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홍(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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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源弘
1903년 03월 09일 ~ 1976년 04월 07일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내중(乃重), 호는 무하(無下).
1903년 경상남도 초계군 양동면 상대촌(현 합천군 초계면 상대리 무릉마을)#에서 이봉현(李鳳鉉)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북공립사범학교 강습과를 수료하고 보성전문학교 법과(이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검사로 근무하다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한국민주당에서 대의원 겸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가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당적을 변경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중앙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사립학교재단 강문학원 이사장, 강문학원 산하 명성여자중학교 및 명성여자고등학교(이후 동국대학교 재단에 인수되어 현재는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중고등학교) 교장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6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당선되지 못하였다. 이후 민정당, 민중당, 신민당에 속하였다. 1967년 김재위의 탈당으로 인하여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다.
李源弘
1903년 03월 09일 ~ 1976년 04월 07일
대한민국의 법조인, 정치인이다.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내중(乃重), 호는 무하(無下).
1903년 경상남도 초계군 양동면 상대촌(현 합천군 초계면 상대리 무릉마을)#에서 이봉현(李鳳鉉)의 아들로 태어났다. 전북공립사범학교 강습과를 수료하고 보성전문학교 법과(이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검사로 근무하다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였다.
8.15 광복 이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한국민주당에서 대의원 겸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가 대한독립촉성국민회로 당적을 변경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 중앙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사립학교재단 강문학원 이사장, 강문학원 산하 명성여자중학교 및 명성여자고등학교(이후 동국대학교 재단에 인수되어 현재는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중고등학교) 교장도 역임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6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당선되지 못하였다. 이후 민정당, 민중당, 신민당에 속하였다. 1967년 김재위의 탈당으로 인하여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승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