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버드 비숍

 


Isabella Bird Bishop
(1831년 10월 15일~1904년 10월 7일)
1. 개요
2. 일생
3. 여담


1. 개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지리학자. 영국 왕립 지리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기도 하다.

2. 일생


1831년 영국 잉글랜드 요크셔에서 태어났다. 23세에 캐나다미국 각지를 여행하며 기록한 자신의 여행기인 『미국의 영국여인』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45쇄를 찍을 정도로 1856년 영국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노예 제도에 대해 비판하고[1] 원주민들에 대한 애정을 담았다.
30대 이후에는 상당한 우울증을 앓았고, 우울증을 벗어나기 위해 뉴질랜드, 호놀룰루, 샌드위치 섬을 다녀오고 로키 산맥의 요양소에서 몇 달을 보냈다. 1875년과 1879년 자신의 미국 경험을 바탕으로 『샌드위치 섬에서의 6개월』, 『로키산맥의 어느 여인』을 간행했다.
40세가 넘으면서부터 대학에서 지리학 공부를 하기도 했다. 1878년 일본을 방문하며 홋카이도에서 아이누족의 생활상을 관찰하고 홍콩, 광동성, 말레이 반도를 답사한 후 귀국해 『알려지지 않은 일본』(1880)과『황금의 체르소니즈와 그 곳에 이르는 길』(1883)을 출간했다.
1881년 51세 때 10살 연하이자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의사 존 비숍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단독(丹毒)으로 고생하다 1886년에 병사하였다.[2] 1889년 58세의 나이로 중동을 답사하고 인도스리나가르로 가서 사재(私財)를 털어 남편을 기리는 ‘존 비숍 기념병원’을 세웠다. 이후에도 티베트, 터키, 페르시아, 쿠르디스탄, 바그다드, 테헤란을 여행하였다.
1892년 영국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이 되었고, 1893년 '몽골리안 민족들의 국가와 지리를 민족적 특징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조선으로 떠나기로 하고 1894년 2월 말 조선에 입국했다. 이후 4년동안 고종과 명성황후를 만나는 등 한반도를 답사하며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1898)[3]을 발간했다. 1898년《양자강 상류지역》을 간행한 후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 모로코를 거쳐 사하라 사막을 횡단한 후 아틀라스 산맥에 등정하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을 해야했다.
1904년 다시 중국 답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병세가 약화되어 1904년 10월 7일 사망했다.[4]

3. 여담


  • 그녀의 일본 여행기를 그린 '이상한 나라의 버드'라는 만화가 있다.
  •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1898년 출간되자마자 유럽과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을미사변은 당대에도 국제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었는데, 현대처럼 각 나라에 언론사 주재 특파원이 있던 시절도 아니라서 서양에는 전신이나 인편 등으로 관련 소식만 전해져 있었을 뿐 자세한 전말은 나와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조선의 상류사회, 특히 민비와 민씨 일족의 행적과 사건의 전말이 고스란히 적힌 르포가 당대 최고의 여행저술가에 의해 발간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불티나게 팔릴 수밖에 없었다.
    •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멀쩡한 독립국가의 군주가 사는 궁궐에 무단으로 무력을 행사하여 황후를 살해한 사건이었는지라 그 당시에도 국제사회에서 비난 여론이 높았다. 특히나 유럽 열강들은 군주제가 현역이었던 시절이기 때문에 국가간 이해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결코 곱게 보지 않았다. 이 일로 일본은 주한 일본대사인 미우라를 본국에 소환하게 되는데, 유럽 측 비난여론이 아니었다면 이마저도 뭉갰을 가능성이 높다.

[1] 영국의 노예제도는 1822년 폐지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1856년으로, 노예제도(+기타 연방주들 간 갈등)로 인해 남북전쟁이 일어난 시점이 출간 4년 후인 1860년이다. 즉 당대에는 현재진행형인 문제 제기였던 셈.[2] 직접적 원인은 수술허던 중 환자의 고름이 눈에 튄 것이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 집도의는 보안경을 쓴다.[3] 국내에는 신복룡 교수가 번역한 판본과 이인화 교수가 번역한 판본(제목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로 나왔다)이 있다.[4] 비숍은 임종 때까지 여행의 의욕을 잃지 않았기에 그녀가 사망하던 순간까지도 여행 트렁크가 런던의 하역 창고에서 배편에 실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