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방법

 

1. 개요
2. 가설-연역 모형
2.3.1. 사례연구(Case Study)
2.3.2. 통계적 방법(Statistical Method)
2.3.3. 증명(Proof)
2.4. 이론(Theory)
3. 배경 및 논쟁
3.1. 과학철학적 배경
3.2. 과학자들의 견해
3.4. "왜?", "어떻게?"
4. 여담
5. 관련 항목


1. 개요


Scientific Method ·

관측 가능한 현상에 대한 검증 가능한 예측

Testable predictions of an observable phenomena

과학지식을 쌓아나가는 연구방법론. 우주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및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나아가 미래의 현상예측하는 최선의 합리적 방법이다. 통계적 방법 역시 과학적 방법의 핵심적 요소에 해당한다.
기본적인 과학 교과서(일반물리학, 일반생물학 등)의 첫 부분에는 과학적 방법론의 개요를 설명한다. 미국 AP과정에서는 거의 '''매년''' 배울 정도로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교육과정에서는 어째선지 중학교 1학년 과학에서 한 번 다루고,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생명과학Ⅰ에서만 다룬다는 안습한 일면이 있다. 매우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이 넘쳐 변태 취급받는 교사 이외에는 아무도 중요시 하지 않는 것이 한국 현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과학탐구실험 교과에 첫 단원이 이것을 담고 있다.
과학적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 과학혁명인류 문명의 궤적을 극적으로 바꾸는 계기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원동력이었던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학문적인 논쟁거리가 남아있다.

2. 가설-연역 모형


이하의 도식은 과학 교과서 등에서 종종 소개되는 과학적 방법의 이른바 '''"가설-연역적 모형(hypothetico-deductive model)"'''이다. 그 유래는 플라톤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나, 이런 발상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사용한 최초의 대표적인 전거로는 크리스티안 하위헌스의 《빛에 관한 논술》이 있다.
다만 가설-연역 모형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모형"일 뿐이며, 과학사적으로나 과학철학적으로나 많은 반례에 부딪힌다. 이를테면 사회과학, 의학, 공학 등에서 본 모형을 그대로 적용시키는데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데이터를 축적-분석한다.[1]

2.1. 관찰


과학자의 특정 연구 동기, 또는 이미 이루어진 다른 사전 연구들을 바탕으로, 특정 대상의 '''반복적, 객관적'''인 관찰을 통해 어떤 종류의 '''패턴'''을 찾아낸다.

2.2. 가설


특정 대상을 관찰한 뒤 이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가설에 의거하여 대상을 '''예측한다.''' 여기서 가설은 그 자체로 대상의 설명은 가능하나 아직은 그 타당성이 검증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설명을 말한다. 같은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개의 가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다.
가설과 이론은 일반적인 '자연 언어'보단 수학적 모델로 표현된다.

2.3. 검증/입증


주어진 가설로부터 도출된 예측이 맞는지 그른지 검증(test)한다. 가설을 입증하거나 반증할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실험은 모든 불필요한 변인들이 사전에 탐지되고 '''통제'''(control)된 상태에서 시행된다. 인과관계의 검증을 위해, '''실험군'''(EG)과 '''대조군'''(CG)을 설정하고, 가설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변인을 '''처치'''하여 유의한 차이가 있는지 살핀다. 결과 데이터를 분석하여, 두 집단의 차이가 가설이 예측한 것과 같다면 가설은 입증된다. 만약 가설이 반증된다면 새로운 가설을 세운다.
다만, 모든 과학분야에서 쉽게 실험을 할 수는 없다. 특히 의학이나 경제학같이 윤리적/현실적 제한이 걸리는 분야에서 실험하겠답시고 "심장세포의 작동원리를 알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조져보겠습니다"나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알기 위해 한국경제를 1년간 공산주의로 바꿔보겠습니다"같은 짓을 할 수는 없기에, 아래와 같이 시뮬레이션, 관측, 통계, 증명등 준실험적 방법을 사용한다.

2.3.1. 사례연구(Case Study)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윤리적 제한에 걸리는 의학, 사회과학이나 현실적으로 기업을 만들어서 실험하기 힘든 경영학같은 분야 등은 사례연구를 주된 방법론으로 다룬다. 병에 걸린 환자 개개인에 대한 분석이나, 면접법, 참여관찰법 등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 개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연구는 '일화적 연구'라 하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의 위험성을 비롯해 여러 논리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엄밀한 과학적 증거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2] 그러나 성공한 이론들을 비롯하여 무수한 가설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에 아직도 사례 연구가 실행되고 있다.

2.3.2. 통계적 방법(Statistical Method)


가설 연역 모형의 노드로는 들어가 있지 않으나, 실질적으론 넓은 의미에서 방법론의 일부로 취급된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 수백명이 수만번의 실험, 관찰을 하여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것을 통계분석하여 쓸모없는 데이터를 걸러내고 또 걸러내어 하나의 가설이나 이론을 만든다. 과학자들의 방대한 네트워크와 과학 공동체로 연구가 공동 진행되는 현대에 있어서, 통계학은 없어선 안될 요소다. 물론 통계는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곧바로 인과 관계로 확장시켜서는 곤란하다. '폭력적인 게임->폭력적 성향'라는 가설이 있다고 하자. 폭력적인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많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저 가설이 맞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연구를 '폭력적인 사람→폭력적인 게임을 함'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추가적으로 인과 관계를 검증해야 한다.

2.3.3. 증명(Proof)


수학에서는 이 부분을 실험 대신 증명으로 한다. 다만 이건 귀납적인 검증[3]이 아닌 공리 상에서 맞거나 틀리거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학은 과학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2.4. 이론(Theory)


반복된 실험을 통해 '''재현성'''이 확보되어 충분히 입증된 가설은 이제 이론 체계 속에 포함된다. 이론은 여러 종류의 다른 관찰들을 같은 틀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더 넓은 체계를 제공'''하며,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루는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

3. 배경 및 논쟁


과학적 방법에 관해서 꽤나 야단법석들인 것 같다. 나는 과학적 방법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과학적 방법을 갖고 뭘 하질 않는 사람들이라고 감히 생각한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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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 브리지먼, "과학적 방법에 대하여"

'과학적 방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전통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여겨졌다. 이를테면 과학적 방법의 준수 여부는 '''유사과학'''을 가르는 한 가지 척도가 된다고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흔히 대중매체 등에서는 '과학적 방법'이라는 특정한 방법론이 있으며, 이는 어느 순간 탁하고 생겨난 발명물이라고 묘사되고는 한다. 하지만 현대의 많은 과학자, 과학사학자, 과학철학자들이 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은 "모든 과학적 탐구가 따라야하는 유일한 과학적 방법이란 것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과학적 활동은 세부 분야마다, 과학자마다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3.1. 과학철학적 배경


생물학, 천문학 등이 발생한 고대 이래 '''"과학적 활동을 단순한 믿음, 편견 등과 구별시키는 특징이란 무엇인가? 왜 그런 과학적 활동은 객관성과 합리성을 띠는가?"'''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던진 질문이었다.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서양 철학사에서 이러한 질문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고, 이는 현대의 과학철학이 성립하는 토대가 되었다.
누군가는 과학적 방법에 대한 고찰이 계몽주의의 시작이라고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과학적 방법은 주로 실험관찰을 사용하는 귀납적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대 이후 귀납법을 제대로 대우해준 것은 프랜시스 베이컨가 말한 "신기관"(Novum Organum)은 귀납적 방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인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인 <오르가논>(Organum)에 대한 안티테제를 표방한 것이다. 이 맥락에서는 중세의 연역적 방법과 신학적 방법과 구별되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베이컨은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자는 아니였지만, 이 뒤로 영국에서 경험론 전통을 만들며 유럽대륙의 합리주의 철학과 함께 근대 서양철학의 중요한 두 기틀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경험론에서 과학적 방법에 큰 영향을 미친 학자는 존 로크, 조지 버클리, 그리고 특히 데이비드 흄이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주장은 지식은 이데아같은 외부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경험, 다시 말해 지각기억에만 의존한다는 것으로, 경험에 의존하는 귀납법은 당연히 사변적인 형이상학보다 제대로 된 지식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 것. 흄은 극단적으로 "어떤 책에 양이나 수를 따지는 추상적 추론이 담겼는가? 그 책에 사실이나 존재 문제를 따지는 실험적 추론이 담겼는가? 둘다 아니라면 '''불구덩이에 집어 던져라'''."는 식으로 신학형이상학을 신랄하게 디스했다.
그렇다면 경험론자들이 귀납지상주의 이런거였냐 싶을텐데, 그런데 이때, 흄은 과학적 방법에 대해서도 귀납의 문제라는 중대한 카운터펀치를 날리는데, 내용은 이렇다.
  1. 우리가 아는 세상은 우리 감각으로 지각한 것들이 모인 것이다. 다시말해 여태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이다.
  2. 우리가 지각한 것만으로 가설을 만든다면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3. 왜냐하면 앞으로 우리가 지각하게 될 것이 여태까지 우리가 본 것과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와 미래는 비슷할 것이다.
  4. 그런데 3번도 가설일 뿐이다. 가설을 정당화하려는데 가설에 의존하는 건 순환논증이 아닌가? 논리적 오류다.
  5. 그러니까 2번도 주장할 수 없다.
  6. 귀납을 정당화하려면 2번말고는 별다른 수가 없다.
  7. 결론적으로 귀납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없고, 그럼에도 여전히 써야만 한다.
즉 귀납은 논리학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지금까지 백조는 하얀색이여도 내일 검은 백조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며, 귀납적으로 이론을 만들었어도 내일 갑자기 틀려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귀납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국의 경험론 전통을 밀고 나가니 역으로 귀납의 한계를 깨달은 것. 이러한 사고방식은 학자가 자신의 이론, 방법과 결과에 확신하지 않고 검증에 검증을 거치는 과학자로서 갖춰야만 하는 태도를 제시하는 과학적 회의주의의 토대를 만들어냈고,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적 방법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통계학이 발전한 것도 이런 맥락인데, 실험을 하고 가설을 만들어도 이것이 맞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알 수 없다면, 그나마 검증할 방법은 '''확률'''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정도를 따지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통계학이 내라는 통계는 내다 말고 뜬금없이 확률로 떡칠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때문으로, 어떻게든 가설이 믿음직하다는 것을 제시하려는 인류문명의 안간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의 영향을 크게 받은 이마누엘 칸트는 근대철학의 합리론경험론이라는 두 계통의 철학을 통합햐 <순수이성비판>이라는 걸작을 내놓았다. 칸트가 집중한 것은, 그렇다면 경험을 가능하게 할 원칙은 무엇인가?에 대해 탐구를 나선 것이다. 경험을 하려면 지각을 하고 기억을 해야할 것인데, 뜬금없이 인간이 지각하는 능력은 어디서 온 걸까? 그리고 이걸 믿어도 될까? 즉, 인간의 순수이성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이다. 칸트의 이론은 근대철학의 무수한 경험위주, 이론위주 사고방식에 대한 이론과 갈등을 수용하고 봉합했다고 평가받으며 혹자는 칸트 이후로 진정한 객관적인 철학이 시작했다고 할 정도로 과학철학사를 넘어 철학사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영미철학이라고 불리는 분석철학계 전통에서 논리 실증주의, 비트겐슈타인, 칼 포퍼, 토머스 쿤 등 쟁쟁한 철학자들이 모두 한번씩 해당 문제에 발을 걸친 바 있지만, 여전히 '과학적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된 견해는 없다. '과학적 방법'에 대한 상식적인 견해는 여러가지 강력한 반론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방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귀납연역적, 즉 논리적으로 정당화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후에 과학을 정당화하는 이론에도 역시 연역적으로 과학을 설명하는 데 근접했냐 아니냐가 중요한 비판기준이 된다.
칼 포퍼의 '반증주의' 등은 이런 갖가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20세기 중반에 제시된 나름의 해법이다. 과학의 합리화는 연역적 가설인 "이 가설에 대한 반례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고, "신의 존재"와 같이 반례를 본질적으로 찾을 수 없는 명제나 가설은 비과학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윌러드 콰인의 뒤앙-콰인 명제에 의해 논박되었다. 분석명제를 포함한 모든 명제는 경험과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 반증될 수 있다. 만약 반증 불가능한 것이 비과학이라면 그것을 설명하는 새로운 가설을 끼워넣어서 아직 반증되지 않은 과학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사기같아 보여도 이 과정에는 아무런 연역논리적 오류가 없다. 결국, 어떤 식이든 추가가설(Ad Hoc)을 끼워넣어서 과학적 반례를 합리화하는 가설을 끼워넣는다면 논리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또한 토머스 쿤패러다임론으로 여태까지의 과학이 실제로 반증주의적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는 실증적 연구가 뒤따르면서, 반증주의 또한 비주류 가설로 내려앉았다.
다양한 특수과학 분야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는 현대 과학철학계에서 '(유일한) 과학적 방법'이 존재한다는 가설은 그리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3.2. 과학자들의 견해


과학자들은 대체로 이러한 논쟁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과학자들은 철학적인 설명이 아니라 체험으로 과학적 방법론을 익히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더라도 대부분 현대 과학적 방법론의 기반이 된 반증주의를 따르며 그 뒤에 이어진 담론에 대해서는 굳이 관심을 두지 않는 편.

지네가 여느 때처럼 아름답고 복잡하게 수없이 많은 발을 놀리고 있었다. 그러자 한 개미가 와서 지네에게 물었다. '''"정말 그 춤이 아름답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발을 다 완벽하게 조종하는거야?"''' 지네는 잠시 멈춰서 생각하고는, 결국 "나도 모르겠어"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네는 자기의 발을 가만히 보며 다시 춤을 추려고 했다 -- 근데 더이상 춤을 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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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물리화학자였던 과학철학자 Janet D. Stemwedel에게 물리화학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가 들려준 우화

그러나 초끈 이론이나 진화심리학 등의 '과학성'이 논란이 될 때에는 과학철학 논의가 대두되고는 한다. 끈 이론 대 포퍼라치원문. 이 두가지의 공통적인 문제는 모두 '''실험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초끈 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하려면 태양계 크기의 입자가속기가 필요하고, 진화심리학을 검증하려면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실험이 불가능하고 다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신빙성을 추측할 수만 있을 뿐이다. 이때문에 가설-연역적(hypothetico-deductive) 모형 중 3번 실험절차가 없다시피하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지경에도 과연 초끈이론과 진화심리학은 과학의 분야로 취급할 수 있는가? 물론 과학자들은 논란이고 뭐고 신경끄고 자기 연구주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에 대한 정의를 과학자가 하는 것이라고 처리하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파인만의 강연 참조.

3.3. 반증주의


대한민국의 수많은 까마귀들을 검사해서 모든 까마귀는 검은색이라는 명제를 도출했다면, 이는 과학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외의 지역에도 까마귀가 살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고, 반례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명제는 과학적 방법으로 뒷받침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다른 지역에도 까마귀들이 살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환경이 까마귀의 색에 영향을 줄 개연성이 있다면 이는 더이상 과학적 방법론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었다고 할 수 없다. 연구 내용이 지역적으로 편향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연구의 범위를 넓혀서 전세계의 까마귀를 광범위하게 조사했고 그 대상이 지역이나 기타 다른 요소로 편향되었다고 볼 이유가 없다면, 다른 말로 하면 다른 편향적인 요소를 배제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해당 명제는 다시 과학적 방법으로 뒷받침한 것이 된다.
물론 이는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까마귀의 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그 때까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요소가 발견되어 해당 연구의 대상이 편향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면, 다시 "모든 까마귀는 검은색이다." 라는 명제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 후 흰 까마귀의 존재가 발견된다면 해당 명제는 당연하게도 과학적으로 반박된 것이 된다.
'''즉,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연구를 수행했더라도''' 이미 다른 요소가 발견되었거나 흰 까마귀의 존재가 발견되었는가 여부에 따라서 '''그 연구는 과학적 방법론을 따른 것이 될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과학적 방법론은 "현재에 있어서 가장 타당한 명제"임을 입증하는 것이므로, 주변 상황에 따라서 그것이 '가장 타당한' 명제임을 입증한 것인지 아닌지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반증'이 과학적 방법론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A와 B가 있을 때, B가 반증된다는 것은 그만큼 A가 '가장 타당한' 것이 될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반증'이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 '가장 타당한' 명제라는 것은 현재까지 밝혀진 것을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예언'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0년에는 일요일마다 비가 왔다"는 것은 단순히 관찰의 결과일 뿐이며, 우연의 소치일 수 있다. 일요일마다 비가 오는 것은 우연으로는 매우 낮은 확률로 일어나는 사건이겠지만, 그런 식으로 적용 가능한 우연은 수없이 많기 때문에 그 중 하나가 적중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일요일마다 비가 온다"는 명제를 도출하고 "2010년에도 일요일마다 비가 올 것이다" 라고 예언하여 이를 적중시킨다면, 이는 "2000년에는 일요일마다 비가 왔다"보다 훨씬 가치있는 명제가 될 것이며, '일요일'과 '비가 온다'는 사실 사이에 실질적인 인과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반례가 발견되기 전까지 그렇겠지만 어쨌든 그 전까진 매우 유용한 명제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즉 실험 결과에 의해서 입증할 수도 반증할 수도 있는 내용을 예언할 수 있는 명제가 훨씬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명제는 수도 없이 많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반증 가능하지 않은 명제는 과학적으로 가치가 없다.
다만, 예측과 어긋난 이론이라도, 여전히 폐기되지 않기도 한다. 아이작 뉴턴의 역학 이론의 예측이 수성의 실제 움직임과 어긋나는 것이 알려졌을 때, 과학자들은 뉴턴 역학을 폐기하기보다는 수정을 통해서 뉴턴 역학에서 예측한 모든 것과, 수성의 움직임을 마찬가지로 예측할 수 있는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후 상대성 이론을 만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사용해서 수성의 근일점 이동 현상을 오차가 거의 없이 멋지게 설명했고, 이는 상대성 이론이 '''인간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린 위대한 이론'''으로 급부상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된다.[5]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턴 역학은 여전히 널리 사용되는 중이다. 상대성 이론이 더 맞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활용 사례에서 뉴턴 역학으로 계산한 것과 상대성 이론으로 계산한 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6]

3.4. "왜?", "어떻게?"


흔히 과학의 본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인용되고는 한다.

과학은 "어떻게?(How?)"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뿐, "왜?(Why?)"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는다.

이런 경구가 널리 받아들여진 맥락은 뉴턴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안했을 때의 배경에 있다. 중력 현상 자체는 고대부터 물리학적 탐구의 대상이었고,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질량을 가진 물체들이 '어떻게' 서로를 당기는지, 즉 어떤 질량을 가진 물체가 얼마 떨어져 있으면 얼마의 힘으로 다른 물체를 당기는지를 알 수 있는 법칙을 성공적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이론이 중력 현상을 일으키는 '물리적 기제/메커니즘'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고 비판했으며, 이러한 지적은 일반 상대성 이론이 확립된 지 오래인 21세기 초 현대까지도 중력자가 발견되지 않았고 양자중력(quantum gravity)이 규명되지 않은 이상 유효하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의문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중력자는 왜 생기며 그 메커니즘의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추가적인 질문이 생긴다.[7]
이런 지적에 맞서 뉴턴은 '물리적 메커니즘'을 제안하는 것은 스스로의 "실험 철학"에서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이며,[8] 그저 귀납추론에 의거해 만유인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반론을 펼쳤다. '물리적 메커니즘'을 제안하는 것이 "왜?" 질문에 대한 답임을 고려할 경우, 이런 뉴턴의 대답은 이후 과학자 사회에서 "과학은 '왜?'가 아닌 '어떻게?' 질문에 대해서 대답할 따름이다"라는 신념의 기틀이 되었다.
다만 과학은 분명히 아주 많은 '왜?' 질문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을 제공한다.

Q. 환자가 '''왜''' 독감에 걸린건가요?

A.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례는 "왜?"라는 질문이 바로 '''원인'''을 묻는 것이라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4원인론을 통해 "왜?"라는 질문이 어떻게 여러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지를 보인 바 있다. 이처럼 "과학적 설명", "인과", "법칙" 같은 여러 개념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 자체로서 깊은 논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더불어 과학 이론이 아주 깊이 발전한 현대에 '과학적 설명'은 '왜?'가 됐건 '어떻게?'가 되었건 난해할 수 밖에 없다. 이를테면 리포터의 "왜 자석끼리 서로 맞대면 서로 달라붙거나 서로 멀어질려는 힘이 발생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리처드 파인만1983년 인터뷰는 '명쾌한 대답'을 주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준다. 요컨대 현대 과학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서는 "왜?" 대답에 대한 대답 자체를 이해할 수 없으며, 곧 일반인 수준에서 얻을 수 있는 '명쾌한 대답'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회과학을 다룬다면, "왜"라는 질문은 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아주 당연하며 꼭 해야만 하는 질문이 된다. 이 점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 다소 다른데, 자연과학은 자연법칙의 근본적인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 반면, 사회과학은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학문이므로 그 근본목적을 인과관계의 규명에 둔다. 예를 들면 물리학자들은 왜 중력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탐구하지 않고 그러할 필요도 없으나, 경제학자들은 왜 전세계적 불황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더불어 설령 "왜?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과학, 나아가 물리학의 핵심적 과제가 아니라도 가정하더라도 "왜?" 질문이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물리학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인류 원리 등과 같이 철학적으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왜?", "어째서?" 같은 질문은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현상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면, 만유인력의 법칙은 과연 나올 수 있었을까? 요컨대 과학이 '왜?'에 관한 학문이 아닐지는 몰라도, 더 깊이있고, 새로운 과학을 탄생은 바로 '왜?', '어떻게?'라는 질문에서부터 비롯된다. 즉, 이러한 질문들이 절대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에 흥미가 있고, 과학과 관련한 직업이나 공부하는 입장에서라면, 당연히 이러한 사고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왜?'라는 질문에 대해 과학이 답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교육에 있어서 몹시 중요한 모습을 보인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과학이 던지는 '"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상당 부분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어렸을 적에 이에 매료되어서 과학에 빠져들고 과학자가 된 것을 보자.

4. 여담


문명 시리즈에서는 시리즈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이 기술을 기점으로 근세근대의 구분이 명확해 지는 편이다. 또한 그에 따른 어드벤티지가 상당히 큰 기술이기도 하다. 문명 3에서는 진화론 불가사의를 건설할 수 있으며 이를 건설하면 '''무료기술을 두개'''씩이나 제공해준다. 문명 4의 경우에는 이 기술을 연구하면 '''석유'''를 발견할 수 있으며, 산업 시대로 발전할 수 있는, 테크트리의 길목이다. 문명 5에서는 과학적 이론(Scientific Theory)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며 과학력을 대폭 늘려주는 공립학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공장을 지을 수 있는 산업화와 함께 산업시대를 여는 가장 중요한 연구 중 하나이다.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대학 연구 3단계의 기본 이름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와 합리적 사고의 구사법이라는 제목의 팬픽의 22화 제목이기도 하다.

5. 관련 항목



[1]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9290 p30-33[2] 그래서 정신분석학은 과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개 다른 연구 없이 사례 연구들만 근거로 사용하기 때문이다.[3] 수학적 귀납법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사실 귀납법이 아니라 연역법이다.[4] It seems to me that there is a good deal of ballyhoo about scientific method. I venture to think that the people who talk most about it are the people who do least about it[5] 또 하나의 계기는 아서 에딩턴에 의해 관측된 중력 렌즈 효과[6] 게다가 상대성 이론으로 계산하는 건 같은 문제를 푸는 것인데도 뉴턴 역학으로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것도 모자라 뉴턴 역학이 더 오래 전에 나온 탓에 더 많은 풀이 기법이 발달되어 있는 상황이다. 사실 경제적인 이유에서라도 그 조금의 차이가 유의미하게 중요해지는 상황이 아닌 이상 좀 틀리더라도 쉽고 익숙한 방법으로 푸는 것이 맞다. (어차피 '그 조금의 차이가 유의미하게 중요해지는 상황'이 아니면 그 조금의 차이가 장비의 오차 같은 것에 묻혀버릴 상황일 것이기에 이는 더더욱 지당하다.) 이는 상대성 이론을 양자역학으로 바꿔도 똑같이 성립한다.[7] ...고 여겨지나,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동역학적으로 자연스럽게 시공간과 에너지 분포가 엮여 (coupling) 있는 것이 '''중력의 원인'''임이 이미 밝혀졌다. 해당 문서를 참고하자.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추가적인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시공간이 왜 하필 로런츠 공변해야 하는가부터... 사실 보면 알겠지만 이런 질문은 끝이 있을 리가 없다...![8] 다만 뉴턴 본인은 이후로도 계속 '중력의 메커니즘'에 대한 개인적인 나름의 가설들을 꾸준히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