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원)

 



'''원 제4대 황제'''
'''仁宗 | 인종'''
'''몽골 제국 제8대 대칸'''
'''ᠪᠤᠶᠠᠨ ᠲᠤ ᠬᠠᠭᠠᠨ
부얀투 칸
'''
'''묘호'''
'''인종(仁宗)'''
'''시호'''
성문흠효황제(聖文欽孝皇帝)
'''칸호'''
부얀투 칸
普顔篤汗(보안독한)
ᠪᠤᠶᠠᠨ ᠲᠤ ᠬᠠᠭᠠ
''''''
보르지긴(Боржигин)
孛兒只斤(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
아유르바르바다(Аюрбарибада)
愛育黎拔力八達(애육려발력팔달)
ᠠᠶᠤᠷᠪᠠᠷᠪᠠᠳᠠ
'''부모'''
부황 순종 보르지긴 다르마발라
모후 소헌원성황후 옹기라트 다기
'''연호'''
황경(皇慶): 1312년 ~ 1313년
연우(延祐): 1314년 ~ 1320년
'''생몰 기간'''
1285년 4월 9일 ~ 1320년 3월 1일 (35세)
'''재위 기간'''
1311년 4월 7일 ~ 1320년 3월 1일 (9년)
1. 개요
2. 생애
3. 가계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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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 제국의 제8대 카간이자, 원나라의 제4대 황제. 묘호는 인종(仁宗), 시호는 성문흠효황제(聖文欽孝皇帝). 휘는 아유르바르바다(愛育黎拔力八達).

2. 생애


[image]
쿠빌라이 칸의 차남 친킴의 차남인 다르마발라[1]의 3남으로 태어났다. 계국대장공주, 원 진종과는 사촌이다. 형 무종이 사망했을 때 조카들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어머니 다기[2]의 지지를 받아 즉위했다. 이 즉위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충선왕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의 통치기에는 다기의 영향력이 커서, 대놓고 황제보다 황태후의 권위가 더 높다는 말까지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재위 기간 내내 나라는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3. 가계


  • 정궁황후(正宮皇后) 장의자성황후(莊懿慈聖皇后) 콩기라트씨
  • 제2황후 답리마실리황후(答里麻失里皇后) 김씨(金氏)[4]
  • 제3황후 백안홀독황후(伯顔忽篤皇后) 왕씨(王氏)[5]
  • 영비(英妃) 달마홀도(達麻忽都)

4. 둘러보기



'''몽골 제국의 역대 대칸'''
7대 쿨루크 칸

'''8대 부얀투 칸'''

9대 게겐 칸
'''원의 역대 황제'''
3대 무종 카이샨

'''4대 인종 아유르바르바다'''

5대 영종 시다발라
언어별 표기
한국어
부얀투 칸
중국어
普顔篤汗
몽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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буянт хаан
[1] 황제로 추존되어 묘호를 순종으로 추존됨.[2] 시호는 소헌원성황후(昭獻元聖皇后).[3] 1279년(충렬왕5) 뚤루게<禿魯花>로 원에 갔다가 돌아온 이후 낭장이 되었다. 1303년 충렬왕의 총신들에 충선왕에 대한 이간질 해결에 앞장서면서 그해에 同知密直을, 다음해에 密直副使에서 知密直으로 승진하고, 아버지의 직을 이어서 萬戶가 되었으며, 후년에는 충렬왕을 따라 입조하러 왔다가 충선왕과 돌아와 都僉議參理 兼判三司事가 되었다. 1309년 딸이 원 인종의 妃가 되면서 高麗都元帥에, 이어 贊成事가 되었고, 다음해에 密直使와 化平君에 封君 되었다. 그러나 권력다툼에 패하면서 5년간 귀양가 있다가, 충숙왕때에 輸誠守義忠亮功臣化平府院君에 이후에 都僉議中贊으로 전임되면서 協輔功臣을 더하였다.[4] 고려인이다. 化平君 金深[3]의 딸이다.[5] 고려인이다. 제안대군 왕숙의 아들인 평량공 현과 순비 허씨의 3女로, 순비 허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충선왕과 재혼했다. 즉 충선왕의 의붓딸인 셈으로 충선왕과 인종이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혼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