하녀와 함께 홀로페르네스를 짓누르고 단호한 표정으로 목을 베고 있는 생생하고 현실적인 살해 현장을 묘사하였다. 여기서 유딧은 미인이기 전에 건장한 남성을 능히 살해할 수 있는 '''억센 팔뚝'''을 지닌 여성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면을 묘사한 남성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가 '''가녀린 소녀'''가 인상을 쓰며 목을 베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과는 대조적. 유딧의 조력자도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늙은 노파로 유딧을 재촉하는 등의 역할에 그치지만, 젠틸레스키의 경우는 동년배 내지는 약간 연상의 여인으로 홀로페르네스를 짓누르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실성만 따져보자면 젠틸레스키의 작품이 훨씬 현실적이다. 사람 목을 한번에 벤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홀로페르네스가 아무리 자고 있었다지만 칼로 목 따이는 상황이면 정신을 차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유딧 혼자서는 힘으로 상대가 안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녀와 2대 1로 짓누르고 목을 베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게다가 표정 묘사만 해도 마찬가지. 적진에 목숨 걸고 칼 들고 들어가 사생결단 내는 상황이라면 필사적이고 단호한 표정이 좀더 어울릴 것이다. 물론 예술 작품이니만큼 현실성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생생한 현실 묘사도 작품을 두드러지게 하는 요소인 것 또한 사실이다.
여성 화가인 젠틸레스키는 성폭행 피해 경험이 있었다. 가해 남성은 '아고스티노 타시'라는 당시 아버지 오라치오(이 사람도 화가다)와 친했던 화가로, 젠틸레스키에게 원근법을 가르치다가 젠틸레스키를 성폭행했다. 젠틸레스키는 타시를 고발했다가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며 손가락을 조이는 고문을 받는 적반하장의 상황에 처했던 경험이 있다. 타시는 젠틸레스키를 강간 후 결혼하겠다고 해서, 두 사람은 사건 뒤 3년 간 결혼을 전제로 한 애인 관계였다. 이건 당시 시대상 흔했던 강간 후 해결 방법이었다. 그러나 타시는 이미 다른 데에서 마누라도 있었고, 전 전과자에 처제(14세)와 근친상간죄로 고발된 상태였다. 타시는 해당 사건에서 유죄로 반 년 징역을 산 이후 두 번이나 체포되었는데 그 중 한 번은 매춘부 폭행 후 금품절도. 쓰레기의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그림 속 유딧의 얼굴과 젠틸레스키의 얼굴이 너무나도 흡사한 것에 놀랐다고 한다.[4]
- 두 화가의 그림 비교(영어 위키피디아): 약간 잔인함 주의.
여담으로 이 사실은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 있습니다 40화(2017년 12월 13일 방영)에 소개되었다. 이때 주제는 페미니즘이었는데, 적장을 죽이고 민족을 구한 영웅 유딧이 남자가 그린 그림에서는 가녀린 미소녀로 나오고, 여자가 그린 그림에서는 억센 팔뚝을 가진 강인한 인물로 묘사된다는 것.
반면, 클림트가 묘사한 유딧은 위 두 작품과는 다르다. 클림트가 그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에서 유딧은 황홀한 표정을 짓고 흉부가 거의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다. 무엇보다 위 두 작품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장면을 묘사했지만, 여기서는 이미 잘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다. 게다가 머리는 화려한 금박에 비해 우중충해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 즉,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고 나서 도취된 치명적인 여자 유딧'''에 집중되어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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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 유딧 이야기를 재해석한 사례로는 1990년대 방영했던 MBC 베스트극장 달(1991년 8월 25일 8회) 편에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각색하였는데 홀로페르네스에 해당하는 왜장은 최민수, 유딧에 해당하는 조선 여인은 오연수가 맡았다. 최민수는 왜장이지만 진정한 무사도에 충실하여 조선인들에게도 공정하게 대하는 사무라이였고, 오연수는 원작의 유딧과 달리 정혼자가 있는 처녀로 등장한다. 처녀는 왜장을 유혹하지만 왜장의 당당하고 남자다운 모습에 결국 애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 왜장을 암살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왜장과 잠자리를 했다는 소문으로 백성들뿐만 아니라 정혼자(의병장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전형적인 성리학 꼴통의 모습으로 그려진다)에게서도 비난을 받게 되아 결국 자결하게 된다.
4. 참고 문헌
해설 (굿뉴스)
유딧서 (가톨릭대사전)
유딧서 (전례사전)
유딧서 (히브리어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