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

 


영어: Liberal theology / Liberal Protestantism / Liberal Christianity
네덜란드어: Vrijzinnig protestantisme[1]
1. 설명
2. 한국 교회에서
3. 자유주의 신학자
4. 관련 문서


1.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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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을 중시하여,[2] 성경의 완전성 / 복음의 유일성 / 기독교의 우월성 등 기존의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해 회의적으로 접근하는[3][4] 신학 조류 전반을 말한다.[5]
원래는 세속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었지만, 2차대전 이후 우파 자유주의 신학은 도태되어서 오늘날에는 기독교 좌파와 동의어로 쓰인다.
18세기 근대 사상의 영향을 받아 등장하였다. 특히나 칸트의 영향을 깊게 받았는데 기존 기독교의 성서중심신학과 달리 이성과 지성을 바탕으로하여 기독교의 가르침을 해석했다.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 학자들도 있지만 대표적인 학자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아돌프 하르낙 등은 대표학자들은 독일어권 개신교 신학자들이다.
  • 신학적 형식: 기독교 해석의 궁극적 권위를 성서에 두지 않고, 이성에 둔다는 의미에서 성서의 권위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입장을 취한다. 성서 자체에 대해서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고 다양한 검토를 한다. 따라서 당연히 성서무오설을 배격하며, 성서의 영감성에 대해서도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게 된다. 복음주의 신학 진영에서는 이를 두고, 자유주의 신학은 결국 성경 말씀 가운데 인간의 가치와 도덕에 부합하는 내용만을 취사선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6]
  • 신학적 내용: 기독교의 중심교리인 속죄론에 대한 해석이 주를 이룬다, 이도 역시 기존 교리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교리주의의 속죄론이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속죄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데 대하여, 자유주의 신학은 오히려 인간의 주관적인 정신상태의 변화에서 속죄적인 의의를 인정하고, 예수는 단지 뛰어난 종교적 인격자라고 생각한다.[7] 정통주의의 비해 인간의 선행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요약하면 성경 본문 가운데 인간의 합리적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 무조건적인 믿음 외에 다른 방법을 써보자는 것이다. 그 다른 방법으로 유명한 것들로는 성서비평, 역사적 예수, 과학적 방법을 통한 검증 등이 있다. 또한 성경의 내용을 과학이나 역사 등으로 교차검증하기도 한다. 인간의 지성과 자유의지를 긍정하기 때문에 과학 및 기술, 근대 이성과 철학(정치적 자유주의 포함), 국가주의등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유명 신학자들은 현재 기준으로 자유주의 신학에 속한다고 본다. 기존의 사조를 정통주의 보수주의라하는데 후술하겠지만 근본주의와는 다르다. 자유주의 신학자로 불린 학자들도 기존의 모든 신학에 대해 모든걸 부정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조를 시도 한 것이고 "나 자유주의자요"하고 선언하고 다닌게 아니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에는 이성과학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면서도, 사회 구조와 생산 관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결여되어 있었다. 그 결과 고전 자유주의 신학은 자본주의가 낳는 착취와 소외의 현실을 인식한 종교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이 서구사회가 이룩한 이성과 과학을 중시하다 당시 서구과학문화 우월론의 산물인 '''제국주의'''마저 지지해 버렸기 때문. 게다가 태생적으로 연구자 또는 사회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통에 주관적인 주장들도 적잖이 있었다.
결국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후 기존의 자유주의 신학은 도태되었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일 수 있는 지, 애초에 인간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고, 그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초라하게 짓밟히는지를 똑똑히 목격한 것이다. 아우슈비츠731 부대로 상징되는 인간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의 폐해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근본주의칼뱅주의(개혁주의) 계열로부터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까이는 신학/교단들은 실제로는 신정통주의거나, 전기 자유주의와는 거리를 둔 후기 자유주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960년대 관심을 모았던 '''세속화신학'''과 '''신죽음의 신학''', 기계론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대신 유기체적 생성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과정신학''', 억압과 종속의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해방과 실천을 강조하는 해방신학, 논리적 실증주의를 극복하고 종교적 언어의 유의미성을 재천명하는 '''언어분석학적 실존주의적 언어신학''', 다원화된 세계 안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다루는 '''대화신학''',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를 다루는 '''생태신학''' 등 현대의 신학적 운동은 현대의 정신적 사회적 환경적 상황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사조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학의 분화들 속에서 1980년대 듀크 대학교와 예일 대학교 신학부를 중심으로 인간의 경험에 의존하는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공동체의 전통이 신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 '''후기 자유주의'''(postliberalism) 운동이 일어난다. 신정통주의가 절대적 계시의 거룩함과 예언자적 설교에 관점을 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치적으로도, 전기 자유주의 신학은 경제적 자유주의 쪽이었다면, 후기 자유주의 신학은 사회자유주의 쪽에 가깝다.
19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신정통주의 이후 그 영향력을 상실하였으나 시대적 정신 문화와 기독교의 복음을 연결시키려는 변증적 과제와 교리와 성서에 대한 비판적 과제를 신학의 중심과제로 보는 자유주의 신학의 초기정신은 오히려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즉 정치,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자유주의 신학에서 제기된 초기 정신은 아래와 같은 다양한 신학 분파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개신교의 경우 한국과 정반대로 '자유주의'라고 하면 그냥 중립적인 단어이며, 왕실 전담 목사도 자유주의 성향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세계적 추세가 그렇듯, 네덜란드 내에서도 자유주의 개신교는 사그러들고 있다.
후기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데, 근본주의나 정통주의[8] 진영에서는 '현대의 세속주의에 야합하려는 타락한 신학'이자 '기독교를 분탕치려는 악한 것'으로 보지만, 자유주의 진영, 신정통주의를 비롯한 기독교 좌파/중도파에서는 '반신론/무신론의 거센 공격에 맞서서 기독교의 존재 이유를 유지시키려는 방패막 역할', 시대에 맞추어 기독교를 갱신하는 사상으로 평가한다. 한국 주류 기독교인 보수 교계에서는 성경의 무오성을 무너뜨리면서 하는 변증이 참된 신학인지 반문하지만, 고고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성경의 무오성[9]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있고, 성서무오성이나 문자적 해석 등을 따르는 보수적인 신학으로는 결국에 기독교가 소멸할 상황이기에, 어떻게든 기독교의 존재 이유를 연장시키려는 시도라 말할 수 있다[10][11]

2. 한국 교회에서


국내의 기독교계에서 '자유주의'는 매우 '''부정적인''' 단어이다. 많은 경우에서 욕으로 쓰일 수 있을 정도로 부정적이다. 발언하는 입장에서의 의도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의 뉘앙스도 '''"너 이단"'''과 다를바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세계 대전 이후로 격동의 현대사를 거치게 되면서 개신교의 주도권을 보수주의자들이 잡게 된것과 연관이 깊다. 한국에서도 이는 예외가 없었는데, 한국의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일제에게 무비판적이거나 찬양적인 경우가 많았고 결국 해방 후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기독교에서 제명되고 한국에서 쫒겨났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정통주의(자유주의 입장에서 보수주의)자들은 민족주의 운동에 적극적이었고 일제에 격렬히 저항하거나 소극적으로 저항하거나 일제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해도 나중에 회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에서 환영받았다. 좁은 의미로는 앞에서 말했듯이 자유주의 신학이란 19세기의 주요 사조일 뿐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을 계승한 후기 자유주의 신학을 포함한다면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가 꼽힐 수 있다. 개신교 뿐만 아니라 한국 가톨릭도 후기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은 편이다. 이들은 그래도 자유주의 신학의 세속화와 반기독교적 요소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과 거리를 두고 있어서 한국에서 교세가 좀 있는 편이다.
상술했듯이 자유주의 신학은 반한국적 행위로 한국에서 아작나다 못해 이단시 되었기 때문에 NCCK에 소속된 교단들은 정통주의 ~ 후기 자유주의적인 교단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한국에서 쫒겨났거나 회개를 댓가로 후기 자유주의로 갈아타면서 자유주의를 버렸기에 한국에서 명맥이 아예 끊겨버렸다. 그나마 한때 경성대 신학대학이 자유주의 신학을 계승할려고 학풍을 변경했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2014년에 초교파로 변경하며 한국에선 자유주의 신학이 완전히 끝났다고 봐야한다. 부산신학교 참조. 정통주의자의 입장에서 자유주의 진영으로 지목할 수 있는 교단들을 들자면,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장로회,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이다.
그러나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보수주의, 신정통주의, 후기 자유주의 신학에서도 자유주의 신학을 재평가, 재해석하면서 자유주의 신학을 통해 생겨난 신학적 성과, 새로운 방법론, 신학의 외연 확장은 좋게 받아들여졌다. 비록 자유주의 신학의 핵심인 신의 초월성을 배제하려는 태도가 거세된 셈이지만 다른 신학자들에게서 새로운 방법론으로써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18~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자신들의 신학이 보수주의, 진보적 다원주의에 먹혀버렸다고 논평했겠지만(...)
감리교의 경우 자유주의와 전통주의가 혼재되어 있으나, 90년대 변·홍 교수 축출 사건 이후로는 전통주의 성향이 더 강해졌다. 애초에 상술했다시피 자유주의 신학은 신앙을 공격하는 특성 때문에 전통주의와 공존이 매우 힘들다.
한신대학교가 속한 기독교장로회(기장)의 경우, 교단 안에 신정통주의와 후기 자유주의, 그리고 토착 신학인 민중신학이 혼재되어 있는 성향을 보인다. 동네에 기장 간판 걸고 있는 대다수의 기장 교회들은 신정통주의를 따르지만, 향린교회나 주민교회 혹은 서울제일교회 같은 전통 있는 민중교회들은 민중신학 노선을 따르고, 향린교회에서 분립되어 나간 강남교회/들꽃교회/섬돌교회는 생태신학·여성신학(페미니즘 신학)·'''퀴어신학''' 등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다양한 분파들을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향린교회를 비롯한 몇몇 교회를 제외한 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들을 자유주의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이 마저도 흔히 떠올리는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신학이 아닌 후기 자유주의 신학이다. 기독교장로회를 비판하면서 신사참배나 친북경향 등은 말 할 수는 있겠으나, 히틀러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해주었던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을 말한다면 거긴 이미 명맥이 끊겼기에 셰도우 복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성공회도 교단 내부에 신학적 분파들이 다양한 건 마찬가지다. 성공회의 신학은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서, 보편교회주의(고교회파)·복음주의(저교회파)·자유주의(광교회파)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성공회는 그들의 전통 안에서 이 흐름들을 내치지 않고 보듬어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특정 교파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교파의 사제 또는 목사가 된다는 의미가 해당 교파에서 주장하는 신학적 의견에 세세한 부분까지 동의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성공회에서는 신학적 사조/흐름이 다르더라도 기독교 신앙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예를 들면, 삼위일체라든지 예수의 부활이라든지...)에만 일치가 된다면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아무런 '제한' 없이 받아들이는데, 그 '제한'에는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자격도 포함되어서 매우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회 부제/사제/주교가 될 수 있다. 다른 어떤 기독교 교파도 가지지 못한 이런 전통은 현재 성공회가 보이는 신학의 유연성과도 직결되며, 교회일치 운동에 앞장설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되고 있다. 대한성공회가 특별히 자유주의신학을 지지한다기보다는, 한국 교회 내에서 꽤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자유주의적인 목소리도 포용하고 있는 것. 이 마저도 위에 기술한 기독교장로회와 마찬가지로, 흔히 떠올리는 20세기 초의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 후기 자유주의 신학이다.
가톨릭에서도 보수파를 중심으로 자유주의 계통의 진보 가톨릭 신학을 해방신학이라며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해방신학은 민중구제 등에 초점을 둔다면, 자유주의 신학은 사회정의, 민중해방보다는 교회론(교회일치운동), 동성애, 피임, 낙태 등의 문제에서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하자는 것이라서(한스 큉 참조) 흔히 해방신학이라 얘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개신교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대한성공회와 기장 교단의 일각(이른바, 대한민국의 기독교 좌파)에서 보이는 진보 신학이 해방신학에 가까운 뉘앙스라면, 미국 메인라인 개신교 교단들의 후기 자유주의 신학은 이 문단에서 얘기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가깝다. 생태신학의 경우 한국 가톨릭 주류에 알게 모르게 스며든 상태. 대표적인 예로, 교구 차원의 우리농산물 운동.

3. 자유주의 신학자


  • 국내
    • 변선환
    • 변영권 [12]
    • 임보라
    • 진규선
    • 홍정수
  • 국외

4. 관련 문서




[1] 여타 유럽 언어들과는 다르게 표기한다.[2] 자유주의자들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이성이라는 큰 선물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을 무시하거나 더 나아가 적대시하는 것은 바른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3] 회의적으로 접근한다는 말이지 반드시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들도 (온건파 한정으로. 주의: 급진파는 삼위일체, 부활, 재림을 사실상 부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시 삼위일체를 인정하고 예수의 부활과 재림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다. 후술되어있지만 근대(특히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신학의 발전을 이끌었던 많은 학자들이 현재 기준으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당장 내 신앙과 잘 안 맞고 내 맘에 안들다고 기독교 신학에서 손쉽게 배제시킬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4] 자유주의 신학을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고 배제할 경우, 현재 중도적인 개신교 신학의 기반이 되는 '신정통주의'나 진보적인 개신교 신학의 큰 줄기 중 하나인 '후기 자유주의 신학'이 어떻게 나왔는 지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어진다. 칼바르트가 '신정통주의'를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당시 (철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닌)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진 것이었고, '후기 자유주의 신학' 역시 초기 자유주의 '신학'의 흑역사를 뼈저리게 체감한 뒤 그 바닥을 딪고 일어선 신학이었다.[5] 또는 주로 19세기에 유행한 신학사조.[6] 하지만 후기자유주의 신학에 이르면 살짝 달라진다.[7] 마찬가지로 후기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살짝 달라진다.[8] 주로 복음주의라고 부른다[9] 대표적으로 예리코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동부 지역은 여호수아 시대에 무인 지대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수십 만이 출애굽 때 광야에서 한 명씩 메추라기를 먹으려면 수 십만 마리의 메추라기가 필요한데 이는 당시 전 세계의 서식하는 메추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10] 그렇기에 기독교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반신론자들은 후기 자유주의에 대해 오히려 시선이 좋지 만은 못하다.[11] 도킨스 같은 일부 반신론자는 (급진적) 자유주의 기독교를 진정한 기독교가 아닌 변질된 다른 무언가로 보기도 한다.[12] 다만 본인은 스스로를 자유주의가 아닌 '불가영지자연자유주의자'라고 표현하고있으며, 석사이기 때문에 신학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