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운(군인)

 




李龍蕓 (?~1987)[1]
도쿄고등상선학교를 나와 상선사관으로 근무했다. 건군기에 입대하여 1947년 소령, 1949년에 중령으로 진급했다. 1954년에 장관급 장교로 진급했고 정긍모에 이어 1959년에 중장으로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1960년에 퇴임했다. 후임자는 이성호 제독이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 구속당했다가 해외에 망명했다. 1973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에 망명해있던 당시에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를 창설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동생인 이용문대한민국 육군 소속으로 1948년에 육군의 첫 기갑연대장을 지냈다. 당시 한국의 특성상 기병부대가 필요하다여겨 대한학생마술연맹의 승마부원들을 설득해 1949년에 제2기병대대를 창설했다. 1952년에는 수도사단장(현재의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 취임했고 남부지구경비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53년에 37세로 순국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친분이 깊어 유족들을 박정희가 도와줬다고 한다.
여담으로 15대 국회의원이였던 이건개가 동생 이용문의 아들이고, 이용운의 조카가 된다.


[1]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그의 생년월일이 쓰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