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image]
1. 개요
2. 새 시대를 연 예술가
3. 악행으로 점철된 사생활
4. 기타
5. 핑크레이디 클래식의 등장인물


1. 개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년 9월 29일 ~ 1610년 7월 18일)는 이탈리아화가이다.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리시'이고, 카라바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즉 '카라바조의 미켈란젤로 메리시'로 알려졌다. 본명보다는 이 출신지에서 따 온 '''카라바조'''라는 이명으로 주로 알려졌다.[1] 유로화 도입 이전의 이탈리아 100,000리라에 삽화되기도 하였다.

2. 새 시대를 연 예술가


일반적으로 화가 미켈란젤로로 통용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는 동명이인이며 1세기 후 태어났으니 그 이름을 땄을 확률이 높다.[2] 인지도에서는 비교적 밀리지만, 사실 카라바조 역시도 부오나로티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
카라바조는 다채롭고 화려한 르네상스 회화들과 달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극단적으로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개척자였으며 그의 회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런 그의 회화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의 바로크 화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메두사, 유디트 등이 있다.
[image]
카라바조의 메두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중. 이후 많은 호러 매체에 영향을 준다.
[image]
이게 대표작인 "홀로페르네스를 참수하는 유디트"[3][4]
이처럼 엄청난 전환점을 마련한 거장임에도 인지도가 딸리는 이유는, 후술할 이유 때문인지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잊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나. 안습...생전에는 훨씬 더 유명했다. 동명의 거장과 더불어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은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이 있는가'''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고 하니까.

3. 악행으로 점철된 사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 이후 오랫동안 흑역사가 되어야만 했던 배경으로는, 그의 생애가 가히 한 편의 피카레스크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비록 미술 측면에서는 인정을 받았으나, 한편으로 성격이 매우 불안정했던 탓에 가는 곳마다 시비에 휘말렸다. 이 때문에 폭행일상이요, 심지어 살인까지 자행하여 사형을 선고 받고 현상금이 내걸린 채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된다. '''물론 도망 다니면서도 가는 곳마다 사람 두들겨패고 다니는 것은 빼먹지 않았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인정한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들이 그를 폭행과 살해 혐의에서 사면해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워낙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녀 나중에는 높으신 분들도 수습해주기 힘들 정도에 이르렀다. 천재 화가들이나 예술가 중에는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가젔던 사람이 많다지만 이쯤 되면 막장을 달리는 천재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막장이다.[5] 위대한 화가이긴 해도 20세기까지 묻혀 있었던 게 이상하지 않다.
로마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나폴리로 도주한 이후, 몰타으로 건너가 몰타 기사단에서 수도자가 되려 했다고 한다. 로마 교황에게 사면을 받기 위해 몰타 기사단의 이름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성 세례자 요한순교 장면을 그린 성화로 몰타 기사단에게 인정 받게되나, 그 성깔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여기서 또 사고를 친다. 몰타 기사단의 일원과 싸움을 벌여서 중상을 입힌 것이다. 카라바죠는 몰타섬에서 도주해서 시칠리아의 도시 시라쿠사의 과거 친구 집으로 갔다. 하지만 몰타 기사단의 자객에게 쫒기는 생활이 이어졌다. 결국 자객에게 습격당해 큰 부상을 입었는데,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 죽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습격당한 장소는 지금 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그런데도 사면을 포기하지 않은 근성의 사나이 카라바조는 배를 타고 그의 사면을 추진했던 당시 교황의 조카에게 선물로 바치기 위해 만든 작품[6]과 로마로 건너가려 했으나 잠시 정박한 곳에서 카라바조가 사면되었다는 걸 몰랐던 지방 경비대장이 체포하는 바람에 그림만 배를 타고 건너가게 된다. 곧 풀려난 카라바조는 허망하게 떠나가는 배를 쫒아가려 하지만 결국 힘이 다해 쓰러지고 향년 38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7] [8]

4. 기타


2014년에 프랑스의 한 고택에서 카라바조가 그린 유디트 그림의 2번째 버전이 발견되었다. 시가로 1억 2900만 유로(발견당시 환율 기준으로 1600억 정도)에 달한다고. 발견과정이 특이한데, 이 고택에 도둑이 들어서 골동품으로 팔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향수나 술병을 훔쳐갔는데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림이 카라바조의 명화로 판명됐다고. 그림에 안목이 없었던 도둑은 이 그림이 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놓아두고 간 것이다. 관련 링크

5. 핑크레이디 클래식의 등장인물


핑크레이디 클래식에서는 66화 등장, 실제 생애를 반영하여 성질 더럽고 포악한 깡패로 묘사된다. 등장 시점에서 이미 전과 7범, 탈옥 경력 다수, 혐의는 폭행, 기물파손, 불법무기소지, 살인 등. 한겨울, 윤현석과 마주친 시점에서도 탈옥하고 도망치던 중이었다.[9]
일단 구출되지만, 특유의 성질머리로 한겨울에게 시비를 걸다가 얻어터지고 피떡이 된 채 그림을 완성한다.
한겨울 曰, "'''왜 화가들 중엔 이렇게 골 때리는 사람이 많은거냐구'''!"
[1]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마찬가지로, 다 빈치에서 빈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고향이고, “다”는 영어 from에 해당하는 조사다. 우리로 치면 “감자골 돌쇠”라는 식으로 과거 이탈리아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출신지명을 표기했다. 옛날에는 평민에게 성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는데, 이런 식으로 출신지가 이름 뒤에 붙다가 이것이 성으로 고착되기도 한다. 영어권 성 중에 Lee는 켈트어로 강가를 뜻한다. 강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붙였던 이명인 셈이다. 카라바조는 이름이 너무나 유명한 네임드가 있기 때문에, 그의 실제 성명은 생전에도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그냥 카라바조라고 불렀다.[2] 그래서 그의 풀네임이 언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거의 언제나 성명 없이 '카라바조'라고만 언급된다.[3] 최근 같은 주제의 300년간 실종됐던 카라바조의 '''또다른 작품'''이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서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집주인이 지붕을 수리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만약 진품이라면 '''1억 3천 5백만 달러'''에 달하는 가치를 갖게될 것이라고.[4] 사실 이 작품 이전에도 유디트를 소재로 한 작품은 있었지만 주로 참수가 이루어진 후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디트가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카라바조는의 유디트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이 베는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낸 최초의 사례다. 이는 후대에 활동한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에도 영향을 준다.[5] 정작 동명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성격은 더럽지만, 검소하고 깨끗한 삶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돈 받아도 거의 다 가족한테 보내고 자기는 거의 쓰지도 않았다...[6] 이 그림이 전술된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이었다.[7] NHK에서 방송한 <카라바죠 빛과 어둠의 엑스터시> 참고[8] <사이먼 샤마의 미술특강 EP.01> 참고[9] 정확한 설명은 없었지만 배경으로 등장한 건물이 성 베드로 대성당인 것으로 보아 로마에서 만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