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

 



[image]
1. 개요
2. 팀 스타일
3.1. 국가대표 엔트리
3.2. 결과 및 평가
4. 허정무호 이후


1. 개요


핌 베어벡 감독은 바레인 쇼크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형식으로 대표팀 감독직을 그만두게 된다. 허정무감독이 핌 베어벡 뒤를 이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으며, 그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활약했다. 사실 허정무차범근 감독 이후 감독직을 수행한 사람들에 비해서 특이한 점은, '''이미 국가대표팀 감독을 두 번[1] 역임한 적이 있다는 것.''' 따라서 2007년의 감독직 취임은 그의 3번째 국가대표 감독직 취임이었다.
참고로 그가 국대 감독에 재부임했다는 소식에 이영표 같은 고참 선수들은 "맙소사 우린 이제 다 죽었어."라고 고개를 내저었고, 기성용같은 후배 선수들도 공포에 떨었다고 하는데 이유는 1기 시절 허정무가 매우 엄한 감독이었기 때문. 하지만 정작 부임한 뒤로는 꽤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 선수들에게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2. 팀 스타일


취임 이후부터 퇴임하기까지 플랫 포백 수비라인에 왕성한 활동량을 가진 윙어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놓아 강한 압박이 가능하게 했고, 볼란치에 좌우로 롱패스 및 전진패스를 배급해 줄 수 있는 미드필더를 기용했으며, 공미는 윙어와 스위칭, 중앙 공격수는 측면으로 빠지며 윙어가 가운데로 침투할 수 있게 해서 한국의 특징인 빠르고 강한 윙어라는 특징을 최대한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아시아 내의 경기에선 4-4-2를 사용했는데 그럴 경우에는 활동량이 많고 돌파력이 좋은 공격수와 침투와 공간 창출이 좋은 공격수를 배치 한 후 위에 기술한대로 윙어 및 2선 침투를 노렸다.
수비라인의 경우는 스토퍼형 수비수 한명과 커맨더형 수비수를 한명씩 배치해서 수비시 수비형 미드필더와 윙어가 내려와 수비를 돕고 커맨더형 수비수는 커버링을 한다.
원하는 선수를 찾기 위해 수많은 유망주를 발굴해냈고 성장시켰다. 그 과정 속에서 양박쌍용이라는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최종형태는 골키퍼에 정성룡, 커맨더형에는 한국 최고의 커맨더 조용형, 스토퍼는 이정수, 양 풀백은 이영표와 차두리 오범석, 활동량 많은 만능 수비형 미드필더는 김남일이 맡았다가 김정우, 배급형은 김두현에서 기성용으로, 윙어 왼쪽과 공미는 박지성과 염기훈, 오른쪽은 이청용, 공격수는 공간창출&침투형 박주영이 맡았고, 4-4-2를 쓸적에는 활동량과 돌파력을 갖춘 이근호가 파트너로 나섰다.
이러한 포워드 활용양상은 이동국과 유병수 등 전형적인 슈터형 공격수가 소집이 잘 되지 않게되는 원인이 되었다. 유병수는 국대와 인연이 아주 멀어졌고 월드컵 엔트리에 승선한 이동국도 끝까지 중용받진 못했다.
요약하자면 활동량, 압박, 스피드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한국축구 스타일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선에서 포스트 플레이, 풀백의 빠른 공수전환 등 현대축구의 스타일을 도입해 약간의 변화를 꾀했다고 평할 수 있다. 이렇게 고유의 팀 컬러와 세계 축구의 흐름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아낸 결과 월드컵에서의 호성적과 세대 교체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내게 되었다. 그래서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의 최고 전성기로 평가 받는다.

3.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3.1. 국가대표 엔트리


2010년 6월 1일 최종 결정된 23명의 엔트리는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각 포지션의 인원 수. 가나다순 정렬하였음. 굵은 글씨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6 FIFA 월드컵 독일 당시 출전 선수. ★는 2021년 1월 현재 아직 현역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

3.2. 결과 및 평가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본선 출전팀은 '''굵은 글씨(볼드체)'''로 표시.
일시
장소
상대팀
경기결과
스코어
구분
비고
2008. 1. 30.
대한민국, 서울
'''칠레'''
''''''
0 : 1
친선 경기

2008. 2. 6.
투르크메니스탄
''''''
4 : 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2008. 2. 17.
중국, 충칭
중국
''''''
3 : 2
2008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

2008. 2. 20.
'''북한'''
''''''
1 : 1

2008. 2. 23.
'''일본'''
''''''
1 : 1
'''1승 2무'''
'''대회 우승'''
2008. 3. 26.
중국, 상하이
'''북한'''
''''''
0 : 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A]
2008. 5. 31.
대한민국, 서울
요르단
''''''
2 : 2

2008. 6. 7.
요르단, 암만
요르단
''''''
1 : 0

2008. 6. 14.
투르크메니스탄, 아시가바트
투르크메니스탄
''''''
3 : 1

2008. 6. 22.
대한민국, 서울
'''북한'''
''''''
0 : 0

2008. 9. 5.
요르단
''''''
1 : 0
친선 경기

2008. 9. 10.
중국, 상하이
'''북한'''
''''''
1 : 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
2008. 10. 11.
대한민국, 수원
우즈베키스탄
''''''
3 : 0
친선 경기

2008. 10. 15.
대한민국, 서울
아랍에미리트
''''''
4 : 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2008. 11. 14.
카타르, 도하
카타르
''''''
1 : 1
친선 경기

2008. 11. 19.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사우디아라비아
''''''
2 : 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2009. 2. 1.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시리아
''''''
1 : 1
친선 경기

2009. 2. 4.
바레인
''''''
2 : 2

2009. 2. 11.
이란, 테헤란
이란
''''''
1 : 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2009. 3. 28.
대한민국, 수원
이라크
''''''
2 : 1
친선 경기

2009. 4. 1.
대한민국, 서울
'''북한'''
''''''
1 : 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2009. 6. 2.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오만
''''''
0 : 0
친선 경기
[3]
2009. 6. 6.
아랍에미리트
''''''
2 : 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2009. 6. 10.
대한민국, 서울
사우디아라비아
''''''
0 : 0

2009. 6. 17.
이란
''''''
1 : 1

2009. 8. 12.
'''파라과이'''
''''''
1 : 0
친선 경기

2009. 9. 5.
'''호주'''
''''''
3 : 1

2009. 10. 14.
세네갈
''''''
2 : 0

2009. 11. 14.
덴마크, 에스비에르
'''덴마크'''
''''''
0 : 0

2009. 11. 18.
영국, 런던
'''세르비아'''
''''''
0 : 1
[4]
2010. 1. 9.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잠비아
''''''
2 : 4

2010. 1. 18.
스페인, 말라가
핀란드
''''''
2 : 0

2010. 1. 22.
라트비아
''''''
1 : 0

2010. 2. 7.
일본, 도쿄
홍콩
''''''
5 : 0
2010년 동아시아연맹선수권

2010. 2. 10.
일본, 도쿄
중국
''''''
0 : 3
'''중국 쇼크'''
2010. 2. 14.
일본, 도쿄
'''일본'''
''''''
3 : 1
'''2승 1패'''
'''대회 준우승'''
2010. 3. 3.
영국, 런던
'''코트디부아르'''
''''''
2 : 0
친선 경기

2010. 5. 16.
대한민국, 서울
에콰도르
''''''
2 : 0

2010. 5. 24.
일본, 사이타마
'''일본'''
''''''
2 : 0

2010. 5. 30.
오스트리아, 쿠프슈타인
벨라루스
''''''
0 : 1

2010. 6. 3.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스페인'''
''''''
0 : 1

2010. 6. 12.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그리스'''
''''''
2 : 0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조별리그 B조

2010. 6. 17.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아르헨티나'''
''''''
1 : 4

2010. 6. 22.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나이지리아'''
''''''
2 : 2

2010. 6. 26.
남아프리카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우루과이'''
''''''
1 : 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16강

'''결과 : 총 44전 22승 14무 8패'''[5]
2010년 3월 기준, 무엇보다 가열찬 논쟁거리는 역시 이동국 떡밥. 4-4-2 포메이션에서 양박쌍용의 자리가 분명한 반면[6] 박주영과 콤비를 이룰 나머지 한 명의 스트라이커의 기량이 불확실한 탓에, 관련 논쟁이 끊이질 않는 상황이다.
허정무호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온 수비진의 안정성 문제도 큰 떡밥이다. '조강 라인'이라 줄여 부르는 조용형, 강민수의 기량이 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강민수는 대표팀 선발에서 탈락하였으나 곽태휘의 부상으로 어부지리로 대표팀에 다시 뽑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취월장한 기량을 선보여 스페인과 맞설 정도였다.
조별예선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는 '''오염콤비'''가 등장했다. OME의 경기력을 보여준 오범석의 '오'와 염기훈의 '염'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들어진 것. 물론 마녀사냥에 가까운 결과론[7]이지만, 덕분에 네티즌들에게 '''평생 까임권'''을 받았다.
하지만 뒤이어 나타난 감독들이 대표팀을 이끌면서 드러낸 대표팀의 문제점과 경기력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이후로는 차라리 이게 낫다라는 여론이 올라오고 있으며 월드컵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2010년 당시 자신들의 쓸데없이 높았던 눈높이를 반성하는 축구팬들이 양산되고 있다. 2002년 멤버들 덕분이라고는 하지만 있는 것을 제대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자원까지 안착시킨 허정무호에 비해 후임 감독들은 그렇게 안착시킨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못하다가 세대교체 이후로는 완전히 말아먹었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2002년 멤버가 모두 은퇴한 이후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1승도 하기 어려웠던 90년대 수준으로 회귀했다. 아무것도 없을 때야 그럴려니 하며 정신위로를 할 수나 있지만 지금은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도 못하고 있는 수준이다. 당장 감독하나 바뀌었다고 추태나 부리던 팀이 카잔의 기적을 만든 것만 봐도 답이 나온다.
사실 최강희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나듯이 국내파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란 건 매우 힘든일이다. 일반 축구팀 감독과는 다르게 상시로 있을 사람들은 코치같은 간부진이외에는 없다. 자기가 뭘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잊을만 할 때 쯤 모여서 몇 일있지도 않고 그냥 귀가해버린다. 간부진들만 데리고 백번 회의하며 연구해봤자그것을 실행할 사람과 시간이 없으면 뭘 할 게 없다. 실제 역사에서도 굳이 어디라고 말 할 것까진 없지만 간부진 일부만 있고 실병력이 거의 없어서 군대 간판만 달고 연명하는수준이던 어느 군사단체가 있었다.
그나마 전성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세계처럼 세계 대회 시작하기 3일전에 소집해서 대회에 나가도 압살하고 다니는 수준이면 상관없겠지만 축구는 그 수준은 절대 아니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는 것이 A대표팀의 팀컬러라는건 소집 후 많아야 두 경기 뛰는 A대표팀에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해당 국가의 리그와 교육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당장 유소년 시절부터 배워왔던 기본적인 플레이 방식이 성인이 되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한들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유럽 월드클래스급 선수들도 팀 이적 후에 소속팀의 플레이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는 경우가 많다. 이러는 판국이니 억지로 클럽팀에서 하듯이 자기식대로 바꿀려고 하다가 말아먹기 싫어서라도 자기하고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고 나갈 수 밖에 없다.
대회가 가시화 되어서 장기 합숙 훈련을 위해 선수들이 소집이 되어도 문제는 있다. 선수단과 팀을 장악하고 조율하는데도 바쁜데 평가전이니 예선전이니 하는 경기라고 쓰고 단두대 매치라고 읽는 경기들이다. 지면 언론이든, 축협이던 압박이 장난아니게 내려온다. 국내파 감독들은 선수를 테스트하고 미래를 보고 가야 하는 평가전에서도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이런데 무슨 인재발굴과 양성과 영입을, 감독의 생각이 들어간 팀을 만든다는 것인가? 한 경기 못 하면 저 감독 자르라고 하는 판국인데. 한 경기에 연연할 수 밖에 없다. 과거 독일군에서 나왔듯이 아무리 계획을 잘 짜도접적한 그 순간부터 그 계획대로 갈 수 없고, 테스트이므로 그것이 좋은 면보다는 오류가 더 많이 나오기 십상인데 그러면 언론들과 축구계 내외의 정치질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게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커녕 당장 자기 목을 지키기위해서 예선도 아닌 평가전에서 에이스 선수를 90분 내내 뛰게 만드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가뜩이나 레벨이 낮은 상황에서 레벨업만 하기도 바쁜데 정치질과 거래를 본업보다 우선시하고 살아야 하는 하루살이들이 국가대표 감독들이다. 자신이 아무리 절대고수라도 실력을 내지 못하게 봉인당한 상태에서 살아남는 것부터가 문제다.
실제로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치룬 이후에도 잔존한 멤버들과 구자철, 손흥민, 곽태휘 등까지 가세한 엔트리로 아시안 컵 4강에 그쳐 박지성의 국가대표 은퇴 경기를 망치고, 부상으로 신음하던 이청용을 굳이 '''친선 경기'''에 무리하게 차출하는 삽질을 하는 등[8] 선수 컨디션 관리 면에서도 엉망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월드컵 최종예선도 아닌 3차 예선에서 월드컵 탈락 위기를 맞이했던 조광래나 폼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네임벨류가 떨어지는 팀에서 뛰거나, 팀에서 출전을 아예 못하는 선수들을 오로지 '''자신의 원패턴적인 전술에 맞고 자기와 올림픽 등에서 같이 활동했다는것 때문에 무조건 기용하고 정작 자기라인이 아니면 제대로 실력을 증명받은 선수들이라도 홀대한''' 홍명보를 보자. 그에 비하면 2002년 멤버들 덕분이라고는 하지만 있는 것을 제대로 활용한 허정무호는 엄청나게 선방한 것이다.[9] 적어도 허정무는 팀 케미스트리를 박살내거나 하는 등의 짓은 하지 않았다. 대회 기간 중 음주로 물의를 빚은 이운재의 징계를 풀어달라고 한 문제는 있지만, 이건 팀 케미스트리보다는 스포츠맨십과 도덕성에 관련된 사안.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감독 재임기간 내내 홈경기는 모두 서울월드컵경기장 아니면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치렀다는 것이다. 다른 감독들은 타 구장에서 치러진 경기도 적절히 배분된 것을 보면 이는 충분히 특이한 부분이라 할 만하다. 또 대표팀 감독으로서 치렀던 첫 경기인 칠레전을 제외하면 패배한 경기는 모두 중립 지역에서 치러진 경기라는 점에서 허정무호 당시 한국 대표팀은 홈에서는 극강의 면모를 보였다고 충분히 평할 만하다.

4. 허정무호 이후


허정무와 허정무 이후 국대를 맡은 감독들의 가장 큰 차이는 허정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평가가 좋아진''' 감독이었다는 것이다. 홍명보를 제외하고 조광래, 최강희[10] 울리 슈틸리케 모두 감독 취임 초반에는 평가가 긍정적이었다. 일종의 신장개업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공통적으로 감독직 재임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졌고 또 실제로 경기력도 점차 나빠지는 흐름을 드러냈다. 반면 허정무는 그 반대였다. 감독직 취임 초기에 북한요르단 상대로 고전하는 등 헤메다가 2008년 하반기에 플랫 4-4-2로 전환한 것이 대성공을 거두며 반등을 시작해 경기력이 점점 좋아졌고 마침내 2010 월드컵에서 정점을 찍었다.[11]
계약이 끝나고 대한축구협회에서는 허정무에게 감독직 재계약을 제의했지만, 허정무는 재계약을 고사했다. 그리고 그 이후 국가대표팀은 '''2018년 6월 26일까지 약 7년 간 기나긴 침체로 이어지게 된다'''[12]. 자세한 내용은 조광래호, 최강희호, 홍명보호, 슈틸리케호, 신태용호 문서로.

[1] 1995년 감독 대행, 1998년~2000년에 성인 대표, 올림픽 대표 감독 겸임.[2] 이 명단에서 유일하게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도 선발된 선수.[A] A B 북한은 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하여 자신들의 홈경기를 모두 제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중립 경기로 치렀다.[3] 이 경기는 선발 명단 교체 제한인 6명을 넘겨 11명 전원을 교체하는 바람에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다.[4] 이 경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28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달리면서 한국대표팀 역대 최다 무패기록을 세웠다.[5] 공식 A매치로 인정받지 않는 오만전 제외[6] 허정무 감독은 아시아권에선 442를 썼지만, 막상 월드 클래스 팀을 상대로는 변형 451을 썼다. 월드컵 무대에선 제로톱에 가까운 형태였다. 허정무=442는 무식한 언론의 숫자놀음에 불과하다.[7] 차두리 역시 다음 경기에서 오범석 뺨치는 저질 수비를 선보였고, 염기훈은 네티즌의 비난과 달리 오히려 축구 전문가들 사이에선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염기훈이 공간을 만들지 않았으면 골도 없었을 것이고 수비가담을 활발히하지 않았다면 활동량 적은 기성용쪽이 털렸을것이다.[8] 결국 부상 중인 선수를 불러놓고 쓰지도 못 해 선수의 컨디션만 망치는 결과가 되었다. 애초에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이긴 했다만..[9] 2002년 멤버들조차 주전은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세 사람 뿐이었고 교체로 투입됐던 김남일까지 해도 단 넷 뿐이며, 기성용, 이청용, 조용형, 이정수, 김정우, 염기훈, 정성룡 등 주전들의 월드컵 데뷔는 2010년에 이루어졌다. 2002년 이후로 신구조화가 가장 잘 맞았던 팀이었다는 얘기.[10] 다만 최강희 감독은 취임 기자식에서 아시아 예선만 한다는 발언으로 축구협회와 팬들 모두 충격에 빠트리긴 했으나 이는 축구협회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기도 했으며(또는 본인은 정말 하기 싫다라는 의지를 돌려서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최강희 감독은 국대를 누누이 거절을 해왔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반강제적인 설득과 압력으로 본인도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고 일단은 아시아 예선은 통과하는데에는 성공한다.[11] 당시 허정무가 조금 더 일찍 감독직을 맡아 월드컵까지 롱런했더라면 경기력과 성적이 더 좋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을 거라는 재평가가 나오기도 했다.[12] 다만, 2017-18년의 신태용호는 살짝 면죄부가 있을 수도 있는데, 예선과 평가전 과정은 좀 실망스러웠을지 몰라도 월드컵 본선에서는 멕시코를 상대로 패하기는 했지만 경기력은 좋았고, 마지막에는 그 '''독일'''을 이기기도 했다. 덕분에 슈틸리케 경질 이후 난파 위기의 대표팀을 데리고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뒀으며 한 동안 무전술에 빠져서 혼란에 빠진 팀을 다시 수습해서 한국식 전술과 색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근호, 염기훈, 권창훈 같은 필수 자원들이 부상으로 모조리 낙마해버려 안그래도 얇던 뎁스가 더 얇아졌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승우나 문선민이 기회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