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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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23세 이하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에서는 와일드카드 제도로 최대 3명까지 23세 이상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은 월드컵 바로 다음 중요도를 가진 경기[2][3] 이므로 와일드카드는 반드시 A대표팀 멤버 중에서도 베스트 3[4] 를 신중히 고르고 골라서 뽑는다. 특히 이 와일드카드라 함은 '''진정한 국대 중의 국대'''라는 칭호를 들을 수준이어야 뽑힌다.
이러한 이유로, 올림픽 본선과 아시안 게임 본선에 출전하는 23세 대표팀은 한국 축구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A대표팀과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높은 대표팀[5] 이며 A대표팀으로 가는 중요한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의 연령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올림픽, 아시안 게임도 월드컵에 맞먹을 정도의 전력으로 임했다. 위의 병역특례 때문에 1992년 이전까지는 아시안컵보다는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1992년 올림픽과 2002년 아시안 게임부터 23세로 연령 제한을 도입하여 더이상 최정예 선수로 대표팀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23세 이하 대표팀은 전력의 핵심이 될 와일드카드 선수 선발에 더욱 신중하게 되었다. 이는 비단 우리 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특수한 경우에 타국도 성인 대표팀 핵심자원을 와일드카드로 뽑거나 월드클래스 선수를 차출하기도 한다.[6]
특히 아시안 게임은 월드컵 직후에 열리는 대회로 월드컵 성적이 좋은 경우 월드컵 멤버 중에서 와일드카드를 뽑는데 '''아시안 게임의 성적에 따라 한국 축구의 열기가 뜨거워지느냐 식느냐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2002년엔 금메달 실패로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죽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고, 2014년에는 금메달을 통해 브라질 월드컵의 대실패로 떠나있던 팬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되돌려냈으며, 2018년엔 금메달을 따내면서 독일을 꺾은 한국 축구의 열기에 불을 더 지핀 전력이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U23팀을 결코 A대표팀이 아니라 해서 홀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축구가 한국에서만큼은 유난히 AFC 아시안컵보다 더욱 우대받는 것이, 방송 중계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축구는 지상파 3사에서 윤번제로 중계하지만, 아시안컵은 종편 1곳 단독중계로 진행한다. 즉 광고료 자체가 천양지차.
그러나 이런 주목도의 차이는 성과지상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과를 거두기 직전 대회인 베이징 올림픽이나 광저우 아시안게임 같은 경우 그 당시 한국이 축구를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원래부터 U23 축구의 인기가 높았다면 베이징이나 광저우에서의 축구도 그랬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 말은 U 23팀이 성과를 거두고, 그를 통해 열심히 마케팅을 했기 때문에 대중들 사이에서 열기가 달아오르고, 그것이 다시 언론중계라는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결국 그 이유는 병역 때문에 U23 대회에 전력투구 및 자동적으로 정신무장이 되는 한국 축구의 특성에 있다고 해야 한다.[7]
올림픽 축구에서는 축구협회 엠블럼을 부착할 수 없기 때문에[8] 예전 유니폼처럼 태극기를 가슴에 부착한다.[9] 유니폼 제조사에게 까지 엄격하게 제재를 가한다.[10] 아시안 게임도 올림픽처럼 원칙상 축구협회 엠블럼을 부착할 수 없지만, 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서 특별히 제재가 없어 아시안 게임은 축구협회 엠블럼이 부착된 원래 유니폼을 입고 나간다.
2. 역대 감독 및 기록
2.1. 현 대표팀 및 감독
2.2. 역대 사령탑 명단
3. 주요 국제 대회별 기록
3.1. 올림픽
한국은 세계 최초의 올림픽 축구 본선 9회 연속 진출 국가이다.
- 이전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1992년 대회부터 23세 이하로 변경
- 1988년 대회 이전 기록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s-9.6 참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첫 8강 진출 성과를 이뤄냈다. 당시 홈팀 그리스[22] 와 멕시코, 말리와 한 조가 되었는데 당시 그리스전에서 김치곤이 퇴장당했음에도 불구하고 2대0 리드[23] 까지 만들어냈으나 뒷심부족과 불운으로 2대 2로 경기를 종료한다. 그러나 다음 경기에서 김정우의 중거리슛 한 방으로 '''멕시코를 1대0으로 잡아서''' 반전을 만들어냈다. 남은 경기는 그 유명한 말리와의 경기다. 겉보기에는 최약체일것같지만 멕시코와 0대0으로 비기고 우리를 고전시켰던 '''홈팀 그리스를 2대0으로 잡아''' 같은 1승 1무를 거뒀음에도 골득실이 1점 앞서있었다. 그리고 말리는 은디아예의 해트트릭[24] 으로 한국을 신나게 털며 3대0까지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당시 1, 2차전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해 극대노해있던 조재진이 각성하여 '''1분 간격으로''' 방아찧기 헤딩슛을 '''두 번 연속''' 성공시켰다.[25] 순식간에 2대 3으로 따라붙고, 3분 뒤 최성국이 왼발로 센터링한 공을 '''아다마 탐부라가 그대로 자기 편 골대에 헤딩으로 꽂으면서(...)''' 스코어는 동점이 되었다.[26] 그렇게 경기는 어찌어찌 종료되어 한국은 1승 2무 조 2위로 8강에 진출한다. 비록 8강전에서 파라과이에게 2대3으로 패하긴 했지만[27] 그리스전을 수적 열세의 상태에서 리드하고, 멕시코전은 아예 이겼으며, 말리전은 3점 차이를 따라붙는 등 '''2002 월드컵 이후로 강해진 한국 대표팀의 전력을''' 여실히 보여준 대회였다. 심지어는 한국이 패했던 파라과이마저 '''조별리그에서는 이탈리아를 꺾고 올라왔고''' 한국을 꺾은 후 '''결승'''까지 올라간 강팀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파라과이전도 꽤나 선전한 경기였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성적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회다.
그 후 2012 런던 올림픽에서는 기어이 '''동메달'''을 따냈다. 동메달이지만 유럽 팀중에 유일하게 8강에 올라온 개최국 영국[28][29] 을 꺾고 4강에 진출하였다. 이 올림픽은 유럽 팀이 아무도 4강에 올라가지 못한 몇 안되는 대회였으며, 동메달 결정전이 '''한일전'''이었을 정도로 일본의 선전 또한 만만치 않았던 대회였다.[30] 결국 그 일본을 2대0으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따서 선수들은 병역혜택까지 받는 해피엔딩으로 마친 대회였다.
2016년 1월 27일 카타르와의 AFC U-23 챔피언십 4강전에서 승리함으로써[31] 2016 리우 올림픽 진출이 확정됐다. 이로써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1988 서울 올림픽부터 '''올림픽 축구 본선에 8회 연속으로 진출한 세계 최초의 팀'''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게 되었다.
2016 리우 올림픽 본선에서는 첫 경기부터 '''약체 피지를 상대로 8대0의 대승을 거두며'''[32] 올림픽 대표팀 역사상 최다점수차 본선무대 승리 기록을 갱신했고[33] 두 번째 조별리그 경기인 독일전서는 '''3대3 무승부를 일궈내며'''[34] 선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점자판기 피지의 존재 때문에 마지막 멕시코전서 패배하면 8강에 진출하지 못할 위기였으나[35] 다행스럽게 권창훈의 결승골로 '''1대0으로 이기며''' 2승 1무 조 1위라는 역대 최고의 조별리그 성적으로 8강 진출에 성공한다.[36] 비록 8강 온두라스전에서 호르헤 루이스 핀투[37] 감독의 전략에 말려들어 0대1로 패하긴 했지만 신태용호의 색깔은 이 대회에서도 빛을 발했다.
3.2. 아시안 게임
- 이전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002년 대회부터 23세 이하로 변경
특히 이 때는 월드컵이 끝난 지 2달 정도 지난 뒤에 있던 대회였고,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열린 경기였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경기였다. 박지성이 J리그 경기가 겹쳐 대회 도중에 합류하기도 했다. 4강 이란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영표의 결정적인 실축으로 결승 진출에는 실패한다. 이 때문에 이동국은 상무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며 기껏 월드컵 4강으로 달아올랐던 축구 열기 자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확 꺼져버렸다.
이후 대회에서는 2006년 도하에서 4위, 2010년 광저우에서는 4강 UAE전 연장 후반에 통한의 실점으로 또다시 결승행에 실패하며 3위에 그쳤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이후 28년만에 얻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이었다. 심지어 1986년 당시에는 A대표팀이었으므로 현재의 U-23 대표팀으로서는 최초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인 셈. 대회 전경기 무실점 전승 우승을 달성했고, 결승 북한전에서 부상 중인 김신욱까지 끌고나와 임창우의 연장 후반 결승골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2018년에는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로 불리는 손흥민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대회였기에 전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경기였는데, 2연속 금메달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38] 이 때 황의조가 새롭게 발굴되면서 그야말로 전설이 된 대회가 되었다. 2018 월드컵 독일전 승리 후 상승세를 탄 축구 대표팀의 인기가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인해 2002년 이후 16년만에 급상승하는 데 공헌하였다.
3.3. AFC U-23 챔피언십
- 현재까지 참여한 모든 대회에서 4강에 들었다.
'''전승 우승을 차지하다.'''
2020 AFC U-23 챔피언십에서는 대한민국이 '''전승'''으로 이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최초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과 함께 달성한 쾌거다.
4. 개인기록
4.1. 최다 득점 선수
- 와일드카드 선수 기록 포함. 출처
4.2. 최다 출전 선수
- 와일드카드 선수 기록 포함. 출처
4.3. 올림픽 득점 선수
4.4. AFC U-23 챔피언십 득점 선수
[1]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부터 23세 이하로 구성된 선수들만 참가했으므로 9회가 아닌 8회 출전이다.[2] AFC 아시안컵이 공식적으로는 유로컵과 동급의 대회이지만 한국에서만 유난히 위상이 낮다. 축구협회조차도 아시안컵에 대해서 아시안 게임보다도 홀대할 정도면 말 다했다. 특히 아시안 게임은 '''월드컵 이후의 축구열기를 가늠하는 핵심 척도'''가 되므로 아시안컵보다 신경이 많이 가게 된다.[3] 특히 U-23 대표팀의 주요 선수들은 연령대에서 최고 선수들이므로 향후 국가대표팀에도 자주 선발되고, 올림픽(금메달~동메달)이나 아시안게임(금메달)을 통해 병역혜택을 받게 되면 축구 수준이 높은 유럽 주요 리그 진출 및 유럽에서의 활동이 한결 용이해지므로 결국 U-23 대표팀의 올림픽, 아시안게임 성적은 국가대표팀의 경쟁력과도 직결된 문제여서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4] 과거에는 A대표팀의 에이스나 취약 포지션을 보강하기 위한 선수를 뽑았었다면, 요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병역 미필 선수가 뽑히는 추세이다. 즉, 월드컵으로 병역혜택이 주어졌던 2002년 이후부터 아시안게임에 와일드카드로 뽑히는 선수들은 직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선수 중에서 병역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선수를 뽑고 있다.[5] 야구의 경우도 U23 대표팀이 있는데 U23대표팀이 중요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아니므로 축구의 U23 대표팀만큼 위상이 높지는 않다. 다른 나라 축구 대표팀들의 경우에도 대한민국만큼 U23대표팀과 A대표팀의 간극이 적은 나라는 거의 없다.[6] 대표적인 사례로 2014년 자국 월드컵에서 망신을 당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2년 뒤 자국 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네이마르를 와일드카드로 차출한 브라질이 있다.[7] 아시안컵도 우승을 하기만 하면 달아오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8]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 역시 일괄 적용이다.[9] 실제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경기를 다시 보면 대한민국 대표팀의 유니폼에 부착된 축구협회 엠블럼을 가리고 출전했다. 이전에는 IOC에서 축구 유니폼의 엠블럼 노출에 강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지만, 베이징 올림픽부터는 엄격하게 관리했다. 이에 IOC에서도 미리 경고를 주고 대한체육회에서도 IOC 지침을 따르라고 지시했지만 대한축구협회에서 무시하고 갔다가 1차전 치르고 파란색 싸인펜을 부랴부랴 구해서 엠블럼에 칠하는 촌극을 벌여야 했다. 관련 기사[10] 예를 들면 아디다스의 경우 상징인 삼선이 올림픽 유니폼에는 들어가지 않는다.[11] 2020 도쿄 올림픽 진출[12] 1991년 1월부터 1992년 2월까지 데트마어 크라머 총감독직 (기술고문) 수행하였으며 그 후 올림픽 본선까지는 김삼락이 감독 단독으로 지휘하였다.[13]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 진출[14] 국가대표팀 감독과 겸임[15]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획득[16]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17]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인해 감독직 수행이 어려워지자 감독 대행을 맡았다.[18] 이광종 감독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 코치 겸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2016 리우 올림픽 8강 진출.[19] 2018 AFC U-23 챔피언십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20]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21] 가나 득점 4 실점 4, 한국 득점 2 실점 2[22] 무려 두 달 전에 유로 2004에서 '''우승'''한 국가였다![23] 전반 막판 김동진이 선취점을 넣어 리드를 잡은 뒤 후반전에 그리스의 빈트라가 공을 걷어낸다는 것이 자기 골대로 걷어내버려 '''자책골'''까지 헌납했다. [24] 선제골은 '''오프사이드+핸드볼''' 반칙 논란이 있는 골이었지만 두 번째 골은 '''골대맞고 나온 프리킥을 문전에서 받아내 침착하게 넣은 골''' 이었으며 세 번째 골은 한국 수비진이 잘못 걷어낸 공을 '''그대로 낚아채''' 넣은 골이었다.[25] 김동진의 왼발 크로스 후 조재진이 헤딩골을 꽂았는데 두 번 다 선수들의 위치나 공의 궤적이 너무도 똑같아서 일부 해설진은 두 번째 골을 '''첫번째 골 리플레이로 잘못 알고(...)''' 중계를 했을 정도였다.[26] 이 선수는 1985년생으로 당시 말리에서도 꽤나 신예 선수였다. 같은 시간대에 멕시코가 그리스를 1점 차로 리드하고있어서 만일 한국이 말리에게 졌다면 멕시코가 같은 승점과 같은 골득실 하에 다득점에서 한국을 누르고 8강에 진출해버리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자책골로 '''멕시코전과 그리스전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8강에 진출할 길이 열렸으니 그야말로 국내 축구팬들은 난리가 났다. '''탐부라 선수의 국내 주민등록증 짤'''과 '''탐부라가 참여하는 X맨''', 그리고 '''탐부라 : 후반전 시작되고 골대 바뀐 줄 몰랐다'''는 식의 온갖 패러디와 드립이 쏟아져 나왔다. 한편 경기 이후 탐부라 본인은 자국 팬들로부터 욕을 먹고 '''심지어는 가족들한테마저 의절을 당할 뻔했다고 한다.'''[27] 역시 세 골을 먼저 내주고 따라가는 경기였다. 말리전에서 조재진이 캐리했다면 파라과이전에는 이천수가 있었다. 중거리슛으로 만회골을 넣은 다음 페널티킥까지 연달아 성공시키며 한 점 차이로 파라과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28] 1960년까지 올림픽 축구에 참가하였으나, 축구협회간의 불화로 인해 1964년 대회부터는 불참하게 된다. 그러나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영국 단일팀으로 52년 만에 출전하게 되었다.[29] 당초 영연방 4개국 모두 출전하려고 했으나 선수 선발 과정에서 갈등을 빚어 결국 잉글랜드와 웨일스로만 구성되었다.[30]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이겨 스페인을 무득점 광탈의 나락으로 빠뜨렸으며, 8강전에서는 이집트를 3대0으로 이겨 4강 멕시코전 이전까지 '''단 한 개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멕시코전 패배도 불운이며, 동메달 결정전에서 '''당연히 한국이 패할 거라고''' 예상하는 축구팬들도 많았다. 그러나 정작 멕시코는 단순히 운으로 일본을 이긴 것이 아님을 증명하며 네이마르의 브라질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참고로 한국과 멕시코는 조별예선에서 한국의 다소 일방적인 우세 속에 0대0으로 비겼다.[31] 비록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도하 참사를 당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태용호의 공격적인 색깔이 유감없이 드러났던 대회로 평가받는다.[32] 전반에는 겨우 선제골을 넣어 1대0으로 앞서는데 그쳤지만, '''후반 17분부터 약 40초 간격으로 세 골을 몰아넣으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그 후 네 골을 더 넣으며 8대0 대승을 완성했다.[33] 종전의 기록은 2012년 한일전의 2점차 기록이다.[34] 황희찬의 선제골을 넣으면 독일의 세르쥬 나브리가 동점골을 넣는 등 난타전을 벌였으며 세르쥬 나브리가 후반 추가시간에 프리킥 동점골을 넣기 전까지 '''한국 측에서 3대2로 앞서고 있었다!''' [35] 2012년 당시 '''금메달'''을 땄던 팀이 멕시코 팀이었다. 참고로 멕시코팀은 첫 경기를 한국과 했는데, 0대0으로 비겼다. [36] 멕시코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대한민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이 경기까지 역대 전적 5전 2무 3패로 절대적으로 열세이며, 3골을 득점하는 동안 무려 7골을 내주었다. 그 3골 마저도 대한민국이 첫 올림픽에 참가했을 당시에 '''세계 최약체'''로 분류될 시기에 넣은 것이다. 멕시코는 1948년 이후로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있다. 즉, 올림픽 한정으로 멕시코는 공한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37] 2년 전의 월드컵에서 코스타리카 대표팀을 8강에 올려놓은 감독이었다. 같이 죽음의 조에 속해있던 '''우루과이''', '''이탈리아'''를 연속으로 쳐바르고 '''잉글랜드'''까지 조 최하위로 광탈시킨 것은 덤이다.[38] 아시안 게임은 금메달을 획득해야만 병역특례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