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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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에서 좌파로 알려진 언론인[5] , 인터뷰어. 딴지일보 종신총수. 인터넷 미디어 딴지일보를 창립하였으며 이후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고 우파들을 깔 수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심층 취재 및 가공을 전문으로 한다. 그에 비해 민주당 지지자들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고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6]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대중적 인기로 대한민국 팟캐스트 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쫄지마, 씨바"'''
팟캐스트나 김어준의 파파이스 때 한 단골 멘션이자 보수 정권에 대한 그의 대표적 멘션.
2011년 나는 꼼수다를 거쳐 2016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컴백해 다시 지상파 언론인으로 올라오면서 레거시 미디어 출신이 아닌 언론인으로서 시사저널의 연간 리서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의 2017년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7] 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저명성 있는 언론인이 되었다.[8]
2. 생애
2.1. 성장기 (1968 ~ 1990)
경상남도 진해시[9] 출신이다. 모친의 직업이 유치원 교사였으며 굉장한 방임주의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10] 이 방임주의란 것이 어느 정도였냐면 김어준이 고교생 시절 담배를 피울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집에서 대놓고 피울 것인지 밖에 나가서 피우고 들어올 것인지를 두고 부모님과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이때 김어준은 난생 처음으로 부모의 간섭을 받았다고 하는데, 끝끝내 방에서 담배를 피우겠다는 김어준의 고집에 모친은 뺨을 한 번 후려치고는 "그래 피워라 인마"라고 반응했다고 한다.
지금 외모와 다르게 청소년기까지 큰 키에 날씬한 체형이라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나꼼수를 할 때 정봉주가 김어준의 과거 지인을 만나서 조사해서 방송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출처] 유년기에 미국에 가서 10년간 살다가 중학교를 다니던 중에 한국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중학생 때 이미 키가 180에 가까운 훤칠한 외모 에 얼굴이 잘생긴 데다가 공부를 잘해서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국 중학교로 전학오자마자 처음으로 본 학교 시험(중간고사 혹은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을 하는 바람에 '얼마 전에 전학온 키 크고 잘생긴 애가 공부도 잘 한다'고 소문이 나서 별명이 테리우스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모두 본인입에서 나온 것일 뿐 증명된 것은 없다.
2.2. 대학과 포스코 재직 시절 (1990 ~ 1995)
고등학교 당시 우등생이었다고 하는데 서울대학교는 삼수까지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홍익대학교 전기제어공학과로 진학하였다. 스스로 회술한 바에 따르면 사수(?)해서 서울대를 가고 싶었으나 군대 때문에 홍익대에 머물렀다고 한다. 삼수를 했을 당시, 탈락하면 입영통지서가 발급되고 그러면 더 이상 병역을 미룰 수 없어서 얄짤없이 군복무를 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직업훈련원(폴리텍대학교 등)이 병역을 강제로 1회 연기를 시켜주고 이런저런 방법으로[11] 연기가 가능하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교 재학이 유일한 병역연기 방법이었다. 훗날 본인의 저서 '건투를 빈다(p.26~29)'에서 서울대에 갔더라면 세상의 수많은 가치 중 겨우 공부 하나 잘하는 걸 가지고 스스로 존재 자체가 우월하다고 믿는 어린 편협하고 유치한 멘탈리티에 사로잡혔을 것이라며 "서울대에 떨어진 것이 다행이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사진과 시. 이때 계속 서울대 입시에 떨어져서 하루는 집에서 화장실에서 문 잠그고 울고 있는데 모친은 시크하게 (문짝을 부수고 들어와) "네가 대학 떨어졌다고 내가 하루라도 뭐라 그런 적 있냐"고 "그만 울고 얼른 튀어나와서 밥 식으니까 빨리 먹으라"고 핀잔을 줬다고 한다. 병역은 지금의 상근에 해당하는 방위로 필하였다.[12]
대학생 시절에는 아직까지는 운동권의 영향력이 꽤 남아있던 시절임에도 학생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던 것인지 그냥 저냥 평범한(?) 대학생활을 지냈다. 졸업 후 1995년 포스코에 입사했으며, 대학생활 중 흔히 말하는 사고를 친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학생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것도 아닌 평범한 모습을 견지했다. 하지만 이 대학 시절 배낭여행을 대단히 많이 했으며, 근 50여 개국 이상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많은 경험과 견문을 넓혔다고 스스로 자술한다.[13]
배낭여행 중의 경비는 전부 현지조달. 비행기티켓도 여행사에다가 홍보용 사진촬영과 리뷰를 해주겠다는 명목으로 구하였다. 회고에 따르면 파리-로마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호텔 '삐끼'로 시작하여 매니저도 지내는 등 사업 수완이 좋았다고 한다.[14] 귀국 당시 그렇게 수중에 모인 6천 만원을 들고 딴지일보 발간에 노력하였다고.
포스코를 8개월 만에 자기 발로 박차고 나왔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서류복사나 하는 신입시절 자기가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거 아니냐는 자괴감과 직장 내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새벽까지 이어진 기나긴 회식 후 (부장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회사간부가 김어준을 포함한 신입들에게 회사에 일찍 나오라고 무리한 요구를 했던 사건이었는데, 당시 김어준은 시간상 2~3시간밖에 없어서 잠을 아예 안 자기로 하고, 집에 가서 샤워만 하고 옷을 갈아 입고 회사로 갔다고 한다. 근데 그걸 요구한 그 간부가 자기보다 먼저 출근해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간부도 잠 안 자고 회사에 온 것이다.''' 게다가 뭔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신입직원인 자신을 쳐다봤다고 한다.
사원들의 군기를 잡아주기 위해서 본인이 더 먼저 회사에 나와서 가오를 잡던 간부가 스스로 그런 자기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만족하는 표정과 태도를 보인 걸 느끼던 순간이 너무나 끔찍했다고 한다. 결국 스스로 직장 후배들 휴식 인권뿐만 아니라 자기 인권까지 파괴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게 그런 것인 줄 인지하지 못하는 데다가, 그런 정신상태를 후배에게 더 심어주려는 자기 태도 자체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기까지 하는, 순수 노예 앞잡이 근성을 보여줘서 징그러웠다는 뜻이다. 자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비참하다 못해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2.3. 딴지일보 창간 (1998 ~ 2003)
이후 여러 회사를 전전하다 IMF 때 정리해고를 당한 후, 1998년 딴지일보를 시작했다. 원래 딴지일보는 김어준 개인 사이트로 시작을 했고, 스스로 기사를 만들고 홈페이지 디자인을 하고 코드를 짜는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김어준이 훗날 유명세를 가지게 된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에 대한 호칭을 '총수'로 요구하는 결정적인 이유. 비교적 권위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의 표현임을 알고도 평생 고집하는 이유는, 초기 딴지일보는 자기 혼자 시작해서 장기간 노력하여 유명하게 만들었으니 자신이 영원한 '총수'이며, 대형 언론들처럼 자신의 위에 다른 사람(광고주)[15] 이 없으니 계속 남에게 요구받지 않는 자신의 소리만 내겠다는 의미라는 논리. 처음에는 아무도 방문 안 해서 스스로 조회수를 올리는 짓을 했다고 하나, 결국 입소문을 타고 방문객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당당히 1999년 언론사 영향력 순위에서 당당히 1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B급 정서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초창기 인터넷 문화 형성에 나름의 공이 있다. 이 점은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에 비할 만하다.[16] 명확한 정치지향이 없다가 이후에 보수 쪽으로 커밍아웃한 김유식과 달리 김어준은 확실히 처음부터 진보-개혁세력 지향이었고,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적대적 포지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이쪽이 좀 더 빨랐으며 초창기에는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유력 정치인, 대권 주자들에 대한 신선한 형식의 인터뷰로 유명했다. 유명 정치인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빤스가 사각이냐, 삼각이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었다. 2012년 새롭게 시작한 웹 월간지 더딴지에서도 파토 등의 주요 필진이 물어본다.
딴지일보의 직설적인 논조(음담패설과 욕설을 운영자 자신이 인터넷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첫 세대 매체다)와 과감하게 당시 기성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까지 거침없이 다루었기 때문에 매우 큰 관심을 받았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하급문화 취급을 받아 아무도 심도 있게 다루지 않았으며 저평가되었던 국산애니나 고전만화에 대한 관심을 일으켜, 발굴운동을 벌였다든지 하는 일은 꽤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 1990년대 후반은 묘하게 고급 필진들이 모여드는 시기였다.[17]
딴지일보의 성공으로 기성언론에 대한 비꼼과 날카로운 풍자를 내세우며 인터넷 문화와 언론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매김한다. IT 버블이 한창이던 리즈시절에는 국내 모 벤처기업에서 800억 원에 딴지를 인수하겠다는 오퍼도 있었는데 거절 했다고 한다. 하지만 딴지일보가 서서히 지면서 같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딴지일보 외에 여러 풍자 사이트와 유머 사이트가 등장했던 것. 특히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이트들은 이용자끼리 생산-소비를 하는 형태로 사용자들의 지속적 참여로 성장을 거듭한 반면 일방적으로 생산한 결과물을 소비하는 포맷의 딴지 일보는 이들 사이트들에 이용자를 많이 빼앗기게 된다. 이후 상황은 딴지일보 항목 참조. 딴지 커뮤니티가 엄청나게 흥했지만 그것을 성장동력으로 삼지 못했고, 소수 필진이 있는 소리 없는 소리 하고 싶은 말 다 쓰고는 보완없이 - 애초에, 필진도 독자도 컨텐츠를 즐기는 곳이었다 -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식이라 점점 정보보다는 잡설을 보는 곳이라는, 재미있게도 처음 시작하며 내건 이미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것과 함께 정치적인 지형도 딴지의 몰락에 한몫했다. 소위 개혁세력이 집권할 때 딴지의 주적인 보수세력이 야당이었는데, 원래 풍자와 해학은 권력을 까는 데서 재미가 나오는 법이지만 딴지의 주적은 그 당시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었으니...비슷한 진보적 정치풍자 사이트인 미디어몹도 개혁세력이 위기에 몰렸던 탄핵정국까지 그 인기가 피크를 이루다가 이후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자 거기에 휘말려 인기가 떨어졌다. 미디어몹, 한겨레가 그랬듯이.
2.4. 딴지일보의 리즈시절 이후 (2003 ~ 2011)
딴지일보의 몰락 후(2000년대 중반) 엄청나게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혼도 이 시절. 딴지가 리즈시절일 때 지나친 확장을 해서리 그게 다 빚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딴지일보에서 여성용 성인기구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딴지 몰락하에서도 진보적 논객으로 활약하면서 김어준의 지명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스스로 야매 상담가라고 자칭하기도 했으며, 한겨레 신문에서는 "그까이꺼"라는 상담 코너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를 묶어 "건투를 빈다"라는 저서로 펴냈다. 이와 함께 대학이나 기관의 각종 강연에도 얼굴을 내밀었는데, 주된 논지는 "남의 눈에 구애받지 말고 과감하게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다. 자주 불려다닌 것으로 봐서는 이런 연사로서 평가는 꽤 좋은 편.
바른 언어 사용에 관심 많은 시민 학술 단체가 이 욕에 대해서 비판하며 "세종대왕이 벌떡 일어나시겠다"라고 한 적 있는데 김어준은 "일어나거든 연락하시라고 해라! 크하하"라고 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가수다 품평으로도 유명하다.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의 한 코너에 출연해서 나가수의 열풍에 힘입어 크게 이슈에 오르기도 했다. 김어준은 라디오에서 당시 진행되던 시즌에서 1등과 7등(탈락자)을 단 한 번 빼고 다 맞혔다. 틀린 것 하나는 6등을 탈락자로 예상한 것. 3회의 출연 뒤 MBC 라디오국이 윤도현을 하차시키면서 함께 퇴장.
2.5. 나꼼수 출연과 그 이후 (2011 ~ 현재)
이 나는 가수다 품평에 모티브를 얻어, 알고 지내던 정봉주의 제안으로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를 이용해 2011년 런칭한 나는 꼼수다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인터넷에서 이상한 소리나 하던 아싸 털보 아저씨가 아닌 주류언론과 정치권이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대안 언론인으로 성장했고 그 동력으로 2016년에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대안 언론인이 아닌 정식 언론인이 되었다.
여러 저서 등과 활동을 볼 때 상당히 정치지향적인 인물이며 정치논리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스탠스는 본인은 꾸준히 중도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실상 친문성향(민주당, 국민참여당 쪽)으로 평가받으며, 다른 이들이 주장과 행동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면 이를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2.6. 주요 행보
- 2011년 10월 24일 MBC 라디오 개편과 더불어 색다른 상담소가 폐지됨에 따라 해당 방송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나는 꼼수다 때문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색다른 상담소는 팟캐스트에서도 상위권에 포진해있는 나름대로 인기코너이기 때문에 그 의혹은 더 불거졌다. 허나 이러한 의혹에 대해 김어준 본인이 프로그램 시작 전부터 6개월만 찐하게 하고 끝내자고 제작진과 이야기 했다고 하며 일축했다...라고는 하는데, 이게 뭐 6개월만 하고 자기가 뜨겠다는 게 아니라 어차피 자신은 김미화 퇴출로 촉발된 진보 성향 연예인의 퇴출을 수습하기 위한 일종의 방패막이니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 예측했다는 것. 김어준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참고로 색다른 상담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한 프로그램은 배한성, 배칠수의 고전열전 재방송이다. 본인 왈 "내가 재방에 밀렸어!"
- 2011년 10월 28일, 열애설이 터졌다. 상대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아일랜드의 작가로 상당한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 인정옥. 이혼 후 2004년부터 열애 중이었다고 한다.
- 2014년 3월14일 한겨레하니tv에 김어준의 KFC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하였다. 1주일도 안 되어 조회수가 20만을 돌파하는 등 나꼼수의 인기가 여전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치킨은 박근혜의 동의어라한다. 하지만 12화부터 프로그램 제목이 김어준의 파파이스로 바뀌었다. KFC 본사에서 클레임이 들어왔다고 한다. 한겨레에서 고소에 할애한 자금이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클레임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2017년 10월에 막을 내렸다.
- 2017년 8월부터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주진우가 "다스가 김경준에게 140억을 돌려받도록 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가 나섰었다"는 정황에 대해 입수한 자료를 공개하자 5년 만에 BBK 주가조작 사건 관련 의혹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김어준의 파파이스가 종영하기 직전[18] 에 김어준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퍼뜨려 달라[19] 고 했고, 국회의원들도 모자라 그것이 알고싶다[20] 같은 프로그램에까지 나온 대유행어가 되었다. 그 전까지 국민적 관심사로 만들기 위해 "(이명박과 BBK에 대해) SNS에 올려달라", "검색해 달라" 등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다스는 누구 겁니까"가 나오자 신드롬이 일어났고, 결국 그 실소유주 의혹자가 다스 신드롬 5개월만에 감옥에 가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 2016년 6월 30일,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지 3년 7개월 만에 7:2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았다. 딴지일보에선 김어준 총수가 감옥에 들어가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며 헌재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물론 장난에 가까운 반어법. 김어준, 주진우 무죄는 물론, 헌재의 위헌 결정 속에 담긴 의도마저 규탄한다
- 복귀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일일 팟캐스트 다운로드 몇 백만을 찍고 지상파 라디오 청취율 전체 2위에 등극하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JTBC와 함께 최순실 게이트에서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 2017년 11월,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로 8년 만에 지상파로 복귀했다. 일단 파일럿 방송으로 시작했으며, 날짜는 주말인 2017년 11월 4일과 5일 밤 11시 15분[21] 에 파일럿 방송으로 2회 방영되었다. 시간대 대비 시청률이 높았고, 다른 시사방송과 다른 패턴으로[22] 소재와 진행방식의 신선함이 호평을 받아, 이후 2018년 1월에 목요일 정규방송으로 결정되었다.
- 2017년 12월 7일 박근혜 5촌 살인사건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열린 재판에서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딴지일보에서는 '젠장 헌법은 죽었다'라며 성토(?)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 위에 나온 것과 같은 반어법이다.
- 2017년 12월 15일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수상하였다. 수상 소감에서 '나에 비해서 손석희의 뉴스룸이 저렇게 잘 나가는 건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횡포와 같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언론 골목상권을 지키겠다'라는 말을 하여서 청중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해당 영상
- 2017년 11월부터 팟티에서 과거 나꼼수 멤버인 주진우, 김용민과 ('가카 헌정 방송'을 표방하던) 나꼼수 시즌2격 방송이자 '가카 배웅 방송'을 표방하는 다스뵈이다를 시작하였다. 일단 제목이 다스베이다의 패러디이지만 개별 뜻이 있는데, 바로 '다스에 대해 (일반대중들에게) 뵈 주다'라는 뜻. 그러나 방송 소재가 가카위주[23] 라는 것만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방송 포맷은 4명이서 계속 떠들던 나꼼수가 아니라, 관계자를 불러서 인터뷰나 강연하는 형태의 김어준의 파파 이스의 틀을 가지고 있다.
- 2018년 5월 뉴스공장은 점유청취율 12.8% 단독 1위(기존 1위는 SBS 두시탈출 컬투쇼) 첫 방송 이후 1년간 누적 다운로드 수 약 9억 2천만회, 온라인에서도 높은 영향력을 보이고 있다. 시사프로그램이 라디오 청취율 1위를 차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 넓은 인맥과 섭외력으로 핵심 이슈의 핵심 인물이 많이 출연하는 편인데, 타 언론에서 이를 인용 시 프로그램 초기에는 'tbs', 혹은 '모 라디오 방송' 이라고만 언급하였으나, 점차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으로 풀네임이 소개되고 있다.
- 2019년 2월 다스뵈이다 49회에서 손석희에 대한 의혹들의 헛점을 지적하였으며,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견인차 기사가 경찰조사에서 '동승자를 보지 못했다'고 진술하여 손석희에 대한 의혹을 해소함과 동시에 김어준의 주장이 대체로 사실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 김어준의 의견에 따르면, 민식이 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이기적인 어른들이라고 한다.
- 21대 총선을 앞두고, 한때 나꼼수를 같이 했던 정봉주는 열린민주당 편을 드는 반면, 김어준은 더불어시민당 편을 들면서 두 사람은 갈라졌다. 김어준은 자신의 방송에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소속은 출연시키지만, 열린민주당 소속은 출연시키지 않고 있다. # 심지어 정봉주는 "김 총수의 열린당 까는 정도가 도를 넘고 있다"며 김어준을 비난하기도 했다. # 그러나 김어준의 모친상 때 정봉주, 주진우, 김용민이 같이 상주 역할을 해준 것을 보니 당사자들끼리 어찌저찌 잘 풀어낸 모양.
3. 기타 이모저모
- 선거·투표·개표 시스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3개가 완전히 다른 영역임을 강조하기도 하고 선거의 피선출자가 표를 획득하게 되는 과정의 서사나 선거 결과 예측에 관해 많은 의견을 제시하는 편이다. 전술한 나가수 품평같은게 대표적으로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공직선거에 대한 개표 조작 의혹도 여러 차례 제기했으며 당연히 논란이 되었다. 특히 보수 진영과 이동형 작가가 지속적으로 반박하자 김어준은 재반박했다. 제도권 정치의 선거뿐만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의 선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2017년 9월 19일 딴지 게시판에서 김어준 그리기 대회가 개최됐다.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고, 수상작들은 이천십팔 김어준 캘린더에 삽입됐다. 물론 캘린더는 2017년에 이미 품절됐다. 김어준 그리기 대회 수상작 모음
- 인터뷰어로서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언론인이 정치인을 상대로 압박 면접 스타일(stress interview)을 고수하는 것인데, 설계된 인터뷰 틀 안에서 인터뷰의 맥락이나 논점과 상관없는 엉뚱한 질문[24] 을 던지거나 설계되지 않은 즉흥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 스타일로 유명하다. 인터뷰 도중 인터뷰이가 당황하는 일이 생기면 정리해서 마무리하고 넘어가는 손석희의 인터뷰 스타일과 달리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대답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오죽하면 자유한국당 의원이 뉴스공장에 나와서 한 말이 '여기 나와서 말 잘못하면 총수에게 다털린다' 라는 말을 방송에서 직접 할 정도.
- 복잡하거나 이해하기 위해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이슈를 자신이 이해하여 대중의 언어로 간결하게 요약해서 시청자나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이유로 뉴스공장 같은 공적인 방송에서도 어떤 사안 때문에 게스트를 불러놓으면, 일단 자기 기준으로 사안에 대한 정리를 죽 늘어놓고 시작해서 방향을 잡은다음 어느순간부터 막히는 지점이 생기면 그때부터야 게스트에게 말을 시키기 때문에 대부분 인터뷰를 시작후 몇 분 동안 인터뷰이는 김어준이 하는 말 듣고 있는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적응된 인터뷰이는 김어준의 질문 시작후 끼어들기 어렵게 한 호흡도 쉬지 않고 쭉 길게 가는 인터뷰로 할말을 다 하거나(ex: 전우용, 김용옥), 짧고 빠르게 끼어들어서 자기 말을 이어가는(ex: 최배근) 인터뷰이도 있다. 어쨌든 잘 들어주는 인터뷰어 치고는 초반 말이 많고 잘 끼어들어서 깐족대는 사파 인터뷰어인지라 인터뷰이가 쉽게 상대하기 힘든 타입. 이런 이유로 인터뷰 시간이 짧은데 이해력을 요하는 내용에 대해 인터뷰이를 초대할 경우 5분 잡아놓고 자기가 4분 말하고 1분만 말을 시키니까 인터뷰이가 투덜대는 경우가 종종있다. 그런 이유로 가끔 게스트의 말에 꽂혀서 내용을 더 알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면 그주 다스뵈이다에 불러서 남은 내용을 더 듣는 경우도 많다. 뉴스공장에서 인터뷰하다가 빵터지거나 낄낄대면서 "이분 우리과이신거 같은데..."하면 거의 그 주 다스뵈이다에 다시 나온다. 팟캐스트 시대의 인터뷰어다운 면모.
- 북유럽식 사민 - 자유주의 성향으로 보인다. 개인사에 대한 언급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 방송 출연자나 인터뷰이에 대해서도 사인으로서의 개인사에 대한 질문이나 논의는 하지 않는 편. 민주당 지지 성향이라기 보다는 노무현, 문재인 지지자이며 노회찬, 심상정, 이정미 등 정의당 정치인들에 대한 선호를 볼 때 사회민주주의 성향에 가까워 보인다.
- 무신론자임에도 성경을 많이 읽었는지, 성경 용어를 남들보다 잘 알고, 목사들이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에 대한 논리적 문제점을 잘 찍는 편이다. 예를 들면 독감 시즌 때 노령층 단톡방에 도는 약장수들이 쓰는 몰약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거 약(藥)이 아니라 고유명사라고 정확하게 지적하는 점은 독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지 않으면 어렵다. 이는 본인이 중학생 시절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같은 나꼼수 멤버이자 목사 후보생인 김용민이 여러 차례 방송에서 증언한 바 있다.
- 의외로 팟캐스트나 토크 콘서트에서 젠더 이슈와 관련한 사안을 다룬 적이 없다. 여혐 - 남혐 문제라든가 메갈리아의 준동 등 2010년대 들어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빈번하게 거론되는 이슈에 대해서 다룬 적이 없다. 하지만 저서인 닥치고 정치, 건투를 빈다 및 파파이스, 뉴스공장에서의 발언들을 들어보면 젠더 화제에 민감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들어 메갈리아, 워마드 등 남성혐오세력을 맹렬히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선옥 작가와의 방송에서 진보진영이 약자의 편에서 먼저 생각하는 특성 때문에 본질을 보지 못하고 언더도그마에 빠져 극단적 페미니즘을 옹호한다고 비판했다.
- 가족관계에 대한 사적인 정보는 모친 이야기 외에는 많이 공개하지 않았으나, 그가 과거 썼던 글을 보면 일부가 공개되어 있는데, 그에게는 친여동생과 의붓여동생이 있었다. 의붓동생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생전의 모친이 노년기에 보육원에서 그녀를 보고 시집보낼 나이까지 자신이 잘 키우겠다며 입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모친상 시점 이후에는 언급된 정보가 없다. 친여동생은 2009년에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쓰러져 사망하였다. 어릴때부터 딱히 살가운 남매가 아니었다고 스스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어준의 정신적 충격이 엄청 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징조가 딱히 없이 갑자기 발생한 일이라 그랬던 걸로 보인다.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며칠간 음식이 안 넘어가 본의아니게 식음을 전폐하게 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 박지원 現 국정원장, 홍준표 現 수성구 을 국회의원과는 정치적 성향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다. 본인의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박지원과의 밀당(...)을 듣고 있으면 여우와 너구리의 싸움이 따로 없다. 홍준표는 무려 나꼼수 시절에 출연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당시는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른 2017년과 달리 홍준표가 당 내에서 비주류였던 시기였다. 따지고 보면 정치적 방향성만 반대일 뿐 홍준표나 김어준이나 각자 고정 지지층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는 비슷하고, 그래서 이른바 '케미'가 잘 맞는 것으로 보인다. 김어준도 거침이 없고, 홍준표 또한 '악플도 관심이다' 수준으로 발언에 있어 정제가 없기 때문. 비슷한 예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절 썰전의 유시민 - 전원책이 있겠는데, 이 둘이 각자 길을 가고 박형준이 대신 들어갔지만, 뭘 어떻게 해도 예전만큼 화제를 못 끄는 편.
-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런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정리해 그날, 바다라는 영화로 내놓았다.
- 딴지일보의 과거 여행 전문 섹션으로 딴지관광청(노매드21)이 있었는데, 그는 사이트 내에 대형 여행 전문 섹션을 만들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딴지관광청의 경우 2003년도에 노매드21로 이름을 변경한 후 전문 여행사로 독립했다. 또한 현재 딴지일보에서 완전히 경영 분리가 된 상태이다. 다만 칼럼 기고나 공동 상업인증 서비스 등의 형식으로 느슨한 업무협조의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 상담칼럼을 모은 건투를 빈다라는 책자를 쓴 바 있다. 이 책자에서 남한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나라였던 옛 고대 이스라엘이 무슨 대제국이니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냐면서 성경이라는 소설책을 신의 말씀이라고 받드는 자들의 종교가 선교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죄악이 많다고 풍자한 바 있다. 건투를 빈다를 썼을 당시 인터뷰에서, 향후 모바일 세대에 맞춰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한 적 있는데, 다들 딴지일보 모바일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꼼수가 등장해 대박이 난 것. 그리고 이 인터뷰에서 다음 저서는 인간의 동물적 속성을 파헤치는 책을 내겠다고. 가제로 '인간은 동물이다'라고 지었었다. 실제로는 그 책은 다음으로 미뤄지고 '닥치고 정치'가 발간되었다.
- 노무현의 지지자이다. 딴지일보의 과거 대선후보 인터뷰는 총수가 항상 동행하여 직접 인터뷰했다. 노무현 대통령과는 취재차 여러 번 만나며 그의 인간성에 반한 듯 보인다. 스스로 밝히길 이명박에 대한 순수하리만치 한 증오는 노무현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고... 그는 최고의 정치인으로 김대중을,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남자 중 최고의 '남자'로 노무현을 뽑았다.[25] 그리고 둘 모두를 이명박이 직접 살해했다고 평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후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검은 넥타이만 멨다.[26] 그러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첫 김어준의 파파이스 방송에서 흑과 백의 스트라이프 무늬의 넥타이를 착용했다.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 닥치고 정치 中
-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상으로 박근혜를 싫어한다.[27] 나꼼수 이후 팟캐스트를 다시 시작할 때 그 이름을 'KFC'[28] 로 했으며, 얼마 안 가 KFC 측에서 고소의사를 밝히자 고소미 이름을 위해 바뀐 이름마저도 '파파 이스'이다. 이후로도 김어준은 박근혜에 대해 비판을 지속적으로 행했으며,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험한 꼴을 봐왔는지라 더욱 싫어하는 경향을 비쳤다. 박근혜가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올라오자 박근혜 낙선운동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했고, 박정희 독재정권을 박근혜가 세습한다고까지 했을 정도로 죽을 힘을 다해 박근혜를 낙선시키려 노력했으나 박근혜는 당선되었고, 이 때문에 김어준은 잉글랜드로 도망쳤다. 이 성향 덕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시국에서는 상당히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 나꼼수로 SNS 정치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지만, 사용하는 휴대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피처폰. 다만 목격된 바에 의하면 2012년 초반 쯤에 아이폰4/4S로 갈아 탄 듯하다. 거기다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 김어준의 동향은 김용민이나 탁현민, 주진우의 SNS를 통해 나온다. 하도 김어준 행세를 하는 가짜 트위터 계정들이 날뛰어서 딴지일보에서 '공식 가짜 계정'(?)을 만들었다.
- 웃음소리가 마치 크하하하 웃어젖히기 때문에 라디오로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다.
- 웃음이 헤픈 편이다. 심지어 어떤 종류의 웃음이라도 웃을 대목은 아닌 경우인데도 웃는다.
- 정치인 등 무게를 잡는 권력자들을 그 특유의 너털웃음으로 무장해제시켜 권위를 내려놓게 만드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팬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안티들에게는 짜증을 유발하는 웃음.
- 같이 나꼼수를 했던 김용민이 그를 취재하며 쓴 '김어준 평전'이 있다. 김어준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김어준을 만든 부모님 이야기, 그의 인생이야기, 딴지일보를 창간한 스토리나 나꼼수 시절 에피소드 수많은 논객들과의 일화 등 김어준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데 좋은 책이다. 정작 김용민이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하니까 김어준의 반응은 '내가 아직 살아있는데 무슨 평전이야 씨바 미친 개독먹사 돼지새끼야!!!!'이었다고 한다.
- 상단에 언급된 가족 이야기와 기타 등등을 다룬 김어준 만화 단편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작가는 잉어왕의 Peter Mon(딴지 아이디 고소한고래밥).
- 알아주는 골초인 데다가 비만기도 보이고 게다가 연일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건강이 썩 좋아보이지 않는다. 나꼼수 지방 콘서트에다가 김어준의 뉴욕타임스(1주일당 대충 2시간) 녹화까지 겹쳐 매일 지방과 서울을 직접 운전으로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주말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의 간호를 위해 대전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그리고 언동으로 보건데 맨날 고기만 퍼먹는 듯하다. 야채는 가축이 먹는 거라며 고기만 찾는다. 이런데도 나꼼수 4인방이 건강검진 받은 결과는 멀쩡하다고. 자기 말로는 의사가 자기 폐를 보고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 폐 같았다고 했단다. 결국 2011년 11월 28일,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으나 곧 회복하였다고 한다. 같이 있었던 탁현민 씨가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트윗. 중앙일보의 홍혜걸 의학전문기자도 이 소식을 듣고 동영상까지 만들어 빨리 병원가라고 충고해주기도 했다.
- 딴지일보 초기부터 그 자체가 언론계에서는 이단아같은 포지션으로 상당히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초청이 꽤 있어서 지금처럼 개나소나 김어준을 아는 시대랑 무관한 30대 초반에도 강연을 꽤 했던 인물. 강연 경력이 무려 20년이다.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라는 라디오 진행 시절 웹툰 작가 특집 때 강풀을 섭외했던게 김어준인데, 당시 강풀이 김어준을 처음 만난게 김어준이 1999년 강풀의 대학교에서 강연을 했을 때였다고 했다. 서로 젊을때 만난 관계로 지금도 김어준은 강풀을 '도영이'라고 부르고, 강풀은 김어준을 '어준이형'이라고 부른다. 당시 강풀은 졸업을 앞둔 복학생 신분이었는데, 강연 후 김어준에게 다가가 딴지매체로 자신이 그려놓은 만화를 연재할 수 있냐고 요청했고 이를 김어준이 받아주게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료를 제대로 주지는 않았다고. 인터넷에서 알려진 김어준의 강연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난 BOSS를 입었으니까!"라는 말로 유명한 서울의 모 페스티벌에서 남긴 강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전 강연에서도 보스 벨트를 입고 와서, 젊을때 여행갔다가 남은 돈을 털어 보스를 샀던 과거 이야기를 한 적이 많다.
- 긍정적인 별명으로는 "총수", "시사요정", "공장장#s-4" 및 "정육부 장관" 등이 있다. 특히 "시사요정"의 경우 캐릭터 상품(?)화 되기도 했다. OME 주의. 본진인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서는 "시사요괴", "털보형"으로도 불리고 있다. 현재는 주로 공식석상에서는 "공장장"이라고 많이 불리고, 다스뵈이다에서는 "총수"라고 불린다.
- 부정적인 별명으로는 무차별 저격과 억측을 하는 점 때문에 "어준이떠준이", 가짜 뉴스를 생성한다는 논란 때문에 "가짜뉴스 공장장", 아사하라 쇼코를 닮은 외모로 인한 "옴진리교 교주",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비호 때문에 마르크스를 닮았다고 말은 돌지만 잘 쓰이지는 않는다. 여러 부정적인 별명 중 주로 쓰이는 것은 "어준이떠준이"와 "가짜 뉴스 공장장"이다.
- 친노 - 친문 성향이 강한 여권 지지자이지만, 뉴스공장을 통해 이혜훈, 하태경 등 친유계 바른정당 의원들이나 박지원, 손학규 등 비노계 의원들과도 큰 충돌 없이 인터뷰를 원활히 진행하는 편이다. 본인이 항상 강조하는, "나는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 결론으로 가는 길은 누구보다 공정하다."라는 신념 때문에 그런지, 진영논리를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반대진영의 논리와 주장을 가장 열심히 잘 들어주는 진보논객중 하나. 그래서 이런 점을 보면 친노친문 성향의 패널을 가급적이면 배제하거나 줄이는 TV조선 등 종편보다도 유연한 편.
- 2018년까지만 해도 아사하라 쇼코를 닮은 외모 탓에 가끔 해외에 출국할 때마다 강도 높은 입국심사를 받았었다고 한다. 이는 지상렬도 마찬가지. 물론 그가 처형되었으니 이젠 옛날 얘기다.
- 미투 운동의 무고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김어준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무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글을 썼는데, 다음 날 청원자는 장난이었다 죄송하다 글을 올렸으나... 결국 경찰이 수사하기 시작했다. #
- 2019년 2월, 조선일보에서 '공정성 잃은 지상파'라는 기사를 발표하였으며, 조중동 및 보수 경제지는 뉴스공장을 필두로 저널리즘 토크쇼 J,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등이 매우 편향적이라며 일제히 비판했다. 이 기사들의 핵심 근거는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기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평가> 라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의 보고서였으나, 보고서 발주를 요청한 곳과 연구비용을 지원한 곳이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로 뒤늦게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29] 처음에는 발주처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밝혀진 후 보고서를 작성한 윤석민 교수와 조선일보는 서로 자기가 먼저 제안한 게 아니라며 책임을 돌렸으며, 보고서에 대해서는 코딩을 진행 한 대학원생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책임연구원 윤석민 교수는 최근까지도 조선일보의 고정 칼럼니스트 였으며, 박근혜정부 시절에는 방심위원으로 활동하며, 종편 출범에 앞장섰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 유시민의 알릴레오와 합방으로 진행되었던 다스뵈이다 71회(2019.7.27)를 통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정계복귀를 강하게 권유했다. 해당 회차에서 유시민 이사장과의 여러 인연을 언급했는데, 인연이 20년 이상이 되었고 한때 유시민 이사장의 욕받이 역할을 자처했음을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쓸모 했다고 자평) 특히 유시민 이사장이 열린우리당 시절 받았던 오해와 편견, 그리고 이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정치를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음을 설명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시민 이사장을 비난했던 사람 중 하나가 정청래 의원이었고 유시민 이사장은 아직 이에 대해 앙금(뒤끝)이 있다고도 했다.(농담인 듯 농담 같지 않은....) 이 회차에서 대중들이 유시민 이사장을 재발견하여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음을 설명하며 정치권 밖에서 주변인으로서 만족하고 있던 유시민에게 시대적 소명에 응하라며 강력하게 정계복귀를 권했다.
- 딴지마켓에서 김총수 캐릭터 뱃지를 판매하고 있다.
- 2020년 7월 10일에 모친상을 당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과 정부 인사, 광역단체장들이 근조기를 보냈을 뿐 의외로 빈소를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사망 사건과 날짜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항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장례가 겹친다고 해도 한군데만 골라서 방문하지는 않기 때문에 크게 설득력은 없다. 다만 당시 곤경에 처해 있던 윤미향이 조문하러 왔었다. #
- 아사하라 쇼코와 닮아서 입국이 거부된 적이 있었다.
4. 매의 눈? 오리발의 달인?
김어준은 '나는 꼼수다'와 2011년 5월 지승호와 가진 대담을 글로 옮긴 저서인 《닥치고 정치》(2011년 10월 출간)에서 향후 국내정치의 흐름에 대해 여러 가지 예측을 하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대한민국 정치지형 특성상 이런 류의 예측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나, 김어준의 경우에는 간혹 예측이 적중하기도해 일부에선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물론 빗나간 예언이 사실상 훨씬 많고 논란이 될 만한 이슈는 빗나가면 '아님 말고~' 식으로 발뺌해 안티팬도 엄청나게 많다. 자세한 건 논란 참조. 이 문단에서는 그가 했던 맞춘 예언(?)들을 살펴보겠다.
- 진보신당에서 노회찬과 심상정은 탈당할 것이다. (2011년 6월)
-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는 홍준표가 될 것이다. (2011년 7월)
- 오세훈은 무상급식 져서 사퇴할 것이다. (2011년 8월)
-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모종의 세력 (한나라당) 이 선관위 홈피를 공격한다.
-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은 합당할 것이다. (2011년 12월)
- 진보신당의 일부는 끝까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할 것이다.[30]
-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의 대척점이 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것이다.(나는 꼼수다 5회)
민노당 국참당의 합당이나, 노심의 탈당과 같은 경우에는 진보정치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비슷한 인식은 지니고 있었다. 2011년 5월 있었던 연석회의의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그걸 주도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진보신당 당원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총선 국면이 다가오면서 이정희와 유시민이 함께 책을 내는 등, 징후는 많았으나 징후를 읽는 것과 입 밖으로 꺼내 구체화시키는 건 결이 다른 이야기라 하겠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선관위 홈피를 공격한 건이나 2011년 김해을 보궐선거 당시 김태호의 터널 차량 통행방해 의혹(일명 터널 디도스 사건)을 제기한 것 등, 당시엔 소설이나 음모론으로 치부되었던 이야기를 공론화시킨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가 이명박 대통령 재임시절부터 다스와 도곡동 부지 실소유자가 이명박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으며 결국 그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눈썰미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2011년경부터 김어준은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대통령감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문재인 본인에게도 강권에 가까울 정도로 대선출마를 요구하며 당시 정계에 뜻을 멀리하던 문재인을 강하게 푸쉬했다.[31][32]
2013년엔 한겨레신문의 하니방송 <시사게이트>에 출연하여 안철수와 민주당에 관한 전망을 한 적이 있다. '국회의원 단 둘 가지고 제3세력으로 계속 가는 건 무리고 민주당을 먹거나 먹히거나 해야 활로가 있다'는 전략에 대한 발언이었다. 2014년 3월 2일에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그의 바람대로 합당을 하였다.
2017년 4월 개봉한 더 플랜 영화와 여러 인터뷰 등을 통해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 조작과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k=1.5 등 일련의 주장이 처절히 논파당하면서 거짓 주장을 밝혀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서서 해명하는등 어마어마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음에도 이에 대해 김어준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한번도 사과나 입장표명 없이 그냥 넘어갔다. 자세한 것은 더 플랜 문서 참조.
2017년 9월엔 속속 이명박 정부 시절의 국정원, 사이버 사령부, 기무대를 동원한 전방위적인 여론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며 그동안 꾸준히 여론조작팀의 존재를 주장해온 김어준이 재평가받게 되었다. 김어준은 그간 자신이 여론조작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음모론자로 몰렸다며, 공작은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하는 심리의 빈틈을 먹이로 가동된다고 말했다. 십알단에 대해서도 미친 음모론자 소리를 들었다고. 2017년 11월 11일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개입(댓글 공작 활동을 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지시 받고 실행)혐의로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정책실장이 구속됨으로서 그의 노력들이 점차 빛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똑같이 여론조작의 실체가 드러난 드루킹에 대해서는 침묵 혹은 이명박근혜의 음모라는 논리로 일관하는 중.
2017년 12월 7일에는 옵션 열기라는 주제로 또 한 번 넷상을 뜨겁게 달구었다.
2018년 7월에는 뉴스공장을 통해 워마드에 대해 강한 논조의 비판을 쏟아냈다. 워마드가 여성계를 극우화시키고 있으며, 배후가 있다는 주장이다. 논거로는 워마드가 박근혜와 최순실을 비호하며, 보수 정치인은 욕하지 않는데 문재인, 박원순 등 진보계 인사는 거리낌없이 조롱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이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워마드, 메갈리아는 표면적으로는 진보인사들의 지원 속에서 커왔으며, 표면적이지 않은 쪽의 의혹도 있고, 분명 워마드가 박근혜를 비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물학적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2019년 12월 알릴레오43회에서 윤석열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며 친여 지지자들한테 두고두고 욕먹는 중이다.
2020년 4월경 n번방 사건을 두고 정치 공작냄새가 난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이에 조수진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가 한심한 성 인식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여성의당도 "김어준의 이러한 행태는 실제로 존재하는 성범죄의 피해 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하기보다는 이를 정치적인 논리 그 이상으로는 해석하지 못한 망상"이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반면에 야권의 의혹 제기가 실제로 있었으니 # 김어준 말대로 정치 공작이 맞다는 주장도 있다.
2020년 이용수 할머니가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미향에 대해서 '위안부 성금과 국가보조금을 착복해왔다'는 폭로를 하였을 때, 친일 세력들의 작업이 개입 음모론을 폈다. 이에 이용수 할머니가 직접 기자회견문 초안은 본인이 직접 썼다고 반박했다. #, #
5. 프로젝트 부
김어준이 계획한 다큐멘터리
1. 그날, 바다
2. 더 플랜
3. 저수지 게임
자세한 것은 개별 문서 참고 바람
6. 비판 및 논란
7. 출연작
- 2004년 CBS 표준FM 《저공비행》
- 2005년 CBS 표준FM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 2006년 SBS 러브FM 《김어준의 뉴스N조이》
- 2009년 한겨레TV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 2009년 SBS 《황금나침판》
- 2011년 딴지라디오 《나는 꼼수다》
- 2011년 MBC 표준FM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
- 2014년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 이스》
- 2016년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
- 2017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파일럿
- 2017년 팟티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 2018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정규
8. 수상
- 2011년 제21회 민주언론상 본상
- 2017년 제19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
- 2018년 제30회 한국PD대상에서 라디오진행자 부문 상
9. 저서
- 닥치고 정치
- 건투를 빈다.
- 나는 꼼수다 : 세계 유일 가카 헌정 시사 소설집, 1~2권
- 아뿔싸 난 성공하고 말았다.
-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 : 여덟번째 인터넷 특강 (공저)
- 진보의 재탄생
- 딴지일보 1~5 권
- 쉘 위 토크 (공저)
-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공저)
- 쾌도난담
10. 둘러보기
[1] 가운데의 "어"자는 "어조사 어". 영어의 "at"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본인은 이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며 "내 이름에는 전치사가 있어!"라고 외쳤다고 한다(...).[2] “여인숙서도 산다” 호텔전세 옹호 김어준, 본인은 68평 단독주택[3] 구글 인물 프로필 기준[4] 출처[5] 2008년에 언론사 등록을 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도 딴지일보는 정식 인터넷 언론사이며 그런 활동도 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딴지일보 발행인. 내부에서는 '총수'. 현재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진행중이다.[6] 이는 우파들이 많은 매체에서 보여준 이른바 "제 식구 감싸기"를 반우파세력에서도 보여준 케이스라고 하겠다. 김어준 왈 "저쪽은 무슨 일 나면 서로 감싸주는데 이쪽은 서로 손절하려고 하는 게 너무 싫었다".[7] 2017년에는 보도담당 사장.[8] 둘을 동시에 칭하는 표현으로 '''주털야손'''이 있다. 아침에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저녁에는 손석희의 JTBC 뉴스룸.[9] 현 창원시 진해구[10]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어릴 적부터 맛있는 게 있으면 부모들이 항상 먼저 챙겨먹으며 "너희들은 맛있는 거 먹을 날이 많이 남았잖냐"라고 했다고. 그리고 김어준은 이 말에 설득당했다고 한다.[출처] 나꼼수 22회[11] 행정고시를 비롯한 각종 고시 등[12] 90년대 초반 당시에는 청년인구가 많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3급만 받아도 방위로 갈 수 있었다.[13] 이라크와 이스라엘 중동지역을 방문할 때 반군 지도자 아라파트의 모습이 궁금해서 그의 집을 한참 찾다가 만나기 직전까지 갔으나 생각해보니 무작정 만나고 싶었을 뿐 아라파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정작 없어 그의 집 벽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의 저서에서는 '생각해보니 아라파트가 본인을 만나줄 이유가 없었기에 집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고 밝혔다.[14]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불법행위로 간주될 여지가 있다. 배낭여행이면 무비자로 입국하였을 가능성이 높은데(1970년대에 대한민국은 영국, 서독, 프랑스 등 주요 유럽국가들과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었다), 적법한 노동허가 없이 수입이 있는 노동을 하는 것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허용되지 않으며 적발시 최대 영구추방까지 될 수 있는 사안이다.[15] 대형 언론들은 항상 광고주나 투자세력 등에게 논조가 흔들린다는 비난을 받는다.[16] 그러니까 현재 21세기 인터넷 커뮤니티의 통념적 형태를 확립한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방향은 다르지만 '자유'라는 가치 아래 거침없이 반말을 하거나, 욕을 섞거나 키배를 뜨는 등 PC통신 시절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행태들을 주류화한 것. 더 쉽게 말하면 '인터넷에서 노는 방식'의 개념을 바꿨다.[17] 사실 1998년 정도면 아직 PC통신이 전성기일 때라, 인터넷 매체는 많지 않았고 갈 곳도 적었으며, 그 비싼 인터넷 자원 - 미국의 인터넷이 상업화되는 시기에도 많은 논쟁이 있었다 - 을 가지고 황색저널을 표방하는 데 쓸 생각을 한 사람은 더 적었다. 시기를 아주 잘 탄 것.[18] 즉 마지막회의 바로 직전 회차.[19] 일상생활에서 아무 맥락없이 마구잡이로 가족과 친구들과 포털사이트, SNS에 물어보라고 시켰다. "오늘 국물이 맛있네. 근데 엄마, 다스는 누구거에요?", "야 어제 그 방송 재밌더라. 근데 다스는 누구거냐?", "(연예인 열애설 포털기사 댓글로)어 쟤네 둘이 사귀었다고? 근데 다스는 누구 거냐?"하는 식의 예를 들어줬다. 무서운 점은 단 2일만에 수만명의 청취자들이 실제로 대형포털사이트와 SNS에 실행하기 시작해서 일주일만에 수십만명으로 번졌다는 것이었다. 이게 유행이 된 뒤에는 가히 다스판으로 변해 SNS에 쿠크다스, 아디다스 드립같은 패러디 게시물이 판을 쳤을 지경.[20] 명백한 팩트로, 다스 특집때 김상중이 했던 엔딩 멘트였다. 김상중은 "그런데 대체,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고 말하고 방송을 마무리했다.[21] 그것이 알고싶다 시간대다. 따라서 해당일에는 결방.[22] 세월호사건 소재 코너에서 유병언의 아들(!)을 만나서 인터뷰하거나, 쿠르드족에 대한 한국 언론의 일방적인 부정적 보도에 대한 비판을 직설적으로 하거나. [23] 첫회에는 박근혜 관련 문제의 관계자도 나왔었다.[24] 2002년 한나라당 대표 인터뷰에서 박근혜를 상대로 '본인이 섹스어필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25] 취소선의 글과 달리 실제로는 모순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누구나 결점은 있기 때문에, 국가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 정치인 혹은 공직자에 대한 합리적 비판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이 점을 미루어 볼 때, 김어준은 개인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의 생각과 입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뀔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비판을 했다고 해서, 그 이후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 모순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26] 사실 검은 넥타이 자체는 그 전부터 메왔다.[27] 박근혜의 정치적 기반은 철저하게 박정희를 기반으로 하고 명확히 다른 길을 걷는 것도 아니어서 박정희하고 연계시켜서 까는 것이 연좌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를 사실상 정치적 세습이므로 박근혜를 폭풍디스했다.[28] 파파 이스로 바뀌기 전, 방송 초기에 방송 중 중간 영상으로 김어준이 청취자와 시청자들에게 '닭을 새롭게 요리하는 법'을 적어서 방송 측에 보내달라고 했을 정도다.[29] 연구용역을 받아 진행되는 과제는 수탁기관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30] 심상정, 노회찬, 조승수를 위주로한 진보신당 탈당파는 진보신당과 결별하고 민노당,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에 참여로 실현되었다.[31] 다만 이게 김어준이 문재인의 진가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보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에게 대선후보 권유를 해봤던 것은 사실이나 그 외에도 유시민, 조국 등 김어준이 찔러본 사람은 많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2011년에 이미 '국민이 원하는 국회의원' 투표에서 당시 안풍(安風)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강력했던 안철수를 누르고 1위를 할 정도로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문재인이 정치에 뜻을 굳히게 된 이유는 김대중 대통령이 남긴 말 때문이다. 문재인이 정계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는 주장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며, 김어준이 문재인을 사실상 발굴했다고 하는 것도 지나친 확대해석이다.[32] 문재인이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적어도 일반 국민들에게 문재인은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문대통령의 성정상 정치인이라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었고,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라는 것 외에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었다. 하물며 대권후보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