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 세이고

 


''' 일본의 축구감독 '''
[image]
''' 이름 '''
'''이케다 세이고'''
'''池田誠剛(いけだ せいごう | Ikeda Seigo'''
''' 출생 '''
1960년 12월 16일 (63세) /
일본 사이타마현
''' 국적 '''
일본
''' 직업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
축구코치
''' 소속 '''
''' 선수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1983)
후루카와 전기공업(1983~1991)
''' 감독 '''
동일본 JR 후루카와(1991 / 수석 코치)
제프 유나이티드(1991~1994)
브라질 대표팀(1994)
AC 밀란(1995 / 피지컬 코치)
제프 유나이티드(1996~1997 / 피지컬 코치)
요코하마 F 마리노스(1997~2007 / 피지컬 코치)
부산 아이파크(2007 / 피지컬 코치)
우라와 레즈(2008 / 피지컬 코치)
대한민국 U-20(2009 / 피지컬 코치)
대한민국 U-23(2009~2012 / 피지컬 코치)
항저우 그린타운(2012~2013 / 피지컬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2013~2014 / 피지컬 코치)
로아소 구마모토(2015 / 피지컬 코치)
홍콩 대표팀(2015 / 피지컬 코치)
FC 도쿄(2016 / 피지컬 코치)
FC 이마바리(2017 / 피지컬 코치)
산프레체 히로시마(2018~ / 피지컬 코치)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여담


1. 개요


일본축구선수 출신 코치. 2018년부터 산프레체 히로시마 피지컬 코치를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


중고교시절 특별동아리부에서 취미로 축구를 했던 이케다 세이고는 여러 코치들에게 제대로 축구를 시작해볼 것을 강력히 권유받았으나 전부 거절했다고 하며, 운동 이외의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했다고 한다.
20살에 와세다대학교 교육학부에 입학해 3년만에 최우수 성적으로 조기졸업했으며, 졸업 후 유럽여 행중 우연히 본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입단테스트에 합격, 1980년대 일본인 최초 영국 1부리그에 입단했다.[1]
수비형미드필더로서 2군경기서 3경기 1골 1도움으로 호평받았으나 4번째경기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하면서 재활치료를 받게 되었지만, 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결국 1년만에 웨스트 햄을 떠나 후루카와 전기공업에 입단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1991년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이케다 세이고는 브라질과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남미와 유럽의 체계적인 훈련법까지 습득했으며, 1991년 동일본 JR 후루카와의 피지컬 코치로 부임하며 새로운 인생 시작했으며, 스포츠 생리학과 트레이닝 방법론에 대한 연구에 대한 당시 쓴 논문 한편이 큰 파장을 몰고 왔다고 한다.
이후 제프 유나이티드의 감독 겸 피지컬 코치를 거쳐 1994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파헤이라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피지컬 코치로 합류하였으며,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출전하는 브라질 대표팀 스탭 중 유일한 외국인 코치로서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공헌하였다.[2]
1995년 단기 피지컬 트레이너로 AC 밀란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이케다 코치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을 쌓고 일본으로 돌아가 제프 유나이티드를 거쳐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피지컬 코치로 명성을 날렸으며, J리그에서도 그를 기술위원으로 초빙했고 2002 한일월드컵 당시에는 심판 컨디션 트레이너로 발탁되는 등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운명처럼 홍명보를 만났다. 벨마레 히라츠카에서 뛸 때 홍명보의 통역을 담당하고 있던 이가 요코하마 F마리노스에서 안정환유상철의 통역으로 일하고 있을 당시 홍명보가 잠시 일본에 방문하면서 이 통역사를 통해 둘의 만남은 성사됐는데, 이케다는 아시아 최고의 스타이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홍명보의 첫인상이 무척이나 강렬하게 느꼈다고 하며 당시 홍명보는 이케다 코치에게 본인이 나중에 축구 감독이 되면 저를 한 번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2007시즌을 앞두고 J리그에서 활약해 이케다 코치의 명성을 잘 알고 있던 황선홍 감독은 부산 아이파크 감독직에 부임하자마자 이케다 코치부터 찾았갔고, J리그 구단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자 황선홍은 딱 4개월 동안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으며, 황선홍 감독의 간절한 부탁을 받은 이케다는 결국 2007년 11월부터 4개월간 부산아이파크에서 피지컬 코치로 활동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체계적인 훈련과 자상한 성격에 매료된 부산 선수들은 4개월 뒤 그를 붙잡아 놓고 일본으로 가지 않고 여기 계속 계시면 안되냐고 부탁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케다 코치는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부산 선수들은 직접 돈을 모아 만년필을 선물하며 그를 추억했다고 한다.
J리그로 돌아가 우라와 레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던 중 홍명보가 감독이 돼 한국 20세 이하 대표팀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으며, 2009년 한국의 U-20 월드컵 출전 3개월 전 홍명보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라와에서 피지컬 코치는 물론 아카데미까지 총책임을 맡고 있던 이케다를 소속팀에서 쉽게 놓아줄 리가 없었고, 홍명보 감독이 직접 우라와 구단을 세 번이나 찾아가 사장 앞에서 고개를 숙인 끝에 결국 우라와 구단에서도 이케다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케다 코치는 선진 프로그램으로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을 관리했고 주기적으로 체지방량과 체력을 체크했으며, 특히 한국 선수들이 표층근에 비해 심층근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파악한 뒤 심층근 강화를 위해 맞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케다 코치 덕에 한국은 U-20 월드컵 8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어냈다.
대회가 끝난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얼마뒤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준비하고 있던 허정무 감독이 반데를레이 트레이너가 그만둔 뒤 전세계를 수소문했지만 마땅한 적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케다 코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우라와 측 강력한 반대에 결국 허정무호 합류는 무산됐다.
하지만 이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의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대한민국의 사상 첫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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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신의 조국인 일본과의 3,4위전에서 박주영이 일본 수비를 따돌리고 통렬한 골을 터뜨리자 누구보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하면서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올림픽 이후 중국 항저우 그린타운의 피지컬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2013년 대한민국 성인 대표팀의 피지컬 코치로 부임하면서 세번째로 홍명보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지만,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후 로아소 구마모토의 피지컬 코치를 거쳐 2015년 김판곤 감독의 부름을 받고 홍콩 대표팀의 코치로 부임했고, 이후에는 FC 도쿄, 산프레체 히로시마 등의 J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4. 여담


  • 한국어,포루투갈어,이탈리어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 일본 문교부 선정 1급고교 교육면허와 2급 중학교육면허를 보유하고 있다.
  • 와세다 대학 시절 고려대와 친선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경기장에서 관중이 던진 맥주병에 큰 부상을 입을 뻔 한 적도 있었다.

[1] 당시 epl 출범전이었다.[2] 당시만 해도 일본은 월드컵 본선 무대에 단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 나라에서 세계 최강 브라질 대표팀의 피지컬 코치를 배출했다는 건 놀라움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