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킴

 


'''원 추존 황제'''
'''裕宗 | 유종'''
'''묘호'''
'''유종(裕宗)'''
'''시호'''
문혜명효황제(文惠明孝皇帝)
''''''
보르지긴(Боржигин)
孛兒只斤(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
친킴(Чингим)
眞金(진금)
ᠴᠢᠩᠭᠢᠮ
'''부모'''
부황 세조 보르지긴 쿠빌라이
모후 소예순성황후 옹기라트 차브이
'''생몰 기간'''
1243년 ~ 1286년 1월 5일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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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나라의 황족이자, 세조 쿠빌라이 칸의 아들. 황제로 추존되면서 받은 묘호는 유종(裕宗)이며, 시호는 문혜명효황제(文惠明孝皇帝)이다. 생전 지위는 황태자.
원세조의 차남이자 원성종의 아버지. 그리고 추존황제 순종(順宗)과 현종(顯宗)이 그의 아들이다.[1] 또한 고려 충선왕의 왕비인 계국대장공주의 할아버지가 된다.
황태자비 코코진(闊闊真)[2]과의 사이에서 위의 3남을 낳았다.

2. 생애


친킴은 쿠빌라이 칸과 소예순성황후(昭睿順聖皇后) 옹기라트 차브이 사이에서 태어났다. 친킴은 위에 형으로 도르지라고 하는 황족이 있었으나 요절한 바람에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친킴은 쿠빌라이 칸을 섬긴 한인 관료 요추와 두묵에게서 교육을 받아 자랐으며, 중통 4년(1263년)에 연왕(燕王)으로 책봉되었다.
1273년, 친킴은 쿠빌라이 칸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친킴은 한인 관료들에게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유교적 정치 이상을 꿈꾸고 있었고 한족 대신들을 존중하였다. 1281년, 친킴의 어머니인 소예순성황후가 세상을 떠난 이후, 쿠빌라이 칸은 색목인 관리들을 양성하며 몽골인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색목인 관료들 중 대표격 인물로 아흐마드 파나카티라는 권신이 있었는데, 친킴은 아흐마드의 간악함을 싫어하여,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심지어는 아흐마드의 악행을 지적하여 때린 일이 있기도 했다.
아흐마드 사후 아흐마드의 잔당과의 다툼으로 전전긍긍하던 친킴은 결국 1286년[3]에 아버지 세조보다 먼저 죽었으며, 후에 아들 성종이 즉위하자 유종(裕宗) 문혜명효황제(文惠明孝皇帝)로 추존되었다. 친킴 사후 원나라 황실에 분열이 나타났음을 상고하면, 친킴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3. 가족관계


  • 부황 세조 쿠빌라이 칸
    • 유종(裕宗) 문혜명효황제(文惠明孝皇帝) 친킴
      • 현종(顯宗) 광성인효황제(光聖仁孝皇帝) 카말라(甘麻剌)
      • 순종(順宗) 소성연효황제(昭聖衍孝皇帝) 다르마발라(答剌麻八剌)
      • 성종(成宗) 흠명광효황제(欽明光孝皇帝) 테무르(鐵穆耳)
친킴은 3명의 아들을 두었고 모두 휘인유성황후 옹기라트 코코진 소생이었다. 친킴 사후 후계자로 유력시되었던 다르마발라는 1292년에 요절하였고 훗날 친킴의 손자이자 다르마발라의 아들인 무종 카이샨이 1311년 즉위한 뒤에 황제로 추존되었다. 친킴의 장남인 카말라도 1323년 태정제 이순테무르가 즉위한 뒤에 황제로 추존되었다.
쿠빌라이 칸 사후에 즉위한 테무르는 친킴의 3남이었다.

4. 둘러보기





[1] 이름은 각각 카말라(甘麻剌), 다르마발라(答剌麻八剌). 카말라는 진종이, 다르마발라는 무종이 각각 추존했다.[2] 후에 휘인유성황후(徽仁裕聖皇后)로 추증됨[3] 음력으로 1285년 12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