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 화법

 


1. 개요
2. 용도
3. 기타
4. 유사 개념
5. 관련 문서


1. 개요


자신이나 자신도 관련된 얘기를 마치 이 빠져나간 것처럼 '''남 얘기하듯 하는 말하기 방식.''' 즉, 듣는 상대방을 유체이탈을 시키는 화법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인 양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화법이다. '사돈 남 말 하다'라는 관용어구와 뜻이 통한다.

2. 용도


주로 책임 회피를 하는 데 쓰인다. 다들 비난하는 분위기인데 자기도 그 시류에 편승해서 자기는 해당이 안 되는 척 하고 있으면 물타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무책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책임권자가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서 강남대 회화디자인학부 교수 가혹행위 사건에서 강남대학교는 해당 교수의 사용자인 동시에 피해자를 보호했어야 했던 주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강남대는 피해자와 그 외 학생들에 대해서 사죄문을 발표해야 했다. 하지만 그 대신에 '''해당 교수를 고발했다'''. 즉, 자신을 가해자 혹은 적어도 책임자의 위치에서 피해자의 위치로 돌려놓은 것이다. 물론 해당 교수에게 피해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선 사과를 하고, 그 다음이 고발이어야 했던 것이다.

3. 기타


박근혜 화법이 유명했기 때문에 이 단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의외로 그렇지 않다. 이 말을 만든 사람은 딴지일보김어준으로, 나는 꼼수다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김어준은 이 단어가 이명박 정부 이후로도 계속 쓰일 줄은 몰랐다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화법으로, 수백 년 이런 화법을 썼던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 14대 국왕 선조다. 칠천량 패전 이전과 이후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같은 사람이 맞는 게 의심이 들 정도로 자기가 내렸던 명령이나 지시를 비난하고 있다.

4. 유사 개념


자기는 해당 인물이 아닌 듯이 유한 잣대를 대는 점으로 이중잣대, 내로남불과 비슷한 면이 있다.
주어는 없다는 일단 진짜 남 얘기를 하는 것이므로 다르다. 남 얘기를 하는데 그 '남'을 지칭할 수가 없어서 주어를 쓸 수 없는 경우이다.
만연체 등으로 상대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은 정줄놓이나 멘탈붕괴에 더 가깝다.
자신을 타인처럼 표현하는 것은 3인칭화와 비슷하다. 다만 그것은 주어를 지칭하는 단어의 선택이 남들 듣기에는 꼭 타인(3인칭)인 것 같다는 거지, 화자 본인은 자기 자신을 지칭하려는 의도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한 일을 남이 한 일처럼 얘기하며 칭찬으로 포장하기도 하는 것은 유체이탈 화법으로 볼 수 없다. '객관화'라고도 한다. 유체이탈 화법은 어디까지나 '자신도 분명히 해당 대상인데 자기는 안 그런 것처럼 말하는 기법'이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해 자기를 표현하는 말'은 아니다. 이게 유체이탈 화법이 되면 카이사르[1] 이래에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 연설 가운데 자기 자신과 국가를 분리해서 국가로 발언하는 경우 등은 죄다 유체이탈 화법이 되어버린다.
또한 어디까지나 유체이탈 화법이 되려면 '현재진행형'이어야 한다. 이는 이중잣대도 마찬가지. 다시 말해서, 분명 말하는 대상이 비판하는 대상도 지금 당장 그 대상에 자신이 포함될 때여야지만 '마치 자기도 포함되었는데 안 포함된 것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다고 하는 것. 그 발언을 했을 당시에는 해당 없다가 나중에 해당된 것은 그냥 말 바꾸기이다.[2] 즉 기존 잣대는 거두고 새 잣대를 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어떤 이유로 말을 바꾸었음을 알려 오해를 막을 필요가 있다.

5. 관련 문서



[1] 갈리아 전기나 내란기를 보면 마치 제 3자가 카이사르에게 대해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저자는 자기 자신(...) 그렇지만 이 경우는 자신을 객체화했다고 하지, 유체이탈을 했다고 표현하진 않는다.[2] 예를 들어, 과거에는 김성근 감독이 본 문서의 예시에 들기도 했고, 실질적으로 감독의 발언만 가져오면 꼭 유체이탈 화법으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도 한다. 실상 김성근 감독의 발언은 발언 당시에는 자기는 분명히 제외되었으니 나중에 말을 바꾼 것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