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학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진로
4.1. 교육계열 진로
4.2. 교육계열 외의 진로
6.1. 개별 문서가 개설된 사범대학
8. 임용고시 TO 확보 투쟁
9. 사범대학을 졸업한 유명 인물
11. 기타
12. 관련 문서


1. 개요


고등교육법 제41조(목적)
② 대학의 사범대학(이하 "사범대학"이라 한다)은 중등학교[1] 교원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師範大學, College of Education
사범대학. 약칭 사대는 중등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대학교의 단과대학이다. 사범대학의 졸업생에게는 2급 정교사 자격증[2] 수여한다.
본래 의미의 사범대학은 교원을 양성하는 곳 일체를 아우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중.고등학교 교원을 양성하는 곳으로 한정된다. 국내에서 초등 교원을 양성하는 곳은 교육대학교라고 지칭된다. 단, 이화여대만은 예외적으로 사범대학에서 초등교사도 양성 중이며[3] 교원양성 종합대학으로 설립된 한국교원대학교와,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이 통합된 제주대학교에도 초등교육과가 존재한다.[4]

교육을 학문의 대상으로 다루는 교육학과교육공학과를 제외하면, 학문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특수 목적 인재를 양성하는 곳으로 여겨진다.[5] 따라서 학과 이름 뒤로 이 붙지 않는다. 이를테면 국어교육과가 아니라 국어교육과인 것이다. 그런데 사대로 정식 인가가 되지 않은 일반대학 소속 교육과에서는 을 붙이기도 한다.[6]

2. 역사


일제강점기에는 각 지역마다 교원을 양성하는 사범학교가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범학교로 경성사범학교, 대구사범학교, 평양사범학교를 “3대 사범학교”라고 하며 주요 학교로 일컬었다. 당시 사범학교(초등교원양성기관)는 고급보통학교로, 현재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등급의 학교였다. 해방 이후 대부분의 사범학교는 교육대학으로 성장하나 위 세 학교 만큼은 정규 대학인 사범대학으로 성장한다.[7] 해방 직후인 1946년 경성사범학교가 경성사범대학이 되었고, 대구사범학교가 대구사범대학이 되었다, 평양사범학교는 일제강점기 직후 사라졌으나 해당 시설과 교원을 바탕으로[8] 1946년 평양교원대학이 개교하였고, 1948년 평양사범대학을 거쳐, 1975년 김형직사범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민국에는 1948년 공주사범대학이 추가로 개교하면서 3개의 국립 사범대학(경성사대, 대구사대, 공주사대)[9]으로 국내 사범대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 세 학교는 종합대학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각각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이 되었다.
1949년 「교육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중등교원양성기관으로 사범대학을 설치하고 2년제와 4년제로 양분화하였으며, 2년제 졸업자는 중학교 교사, 4년제 졸업자는 고등학교 교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51년 사립대 최초로 이화여자대학교에 사범대학이 개설되었다. 다만, 1990년 이전까지는 국립대학 우선 의무임용이었고, 여석에만 순위고사를 통해 사립 사범대학이 임용될 수 있었다. 따라서 사실상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공주대학교 사범대학[10] 지역별 3개의 국립 사범대학이 전국의 중등교원 양성을 위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진학률이 점차 높아지면서 교원 수요증가에 따른 교원 양성의 공급이 부족했었다. 따라서 1962년 교육대학(당시 2년제)이 발족됨과 동시 모든 국공립 사범대학(학교)은 4년제로 일원화되었다.[11] 동시에 오늘날 지거국에 해당하는 국립대에 사범대가 설치된 것도 이 시점이다.[12] 이 때 설치된 국립 사범대학들의 졸업생들은 1990년 임용고시의 실시로 국립사범대의 의무복무 및 우선임용이 사라지기 전까지 대부분 해당 지역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며, 해당 지역의 교육계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13]
1970년대에 중등학교로 진입함으로써 중등교사가 부족하였고, 국립사범대학 졸업생의 의무복무를 실시함에도 불구하고, 경제구조 확대로 인한 교직이탈률의 증대와 교직 지망 기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교육부(당시 문교부)에서 중등교사 충원을 위해 사립대학교들에도 사범대학을 설치를 인가했다.[14] 교육부가 교원 수요 증가에 대한 대응으로 1960년~1970년대 후반 사립대학교의 사범대를 인가한 4년제 대학교들은 수도권 건국대학교 사범대학[15], 경희대학교 사범대학[16], 고려대학교 사범대학[17], 단국대학교 사범대학[18], 동국대학교 사범대학[19],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20], 인하대학교 사범대학[21], 중앙대학교 사범대학[22], 한양대학교 사범대학[23], 홍익대학교 사범대학[24]가 있고 지방에는 원광대학교 사범대학[25], 영남대학교 사범대학[26], 조선대학교 사범대학[27](이상 ㄱㄴㄷ순)이있다. [28]
1984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교원양성종합대학으로 한국교원대학교가 개교했다.[29] 한국교원대는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을 동시에 수행하며 교원양성, 교원연수, 교육연구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사범대학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현재 시점에서는 46개다. 수요와 맞지 않는 공급으로 인해 정부가 평가를 통한 인원 감축을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참고.

3. 특징


  • 높은 입시성적
국립대학의 경우 지역별로 하나의 사범대학에만 부설학교[30] 두고 지금의 교육대학과 비슷하게 교원배출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그래서 의무임용시절부터 지역가산점이 있던 00년대 초까지 특정 대학 출신 교사들이 해당 지역 교육계의 대다수를 차지했고, 그것이 지금도 어느정도 이어지고 있다.[31] 따라서 현재도 국립사대의 지역내 입지와 위상 때문에 상경을 희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집 근처 거점국립사대를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32] 실제로 국립사대 전원임용이 사라졌음에도 문과 배치표 제일 윗칸에는 법대나 상경계를 밀어내고 국어교육과나 영어교육과가 위치하는 일이 흔하다. 설사 제일 윗칸에 위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세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든다.
  • 정통성에 대한 자신감
높은 입결과, 중등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단과대학에 입학했다는 자의식은 비사범대 학생에게 배타적인 성향을 만들 수 있다. 교직이수자나 타 학과 출신 복수전공자를 일종의 '뒷문으로 들어온 사람'으로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 허나 사범대는 자격 요건을 갖춘 후 졸업하면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지기 때문에 같은 사범대가 아닌 한 복수전공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서술과는 달리 복전자를 나쁘게 보진 않는다. 계열만 다르지 같은 사범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탐, 과탐'으로 엮인데다 '공통사회, 공통과학' 문제 때문에 매번 학과 인원 중 일부가 서로 섞이는 경우가 많은 , 의 경우 각 학생들의 사이가 제법 좋은 편이다. 서로 같이 답사를 나가기도 할 정도로 사이가 좋다. 사범대 내부에서 과 단위로 싸움이 터지는 등의 막장상황이 벌어진 경우가 아닌 한 못해도 소 닭보듯 보는 수준에서 끝날 뿐, 따돌리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교직이수자는 좋게 보지 않는다. 물론 교직이수쯤 되면 출신 과의 엘리트인 것은 알지만 애초에 특이한 케이스 정도가 아닌한 별로 관심도 없고 잘 쳐주지도 않는다. 일단 입학부터가 더 어렵기 때문에 '뒷문으로 들어왔다.'는 인식이 강하다. 차라리 토익과 같은 공인 영어 성적이 더 높거나 특수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 더 인정해준다. 가뜩이나 타 단과대에 대한 교류고 뭐고 없이 종합대학에서 아웃사이더로 논다고 욕먹는 경우가 허다한 단과대가 사범대인데 그들이 타과 학생의 개인적인 성적까지 보고 우러러 봐 줄리가 없다. 이런 '편법 교직 이수'라는 인식과 더불어 실질적 수업 능력이나 교육학 관련 분야에서 사범대보다 부족한 경우가 많은 교직이수자들의 상황이다.
  • 정원이 적다
국어교육과 기준으로 2016학년도 입학전형 요강을 살펴보면 서울대학교 입학 정원이 25명이며, 비교적 많이 뽑는 경북대학교 입학 정원이 36명, 한국교원대학교 입학 정원이 35명이다. 복학생을 합하더라도 학과 전체 인원이 120~180명 정도라는 이야기인데, 국영수 교육과는 보통 사범대 학과들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다니는 학과라 이 정도라도 나온다. 심한 경우 전 학년을 모두 합쳐도 총원이 40명 이하인 학과까지 나올 지경이다.[33] 한 마디로 입학이 결정되는 순간 4년간 선생님도, 학생 구성도 바뀌지 않는 고등학교 한 반이 구성된다는 이야기.
  • 사범대 학생들간의 인맥
지방 국립대의 경우 교직에 매력을 느껴 점수를 남기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 동질성도 강한 편. 지방 국립대 사범대[34]가 존재하는 광역행정단위를 기준으로 해당 지역 교사의 대부분이 그 지역 국립 사범대 졸업생이며.[35][36][37], 현직 교사들이 교육대학원 학생으로, 겸임교수로, 심지어는 전임교수가 되는 등의 과정을 통해 대학과 계속 교류하고 학생들 또한 교육실습 및 학교 봉사활동 과정[38]에서 현직 선배들과 만나는 일이 잦으니 과거의 학풍이 약해질 수는 있어도 절대로 없어지지는 않는 것.
  • 강의방식
사범대도 종합대학 내 한 단과대학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교육 커리큘럼상으로는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 같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 학년 인원이 많아야 20~30명을 넘지 않으므로, 어지간한 전공강의는 최소 개강 인원을 맞추지 못해 폐강이 되기 쉽다. 그렇다고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이 많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대부분의 사범대학은 상경계열 단과대학이나 정보대학, 공과대학처럼 타과나 타 단과대학 학생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을 하지 못하게 제한해두고 있다. 그 탓에 사범대는 수강신청 전쟁을 겪을 일이 거의 없다. [39]
때문에 타과생이 와서 수업을 듣는다고 해봤자 사범대학 학생이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듣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나마도 본래 그 학과 소속인 학생이 듣는 강의와 복수전공 및 부전공 학생만 듣는 강의로 분산 개설되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항상 개설되는 강의만 개설된다. 심하면 2학년이 3학년 강의를 선행학습하려 할 때, 예비역 복학생 그룹의 언질을 받은 과대가 "너 빠지면 폐강될 위기니 그거 듣지 말고 이거 들어달라"고 협박 반 로비 반의 전화를 보내오기도 한다. 결국 3학년쯤 되면 10명에서 15명 내외의 인원이 한 단과대학을 벗어나지 않은 채 2~3과목씩 강의실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건 흔한 풍경이 된다. 누구랑 밥 먹을지 걱정 안 해도 된다. 지금 강의 같이 들은 사람들하고 같이 밥 먹고 다음 강의 같이 들으면 되니까. 애초에 강의실도 안 오가고 책을 쭉 쌓아놓고 계속 듣는 경우도 있다.

4. 진로



4.1. 교육계열 진로


전공을 살리는 직종은 교사, 교육학 연구원 및 교대, 사범대 교수, 기타 사교육 등 교육관련 직종이 있다.
졸업학사학위와 함께 교원 자격증 이 주어진다.
교직을 시작할 때 호봉은 9호봉이며, 만약 군복무를 마친 경우 근무 연수에 따라서 추가하고, 교육대학원을 수료한 경우 2호봉을 추가한다. 여기에 특수교육 전공이면 1호봉이 추가된다. 사대가 아닌 곳에서 교직과정을 이수한 경우 8호봉에서 시작한다. 왜 9~8호봉 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여기

4.2. 교육계열 외의 진로


사범대학은 교육대학과 달리 해당 전공 일반과의 커리큘럼을 60% 이상 소화하며 복수전공도 가능하기 때문에, 교원양성의 목적으로 설립된 취지와 달리 교육계열외의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도 상당히 있다. 예를 들어 수학교육과의 경우,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해석학, 대수학, 미분기하학, 실해석학, 통계학을 모두 이수한다. 특히 대학 수준이 높을 경우 취업이나 해당 분야 대학원 진학에 충분한 수준의 공부가 된다. 따라서 수학 전공을 살려 수학이나 통계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금융권 등에 취업하거나 연구자가 될 수 있다. 또한 경제학이나 경영학 등을 복수전공하고 해당 분야로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할 수도 있다. 다만, 사범대는 교과영역 과목과 교육학 과목을 모두 이수해야 하며 강의가 한 분반만 개설되는 경우가 많아 타과 과목과 시간표가 겹치는 불상사가 많고, 교직실습 등으로 여유시간이 많지 않기에 4년 안에 복수전공과 함께 졸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여, 복수전공시 보통 5년 만에 졸업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또한 학과에 상관 없이 학벌과 학점 혹은 지적능력만을 평가하는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수도 있다.
간판 버프를 받지 못하는 사범대학 졸업생이 임용고시의 벽을 넘지 못하면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학원 강사, 사립학교, 대학원 진학,[40][41] 공무원 시험[42], 행정고시 정도. 임용고시에 도전하는 사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명심하자.[43]
교사는 아주 큰 돈을 버는 직장이 아니라 사범대학은 졸업생들의 기부가 적어 시설 수준이 안습을 달리는 단과대학으로도 유명하다. 에어컨도 중앙집중식이 아니라 간혹 가다가 시골 여인숙에서나 쓰는 6평용 창문형 에어컨, 난방시설도 라디에이터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바로 옆에서 줄줄이 산학협력으로 올라가는 공과대학 건물이나 졸업생 기부로 올라가는 법과대학, 경영대학 건물을 지켜보노라면, 쓰러져 가는 사대 건물은 실로 눈물을 짓게 만들 뿐이다.[44] 또한 경영 논리에 희생되어 학과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과학 쪽 사범대 학생들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따서 대기업 연구직으로 취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의 기업에서는 화학 박사 출신의 연구원 채용 기준으로 화학교육과 학부 출신과 화학과 학부 출신을 동일하게 본다고 한다. 물리/생물/지구과학도 동일.

5. 전공




6. 학교




6.1. 개별 문서가 개설된 사범대학


국립대학
사립대학

7. 교육대학원




8. 임용고시 TO 확보 투쟁


외환 위기 이후 철밥통을 지향하는 경향이 늘고 요근래 들어선 정부들의 신자유주의적 성향에 따라 교원의 충분한 수급보다는 효율적인 학교운영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에 임고경쟁률이 급상승했고 2009년을 기점으로 기존에 활발하게 전개되던 교대의 TO확보 투쟁에 더해 사범대 역시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함에 따라[45] 학내에서 이와 관련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46]
우선 크게 나눠서 대규모 상경 투쟁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으로 나뉘는데, 찬성하는 입장은 반대 혹은 무관심한[47] 입장의 사람들에 대해 '이기주의적이다.', '자기들이 피해보는 것은 피하고 이득만 챙기려한다.', '투쟁이나 요구 없이 상황이 호전되길 기다리는 안일한 마음을 가지거나 개인이 알아서 잘하면 상황이 다 잘될거라는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하고 있으며, 반대 혹은 무관심한 입장의 사람들은 찬성파에 대해 '전체주의적이다.', '투쟁만이 해결책이라는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사실 공무원고시 등 다른 고시들에 비해 경쟁률이 그렇게 심하다고 보기도 힘든데 투쟁에 나서봤자 결국 밥그릇싸움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다.', '나 선생 안할건데?'[48] 라는 식으로 반발하고 있어 양자간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투쟁 찬성파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늘어난 반대파들 역시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뿐 상당한 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찬성파 내에서도 입장차이가 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흔히들 '밥그릇'이라고 부르는 현실적인 면을 중시하는 입장과 교육환경 개선 등 명분적인 면을 중시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사실 유사이래 전세계에서 일어난 수많은 투쟁들 속에서 자신과 연관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투쟁에 나선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에[49] 이런 차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어서 딱히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어느쪽을 더 중시해서 투쟁에 참여하고 있느냐에 따라 미묘하게 입장이 갈리고 있다. 현실론과 명분론의 대립이라고 할까.
거의 매년 조직적인 투쟁을 통해 TO확보를 시도한 교대에 비해[50] 10년이상 각자의 입장차이 때문에 통일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각개격파되어 온 사범대에서 뒤늦게 투쟁을 하려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명분론보다는 현실론을 강조하여 투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려고 하는 성향이 생기게 되고 투쟁이 계속 이어지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져 상경 투쟁 관련 학내 논의에서 '여러분 밥그릇이 걸린 문제니 무조건 참여해야 합니다'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실론적 입장의 강조는 투쟁과 집회라는 단어에 대해 혐오감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중고등학교를, 그것도 대다수가 투쟁과는 인연이 먼 조용하고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해왔을 신입생들에게 상당히 당혹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경우가 많으며, 2011년 대구 중학생 집단괴롭힘 자살사건같은 일이 사회의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 안그래도 중요시되었던 교사의 도덕적 자질이 한층 강조됨에 따라[51] 현실론적 관점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많은 상황이다.
2017년 초등교원임용경쟁시험 대란에서 교대가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지만 오만 욕을 먹고 이미지가 대폭 깎이는 등 장기적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이를 볼 때, 사범대에서 TO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워보인다.

9. 사범대학을 졸업한 유명 인물


교원 자격증#s-6 문서에 더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해당 항목을 참조하자.

10. 부설학교




11. 기타


  • 고등사범학교: 이쪽은 중고교 교사뿐 아니라 교수 양성 또한 겸한다.
  • 국립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80년대 말 학번의 말에 따르면, 임용고시를 도입한 건 전교조 등의 사회운동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즉, "사회 문제에 관심 가질 시간에 공부나 해!"로 요약할 수 있다. 사회운동에 대한 관심을 (강제로) 임용고시로 돌릴 수 있기 때문. 국립 사범대와 사립 사범대 간의 형평성 문제는 대외적인 원인이고, 숨겨진 원인은 전교조 문제였다고 말할 수 있다.
  • 대체로 1학기 기말고사 직후 임용 특강을 개설하여, 전공 교수가 기출 문제를 풀이하거나, 관련 용어 및 공부법을 강의한다. 교수가 유인물을 나눠준다면, 이를 전공 과목의 힌트, 요약정리 등으로 간주하여 전공 공부에 이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임용고시의 인터넷 강의를 듣고 전공 과목을 예습해서 전공 학점을 잘 받는 사례와 유사하다.
  • 의외로 사범대 학우들 사이에서도 사건사고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원광대 국교과체교과의 사건이 있다. 원광대 말고 타 학교들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수준으로 훗날 청소년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군기라는 명목으로 후배들을 괴롭힌다면, 이는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 교원자격증을 발급하는 과정은, 교육부의 소관이며 졸업한 학교에서는 이를 법률에 따라 위탁 받아 진행할 뿐이다. 사범대학 및 교육대학원이 교원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필수과목 등을 정하는 것은 교육부의 권한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범대학 관계자들이 받는 공문은, 교육부에서 바로 날아온다. 그리고 졸업을 앞두고 '교원자격무시험검정원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이거 교육부에 직통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 사범대학에 및 교육대학원에 입학한 후 봉사활동 시간을 쌓아야 한다. 입학 이전, 그리고 휴학중에 쌓은 봉사활동 시간은 절대 인정받지 못한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학교나 아동센터에서 근무한 학생들이 연가처리 후 출근하여 평소 하던 일을 하는 대신 봉사활동으로 처리, 소집해제 및 복학 후 확인서를 제출하여 교육봉사로 인정 받은 사례가 있다. 처음 사범대에서는 난감해하며 교육부에 질의까지 한 결과 인정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52] 물론 정상적인 방법은 재학 중의 봉사활동이다. 대체로 교생실습이 있는 학기에 교육봉사활동 1~2 과목을 수강신청하고, 증명 서류를 학과 사무실에 제출한다. 지역아동센터(아동복지센터), 청소년수련원, 자활센터, 학교, 병설유치원 등 비영리 기관 인가를 얻은 곳에서 교육 봉사시간을 쌓을 수 있다. 자원봉사를 해야 하므로,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이는 재능기부의 일환이지만, 노동력을 착취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53]

12. 관련 문서



[1] 여기서 중등학교란 중.고등학교를 의미한다.[2] 경력3년을 채우고 연수를 마치면 1급으로 경신된다[3]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초등교육과는 현재 사립대 중에서는 초등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현재의 교육대학 체제가 만들어지기 전인 50년대부터 존속했기 때문에 예외를 인정받은 사례.[4] 정확하게는 제주대학교 교육대학 초등교육과이다. 즉, 교육대학사범대학이 각각 독립된 단과대학으로서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다.[5] 단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학과 명칭에 대해 그렇게 볼 뿐 교과교육학은 엄연히 별도의 학문으로 대우받고 전문성을 가진다.[6] 일례로 충남대학교에는 사대가 정식으로 설치되지 않았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학과 이름을 기술교육학과, 수학교육학과 식으로 명시했으나, 정식 인가를 받고 출범식을 한 이후로는 자를 빼서 명시하고 있다.[7] 교육대학은 1963년에야 전문대학으로 승격되었으며, 1982년 전까지는 학사 자격조차 나오지 않았다. 또한 현재의 교육대학교도 종합대학이 아니기 때문에 종합대학의 학사와 교육대학의 학사가 같은 학사이기는 하지만 일반 종합대학의 대학원 진학시에 차별을 받을 수 있다.(예를 들어 교육대학교는 졸업시에 졸업논문을 쓰지 않기 때문에 대학원생 선발시에 학사논문을 반영하는 일반종합대학의 대학원으로의 진학은 쉽지 않다.)[8] 사실상 평양사범학교가 전신이라 볼 수 있다.[9] 공주사대는 이 중 유일하게 일제강점기 이후에 개교 했으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공주교대와 갈라지는 부분이 있긴하다.(당시 교장과 학장이 같은 점이나 교사를 공동으로 사용한 점 등)[10] 당시 명칭은 공주사범대학.[11] 즉 법률상으로 2년제 교육대학은 초등 교원을 양성하고, 4년제 사범대학은 중등교원(중학교, 고등학교)을 양성하는 형태가 확정되었다. 이후 교육대학은 1982년이 되어서야 4년제로 승격되었다.[12] 1968년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1969년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1971년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1972년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1977년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1979년 경상국립대학교 사범대학, 1982년 제주대학교 사범대학[13] 거점국립대학교 중 유일하게 충남대학교는 사범대학을 보유하지 못했는데 이는 같은 권역에 단설 국립사범대학으로 공주사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충남대학교는 숙원 사업으로 추진한 끝에 200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사범대학을 개설했다. 현재도 다른 지방거점국립대들이 가지고 있는 부설학교는 충남대에는 없다. 대신에 공주사대에 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부터 중학교(공주사대부중), 특수학교(공주사대부특), 유치원(공주사대부유)까지 사범대가 개설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설학교가 개설되어 있다.[14] 교육대학과 달리 사범대학은 사립대학의 교원양성을 허용한 것이다.[15] 1973년[16] 1966년 설치, 1998년 폐지 - 1997년 09월 29일 발간된 경희대학교 학보사에 따르면 경희대학교는 내부적으론 학부제로의 개편이 추진되었고, 외부적으로는 교육부가 교원양성의 수를 조절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종합적인 측면에서 2개 학과 밖에 없는 사범대학 보유가 경희대학교의 위상면에서 불리해 질 수 있다는 결정에서 자체적으로 사범대학을 폐지하였다.[17] 1972년[18] 1972년[19] 1968년[20] 1972년[21] 1973년[22] 1965년[23] 1966년[24] 1973년[25] 1971년[26] 1972년[27] 1965년[28] 추가로 여자대학교 또는 여자고등교육기관에서 4년제 대학교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사범대로 전환한 대학이 있다. 서원대학교 사범대학(당시 청주여자사범대학)(1973년), 상명대학교 사범대학(당시 상명여자사범대학)(1965년), 성신여자대학교 사범대학(당시 성신여자사범대학)(1965년)이 있다. 당시 모두 단설 여자사범대학이었다. 이후 종합대학으로 성장한다. 세종대학교의 전신도 수도여자사범대학이다.(1954년 2년제로 시작하여 1961년 4년제로 전환) 하지만 세종대의 경우 남녀공학 종합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범대를 유지하지 않았다.[29] 이는 기존의 사범대학 및 교육대학 등의 교원양성기관과 차별성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채 정치적으로 설립하였다는 점 때문에 당시 전국국립사범대학생연합(약칭 전사련)에서 교원대 철폐를 요구한 바도 있다.[30] 부설학교는 각지역의 거점국립대에 설치되어있으나 대전-충남권은 충남대가 아닌 공주사대에 설치되어 있다.[31] 해당 지역의 교육감이나 고위직도 그 지역의 국립사대 출신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32] 각지역의 거점국립대학교공주대학교 사범대학, 한국교원대 등이 해당된다.[33] 인원이 적은 과는 동일계열을 명목상 한 학과(예:과학교육과)로 통합하여 유지하지만 전공수업이나 학생회 등은 과목별(예:물리화학생물지학 따로)로 돌아가므로 해당 과목만으로 축소하면 전 학년 총원 40명 이하가 된다.[34] 거점국립대학교공주대학교 사범대학이 여기에 해당된다.[35] 애초에 서울대학교를 제외한 국립대 사범대 재학생은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 소재지역 또는 그 인접지역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거기에 더해 1980년대까지는 지역국립사범대 100% 우선임용, 이후 2009년까지는 우선임용까지는 아니어도 임용시험 지역가산점 제도가 있어서 대학교 소재지역에서의 교원 복무를 장려했기 때문.[36] 예외적으로 대전과 경기도 지역의 경우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출신이 대다수이다. 참고 1, 참고2 오죽했으면 '대전과 경기도는 공주사대가 판친다'(일명 공사판)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지경. 여기에는 국립사대 의무발령 시절 서울,경기지역을 담당하는 거점 국립대가 서울대학교 하나뿐일 때의 영향이 있는데 서울,경기의 많은 인구에 비해 서울사대의 인원은 적고, 또 그들 중 상당수가 고시 등 비 교직으로 나가는 탓(교직으로 나가도 서울에서만 응시)에 타 지역 국립사대 인원(가까운 공주사대)를 끌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학령인구가 많은 대전에서도 의무발령 시절에는 국립대 사범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전의 의무발령은 인근의 공주사대가 대체했었다. 따라서 공주사대는 대학이 위치한 충남권 뿐만 아니라 경기도와 대전지역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37] 하지만 최근 들어 임용고시 응시지역이 충남, 대전, 세종으로 편중되는 현상이 생기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점 약해지는 중인데 이는 한국교원대학교의 영향이다. 교원대는 전국에서 모집하고 졸업한 고등학교를 기준으로 출신지역을 선정한다. 지역가산점이 존재했을 시절 출신지역 외 지역으로의 임용시험 응시는 가산점 면에서 불리했다. 게다가 IMF 외환 위기 이후 서울,경기지역 사립사대의 교직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최근 경기도 젊은 교사들은 공주사대의 위세가 과거보다 약한 편이다.[38] 사범대학이 있는 국립대학교에서는 지역 학교와 연계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기숙사 신청 등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할 경우 사대생들은 학교 또는 교육과 관련한 봉사활동을 선호하는 편이다[39] 오히려 전공 선택 강의에서 최소 인원 미달이 나서 학점이 꼬이는 경우가 있다.[40] 자신의 전공 교과목 관련 순수학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고(화학교육과 출신이 화학과 대학원로 간다든지) 사범 계열로 계속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사범 계열의 경우 수학교육, 과학교육, 기술교육 등 자연계 과목은 전문연구요원이 될 수 있고, 인문계 과목도 학예사와 같은 연구직이나 교육연구기관에 연구원으로 진출하는게 가능하다.[41] 다만 대학원은 전문연구직을 희망하는 이상 기본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선택의 폭이 줄어든 사례라고만 하기는 힘들다.[42] 공무원 시험 중 정교사 2급 자격증 소지자 가산점이 있는 시험은 경찰공무원 시험의 가산점 4점이 유일하니 참고[43] 면접관들은 졸업 후 무엇을 했는지 집요하게 물으며, 이 때 임용고시를 몇 년 준비했다고 답변하면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고시낭인 문서 참조. 알리바이(?)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 보자. 학부에 있을 때 취업에 생각이 있다면 복수전공을 하거나 전과를 하는 게 낫고.[44] 물론 모든 학교가 이런 건 아니다.[45] 몇차례 있었던 상경투쟁에서 조직위가 밝힌 것에 따르면 과거엔 교대처럼 사범대도 대학연합조직이 있었지만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와해되어 버렸던 것이 최근의 흐름이 갈수록 사범대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점이 자극제가 되어 다시 부활시키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46] 좀 보충한다면 사범대도 전사련(전국국립사범대학학생연합)과 서사협(서울지역사범대학학생연합)이 있었다. 이름만으로 보면 서사협이 전사련의 하위단체처럼 보이지만 절대 아니다. 서사협은 서울지역(이후 경기,인천 등 수도권도 포함)의 모든 사범대 연합이라서 사실상 사립사범대 중심이다, 전사련은 국립사대의 연합이다(사실상 거점국립대학교공주사대, 한국교원대가 중심이다. 서울대학교는 서사협, 전사련 두 위치를 공유하고 있지만 좀 국립대와 사립대 가교 포지션이다). 교육민주화라는 대전제에서는 공유점이 있으나 과거 국립사대 전원임용에 위헌청구를 한 것이 사립사대라서, 전사련과 서사협은 대전제는 공유하나 뒤로는 밥그릇싸움을 하는 조직일 수밖에 없다. 즉 교대처럼 단일한 구심점이 생길 수 없는 것. 사범대 단일조직이 와해된 데에는 이러한 태생적 차이가 작용했다.[47] 염세주의 혹은 비관주의적인 입장 역시 이곳에 포함된다.[48] 종합대학 상당수가 사범대를 가지고 있다 보니, 대학만 보고 온 학생의 수가 의외로 많다. 물론 사범대 내에서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 외에 교육실습생 등을 하고 '나는 선생 체질이 아니다.' 싶어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도 제법 있다.[49] 환경운동이나 민주주의 운동 등 시민운동의 경우 1차적인 이익원리에 얽매이지는 않으나 사실 이들도 넓게 보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다.[50] 그 덕분에 교육대학은 사범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51] 사실 이 사태가 교사의 도덕성으로 해결될 문제겠느냐 만은...[52]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역 출신들에 대한 역차별이 우려된다. 똑같은 병역의무 수행인데 누구는 복무 중 퇴근 후나 주말 등 개인시간을 활용해서, 심지어 편법으로 복무시간으로 봉사활동 해결하고 남은 시간에 졸업요구 자격증까지 붙어서 복학 후 널널히 다니고, 누구는 개인 시간 없이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전역 및 복학해서 학기중에 바쁘게 해결해야 한다는 소리가 된다. 실제로 모 교육청의 임용고시 초수합격자 남성의 적지 않은 비율이 군복무를 현역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행했다고 한다.[53] 단 교통비, 식비는 비용 보조이므로 따로 받을 수 있으며 자원봉사로 인정되지 않는 범위의 일을 같이 하는 경우 이에 대한 수당 역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