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규

 




이용규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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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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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9

올림픽 야구종목 메달
2008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0

프리미어 12 우승 반지
2015




2006 KBO 리그 최다 안타왕


2012 KBO 리그 득점왕


2012 KBO 리그 도루왕

보유 기록
1이닝 최다 타점
7타점[35]
역대 최다 타석 무홈런
1640타석


이용규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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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63번
조재영
(2003)

이용규
(2004)


양현석
(2005)
KIA 타이거즈 등번호 15번
허준
(2004)

이용규
(2005~2013)


차명진
(2014~2015)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정재원
(2013)

이용규
(2014)



한화 이글스 등번호 15번


이용규
(2015~2019)


문동욱
(2020)
한화 이글스 등번호 19번
김재영
(2018~2019)

이용규
(2020)


강상원
(2021~)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19번
문성현
(2018~2020)

이용규
(2021~)


현역



<colbgcolor=#820024><colcolor=#FFFFFF> 키움 히어로즈 No.19
이용규
李容圭 / Lee Yongkyu

생년월일
1985년 8월 26일 (38세)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성동초 - 잠신중 - [image] 덕수정보고
신체
175cm[1], 66kg, O형
배우자
유하나(2011년 결혼 ~ 현재)
자녀
아들 이도헌(2013년 9월 6일생)
아들 이시헌(2019년 7월 21일생)
포지션
중견수[2], 우익수[3], 좌익수[4], 지명타자[5]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4년 2차 2라운드 (전체 15번, LG)
소속팀
[image] LG 트윈스 (2004)
[image] [image] KIA 타이거즈 (2005~2013)
[image] 한화 이글스 (2014~2020)
[image] 키움 히어로즈 (2021~)
병역
예술체육요원[6]
종교
개신교[7][8]
등장곡
박현빈 - 샤방샤방[9]
응원가
KIA 시절 응원가: 박현빈 - 샤방샤방[10][11]
싸이 - Never Say Good bye[12][13]
유리상자 - 아름다운 세상[14]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CM송[15]
한화 시절 응원가: Sébastien Patoche - La Cartouche[16][17]
5 세컨즈 오브 서머 - Don't Stop[18][19]
licajustice - 이용규가 시작해 이용규가 끝낸다[20][21]
키움 시절 응원가:
에이전시
[22]
연봉
1억원 (75%↓, 2021년)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4. 연도별 주요 성적
5. 여담

[clearfix]

1. 개요


2015 WBSC 프리미어 12
키움 히어로즈 소속의 외야수.
2004년 LG 트윈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으나, 시즌 후 그 해 11월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이후 KIA에서 1번 타자로 대각성하여 국대 리드오프로 성장한다. 이 때 기록한 주요 기록은 시즌 타율 3위(06년), 4위(11년), 최다안타왕(06년), 득점왕(12년), 도루왕(12년), 골든 글러브 3회 등이 있다.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안타로 고타율을 기록하고, 도루왕을 차지할만큼 발도 빠르며 뛰어난 야구 센스로 득점도 높다. 빠른 발을 활용해 수비 범위도 넓고 실책도 적어서 국대 1번 리드오프로서 뛰어난 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원래 빠른 발만 가지고 있으면 그다지 위협적인 선수가 아니지만, 이용규 선수는 빠른발에다가 극강의 출루율을 가지고 있어 상대 투수에게는 공포 그 자체.
이용규의 진가는 리드오프로서 단순히 안타를 많이 생산하는게 아니라 어떻게든 상대 투수를 물고 늘어져 어떻게든 출루하고 내야진을 흔드는 데 있는데, 그 예로 용규놀이가 유명하다. 스스로 타격감이 안 좋거나 마음에 안드는 공이 들어올 때는 파울로 끊임없이 계속 걷어낸다. 그러다 지친 투수의 실투가 나오면 어김없이 때려내 안타. 발도 빨라 땅볼을 쳐도 바운드가 조금만 높아도 어느새 내야안타로 들어와있다. 1루 진출 후에는 끊임없는 도루 시도로 투수, 포수의 진을 빠지게 하다 어김없이 2루 진출 성공. 후속 타자가 안타만 쳐도 어느새 홈까지 쇄도하여 득점 성공. 더 무서운 건 컨디션 안좋다고 가끔 기습번트를 대는데 이게 또 안타가 되는 일이 빈번하다. 번트가 외야까지 굴러가서 2루 주자가 홈으로 득점한 적도 있을 정도.
2020년 11월 5일 한화 이글스 정민철 단장과의 면담을 통해 계약[23]을 연장하지 않을 것을 통보 받아 7년간 몸 담았던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방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키움 히어로즈에서 뛰게 되었다. 김치현 단장의 부탁으로 박병호가 이용규와 연락을 해서 키움에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같이 야구를 꼭 한 번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키움과의 계약 조건은 연봉 1억원, 옵션 최대 5천만원으로 총액 1억 5천만원이다.

2. 선수 경력


이용규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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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좌타 교타자. 컨택이 좋고[24] 공을 잘 밀어친다. 선수생활 내내 05와 18시즌을 제외하곤 한 시즌에 삼진 50개를 넘어본 적이 없다.
특히 어지간한 공은 거의 커트시켜 파울을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삼진당하는 일이 적고 상대 투수의 투구수도 잔뜩 늘려놓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0년 8월 29일 넥센과의 경기. 박준수를 상대로 20구(...)까지 가기도 했다. 당연히 KBO 통산 한 타자 상대 최다 연속투구 횟수 기록. 또한 발을 이용하여 내야에 번트를 대고 살아나가기도 하는 등 투수로서는 정말 짜증나는 스타일의 타자. KIA 시절에는 김원섭과 더불어 팀 내에서 높은 컨택 능력과 출루율을 보여줬다.[25] 이 커트능력은 대단히 발군이지만, 이 능력으로 인해 WBC 일본전에서 보복성 빈볼을 얻어맞거나 일본 내야수의 거친 플레이에 어깨를 찍히기까지 했다. 타일러 윌슨도 이용규를 두고 커트하는 능력은 넘버원이라고 칭했다. 던지는 개수가 늘어나면 그냥 한가운데 던져버린다고...
장타가 특출난 건 아니지만 그의 가장 강렬한 특기는 바로 투수 길들이기이다. 어지간한 투수의 체력을 왕창 빼버리는 파울 난사는 비록 점수는 못 낼 지언정 적 투수를 고장내버려서 이후 타자들이 홈런내기 좋게 만들어 준다. 게다가 도루하는 척을 하도 해대니 적 투수는 견제구를 뿌리지 않을 수가 없어서 미치도록 짜증나게 만든다. 한마디로 투수 브레이커이다. 그래서 이용규는 1번 타자 전용킷이다. 항상 타선 맨 앞에 둔다. 상대 투수를 빨리 고장내버려야 다음 타자들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통산 타율은 .302인데 출루율이 .386이다. 11시즌에는 아예 출루율 .427를 찍으며 출루율 2위를 기록하였다. (투수가 피할 필요가 별로 없는) 똑딱이 타자로서는 경이적인 출루율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선수생활 내내 테이블세터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선수임에도 통산 BB/K 1.20. 참고로 그 양준혁의 BB/K가 1.40, 장성호는 1.25이다. 테이블세터로서는 이상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타자.
그러나 1번 타자임에도 이대형, 이종욱등 타팀 톱타자와 같은 팀 한화 이글스의 동료였던 정근우와 비교하면 발이 아주 빠른 편은 아니라 도루 능력이 정상급은 아니었는데, 신인 시절에는 다소 스타트가 늦고 스큅 동작도 좋지 않았고 투구폼을 빼앗는 타이밍 역시 미숙했기 때문. 도루 부문에 있어 커리어하이 시즌이었던 06 시즌에도 도실 11개로 1위를 했었고, 도실 부문은 매번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그래도 차츰차츰 실전감각을 쌓아가면서 커리어하이를 찍은 11시즌에 30도루를 80% 넘는 도루성공률을 기록했지만 13시즌 이후 다시 70% 언저리의 성공률 두자리수의 도실을 기록하고 있다. 참고로 도루의 경우 성공률이 75% 이상이 되지 않으면 개인 도루를 자제하는 편이고,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70% 정도라고 한다. 박재홍이 30-30을 세번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5툴 타자로서 말이 많은 이유 중 하나도 그의 낮은 도루 성공률(64%)때문이다.
다만 주루 플레이에 대한 평가는 좋아서 뛸 때와 뛰지 않아야 할 때에 대한 판단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야구 센스 역시 좋다. 위에 서술된 개구리 번트, 좋은 주루 센스... 앞서 언급한 '대쉬해오는 투수의 키를 살짝 넘기는 번트' 등 발군의 번트 센스 & 빠른발 & 투지 & 그리고 몸쪽으로 날아드는 견제구에 주눅들지 않고 더욱 배터박스 라인에 바짝 서는 깡다구까지 갖춘 정말 뛰어난 타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비적으로는 송구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편. KBO에서 소녀어깨 외야수를 꼽으면 꼭 언급되는 한 명이다.[26] 대신 중견수로서의 타구판단, 범위는 최고 수준. 다만 펜스에 한 번 제대로 충돌한 경험 탓인지[27] 펜스 부근에서의 플레이가 좀 불안정하다. 코너 외야수 경험도 있어서 외야라면 중간 말고도 좌우 어딜 가든 제몫을 해낸다. 수비 시 특징은 슬라이딩 캐치를 잘 안 하는 편이었으나 한화 시절엔 투수들을 살려주는 슬라이딩을 많이 보여줬다. 항간에는 타구판단이 좋아서라는 얘기도 있다.
이용규의 단점을 꼽자면 첫번째는 장타력. 파워가 전무한 수준으로 이대형과 함께 매년 규정타석 순장타율 최하위권을 놓치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물론 테이블세터에게 파워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상관없는 덤이라지만, 2010년대 야구의 메타가 타순막론하고 장타력을 중시하는 메타로 흘러가고 있고 강한 2번론이 대표하듯 테이블세터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물론 KBO는 메이저리그보다는 아직 보수적이라고 해도 홈런을 5개~10개는 깔 수 있는 갭 파워 정도는 갖춘 단타자와 1~2개정도 치는 정말 똑딱이는 KBO에서도 그 가치가 꽤나 차이가 난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바로 잦은 부상으로 인해 풀타임 출장을 하지 못하는 약한 내구성. 전 경기 출장 시즌은 한 시즌도 없으며, 데뷔 후 한 시즌 최다출장 경기수는 2018년의 134경기 출장. 특히 KIA 시절 말기부터 어깨 수술을 받은 적 있고, 한화 이적 후에도 타격 성적은 좋으나 잔부상이 잦아 매년 2~30경기씩은 결장하는게 흠. 이미 2015년에도 부상 때문에 두 차례나 1군에서 빠졌고, 2016년에도 시범경기부터 부상을 입고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정규시즌 들어서는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다가 시즌 막판 다시 부상으로 빠졌다. 2017년에도 WBC 후유증 탓인지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이내 복귀했으나 복귀한 지 얼마 안되어 다시 손목 골절로 인해 말소되어 내구성 쪽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편. 주장이었던 2020년에는 종아리 통증 등으로 인해 중견수가 아닌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기도 했고,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 아웃될 뻔하기도 했다. 다행히 팀 내 규정타석 달성자가 없는 최악의 사태가 터지기 전에 초인적인 재활 능력으로 복귀했지만.
[image]
이용규 특유의 타격 폼
타격 중 스트라이크 존을 가리는 것 때문에 논란이 있다. 이용규는 타격과정에서 오른발을 들어 스트라이크 존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 안그래도 좋은 커트능력과 함께 투수를 짜증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국가대표 경기에서 오재원, 손아섭, 정근우 등과 테이블 센터진을 짜면 상대팀 투수의 혈압이 극에 달한다고 한다. 18시즌 들어서는 부상 방지를 위해 더 이상 오른쪽 다리를 들지 않는다고 하니 당분간 저 폼을 보긴 어려울지도... 몰랐지만 이는 18시즌 한정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20시즌부터는 다시 대놓고 스트라이크 존을 가릴 정도.
다만 국가대표 중견수 이용규라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이용규의 국대성적은 까놓고 말하면 좋다고 하기는 힘들다. 2008년 베이징의 임팩트 때문에 많이들 착각하는 부분.
우선, 이용규가 생각보다는 국가대표 메인 중견수 입지가 탄탄하지 못했다는 점부터 시작하자. 06년은 이용규가 메인이었지만 베이징올림픽 지역예선, 베이징올림픽 본선, 2009년 WBC,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의 국가대표 메인 중견수는 이종욱이었다. 일단 국가대표 코칭스태프에서 보는 수비능력에서 이종욱이 우위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종욱과 이용규가 같이 선발된 대회에선 항상 이종욱이 우선순위였다.[28] 메인이 이종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타석수를 소화한 것은 그 이종욱이 국가대표만 나가면, 마찬가지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베이징을 제외하곤, 이용규만큼 폼이 안좋았기 때문. 그 당시 상황은 이러하다. 이종욱 선발출전→타격감이 너무 안 좋으니 이용규가 나옴→이용규도 안 좋음→그냥 중간에 대타 기용 후 둘 다 쓰기. 확대해석일진 모르지만 2006년 미필원정대의 이용규를 2014년 미필원정대스러운 선발과 맥을 같이 하는 걸로 추정하면 나이와 기량하락으로 이종욱이 배제되기 시작한 시점에서야 비로소 이용규가 국가대표 주전 중견수로 발돋움한 것이라 해석 가능하다.
둘째로, 이용규의 국가대표 테이블세터로의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다. 우선 타율의 측면만 놓고 봤을 때 2006년 도하 0.222, 2008년 베이징 0.481, 2009년 WBC 0.222, 2010년 광저우 0.143, 2013년 WBC0.250, 2015년 프리미어12 0.222이다. 베이징을 제외하곤 결코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수치. 저 대회들을 모두 살펴보면 2013년 정도를 제외하면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역할에 있어서만큼은 단언컨데 정근우가 압도적으로 활약했다. 쌍으로 묶여서 국가대표 테이블세터라 불리는 일이 많은지라 이미지에 묻어가는 경우라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 그다지 좋지 못했던 국대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추켜세워진 이유로는 거의 무슨 공이든 치고나갔던 베이징 올림픽의 임팩트가 컸던것과 더불어 못 치면 맞아서라도 나가겠다는 근성을 팬들이 높이 사서인듯. 2009 WBC에서 빈볼논란이 일었던 우츠미의 사구, 2015 프리미어12 준결승전 9회초 김현수의 밀어내기 볼넷이 있게끔 해준 승부처에서의 사구 등 임팩트 있는 사구를 많이 얻어냈다. 일본 중계진에서도 기록적인 역전패에 다들 멘붕하는 가운데 "그간 한일전에서 맞아서라도 출루하려는 자세를 항상 보여왔다."는 등 사사키 가즈히로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바 있다.
그리고 이용규는 대회운이 좋았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06도하 아시안 게임, 08베이징 올림픽만 빼고 이용규가 못한 대회에서는 대표팀이 잘하고 이용규가 잘한 대회에서는 대표팀이 못했다. 먼저 도하 올림픽은 이용규도 못하고 대표팀도 못한 대회였지만 일단 당시 야구의 인기는 08올림픽 이후에 비하면 많이 저조하였기에 관심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또한, 도하 참사라는 오명이 붙은 결정적 원인인 일본전에서 이용규의 성적은 양호했으며 비난의 화살은 류현진, 오승환을 향했기에 신인에 불과했던 이용규는 당시에도 후에도 별로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08베이징 올림픽, 한국 야구는 08올림픽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될 정도로 과언이 아닌 대회에서 이용규는 엄청난 활약을 펼쳐 국가대표 테이블 세터 이미지를 확고히 다졌다. 이후 09WBC, 10AG, 15프리미어는 이용규는 못했는데 대표팀이 잘해서 선수들이 비난받지 않았고[29], 13WBC와 17WBC는 대표팀이 말아먹는 와중에 이용규는 성적이 괜찮아서 역시 비난을 빗겨갔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wRC+
2004
LG
52
62
.129
8
1
0
0
2
3
1
6
.145
.203
-14.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wRC+
2005
KIA
124
414
.266
110
17
2
5
37
57
31
(4위)
48
.353
.340
89.0
2006
125
485
.318
(3위)
154
(1위)
25
9
(1위)
1
39
78
(2위)
38
(3위)
69
.412
.391
137.2
2007
118
439
.280
123
17
8
(2위)
0
27
61
17
44
.355
.344
98.7
2008
106
417
.312
130
24
6
(2위)
0
38
62
28
50
.398
.385
122.1
2009
50
169
.266
45
8
3
0
14
32
10
26
.349
.364
83.3
2010
129
472
.307
145
(5위)
19
1
3
51
74
25
73
.371
.398
112.8
2011
111
421
.333
(4위)
140
26
5
5
33
84
(2위)
30
(5위)
72
.401
.427
(2위)
137.9
2012
125
491
.283
139
14
2
2
37
86
(1위)
44
(1위)
76
.332
.377
111.3
2013
100
390
.295
115
20
1
2
22
74
21
51
.367
.375
104.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wRC+
2014
한화
104
358
.288
103
12
4
0
20
62
12
57
.344
.385
88.2
2015
124
493
.341
168
15
7
(1위)
4
42
94
28
77
.424
.427
119.6
2016
113
452
.352
(3위)
159
20
4
3
41
98
21
70
.434
.438
(4위)
128.1
2017
57
179
.263
47
8
1
0
12
32
10
19
.318
.332
70.9
2018
134
491
.293
144
14
1
1
36
82
30
(4위)
71
.332
.379
88.6
2019
1군 기록 없음
2020
120
419
.286
120
14
2
1
32
60
17
65
.337
.381
103.0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wRC+
2021
키움














<color=#373A3C> KBO 통산
(16시즌)
1692
6152
.301
1850
244
53
24
483
1039
363
864
.370
.385
105.5

5. 여담


  • 알루미늄 배트를 쓰던 고교 시절 홈런타자였다는 설이 있으나 과장된 내용이다. 이용규가 고교 시절 공식 대회에서 친 홈런은 2개(모두 2학년 때) 뿐이다.
  •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키가 작다고 루저용규라고 하면서 작은 바지를 받는 장면을 그렸다. 물론 175cm이면 일반인 기준에서는 그래도 한국에서는 평균적인 키에 속하지만... 실제 키가 175cm와는 거리가 멀다 카더라. 야구선수는 맨발이 아닌 스파이크를 신고 키를 재는데다가 프로필 뻥튀기도 엄청나기때문에 이용규의 실제 키는 168cm 정도이다.
  • KIA팬들 사이에서는 타자의 커트로 투수와의 접전을 벌이는 상태를 용규놀이라고 부르는 듯. 참고로 이 때 상대투수2012 시즌 KIA로 왔다![30] MBC 중계에서는 용큐한정으로 커트 숫자를 세고 있다!
  • 사인회에서 이용규가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을 보고 좌투좌타지만 오른손잡이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지만, 왼손잡이 중에는 글씨만 오른손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31] 애초에 오른손잡이면 투수가 아닌 이상 좌투에는 딱히 메리트가 없다.
  • 2011년 9월 15일 탤런트 유하나와 3개월 째 열애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후 9월 16일 신문에서 12월에 결혼한다는 기사가 떴다. 각 포털사이트 관련기사의 리플에는 연애 기간과 성적을 관련지은 온갖 개드립이 난무 중.[32] 그리고 예정대로 12월 17일 결혼식을 올렸다.
  • 배우자 유하나의 블로그에서 이용규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부부의 밥상 사진도 많이 올라오는데, 반찬 가짓수도 많으며 정성을 들여야하는 특별식도 자주 볼 수 있다. 탤런트 출신 아내가 내조를 소홀히 한다든지 하는 걱정은 접어도 될 듯.
  • 2013년 9월 6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아들을 얻었다. 이름은 '도헌'.
  • '배려의 손화장' 김상훈, '희생번트' 이범호에 이어 기아자동차의 네 번째 '야구처럼' 광고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번엔 '세상에서 가장 큰 감동의 다이아몬드' 편. 감상하자
  • 2015년 7월 31일 기아전에서 박정수가 던진 공에 종아리 부위에 맞아 송주호와 교체됐는데, 이날 경기는 승패여부보다는 이용규의 부상여부와 그리고 박정수의 실투인지 고의인지 팬들한테까지 논란이 되었다.
  • 2015 WBSC 프리미어 12 에서 대만 라운드 중 물이 몸에 맞지 않아 탈수/구토로 고생했다. 문자 그대로 물 먹고 체한 격. 보통 그런 경우 운동을 자제해야 하는게 정상이지만, 끝까지 하겠다고 했고, 결국 도쿄 대첩에서 9회초 사구 출루로 노아웃 만루를 만들면서 대첩에 기여했다.
  • 한화에 들어와서 김성근 감독과 궁합이 굉장히 잘 맞는 듯 하다. 김성근 감독 본인이 노력파인 선수를 좋아하는데다가 플레이 스타일 또한 김성근 감독이 좋아하는 스몰볼에 최적화된 교타자이자 수비가 탄탄한 스타일. 이용규는 김성근 감독의 말을 수첩에 적을 정도이며 김성근 감독 역시 항상 이용규를 칭찬해서 그게 기사로 뜨기도 한다. 2016년 시즌 준비 중 각오를 다지기 위해 수염을 자르고 김성근 감독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김성근 감독이 매우 좋아하며 "역시 잘생겼다." 라고 평하기도. 또한 기자들이 요즘 구자욱이 인기다 잘생기지 않았느냐? 라는 질문을 했을때, 구자욱보다는 이용규가 훨씬 더 잘생겼다. 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 비록 FA로 한화 이글스 이적 당시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기아 타이거즈를 떠났지만 기아에서 가슴 뜨겁던 우승도 경험하였고 자신을 KBO 탑 클래스 선수로 성장 할 수 있게한 팀이기에 타이거즈 자체에는 애정이 남아 있는 듯 하다. 광주 원정 경기땐 기아 덕아웃에서 수다를 떨며 기아 타이거즈 선수, 코칭 스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 하고 있다. 다만 팬들한텐 별로 좋지 못한 감정으로 남아있는데 FA때 안 좋게 떠난 것도 있었고 팬 서비스도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 기아 시절에도 젊은 여자를 제외하면 사인조차 해주진 않았으며, 결혼 이후에는 그마저도 안 해줬다는 건 기아팬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화에서도 역사는 반복되었다.[33] 특히 한화에서는 선수단에도 민폐를 끼친 거나 다름없어서 기아에서보다 더 감정이 안 좋을 듯하지만 그래도 방출 전까지 한화에서 선수들끼리는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 오른팔에 문신이 있다.

  • 팀 16연패를 무려 두 번이나 겪었다. # 팬들은 이를두고 16-16클럽이라 부른다. 2010년 기아 타이거즈 (2010년 6월 18일~7월 8일)와 10년 후인 2020년 한화 이글스 (18연패, 2020년 5월 23일~2020년 6월 12일)에서 겪었다.[34] 정작 본인은 각 연패 기간 동안 타율 0.355, 0.333, 출루율 0.403, 0.429를 기록할 정도로 타격감이 괜찮았던게 아이러니. 희한하게 국대에서도 팀이 못할 때 본인은 잘하는 경향이 있다.
  • 2020 시즌 팀에서 규정타석을 달성한 유일한 타자였다. 기존 한화를 떠받치던 타자들이 죄다 2할대 초반을 치고 있는 와중에 그나마 사람구실을 해주었다. 이용규가 아니었으면 18연패, 100패에 이어 리그 역대 최초 규정타석 달성자 배출 실패라는 최악의 기록까지도 나올 뻔했다는 얘기.
[1] 착화 신장[2] 04~06시즌, 14시즌을 제외하고 매 시즌 중견수로서 활약하며 커리어 대부분을 중견수로 보냈다.[3] KIA에서 첫 두 시즌에 우익수로 많은 경기에 나왔고, 특히 06시즌엔 거의 대부분을 우익수로서 보냈다. 이후론 거의 중견수로 활약했지만, 국가대표로 출전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인상 깊은 장면을 만들었을 때의 수비 위치가 우익수였다.[4] 외야 백업으로 나오던 신인시절 좌익수로 가장 많이 나왔고, 이듬해인 05시즌 KIA로 넘어와 주전으로 자리잡았을 때에도 심재학이 선발로 나오면 좌익수로 나왔다. 2019년 들어 팀에서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정근우에 중견 수비 연습을 시키면서 잠시 좌익수로 이동하게 되었다. 좌익수로 보내 정근우와 이용규 모두의 수비 부담을 최소화할 계획을 세웠으나세웠으나... 자세한 것은 하위 항목에서 후술. 2020년에는 주로 중견수로 나오나 노수광과 체력 안배 차원에서 자리를 바꿔 좌익수로 나오기도 했다.[5] 부상으로 13시즌 후반과 14시즌에 지명타자로만 출전했다.[6]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부문 금메달 획득.[7] 2008년 올림픽에서 준결승전 자신이 마지막 타구를 잡으며 일본을 이기고 메달이 확정됨과 동시에 군면제가 확정되었을 때 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8]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와 동명이인이다.[9] KIA 타이거즈 시절부터 쓰던 등장곡으로 김주일 KIA 응원단장이 홍창화 한화 응원단장의 부탁으로 넘겨준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두 응원단장은 거의 친형제 수준으로 친한 사이라고.[10] 얼굴도 샤방샤방~(이용규!) 몸매도 샤방샤방~(이용규!) 모든것이 샤방샤방~(이!용!규!) 얼굴은 V라인~(이용규!) 몸매는 S라인~(이용규!) 아주그냥 죽여줘요~(이!용!규!)[11] 응원단장끼리의 친분으로 한화 이적 에도 사용하게되었다.[12] 기아 이용규~ 타이거즈 이용규~ 기아의 이용규~ 워워워~[13] 본인이 싫다고 만든지 한달도 안 돼서 폐지. 이후 송은범 응원가로 재탕되었다.[14] 타이거즈 날쌘돌이 기아의 이용규~ 타이거즈~ 날쌘돌이 기아의 이용규~[15] 용규는 안타를 좋아해~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이용규~[16] 고고고! 한화 이용규 x3 이글스의 날쌘돌이 이!용!규![17] 원래는 펠릭스 피에의 응원가였다.[18] Don't Stop~ 날쌘돌이 용규~(이!용!규!) 승리를 위해 다같이 외쳐 날!려!버!려! 이!용!규![19] 2020시즌 부터는 저작권 문제로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20] 한화이글스 팬 응원가 공모전을 통해 만들어진 응원가 중 이용규가 선택한 응원가이다.[21] 이글스! (hey) 베테랑! (누구!) 이용규! 안타를! (hey) 날려라! (누구!) 이용규! 이용규가 시작해 이용규가 끝낸다! 승리를! 위하여! 이용규! 이글스! (hey) 베테랑! (누구!) 이용규! 힘차게! (hey) 달려라! (누구!) 이용규! 커트하지 않는건 오직 수염 뿐이다! 승리를! 위하여! 이용규! [22] 팀 동료 김웅빈, 김하성, 김혜성, 박동원, 안우진, 이영준이 소속되어 있다.[23] 2+1년 계약금 2억, 연봉 4억, 옵션 4억 등을 포함한 최대 26억원 어치 계약이었으나 한화 측에서 코로나 때문에 발생한 수입 감소를 이유로 한 구단 운영 비용 절감, 어차피 근시일 내에 포스트시즌 컨텐더에 들 수 없으니 신인을 주력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에서 나온 세대 교체 등의 문제로 플러스 옵션 발동을 포기했다.[24] 스윙 컨택 확률이 92.3%로 타자중 1위. 2위는 이종욱의 90%.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커트 확률도 88.2%로 1위이다. 2011년 7월 초까지는 2011 시즌 헛스윙률 1.7%를 기록하기도 했다.[25] 다만 이용규가 어떻게든 안타를 치거나 몸에 맞는 볼로라도 나가려는 선수라면 김원섭은 볼넷을 걸러서 나가는 선수이다.[26] 중/고등학교 시절 투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프로 데뷔 초반엔 송구능력도 좋았으나 어깨 부상 이후론 송구 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 때문에 주자의 추가 진루 억제를 잘 못하는 편.[27] 이러한 증상은 김주찬에게도 나타난다.[28] 이용규의 프로 커리어 내에 개최된 국제대회에서 이용규가 메인인 대회는 06 도하 AG, 13 WBC, 15 프리미어12, 17 WBC로 07 베이징 올림픽 예선, 08 베이징 올림픽, 09 WBC, 10 광저우 AG의 이종욱과 큰 차이가 아니다. 같이 차출된 대회에선 항상 이종욱이 우선순위였다.[29] 09WBC 결승점의 주인공인 임창용만 빼면 당시 대표팀 선수들은 해당 대회 성적으로 거의 까이지 않는다.[30] 하지만 그 해 말 KIA에서도 방출당했다.[31]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한글의 특징상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흑연이나 잉크가 손에 묻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이 때문에 그냥 불편함을 감수하고 왼손으로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오른손으로 쓸 것을 강요받거나 자발적으로 오른손으로 쓰려고 연습하는 사람들이 많다.[32] 펄녀를 통해 만나게 된 것이란 소문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13년 1월 8일에 방송되었던 강심장(이용규-유하나 부부 출연)에서 이용규는 "전지훈련차 공항에 갔는데 창구 옆에 걸려 있던 아시아나항공 모델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해 직원에게 이름을 물어봤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유하나의 연락처를 알아 내어 술김에 장문의 문자를 보냈는데, 이것을 인연으로 2년을 알고 지내다 4개월 교제한 후 결혼을 하게 됐다”고 사연을 밝혔다. 그러나 상술한 인맥이 펄녀란 얘기가 있다.[33] 그러나 2021년 키움으로 이적했는데, 키움은 팬 서비스가 가장 훌륭한 구단 중 하나라 이용규의 팬 서비스는 달라질지...[34] 비슷한 예로는 2002년 16연패, 2003년 15연패를 둘 다 겪은 2002~2003 롯데 자이언츠 소속 선수들 전원이 있다. 또한 윤재국 같은 경우 1999년 쌍방울에서 팀이 17연패를 찍고 2003년 롯데에서 15연패를 또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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