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비군

 

1. 개요
2. 역사
3. 기타


1. 개요


'''상비군'''()은 '국가 비상사태에 항상 대비할 수 있도록 편성된 군대. 또는 그런 군인'으로 전시와 평시 구분 없이 편제된 군과 군인을 지칭하는 말로 국가에 군사적 혹은 기타 위기가 닥쳤을 때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부대를 뜻한다.
징병제모병제의 구분에 상관 없이 대부분의 현대 국가는 상비군을 가지고 있으며, 상비군 외에 예비군을 별도로 운용하는 것이 통상적이다.[1]

2. 역사


평시에도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이 전쟁에서 유리하다는 것은 고대부터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시대와 장소를 떠나서 군대를 육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많은 비용과 인력 등 자원이 필요했고, 이는 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데 큰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상비군을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즉 국가 구성원 대부분이 생업에 종사하여야 하는데 오로지 군대 임무에만 종사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통치자들은 상비군을 유지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농민들을 전쟁이 날때마다 징집해 군대를 조직하는 쪽이 훨씬 흔했다. 하지만 고대라고 상비군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기록상 최초로 상비군을 보유했다고 알려진 것은 아시리아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이다.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시민들이 전쟁 때마다 소집하는 방식을 주로 취했지만 스파르타는 노예들인 헤일로타이들이 경제활동을 맡았고 지배자인 스파르타인들은 이들 노예를 무자비하게 착취했기 때문에 상시 전쟁에 대비하는 상비군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필리포스 2세도 상비군을 창설한 바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상비군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유지한 첫번째 국가는 로마제국이다. 기원전 1세기 이전까지 로마군은 전쟁이 있을때마다 소집되던 시민병이었으나,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이후 임금을 받는 직업군인들로 변모했으며, 아우구스투스의 재편 이후의 로마군은 군단병 20년, 보조병 25년의 의무복무기간을 지니며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직업군인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평시에도 농사 등의 생산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오직 군복무에만 전념했다. 약 30만 명으로 이루어진 이들 로마군이 상시 로마 제국의 방위를 담당하였다.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중세에는 고대 로마 제국과 같은 상비군은 축소되어 서유럽 국가들은 한동안 상비군의 규모가 매우 적었다. 반면 동로마 제국에서는 국력이 쇠퇴하기 전까지는 상당한 규모의 상비군을 유지했지만, 상비군만으로 군대를 조직하지는 않고 둔전병이라고 할 수 있는 테마 제도와 병행해서 운용되었다.
중세의 상비군은 국왕을 호위하고 궁궐을 지키는 친위대로 활약하거나 국경지역의 경비, 도성과 중요 도시의 치안을 담당했다. 이런 군인들은 전문 용병 부대를 고용하거나, 그 군역이 대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곧 계층이 되었다. 역사 수업에서 고려전시과를 배우게 되다보면 나오는 군인전 역시 군인들에게 세습되게 주던 땅이었고, 조선무과로 급제된 무신 관료들과 상류계층의 자제들이 주로 복무한 갑사, 훈련도감으로 본격적인 직업군인을 평시에도 대규모로 운영했다. 중세 서양의 기사들, 일본의 사무라이 등도 군역을 세습하다가 아예 신분이 계층화되어 우대된 경우다. 하지만 이들은 수만~수십만의 대규모 부대단위가 아니라 지휘관이나 장교층 또는 소규모~중간규모의 정예부대였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서양에서 본격적인 상비군이 다시 등장한 것은 절대왕정 시기였다. 사병을 가진 지방분권적 귀족들에게 눌려지내며 동양보다 왕권이 한참 열세였던 서양의 왕들이 귀족들을 누르기 위한 무력으로 상비군을 운영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상업을 적극 지원하는 중상주의가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시민 혁명을 통한 국민 의식, 여기에 산업 혁명으로 국가 단위의 경제가 크게 성장하고, 국가주의가 발달하면서 모든 국민이 징병의 의무를 지는 징병제를 도입하며 이를 통해서 대규모의 상비군을 유지하는 체제가 확립된다. 더군다나 서양국가들의 경우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같은 각종 왕조 전쟁들과 제국주의가 도래하면서 침략에 필요한 전문적인 군대가 늘 있어야 했으므로 상비군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반면 대체로 동양은 서양과 상비군의 발전과정이 달랐다. 중동에서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동양의 전제 왕권은 막강한 편이었고 신하들이 국왕을 물리적으로 위협할 사병 같은 요소는 중앙집권화 된 국가에서 찾기 힘들었다. 간혹 반란들이 일어났지만 도성 방위와 궁궐 호위를 맡은 중앙군만 잘 통솔해도 반란군을 진압할 수 있었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경우 조선은 나선정벌 이후로 이양선들이 오기 전까지 외적을 상대로 군대를 동원할 일이 거의 없었고, 일본 에도 막부쇄국정책을 시행해서 상대적으로 국내외에 평화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청나라가 그나마 정벌을 활발히 하여 몽골제국을 제외하면 중국사상 최대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지만 정복이 멈춰지고 왕조의 말년에 접어들수록 정예부대인 팔기군마저 녹슬대로 녹슬어 버렸다. 즉 동양은 근대에 가까워질수록 지역 정세와 나라가 안정됨에 따라 서양보다는 전쟁과 상비군 강화에 신경을 덜 쓴 셈이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동서양이 맞붙게 되고 식민지 쟁탈전과 세계 대전들과 냉전을 거치며 현대국가들에서 징병제로 인한 상비군은 한동안 당연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굳어졌다. 그 후 베트남전 이후로 냉전 체제가 서서히 붕괴되며 미국은 모병제로 상비군을 유지하고, 중국 역시 인구가 넘쳐나다보니 모병제로 바뀌는 등 나라 사정에 따라서 상비군을 다르게 운영하게 되었다.

3. 기타


상비군이 많은 나라로는 중국 인민해방군, 인도군, 미군, 조선인민군, 러시아군, 터키군, 대한민국 국군, 베트남군, 이집트군 등이 있다. 세계 군대의 자세한 수량은 병력#s-2.1 문서를 참고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영토가 넓고 중러 두 국가가 서로를 견제한 적도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미군을 라이벌로 하고 있어서 상비군 수가 많으며, 미국은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해 전세계를 활동무대로 하니 국토가 넓은 것을 빼고도 상비군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인도파키스탄과 오랜 대립관계를 벌였고 동북쪽으로는 중국국경분쟁을 하고 있다. 북한과 남한이 상비군이 많은 이유에 대해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터키는 위에 러시아, 밑에 이스라엘과 기타 문제 투성이 아랍국가들이 포진해 있어서 상비군이 많으며, 베트남은 위에 중국이 있어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 형편이다. [2] 이집트앙숙이스라엘이 있어서 상비군 수가 많은데, 이 두 나라는 군의 영향력이 강한 측면도 한 몫한다.

[1] 물론 인구수가 적은 미니국가들의 경우 상비군이 없는 경우도 있으며, 치안은 소규모 자경단 수준인 경찰이 유지하고 국방 문제는 인접한 국가에 편승하여 안보를 달성한다. 대표적인 예가 유럽 한복판에 있는 리히텐슈타인 공국.[2] 국토 면적은 미국 수준인 주제에 정규군이 2배 이상인 이유도, 수비할 면적이 워낙 넓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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