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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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영훈 (李榮薰)
'''출생'''
1951년 9월 10일 (72세)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서울대학교 (경제학 / 학사)
서울대학교 (경제학 / 석사)
서울대학교 (경제학 / 박사)
'''직업'''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경제학자
'''이력'''
경제사학회 회장
한국고문서학회 회장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무역학과 교수
'''SNS'''

1. 개요
2. 상세
2.1. 생애
2.2. 한국경제사 연구
4. 저작
4.1. 주요 저작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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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극우 경제사학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취득하였다.[1]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봉직하다가, 2017년 2월 부로 정년퇴임 하였다. 그가 살아온 행적과 생각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년퇴임 인터뷰 기사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경제사이다. 조선후기 사회경제사 및 농업경제사에 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였고, 이후 연구의 범위를 넓혀서 근현대 한국경제사 및 한국 근현대사에 전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한 뒤 사재를 털어 이승만학당을 세워 강연 및 집필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승만TV라는 유튜브 채널도 만들어 활동 중이다.[2]

2. 상세



2.1. 생애


운동권 출신으로 전태일이 분신한 70년대 초부터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을 했고 1977년~1982년, 지곡서당(芝谷書堂)에서 5년 동안 한학(漢學)과 한문(漢文)을 공부하였다.
1984년, 한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1989년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2002년 다시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하여 2017년까지 재직하였다.
1985년, '조선후기 토지소유와 농업경영'라는 논문으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바로 이 논문을 통해서 자본주의 맹아론의 대표주자 김용섭의 경영형부농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3] 이후에도 주로 지주제, 농촌의 구조, 장시, 환곡 등 조선후기 농경제사에 주력하여 학술활동을 하였다.
2004년 이후에는 조선후기를 벗어나 타인의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대해서 종합저술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 무렵부터 ‘근현대사 역사서 집필활동’이나 ‘방송 출연’ 등을 때때로 하면서 자신이 앞에 나서기보단 공저자의 저작에 참여하는 경향을 많이 보였다.
2006년엔 여러 학자들과 공동으로 1979년도에 발간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서적인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2권을 공동 집필하였고, 2008년에 발간된 '대안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
2014년에는 한국경제의 팟캐스트 정규재TV나 자유경제원의 자유티비에 출연하였다. 졍규재TV의 ‘대한민국의 나라만들기 역사’ 에 출연한 이영훈은 여기서 이승만과 박정희을 재평가 하고 그 밖에 4.19와 5.16을 재평가 하자는 주장을 제시했다. 교과서 출판사들이 4.19혁명을 민족통일운동의 상징으로 교육하고 있다며 이를 비판했다.#
2017년, 서울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한 이후, 이승만학당을 세워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이승만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이승만학당에서는 이영훈 외에도 주익종, 김낙년 등과 같은 한국경제사 연구자들이 강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김용삼 기자와 같은 언론인 출신도 있다. 그리고 이승만TV라는 유튜브를 개설해서 반일 비판,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 대한민국 영토의 독도부정, 일본 식민지배의 정당성, 이승만의 생애와 활동, 조선왕조 비판,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견해를 강의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승만TV

2.2. 한국경제사 연구


이영훈은 1985년 박사논문을 시작으로 일관되게 조선후기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실증적 반박 활동을 하였는데, 특히 1960년대 김용섭 교수에 의해서 제시된 자본주의 맹아론의 하나인 경영형 부농론에 대한 반론으로 '소농 사회론'을 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원래 그도 김용섭 교수가 제시한 자본주의 맹아론 또는 자생적 근대화론에 입각해서 조선후기 농업경제사를 연구해보려고 했지만, 연구를 하다보니 그것이 들어 맞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개항기 지주제나, 조선후기 장시, 환곡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2000년대 초반에는 조선후기 경제사에서 수량경제지표를 만들어 연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많은 관심을 얻었다. 조선후기와 개항기 때 뿐만아니라 조선 초기 호적에 관한 연구나 사회사 연구(고대의 奴 관념[4]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후 다른 연구자들과의 교류와 새로운 연구성과들의 대두를 바탕으로 식민지근대화 담론을 주도적으로 제기하였다. 사실 일제시대 경제사에 대한 이영훈 개인의 독자 연구성과는 별로 없는 편이지만(거의 없다), 대외적으로는 식민지 근대화론 하면 떠오르는 대표학자로 취급된다. 이영훈의 담론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조선은 자생적으로 근대화, 자본주의 발전을 이룰 수 없었으며, 개항기와 일제강점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물론 그것이 본래 일제의 의도는 아니었으나, 식민지 시대에 한국이 근대적 제도를 경험하였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주로 식민지 근대화론일지라도 '정치-법''사회-문화' 부문 보다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경제사를 중심으로 특히 토지조사사업으로 비로소 근대적인 토지소유 개념이 확립되었다고 본다.
다만, 그는 경제학자 멘서 올슨(Mancur Olson)의 개념을 차용해서 식민지시기 일제에 대해서 정주형 도적(stationary bandits)에 비유하였다. 식민지배 자체는 기본적으로 강압적인 것이고 자선사업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민족이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강압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주요한 도시에 일본의 군사 거점 지역과 군사 철도가 존재했고 한반도에 일본군 2개 사단에 있었으며, 일본은 이러한 물리적인 힘에 기초해 강압적인 지배를 했다고 보았다. 세계사적으로 식민지에는 여러 가지 유형들이 있지만, 영국의 인도지배와는 달리 일본은 조선을 영구적으로 동화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강압적인 지배를 통해서 한반도홋카이도오키나와처럼 일본의 부속영토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는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조선은 일본 인구의 절반 이상이 되고 독자적인 문명의 전통을 오랫동안 보존해왔기 때문에, 오키나와홋카이도처럼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선인들은 근대인으로 거듭날수록 자신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저항과 민족의식이 고조되었고 독립에 대한 정치적 요구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을 영구적으로 영토화하려고 했던 계획은 근본적으로 망상에 의한 프로젝트라고 주장했다. 다만, 한국인을 수탈하기만 하는 도적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세우고 치안을 개선시키고 경제를 부흥시키는 등 근대적 요소가 있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일본 내부에서 벌어지는 근대화는 달리, 조선인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민지적 근대'였으며. 조선은 일본의 법적 지배가 적용되지 않는 법외지역으로 있었다고 보았다. 일본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키려고 했고 조선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박탈하려고 했는데, 그는 이러한 일본의 식민지배야말로 진정한 수탈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

3. 비판 및 논란




4. 저작


  • 조선후기사회경제사(1989):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정리한 책.
  • 근대조선수리조합연구(일조각, 1992), 공저로 참여
  • 한국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역사적 특질(2000)
  • 맛질의 농민들-한국근세촌락생활사(2001), 공저로 참여
  • 한국경제사(방송통신대학교 출판부, 2002), 장시원과 공저
  •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2004), 공저로 참여
  • 한국의 은행 100년사(2004), 공저로 참여
  •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2004), 공저로 참여
  • 식민지 시대의 視座-조선과 일본(2004), 공저로 참여
  • 한국의 유가증권 100년사(2005), 공저로 참여
  • 경제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2005), 김승욱과 공저
  • 새로운 한국경제 발전사(2005), 공저로 참여
  • 동아시아 근대경제의 형성과 발전(2005), 공저로 참여
  • 東亞近代經濟的形成與發展(2005), 공저로 참여
  • 고종황제 역사청문회(2005) : 이태진, 김재호, 이영훈 등의 대담내용을 엮은 책
  • 동아시아근세사회의 비교-신분,촌락,토지소유관계(2006), 공저로 참여
  •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 공저로 참여. 초반부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를 적었다.
  • 박정희 시대와 한국 현대사(2006), 공저로 참여
  • 조선시대 생활사3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2006),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 이야기(2007):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구어체로 술술 풀어 대중 친화적으로 쓴 책.
  •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2007): 안병직과 이영훈의 대담내용을 엮은책
  • 근대 동아시아 경제의 역사적 구조(2007), 공저로 참여
  • 한국의 경제발전과 경제정책(2008), 공저로 참여
  • 한일 역사인식 논쟁의 메타히스토리: 국사교과서에 그려진 일제의 수탈상과 그 신화성(2008), 공저로 참여
  • 세계시스템과 동아시아(2008),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재인식(2008), 공저로 참여
  • 한국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개혁 과제(2009), 공저로 참여
  • 한국현대 정치외교의 주요 쟁점과 논의(2000), 공저로 참여
  • 조선후기 재정과 시장(2010),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은가(2011), 공저로 참여
  • 인촌 김성수(2011), 공저로 참여
  • 대한민국역사(2013)
  • 한국경제사 I, II(2016): 한국경제사 통사 교과서로 그간의 연구내용과 성과를 집대성했다. 일조각 출판
  • 박정희 새로보기(2017)
  •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2018)
  • 반일 종족주의(2019), 공저로 참여.
  •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2020), 공저로 참여.
초기에는 단행본을 어느 정도 있었으나, 이후 공저로 부분저술하는 편이 많다. 목록 중에 5권만이 단행본이고, 3권이 2명이서 공저한 책이다.

4.1. 주요 저작


이영훈 교수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대표할 만한 저서 또는 대중적으로 비교적 알려진 책, 대중을 겨냥한 책 등을 기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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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이야기』 (2007년)'''
이영훈 교수가 EBS 라디오 방송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수록된 일부 논문의 내용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구어체로 작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파랑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며, 오랫동안 기파랑 출판사 출간 도서 가운데 판매량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조선왕조가 패망한 원인, 식민지 수탈론, 친일파청산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문제와 쟁점들에 대한 이영훈 교수의 해석과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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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역사』 (2013년)'''
기파랑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다룬 책이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기점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건국과 이승만정부, 5.16군사정변과 박정희정부, 한국의 경제발전 등을 다루고 있다. 별도의 장으로 북한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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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사』Ⅰ, Ⅱ (2016년)'''
일조각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선사시대부터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한반도와 그 주변지역의 경제사와 사람들의 경제 생활을 통사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은 전근대사, 2권은 근현대사 부분을 서술한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이 책으로 2017년 월봉저작상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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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2018년)'''
거의 모든 한국인들로부터 추앙받고 있는, 조선왕조의 네번째 국왕 세종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다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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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 종족주의』 (2019년)'''
김낙년, 주익종, 정안기 등과 같은 경제사학자들을 비롯해 김용삼 기자 등과 함께 공저로 집필한 책이다. 일본을 악(惡)으로 간주하는 세계관을 반일 종족주의로 간주하며,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확산 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아리랑』, 식민지 수탈설, ‘강제동원’, 쇠말뚝 등 식민지배와 관련된 문제 뿐만 아니라 독도, 백두산 등 한일관계 및 한국근현대사의 주요 쟁점별로 저자들의 주장을 담고 있다.


5. 기타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자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낸 김부겸은 그의 매제이다. # 현재 김부겸이 더민주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자 당내 경쟁자들이 이 점을 거론하며 흠집을 내고 있지만, 이를 두고 연좌제식 인신공격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부겸의 아내(즉, 이영훈의 여동생)도 이 점을 하소연하고 있을 정도.
  • 대학 재학 시절에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이 사람뿐만 아니라 소위 뉴라이트라고 분류되는 이들 중에는 한때 운동권, 극좌였다가 극우로 전향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의 대표적인 사례.
  •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일본 제국을 찬양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학자이다.


[1] 1980년대까지 마르크스 학파였다가 지금은 뉴라이트로 전향한 안병직 교수의 제자이다. 안병직 교수는 1980년대 NLPDR주사파계열이 신봉하던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다.[2] 정작 그가 존경하는 이승만은 일본을 굉장히 싫어했다. 한국전쟁 당시에 미국이 구 일본군의 참전을 언급하자 북한군보다 일본군과 먼저 싸울 것이라는 반응까지 보였다. 거기다 이후에도 동해에 이승만 라인이라 불리는 평화선을 긋고 넘어오는 일본어선들을 무차별 나포해서 재임기간 내내 일본과 마찰이 있었다. 국내적으로도 야당에 대한 친일몰이를 자주했다. 그러니 이승만은 굳이 따지면 '''반일종족주의의 원조'''인 셈이다.[3] 이영훈이 스스로 쓴 글에 의하면 본래는 김용섭의 자본주의 맹아론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려 했으나, 자료수집을 하다보니 반대의 결론이 도출되어서, 연구과정을 계기로 자본주의 맹아론을 반박하게 되었다고 한다.[4] 삼국사기 등에서 보이는 奴라는 표현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노예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의 진정한 노예는 生口와 같은 표현으로 불렸으며, 그 수도 매우 소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이영훈은 한국 고대가 노예제 사회였다는 주장을 반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