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다름
Gendarme
1. 개요
중-근세 시대의 프랑스의 중기병 맨앳암즈 부대를 부르는 말로 어원도 프랑스어로 맨앳암즈를 뜻하는 'homme d' armes'였다. 장다르므리(Gendarmerie)라고도 부르는데, 이 경우엔 현대에 와선 역사적인 의미의 장다름보다는 국가 헌병대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다.
이미지도 흔히 기사라 하면 생각나는 판금갑옷을 입고 말에게도 마갑을 입힌 중무장한 창기병들이었다.
2. 역사
장다름의 탄생 배경은 백년전쟁 만이 아닌 중세 봉건제의 몰락과 연관되기도 하는데, 군주와 제후(기사)에겐 '40일간의 복무'라는 계약이 있었는데 이는 제후가 군주를 위해 약 40일간 자신의 군대와 함께 복무함으로서 군사력을 양도하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 40일이 넘으면 군주는 제후에게 땅이든 돈이든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했으며 막상 이 40일도 군주의 입장에선 생각보다 짧다는 문제가 있었다.[1]
결국 샤를 7세 시기에 1년 이상의 복무 조건을 계약으로 제한적 형태의 상비군인 장다름이 설립되었는데, 이들은 귀족 출신도 있었으나 부르주아와 같이 자력으로 무장을 갖출수있던 상류층 평민들도 다수 포함되었다.
화약 무기의 시대에는 이들은 중장갑과 기병으로서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서 라벤나 전투에서는 적 기병을 저지하거나, 포병과 협동하면서 기동력을 살려 적을 각개격파시키는등 큰 활약을 했지만, 파비아 전투를 통해 결국 중장갑 충격기병의 한계 또한 드러났기에 16세기 부터는 기병창을 포기하고 두자루의 휠락식 권총으로 대체되었으며, 갑옷 역시 경량화되었다.
이후 여러차례 재편성을 반복하던 장다름은 1788년 프랑스 경찰에 편입되면서 해체되었다가, 1791년 변한게 거의 없이 프랑스 국가 헌병대로 재편되어 민생을 보조하고 치안을 지키는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장다르므리(Gendarmerie)는 헌병, 국가 헌병대를 뜻하는 의미로도 쓰이게 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기에는 기존에 존재하던 장다름(프랑스 국가 헌병대)이외에 별도로 프랑스 제국 근위대소속의 정예 헌병대(Gendarmes d'élite)가 창설되었지만 1815년에 해체된다.
[1] 왜 굳이 40일이냐면 제후 역시 왕에게 충성하긴 하지만 자신의 영지에선 그곳을 통치하는 군주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후도 자신의 영지를 관리해야 하다보니 시간이 촉박했고 어떻게든 여유기간을 만들어낸다면 약 40일 정도 남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