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야구)
1. 개요
전 해태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의 투수.
2. 선수 생활
대학 2학년이었던 당시 1992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결승전 고대 이상훈을 상대로 9회말 1대1로 맞붙은 상황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한양대를 우승에 올려놓았다. 그 공으로 수훈상을 차지한다.
199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1번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입단은 쌍방울이 아닌 해태에서 하게 된다. 쌍방울에서 포수 장채근을 영입하기 위해, 해태에게 최해식+2,000만원+2차 1라운드 지명권을 주면서 해태에 입단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원식이 프로에서 그저그런 투수였지만, 최해식이 최고의 수비를 보여 주면서 2000년에 김상훈이 입단하기 전까지 안방마님 역할을 잘 해주었고 현금 2,000만 원을 얻었으니 해태가 큰 이익을 보았다. 반면 쌍방울은 수비 하나는 최고'''였던''' 장채근을 데려갔지만 박경완의 포텐이 터졌고, 장채근이 장재중에게 밀려서 백업으로도 못 나오다가 부상으로 2년만에 은퇴해버렸으니 말 그대로 망했다.
이원식은 입단하고서 불펜 투수로 뛰면서 가끔 선발로 나가는 스윙맨이었고, 1996년 5점대 방어율을 올렸지만, 그 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듬해 정규시즌에서 3점대 방어율이라는 호성적을 올렸지만, 시즌 중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여 199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이후 의가사 제대를 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곧바로 마운드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 뒤 2000년이 되어 다시 복귀했고, 2001년에는 해태 말기 선발로 출전해서 쏠쏠한 투구를 보여주었지만 6회만 넘어가면 대량 실점을 하여 5이닝 투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선발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2003년 평균자책점 3.08을 기록한 것을 빼면 말그대로 방화를 즐기던 '''불'''펜 투수였다.
결국 2004 시즌이 끝나고 LG 내야수 홍현우 + 외야수 이용규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LG에서 13경기 16이닝, ERA 3.38로 그나마 원 포인트 릴리프로 제법 성적이 올랐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LG에서 방출되었으며, 같이 LG로 이적한 소소경도 2005 시즌 후 은퇴했다. 그런데 LG에서 KIA로 간 이용규가 각성하는 바람에, 이 트레이드는 LG가 말 그대로 이용규를 조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용규 대신 남은 오태근은 망했고, 이대형은 2007 시즌 후 주루는 괜찮지만 타격이 좆망한지라 팬들은 이용규를 보내고 이원식&소소경을 받은 이순철 전 감독을 더욱 혐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