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 종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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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9년 7월 10일 미래사에서 출판한 역사학 서적. 이영훈, 주익종 등과 같은 경제사학자들을 비롯하여, 김낙년 교수 공저로 집필한 책이다.
일본 자체를 악(惡)으로 간주하는 세계관을 반일 종족주의로 간주하며, 한국사회에서 등장한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확산 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소설 아리랑, 식민지 수탈설, 강제징용, 학도병, 일본군 위안부 등 식민지배와 관련된 문제 뿐만 아니라, 한일 청구권 협정, 백두산, 쇠말뚝설, 독도 등 한일관계 및 한국근현대사의 주요 쟁점별로 저자들의 주장을 담고 있다.
2. 출판사 소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기억과의 투쟁,
그 진실된 역사에 대한 명쾌한 응답!”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바른 역사서!
― 교보문고
아무런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친일은 악이고 반일은 선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책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그 후의 한일 관계에 대한 오늘날 한국인의 통념을 이 책에선 정면 부정한다.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이 학교 교과과정이나 여러 영화, 각종 역사서적에서 접한 대로 “일본이 식민 지배 35년간 한국인을 억압, 착취, 수탈, 학대했으며, 그럼에도 그 후 일본은 그를 반성, 사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통념이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 알라딘
3. 공동 저자 소개
- 김용삼
- 주익종
- 정안기
- 이우연
4. 베스트셀러 등극
4.1. 대한민국
‘반일 종족주의’가 국내 최대 서점인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국내 최대 인터넷 서점인 YES24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도 8월 1~2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는 주간 베스트 집계 2위를 유지 중이다. 출처
교보문고 집계로는 남성 독자의 구매가 압도적으로 높은 가운데, 특히 60대 이상 남성 독자가 23.4%로 가장 높았다. 50대,60대 남성을 합치면 41.8%로 압도적이라고 한다. 출처
마침 출간 시기와 맞물려 한일 갈등이 극고조에 달하면서 매우 시사성이 높은 책이 되었고, 책의 호불호 여부와 무관하게 정치인들과 언론에서 많이 알려져 판매량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판하면서 주목을 받게 되며 여러 곳에서 이슈를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스트라이샌드 효과다.
현재 11만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4.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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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5일 일본에서 反日種族主義 日韓危機の根源(반일종족주의 일한위기의근원) 이라는 제목으로 정식 출판되었으며, 발매 당일부터 일본 아마존 북, 라쿠텐 북스, 등 다양한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량 1위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으며 한달이 지난 12월 마지막주에도 판매량 상위권에 있는 등, 일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기사
아베 신조 총리도 읽었다는 늬앙스의 인터뷰를 남겼다.#
일본 아마존 오디오블에서 오디오북으로도 제공중인듯하며, 재생시간은 12시간 가량 된다고. 역시나 종이책처럼 베스트셀러인지 메인 페이지에 올라왔다고 한다.[3]
2020년 5월 기준 40만부 이상 팔렸다.#
5. 평가
5.1. 긍정적인 평가
과거 진보진영의 역사인식을 담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이 책의 저자들과 함께 저술한 이철우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토지조사사업의 긍정적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 다만 후술할 비판 논의들 때문에 정치적 편향성이 학문적 업적을 퇴색시켰다고 지적했다.
5.2. 논란
5.2.1. 식민지 근대화론
조선말기 자본주의 맹아론과 일제강점기 일방적인 수탈론이 근거가 부실하며, 민족주의 역사관에 의한 확대과장이라는 비판은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오던 것이었다. 현재는 김용섭 연세대 교수, 강만길 고려대 교수, 신용하 서울대 교수 등으로 대표되는 일방적인 수탈론은 수많은 연구에 의해서 무너진 상태이다. 이 과정에서 통계분석, 실증자료를 강조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가 상당히 탄탄한 논리를 구축했고[4] , 이들은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고 나오게 된다. 이후 학계에선 허수열 충남대 교수처럼 수탈론도 과장이지만, 식근론도 문제라는 반박이나 아예 근대화의 의미가 뭐냐는 문제제기까지 나오고 있다. # #
일단, 경제학자들이 대부분인 저자들에게서 전문성이 담보되는 부분이 수탈론 부분인데 교과서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수탈이란 용어나 각정 정책설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10여 년 전 제기되어 다른 학자들과 논의를 거쳐 받아들여질 부분은 받아들여지고, 반박될 부분은 다 반박된 터라 학계 입장에서는 새로울 게 거의 없다. 쉽게 말해 했던 말 하고 또 하고 있는데 그에 반해 자신들의 주장에 대해 제기되었던 반박들은 모호하게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토지 조사 사업 비판의 경우, 신용하[5] 가 주장하던 '한손에 측량기, 한손에 권총 든 토지수탈' 주장에 반대되는 연구가 '''국사학계'''에서 나온지도 30년도 넘은[6] 상황이다. 아울러 김제 벽골제에 관한 조정래 비판과 벽골제를 둘러싼 충남대 허수열 교수와의 논쟁도 2000년대 후반의 일로 10년이 훌쩍 넘었다. 이에 대해 그동안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계속 반박해온 허수열 교수는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 대한 이영훈의 비판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거짓말이라고 이영훈의 주장을 역으로 비판하였다. 식민지근대화론 비판 허수열 "이영훈 경제통계 모두 엉터리"
실제로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76화에 나온 허수열 교수는 조정래와 이영훈의 주장 중에서 조정래 쪽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리고 허수열 교수는 이영훈의 주장도 무슨 사료나 문헌적 자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일본인들이 개간을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일 뿐이라고 했으며, 이영훈은 뉴라이트 인사들이 만드는 잡지인 시대정신에 1921년에 만들어진 지도를 엉뚱하게 1917년에 만들어진 지도라고 잘못 주장한 바 있으며, 이영훈의 주장처럼 일본인들이 개간을 열심히 해서 조선의 토지 면적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저 기존에 있던 토지들을 세금 많이 걷으려 측량하다보니 조선 왕조 시대에 토지 대장에 넣지 않았던 토지들이 통계에 들어간 것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허수열 교수는 자신이 국가기록원에서 맡은 방대한 기록들을 근거로 분석을 하여 뉴라이트 인사들의 주장을 반박하는데 거의 평생을 바치고 있는데, 허수열 교수가 자료들을 토대로 이영훈의 이론을 반박하면 이영훈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답을 안 하고 전혀 다른 이론을 가져와서 여기에 대해 반박해 보라고 말하고 그래서 허수열 교수가 그 이론에 대해 자신이 가진 자료들을 토대로 반박하면 이영훈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다른 이론을 가져와서 반박해 보라는 식으로 두더지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허수열 교수의 이영훈 이론 반박 내용들
심지어 최근에는 방조제였다는 이영훈의 주장과 달리 벽골제에서 담수 식물의 흔적이 나오거나[7] 이곳이 수리시설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온 상황이다. 물론 해당 학설이 정설은 아닌 만큼 학계에서 흔히 보이는 서로 반대되는 여러 논문들이 발표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나 여기서 이영훈이 문제가 되는 것은 불리한 근거에 대해 적절한 반론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퉁치려 한다는 점이다.
쌀 수탈 프레임 비판의 경우 일제 공권력이 직접적으로 시행하는 수탈이 아니라 수출(또는 이출)이며 외견상 자본주의 제 관계의 성립이라는 것은 한참전에 인정받고 결론났다.[8] 하지만 산미증식계획으로 조선의 농촌구조가 완전한 부익부 빈익빈으로 변화, 조선의 자작농이 대거 몰락하여 소작농이 되었다는 점은 학계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산미증식계획은 농업잉여의 증대와 농업잉여의 자본 전화로 인한 공업화 토대 마련 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조선 농업구조의 완전한 변화로 인한 소작농 증가와 고액의 소작료 부담과 강제적 수리조합 가입 및 고액의 조합세 부담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심화라는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물론, 농촌의 빈부격차 확대와 자작농의 몰락 현상 자체는 자본주의의 시작이었던 영국부터 모든 나라들이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겪었던 일[9] 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산미증식계획에 따른 자영농의 몰락은 단순히 부농이 토지 소유를 확대했고 정부가 이를 장려/묵인하며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대지주 위주의 총독부 지원을 배경으로 해서 대지주들이 강제로 조합원에 편입시킨 뒤 고액의 이용료를 부담시켜서 촉진된 면도 크다. 또한 당시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농업에 종사하였고 그 중 많은 경우가 빈익빈에 해당되었으며[10] 이후 식민지 시기 동안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혜택과 거리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는 모든 과정에서의 강제성을 부정하고,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일부''' 부정적 효과가 있었다.'로 축소하고 있다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산미증식계획 파트의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의 대구가톨릭대 전강수 교수의 글을 참조하길 바람.
그런데 학계의 논의와는 별개로 오랜 기간 일방적인 수탈론만이 국사교과서에 실리면서 상당수 일반인들이 이렇게만 알고 있는 현실[11] 에서, 이영훈 교수는 이런 대중들의 무지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학계에서 수십 년도 전에 참으로 결론이 났거나 더는 학계의 주 관심사가 아닌 학설들을 끌고 와서 학계가 아직 반일 프레임에 매몰되어 있으며 자신들은 이를 합리적으로 반박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영훈 교수가 이런 내용의 책을 처음 쓴 것도 아니다. 단독 저작만 쳐도 대한민국 이야기(2007)와[12] 대한민국 역사(2013)가 있고 공저작으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2006)이 있는데 밀도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쪽이 훨씬 낫다.
사실 뉴라이트의 대부이자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조차 '''"식민지기의 지주-소작관계는 법률적으로는 평등한 계약관계였습니다만, 실질적으로는 소작농들에게 농노적 예속을 강요하는 불평등 관계였습니다."''' (안병직·이영훈, 2007, p.156)라고 이미 주장했음을 생각해보면 강제성의 개입을 애써 부정하려는 일부의 시도는 이장폐천(以掌蔽天: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의 느낌이 강하다.
5.2.2. 독도의 역사적 영유권에 대한 논란
저자들은 독도가 현재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임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동안 한국 사회의 통념이던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이고, 신라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이래로 한민족의 고유영토'라는 통념은 사료를 잘못 해석한 결과이며, 오히려 사료에 나온 '우산도'와 대한제국 칙령의 '석도'는 울릉도의 부속도서인 관음도와 죽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이 타당성이 높다고 본다. '''독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확정한 것은 이사부나 대한제국이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의 1952년 평화선 선포를 통한 것'''으로,[13] 독도 영유 또한 결국 이승만의 업적인 것으로 보며, 따라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도 타당성이 있음을 이해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하게 내세울 필요 없이 low key로 실효지배만 하면 되었는데, 노무현 정부 이래로 대통령들이 정치적으로 반일을 이용하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강화되고 일본의 반격도 더 거세지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의 노무현 운운하는 주장은 오히려 이영훈이 칭송해 마지않는 이승만에게 해당되는 소리다.''' 가장 강경하게 정치적으로 반일을 이용하면서 무력까지 동원해서 위태롭던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실효지배한 것이 이승만이고 이에 대한 일본의 반응도 가장 격렬했던게 이승만 정부 시절이다.[14] 그리고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운운도 독도 연구자에겐 그저 황당한 주장일 뿐이다. '''왜냐하면 국내 역사학자들이나 독도 연구자들도 국제적으로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우산국 정벌 건을 입 밖에 내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을 독도영유권의 증거로 내세운 서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모두 독도와는 관계없는 비전문가들의 어린이 위인전이나 대중 서적 또는 정부의 국내용 선전 메시지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이는 '논문을 쓰고' 때로는 '학술 논쟁을 벌여야 하는' 독도 '연구자'들이야말로 그런 소리를 국제적으로 했다간 망신만 당할 파탄된 논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즉 이영훈의 우산국 정벌 주장은 그들에겐 허수아비 공격일 뿐인 것.
구체적으로는 우산도 명칭 논란, 이승만 라인설 등 일본 우익들의 대표적인 주장만을 실어 놓고,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 대한제국 영토임을 공표한 ‘석도’가 독도라는 것을 부정했다. 저자는 오히려 대한제국이 1905년의 시마네현 고시에 반박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행정권은 남아있었지 않느냐며...[15] 하지만 사실 이영훈이 시마네현 고시에 대해 대한제국이 왜 반박하지 않았냐고 비난하는 건 뒷북에 가깝다. 왜냐면 수십년 전 일본 학자들의 주장인데다 이미 논파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무주지 선점론에 근거해서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했는데 새로운 영토의 획득처럼 중요한 국가적 행정처리를 <관보(官報)>나 <공보(公報)> <현보(縣報)> 어디에도 싣지 않았다. 그러나 신 영토 획득을 어떤 형식으로든 공포하지 않으면 국제법상 문제가 되기에 기껏해야 지방 신문인 <산인(山陰)신문> '잡보(雜報)'에 조그맣게 실어 도망칠 구멍을 파낸 것이다. 그것도, 그 새로운 영토가 '竹島'라고 명기하지도 않았다. 호사카 유지 교수에 따르면 1876년 미국과 오가사와라 군도의 영유권을 놓고 분쟁이 일었을 때, 일본은 미국, 영국에 철저히 오가사와라 영토를 일본령으로 편입할 것을 공표하고 당연히 관보에도 당당히 실었다. 그런데 왜 독도에 대해선 저런 모순된 행보를 보인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제국이 이를 알면 분명 항의와 함께 국제분쟁이 될 게 뻔하니까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한 것이다. 1년 후 후인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이를 알고 항의한 것이야말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 자체를 몰랐다는 증거이다. 정확히 말하면 무능해서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일본이 철저히 숨긴 것이었다. 즉, 이영훈은 도둑이 아니라 도둑맞은 것도 몰랐던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는 것.
게다가 서문에는 객관성과 공정성의 추구가 지식인의 사명이라 주장한 반면, 정작 독도 문제에 관하여는 태정관 지령이나 SCAPIN 제677호처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불리한 사안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이후 태정관 지령에 대해선 왜 이를 언급안하냐는 조선일보 이선민 선임기자의 주장에 '태정관 지령은 한국의 독도고유영토설을 증명하지 못한다.'며 이영훈이 반박했고 이에 이선민 기자가 재반박하였다. 자세한건 태정관 지령 항목 참조.
또한 일본은 한국과 국교를 맺기 직전인 1965년 4월 한국 정부에 "다케시마(독도)의 불법 점거에 관하여 엄중 항의한다."라는 문서를 보내, 한국과의 국교 정상화에도 결코 한국의 독도 지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으며[16] , 한일국교정상화 때 한국이 '을'이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한다'는 문구를 집어넣으려다 박정희가 '한일회담이 취소되어도 좋다. 결코 독도에 대해 양보하지 말 것'을 외무부장관 이동원에게 지시, 끝내 막았던 적이 있다. 국내 반대를 억누르면서까지 한일회담을 추진하던 박정희조차 '차라리 때려치워라'고 할 정도로 일본의 독도 도발은 심각했다. 그것으로도 끝나지 않고 박정희 정부 집권기인 1977년에 200해리법을 제정하여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가 '독도는 일본의 고유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일본 속셈 꿰뚫을 독도정책 다시 세워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4글자 단어가 이 후쿠다가 처음 한 소리라는 것. 즉, 일본의 독도 도발은 더 심하면 심했지 이영훈의 주장처럼 노무현 정부 이전이라 해서 결코 일본이 소극적으로 가만히 있던 것이 전혀 아니었다. 때문에 한국이 조용히 있는다고 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조용해 질 것이라는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이야말로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 오히려 조용히 있을수록 '한국이 일본의 논리에 반박 못하고 있다.', '일본의 다케시마 주권행사에 한국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라는 식으로 일본의 영유권 주장 및 국제 여론전에 이용해 먹을 것이 뻔하다. '''당장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 하고 있는 이상, 일본이 가만히 있는데 한국이 먼저 독도 영유권을 호소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17] 오히려 독도를 빼앗고 싶어 먼저 한국에 싸움을 걸고 국제적으로 동네방네 떠드는 게 일본이고 한국이 그에 방어 또는 반응하는 메카니즘이 건국 이후 계속되어 왔을 뿐이다.''' 이정도면 이영훈은 선후관계도 왜곡한 것이다.
이영훈을 옹호하는 자들은 이영훈은 독도 한국영토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한국영토설의 근거를 한국정부가 제대로 대지 못하고 있는 걸 지적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영훈은 한국 정부의 핵심적 주장인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문헌에서의 우산도=독도, 대한제국 칙령 41호의 석도=독도 를 모두 부정하고 있다. 무인도인 독도가 오래 전부터 한국영토였다는 증거를 대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이영훈 자신이 독도 한국 영토론을 뒷받침할 증거를 내놓은 것도 아니다. 이걸 가지고 이영훈이 독도 한국영토론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 '증거는 없지만 독도는 한국영토가 맞다' 라는 게 실증주의자 이영훈의 생각''' 이라는 소리가 된다. 이게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을까?
이영훈은 다소 과도하게 이승만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이는데, 그러므로 '''그에겐 한국의 독도 고유영토설의 근거가 부족할수록 이승만의 평화선 공표로 인한 한국의 독도 실효지배의 공적이 더더욱 돋보이게 된다. 그런데 이영훈은 이 부분에서 심각한 자가당착을 드러내고 있다.'''
이영훈의 주장대로 평화선 이전의 독도에 대해서, 우산도=독도, 석도=독도가 모두 부정될 경우, 게다가 독도는 무인도이므로 한국의 독도 고유영토론은 그 근거를 잃게 된다. 그렇다면 '오로지 실증주의만으로 세상의 모든 비난을 버텨왔다'는 그는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가 아니며, 1904년 대한제국 칙령에서도 독도를 영토로서 선포하지 않았으니[18] 이 '무주지 선점론'으로 독도를 일본령으로 선포한 시마네현 고시를 인정, 즉 독도가 일본령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일본은 물론 미국의 의견 (러스크 서한)[19] 도 씹고 무력으로 점령한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즉 남의 나라를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았으니 바로 침략이고, 그 사상적 기반이 이영훈 본인이 한국인의 고질적 국민성이라고 매도한 '반일 종족주의' 이며, 그런 사상으로 남의 나라 영토까지 빼앗을 정도라면 역대 가장 극단적이고 질 나쁜 '반일 종족주의'를 이승만이 저지른 셈이 된다. '''즉 이승만이야말로 그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로 가장 비난해야 할 대상임에도 오히려 평화선 덕분에 한국의 독도 영유를 확정했다고 칭송하고 있다.''' 모순이 느껴지지 않는가? 실제로 주간조선 이선민 기자도 이영훈과의 논쟁에서 이 모순을 무겁게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이영훈은 답변은 없는 상태. 이영훈의 ‘독도’에 대한 세 번째 비판
5.2.3. 日 우익단체 및 日 기업 재단의 지원 논란
[단독] '반일 종족주의' 학자의 민낯..."日 극우 지원받았다" / YTN
유엔까지 간 '반민족' 발언…뒷배엔 日 극우 자금
이우연 박사, 최근 日 우익방송 출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
'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 이우연, 日 극우단체 지원 받고 UN 갔다
"구역질나는 책" 조국이 저격한 이영훈, 日 돈 받아 연구
이영훈 낙성대硏, 도요타 돈 받고 최소 두차례 연구
이영훈 팀, 도요타로부터 자금지원 받아 식민지연구
저자들의 편향적인 정치적 주장 외에도 또다른 논란이 생겼는데, 반일 종족주의 저자 중 한 명이었던 이우연이 일본 우익단체에서 항공료와 체류 지원을 받아 UN에 참석, 일본의 식민통치와 강제징용에 대해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기사가 나오고 있다.[20][21] 이우연은 그 외에도 일본 방송에 출현, 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부인하며 식민통치를 적극 옹호했다.
다만, 저자들의 사례 중 이우연의 사례가 아닌 이영훈이 도요타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례의 경우 한홍구, 김부자, 지명관, 영애 야마시타, 정진성, 강상중 등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밝혀낸 학자들도 연구비를 지원받은 사례가 있어 도요타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은 사례는 우익단쳬의 지원 사례로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즉, 이우연의 경우가 문제지 이영훈이 도요타 재단으로부터 지원받은 경우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5.3. 비판
5.3.1. 박근혜 탄핵 여성혐오설
박근혜 탄핵은 한국인의 여성혐오로 인해 만들어진 거짓말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영훈 주장에 따르면 "한국의 거짓말 문화는 국제적으로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며 "2014년에만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이며 "일본에 비해 172배"이며 "인구수를 감안한 1인당 위증죄는 일본의 430배"이며 "허위 사실에 기초한 고소, 곧 무고 건수는 500배", "1인당으로 치면 일본의 1,250배"이며 "보험사기가 만연해 있"고 "2014년 자동차 보험, 생명보험, 손해보험, 의료보험 등 보험사기의 총액은 4조 5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어느 경제신문은 미국의 100배"[22] 라고 말하며 정치에서 대표적 피해자가 박근혜라 주장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거짓말에 쓰러지고 말았"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시간에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미용 수슬을 했느니, 마약을 했으니, 애인과 밀회를 즐겼으니 등등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 온 나라에 가득하였"고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여성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하하는 한국인의 집단 심성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며 "최순실 사태가 터졌을 때 전국은 그야말로 거짓말의 광란"였고, "그 거짓말의 행진"은 "지금"(2019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23]
다음은 이영훈이 주장하는 여성혐오 사례이다.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거짓말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여성 대통령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여성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하하는 한국인의 집단 심성이 만들어 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영훈 외,『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미래사, 2019, 13쪽
"청와대에서 애인과 밀회했다"는 내용은 세월호 사고 당시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의 보도를 시작으로 떠돌았던 박근혜-정윤회 밀회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얼마 전 광화문에 나갔더니 세월호를 추모하는 노란색 천막이 아직도 쳐 있는 가운데 "왜 안 구했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벌써 몇년입니까. 5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진상은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왜 안 구했나"라니요. 아직도 '''그 시간에 여성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애인과 밀회를 하거나''' 마약을 즐겼다는 겁니까. 그런데 아무도 그 거짓말의 천막에 항의하지 않습니다.
이영훈 외, 『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미래사, 2019, 13쪽
이영훈의 주장은 사실관계과 맞지 않는 내용들이다.
대통령(박근혜) 탄핵(전원재판부 2016헌나1, 2017. 3. 10.) 현재결정례를 보면 알겠지만 이영훈의 주장과 맞지 않는다. 이영훈이 주장한 여성을 우습게 여기거나 비하하는 습성 때문에 탄핵된 게 아니다. 그리고 반박하는 명제가 세월호 7시간 검찰 발표#, #와 전혀 맞지도 않는 비판인데 이영훈은 이에 대한 반박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5.3.2. 저자들의 비전공 분야에 대한 미숙함
저자들이 말하는 '종족'이라는 개념은 학술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개념으로, 저자들은 이를 사실상 '부족(tribe)'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선 한국과 일본 두 집단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모집단'을 상정해야하나 이 책에선 그러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이 주장은 사회학적, 인류학적으로도 모두 잘못된 개념이다. #, # 이것은 저자들이 경제사 전공으로만 서술하여 벌어진 문제점이다.[24]
또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의 주제에 대해서도 상경계 출신의 경제사 전공자들이 비전공 분야를 무리하게 건드렸다는 관련 단체 및 역사학자들의 지적이 존재한다. # #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275화 피해자를 지우는 '반일종족주의'(feat.타마) 276화 '반일종족주의'-위안부 문제(feat.타마)
5.3.3. 일부 저자들의 정치적 주장
아예 역사를 이용한 정치 선동 도서라는 비판도 있다. 2부는 대놓고 북한에 대한 정부의 태도나 친북 종북인사 척결을 언급하는 등 정치적인 주장과 개인 견해가 다수 섞여있다.[25][반론] 나중에는 정치적인 문제를 좌파와 한국인들의 반일 현상과 엮어 망국론을[26] 이야기 하는 등 중립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 즉 역사와 정치의 인과관계 메커니즘이 매우 부실하다. 또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반일정서를 이용하고 민족주의 사상을 교육을 통해 주입하였으나, 이 책은 이러한 보수진영 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으며, 그나마 일본 문화 개방등의 결단을 내리며 일본에 대해 가장 열린 태도를 보여준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의 정책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다.[27]
5.3.4. 확증편향적 통계 인용
첫부분부터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로, 한국인은 '거짓말하는 국민'으로 단정지으며 출발한다. 통계에 입각한 사료비판을 주장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통계적 거짓말을 다수 동원하는 한편, 거기에 민족주의와 한국인의 태도를 매도하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이 많아 독자가 주화입마에 빠지기 좋다. 첫장부터 위증과 무고죄가 일본보다 500배 이상 많으며 인간에 대한 신뢰성이 반일 민족주의가 막 시작된 1980년[28][29] 보다 낮아졌음을 근거로 한국은 특유의 거짓말 문화가 만연한 사회이며 거짓된 반일 또한 이것의 연장선임을 어필하며 시작한다.
"한국은 거짓말의 나라" 라고 주장하며 인용한 위증, 무고죄 500배 운운 부분에는 출처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2016년 일본 언론 기사 日언론 "거짓말 만연한 한국, 숨쉬는 것처럼 한다"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도 이건 악의적인 통계 장난이라는 지적과 반박이 있었다. [팩트체크] "한국인은 숨 쉬듯 거짓말"…정말 그럴까? 팩트 체크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영훈이 그러한 주장을 하는 데 참고한 한국의 사기, 무고, 위증죄 기소 수와 일본의 사기, 무고, 위증죄 기소 수의 숫자 자체는 사실이지만, 애초에 국가별로 범죄 통계의 집계 기준, 각 죄목이 정하는 범죄 행위의 범위와 구성 요건, 사법 기관 내부의 기소 기준 등등이 다르므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자세한 사실은 사기죄의 문서를 보면 확실히 알수 있다.
이는 통계가 지니는 함정을 무시해 버린 채 편의대로 자료를 사용한 것으로 경제학 원로들이 쓴 글이라면서 서문부터 이런 통계 장난으로 시작하고 있으니 그 뒤부터 나오는 통계들도 진위가 의심된다는 주장이 있다.
5.3.5. 이승만의 반일성향 문제 회피
'''과거 한국을 현대화된 일본과 비교하는 것은 과거 일본을 현대화된 한국과 비교하는 것처럼 불공정한 것이다.''' 일본 자체를 예로 들자면 과거 페리 제독이 일본을 처음 방문했을 때 일본은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물질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못했다'''.[30]
[31] 정치적으로 일본은 수많은 분국으로 쪼개져 서로 싸움을 일삼고 있었으나 한국정부는 통일된 완전한 통치를 하고 있었다.물질적으로 보더라도 당시 일본은 이렇다할 도로나 건물, 위생시설 등이 거의 없었다. 그러던 일본이 변하게 된 것은 전국적으로 서구문명을 도입한 뒤부터였다. 한국도 만일 한국이 자신의 계획대로 추진해 나가도록 허용했다면 한국은 일본이 이룩한 것을 '''당연히 이루어냈을 것'''이다.
이승만 뉴욕타임즈 사설, '한국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명백히 우수하다', 1919. 5. 18. 출처: '''이승만학당'''[32]
, 이승만기념관
일인들이 저의 죄를 회개해서 우리와 평화롭게 살자하며 친일하는 한인의 남녀들을 시켜서 다 한국에 충성하는 백성이 되도록 힘쓰게만 한다면 아무리 아프고 쓰린 것도 차차 잊어버리고 양국이 평화로이 지내기를 도모하기로 하고, 이 뜻을 공포해서 일인들도 다 알만치 만들어준 것인데, 그동안 지낸 경과를 보면 일인들은 여전히 한국을 병탄할 목적을 변치 않고 공개적으로 혹은 비밀적으로 모든 행동과 선전하는 것을 볼 때 한국을 '''무시하고''' 한인들을 '''모욕하는''' 것이 '''전만 못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중략)...
여섯째로는 모든 친일분자들을 일본에 모아다 보호해놓고 이 분자들을 통해서 우리나라 '''국권 요란을 선동'''하기를 마치 이전 이조 말년에 망명객들을 모아다놓고 남의 국모를 암살하며 '''침략하던 악습'''을 행하고 있으니 일인들의 야심을 우리가 더 말할 것 없이 보고 앉은 것이다.
...(중략)...
이런 야심가진 침략자들에게 뒷문을 열어놓고는 우리가 자유를 보존하지 못할 것이오, '''나라를 잃어버리고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을 '''기왕 사십년 경험으로 다 알고'''[33]
있으니, '''공산당과 친일반역분자'''는 다 분간해서 후환을 막아야만 될 것이다.
1954년 5월 13일 이승만 담화, 동아일보, 1954. 5. 14. #
위의 소개에 적힌 "친일은 악(惡)이고 반일은 선(善)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종족주의. 이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한 바른 역사서!"라는 반일 종족주의란 책의 주제의식에 근거한다면 사실 한국 대통령 중에서 제일 심각하게 비판받아야만 하는 대통령은 이승만이다.[34]지금 우리나라의 걱정은 공산당보다 더 '''음험한 것'''이 일본의 야심이다. 그러므로 일인을 걱정하여야 하며 일인이 선전술이 있어서 미국인이 그것을 들어 주고 일본을 부강하게 하고 타국을 거기다 따라가게 하자는 것이 '''동양의 문제'''다. 그러므로 어려운 것이고 또 한인 중에도 친일(親日)하는 자가 있어 일본에 의뢰하는 생각을 가진 분자가 적지 않다. 그러니 그러한 자를 잘 분간하여야 한다.
1954년 10월 7일 이승만, 인하공전 개교식에서 #
- 이승만/평가 문서의 친일몰이 항목에 훨씬 다양한 예시가 있다. 친일몰이 항목도 참고.
- 평화선 당시 일본어부에 대한 대응[35]
- 니가타 일본 적십자 센터 폭파 미수 사건: 정말로 일본을 공격하려 한 사건이다!
-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협상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36]
- 대마도 반환 주장
- 1954년 스위스 월드컵 극동 예선에서 일본 대표팀의 한국 입국 거부[37][38]
- 1959년 6월 15일 대일 경제단교 및 일본 왕래금지 성명 발표[39]
이에 대해서 이영훈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이 지나치게 경직된 반일정책을 폈다'며 이승만이 강력한 반일정책을 실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며 변론하였는데 미국은 일본이 공산품을 한국에 수출하고, 한국은 농·수산물을 일본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개발하라고 요구를 했으나, 이승만은 그렇게 되면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될 것을 우려하였다고 한다.[41][42] 또한 독립한지 얼마 안 된 신생국으로써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반일정책을 펴야 했다고 답했다. #
하지만 이승만의 독립운동, 이후 행적들과 발언들을 보면 국가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반일 정책을 펴야 했다는 것은 이영훈 본인의 변명에 가까운 것이다. 일본 내막기등을 저술하고, 대통령 집권이후 대 일본 정책들을 보면 단순한 집권자로서의 정책이 아니라 이승만 개인 스스로도 상당힌 강경한 반일 성향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미국에서도 이승만에 대해 명확하게 반일 성향이라고 정리했으며[43] 독도 평화선에 대한 대책만봐도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초강경한 반일 정책들 일색이다. 이정도의 강경한 반일 정책들을 펼친 정치인에 대해 반일 성향이 아니라고 한다면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반일이라고 봐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이영훈이 이승만의 반일정책에 대해 인정한 것 자체가 그의 학문적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고[44] 실제로도 이것 때문에 자신의 주장에 부합하면 선택적으로 채택해서 써먹고 아니면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침묵한다.[45] 그의 사상적 가치의 중심은 이승만 재평가와 일제강점기에 대한 국민 저변적인 '오독'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기준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기원이자 최고권력자였던 이승만에 의해 반일 정책이 주도적으로 이뤄졌고 반일 감정이 고조되었다는 아이러니는 자신이 추구하는 두 가지 중요 가치를 한번에 묶어서 헝클어놓는 내용이기 때문에 도저히 양립할 수가 없는 모순이다.
5.3.6.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의 강제성 서술 부재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정안기는 '1부 08 육군특별지원병, 이들은 누구인가?'파트에서 자발적 지원자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들을 단순 친일파로 생각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46] 문제는 해당 파트의 서술 방식이다.
처음에는 지원병 모집을 강제 동원과 호구 지책에 의한 지원으로 설명한 기존 한국사의 서술 방식을 단순하고 왜곡된 것이라 비판한다. 이후 일제가 육군특별지원병 제도를 실시한 배경을 설명 -> 일제가 높은 지원율에 '자기도취'되었다는 서술과 함께 누적 약 80만 명에 달하는 지원자가 적혀있는 표를 제시 -> 자발적 지원자들의 지원 동기 및 수차례 지원이나 혈서까지 쓰는 열정적 지원 사례 제시 -> 특별지원자들의 참전 경험과 이를 통한 변화 -> 해방 이후 이들이 국군의 장교가 되는 등 대한민국에 기여한 점 서술 -> 지원자들을 단순 친일파로 보는 것의 부당함 역설이라는 순서로 내용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의 강제성은 전혀 서술되지 않는다.''' 자발적 지원자의 수가 결코 적었던 것은 아니고 최종적으로 선발된 17,000여명은 대부분 자발적 지원자들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조선지원병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누적 지원자가 80만 명에 달한다는 일제의 통계는 과장된 것이며, 모집 과정에서 일선 관청과 경찰의 할당량 및 실적 채우기를 위해 수많은 당시 청년들이 강제적으로 육군특별지원병에 '지원 아닌 지원'을 하게 되었다는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다.[47] 제79회 제국의회 설명자료에 의하면 정안기가 본 책에서 제시한 표의 41년도 지원자 약 145,000여명 중 자발적 지원자는 약 5만 명이며 그보다 많은 8만 명에 달하는 지원자는 '관청 종용'에 의한 것이다. 이외에도 모집 과정에서 일선 관청과 경찰에 의한 강압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미 '당대'의 일제 기관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정안기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자발적 지원자'들에 대한 내용이니 굳이 비자발적 지원자들에 대해 서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해당 파트의 구성 방식을 다시 살펴보자.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의 강제성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이를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강제 동원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고 자발적 지원자들의 사례만을 언급한 해당 내용을 읽으면 '80만 명이나 되는 조선 청년들 대다수가 열정적으로 일본군이 되려 했으며 모집 과정에서 강제성은 전혀 없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정안기가 '육군특별지원병 모집 과정에서 강제성은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당 서적에 대한 친일 및 일제 정당화 논란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강제성에 대한 서술 부재와 독자들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서술 방식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5.3.7. 과거사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
공동저자인 주익종은 '1부 10. 애당초 청구할 게 별로 없었다' 파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은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과거사를 청산했으며 그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주장을 했다.
이는 과거사 청산의 의미를 단지 '배상'이라는 좁은 부분에 국한하고, 한일협정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 정부와 유력 정치인들의 잘못을 외면하고 면죄부를 주는 발언이다.
일단 '''물질적인 면에서는'''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배상을 충분히 하기는 했다. 한일협정 당시 일본이 준 돈이 '배상금'인지의 논란과 협정 체결 당시의 국제 정세는 둘째 치고서라도, 일단 일본 정부가 한국 측에 어느 정도 양보하고 꽤나 큰 금액을 준 것은 사실이며, 독일은 빌리 브란트의 무릎꿇기 같은 미담을 만들 정도로 사죄는 했으나 '''법적 배상 및 개인 배상에는 매우 인색하였고''' 법적 배상을 못받고 인도적 보상만 받은 나라도 수두룩하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태평양 전쟁의 전후처리를 전부 끝낸 미국은 포로들이 추가적으로 당시 강제징용 기업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에도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 같은 정부 차원에서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들도 종종 나왔었다. 심지어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경우 고이즈미 담화 발표나 서대문 형무소 참배, 아베 신조의 경우 국립서울현충원 참배를 하기도 했었다.
문제는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의 이런 태도가 일관성이 있는가이다. 잊을만하면 일본 정부와 유력 정치인들(전현직 총리 포함)에 의한 각종 망언, 역사왜곡, 독도 도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위안부 강제성 부정 등의 문제가 튀어나오기 때문에 일본의 의도에 의심을 사는 것이다. 이 중 정치인들의 문제를 살펴보자. 아소 다로같은 망언 제조기야 말할 것도 없고, 위에서 언급했던 고이즈미, 아베는 취임 초기의 파격적 행보를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한국인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행보를 보여왔다. 특히 아베 신조의 경우 재집권 이후 고노 담화의 폐지 또는 수정을 검토한다든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든지 아베 담화에서 러일전쟁을 미화한다든지 하는 등 여러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과거사 청산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주익종은 이러한 일본 측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의 반일을 비판한다면서, 정작 한국 내 반일 문제의 주요 원인 중 가장 큰 원인인 일본 정부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의 하지 않는다.
5.3.8. 황현필 한국사 강사의 비판
6. 반응
6.1. 긍정적 반응
6.1.1. 정치인
-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몰랐던 부분을 일깨워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
-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100만권이 팔려서 전 국민이 정말 눈을 뜨고 더 미래지향적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말하였다. #
6.1.2. 언론인
6.1.3. 학계
- 조셉 이(Joseph Yi)교수는 반일종족주의는 한국 사학자들이 민족주의에 기반하여 조작’해 내었고 진짜 현실이 아닌 합의된 현실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다‘라며 인용하였다.#
6.2. 부정적 반응
6.2.1. 학계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당신들이 유포하는 건 '혐한 종족주의'라며 비판하였다. #
-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책에서 저자는 식민지근대화론자의 학술적 주장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독선적 표현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고 비판하였다. #
-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평화를 바라는 합리적인 양국 시민들의 소리는 묻히고, 이런 책들이 희생자의식 민족주의와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두 극단적 관점의 충돌을 견인하며 커다란 소음을 유도한다고 비판했다. #
-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저자들이 책에서 반일 종족주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았으며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가 반일 종족주의 때문이라는 주장, 물질주의가 반일 종족주의의 원천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
- <일본학자가 본 식민지 근대화론>의 저자 도리우미 유타카는 일제는 조선을 구조적으로 수탈했다면서 비판했다.[48]
- 허수열[49][50] 충남대 명예교수는 "이영훈의 경제통계는 모두 엉터리"라면서 이 서적이 학술적으로도 잘못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증언을 했다. #
-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으로 전국 농경지의 약 5.8%, 임야의 59.1%를 빼앗았다"고 지적하고 "토지조사 분쟁 사례와 저항 행태를 봐도 이 사업의 목적은 약탈이었음이 입증된다"고 전하면서 "이들의 후예들이 펼치는 거짓 주장을 그대로 '주워 먹은' 사람들이 학문·통계·사료의 허위 탈을 쓰고 매국적으로 활동한다면 동포들의 정신건강을 해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영훈과 이러한 주장을 강경하게 비판했다. #
- 황태연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를 전면으로 비판한 '일제 종족주의'를 출판하였다. 뒤이어 황태연을 비롯한 일제 종족주의 저자 6인은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을 부왜노로 지칭하면서 그들이 근거 없이 대한민국의 정당한 저항적 민족주의를 일제종족주의와 동일시해 ‘반일종족주의’로 폄하함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기를 훼손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일제 종족주의 저자들은 그들을 단순히 학술적 논박만 하는 것이 아닌 법적으로 고발을 하였으며 일제 식민통치 옹호 행위 및 일본의 역사부정에 대한 내응 행위 처벌 특별법’을 제정해 이들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1] #
- 고베대학 기무라 칸 교수는 '반일종족주의' 에서 강한 반일 정치가였던 이승만의 반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으며[52] , "그들(저자들)에 의한 '반일비판'은 그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비판하는 사람들(진보세력)을 공격하는 것에 주 목적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
- 김민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뉴라이트들이 일본 우익을 답습하는 방법으로 한국 사회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고, 박수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은 이미 학문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인데, <반일 종족주의>를 들고나온 것은 학문적 패배를 정치적으로 만회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이영채 게이센여학원대 교수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를 전면 비판한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 정복>책을 출판하였다. 이영채 교수는 "한국의 역사 전문가라는 집단이 스스로 일본 식민지 시기의 역사 인식을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와 동일한 맥락ㆍ입장에서 설명한다”며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식민 지배에 대한 거짓과 과장에서 기인한다고 말하는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은 사실 일본 식민 지배의 실상을 은폐하고 미화해 온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 뿐만 아니라 저자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새롭게 나온 주장은 별로 없지만 훨씬 더 선동적, 공세적인 어조로 서술됐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아울러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시민세력과 연대를 맺는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한 <반대를 론하다: ‘반일종족주의’의 역사부정을 넘어>을 출판하였다. 정혜경 위원은 <반일종족주의>에 대해 “역사학 연구자, 그리고 전쟁피해와 인권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이 책은 불편함을 넘어 고역스러운 책”이라고 평가하였다.#
-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 ‘반일 종족주의’ 현상 비판>을 출판하면서, 위안부 문제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이영훈을 비판하였다.## 참고로 강성현 교수는 올해 강의에서 위안부 망언에 대응하기 위해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강의를 개설한 인물이기도 하다.#
- 호사카 유지 교수도 <신친일파>라는 책을 펴내면서 이영훈의 확증편향적인 통계자료 활용과 거짓 정보를 활용한 선동, 이중잣대적인 사료 해석 등을 비판했다.
6.2.2. 정치인
-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에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판을 하였다. #[53]
-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우리 국민의 반일 감정을 폄훼하고 일본 식민 지배에 면죄부를 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라며 질타했다. #
-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두통을 유발한다", "역사에 대한 자해행위"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
-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비상식적이며 동의할 수 없다", "이건 아니다"라며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54]
6.2.3. 언론인
- 유튜버 헬마우스는 #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면서, 이영훈이 2007년에 낸 책인 <대한민국 이야기>에서 일본군 위안부를 가리켜 국제법이 금지한 노예제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으면서 정작 이영훈이 2019년에 낸 책인 <반일종족주의>에서는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인 매춘부였다고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었는데, 그런 갑작스러운 태세 변화에 따른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고 지적하였다.[55] 즉, 남이 쓴 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기만 했을 뿐이니 이영훈 본인이야 얼마든지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태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도 무방한 것이다.[56]
7. 기타
최근 반일 종족주의 저서에 반박하는 '일제 종족주의'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반박 저서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정규재와의 영상을 통해 "그러한 반박을 다시 재반박하는 책을 쓸 것이다"라고 언급하였다.
반일 종족주의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반박하기 위해 일본에서 귀화한 경희대 교수 호사카 유지가 쓴 책이 "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의 거짓을 파헤친다"이다.#
5월 7일 반일 종족주의의 내용을 반박한 서적들에 대한 재반박이 들어간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 발간되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성격의 사회적 논란에 불이 붙었다.
한 편, 2020년 7월 2일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등 11명은 이영훈을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집필진들과 류석춘 교수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하였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 강제징용을 입신양명의 기회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담은 '반일종족주의'를 출판해 위안부·강제징용 피해자 및 유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을 줬다"고 비판했으며 더 나아가 "일본에서도 출간된 '반일종족주의'는 일본 우익들에게 역사 왜곡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이를 반성하기는커녕 1년도 지나지 않아 후속편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집필진들과 류석춘 교수는 기자회견을 주도한 송영길 의원과 이번 사건을 담당한 양태정 변호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