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
1. 후한 말의 장사태수
張羨
(? ~ ?)
유표 수하에 있던 인물.
남양 사람으로 영릉과 계양의 현장이 되어 장강과 상수 사이에서 민심을 크게 얻었으며, 성품이 남에게 굴복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 유표가 그 사람됨을 천박하게 여겨 예우하지 않음이 심했으며, 장선은 이 때문에 유표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조조와 원소가 관도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유표가 원소에게 호응했는데, 환계의 권유로 조조의 편에 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사와 옆의 세 군을 인솔해 유표에게 항거했다. 사자를 보내 조조와 만나자 조조는 매우 기뻐했으며, 조조와 원소가 전투를 계속하면서 조조가 남쪽으로 나아갈 수 없자 유표의 공격을 받았고 유표는 몇 년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했고 그 와중에 장선은 곧 병들어 죽었다.
조조가 형주를 평정할 때 환계가 장선을 위해 계책을 세웠다는 것을 알고 그를 평가하고 불러서 썼다고 한다.
1.1. 반란시기
장선의 반란은 정사 삼국지의 위지(魏志) 중 환이진서위노전' 중 환계의 부분에서는 관도대전 시기 정도로 나온다.
그런데 비슷한 기사를 후한서 '유표열전'과 유표에 대한 기록이 담긴 위지의 '동이원유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사건 발생 시기가 전혀 다르다.
후한서에 따르면 유표가 건안 3년(198년)에 죽은 장제의 무리를 받아들인 직후에 장선이 불만을 품고 자신의 통치 영역 장사에 옆 고을인 영릉과 계양까지 끌어들여 유표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제압되었고 형주 평정이 이뤄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이원유전에서는 후한서와 거의 같은 내용이나 장선이 있을 적엔 유표가 3군의 반란을 제압하지 못했으나 장선이 병에 걸려 죽고 그 아들 장역(張懌)이 태수가 되자 다시금 공격해 제압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조조의 일대기가 담긴 무제기의 기록에는 환이진서위노전에서 조조가 장선의 호응에 기뻐했다는 내용과는 달리 장선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없으며 유표에 대해서는 '''''내가 여포를 공격할 때 유표는 침범하지 않았고 관도에서의 전역 때도 원소를 구원하지 않았으니 유표는 자수지적(自守之賊, 스스로를 지키기만 하는 도적)에 불과하므로 의당 나중에 도모해야 한다(我攻呂布,表不為寇,官渡之役,不救袁紹,此自守之賊也,宜為後圖)''''' 라는 발언을 했다. 즉 환이진서위노전의 기록처럼 유표는 원소에게 호응한 적도 없고 지키기만 한 셈이다.
이렇게 사료를 비교해 보면 장선의 반역은 유표가 형주를 평정하던 시기에 가까울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삼국지 유표전에 따르면 장사태수 장선이 유표를 배반하였는데, 유표는 포위한지 몇 년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고 되어 있다. 관도대전 2년 전에 반란이 일어났으니 관도대전 당시까지 유표가 이를 진압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즉 장선의 반란은 관도대전 전후까지 계속 이어졌을 가능성도 높은데 일단 자치통감은 장선의 아들 장역까지 토벌한 시기가 200년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1.2.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3 파워업키트에서 추가되었다. 다만, 아들인 장역은 여전히 등장하지 못했다. 장선 사후에 아들 장역이 장사태수(참칭)를 물려받았다는 기록을 보면 이미 성인이었을테고 장선의 나이도 중년쯤 되었을 텐데, 요상하게도 출생년이 175년으로 설정되어 관도전투 당시 20대에 불과하게 되었다.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4/47/67/69. 특기는 상업 1, 설파 2, 견수 5. 정사의 기록이 많지 않은 장수인데 전수특기는 이상하게도 견수보다 3 낮은 설파로 전법은 수비명령이다. 일러스트는 호통을 친 얼굴로 장사, 영릉, 계양 3 도시를 선동해 유표에게 항거하려 하고 있다. 반 동탁 연합부터 관도전투 시나리오까지 계양에서 재야로 등장하는데 인재가 부족한 사섭군 진영에서 등용해 사용하다 보면 군사중신으로 활용을 할 수 있다. 202년이 사망한 연도로 유표에게 항거 중 병사했는데 어째선지 자연사 판정이 아닌 비자연사 판정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문관으로 설정된 장수 중에서 특이하게도 검이라는 무기를 들고 있다. 이는 촉한의 관료인 여예와 종요의 동생인 종진#s-1도 마찬가지.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0, 무력 45, 지력 55, 정치 66, 매력 58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4, 무력이 2, 지력이 12, 정치력이 3 하락했다. 개성은 모집, 개수, 주의는 할거, 정책은 성벽확장 Lv 3, 진형은 방원, 학익, 전법은 연노, 철벽, 업화, 강습,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유표다.[1] 그리고 출생년도가 159년으로 변경되었다. 영웅집결에서는 유표군에 처음부터 사관해 있지 않고 신야의 재야로 있으며 '''유표와 적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반영해서 혐오무장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표군으로는 어떠한 방법을 써도 장선을 등용하지 못한다.''' 대신 등애군에서 발견하면 부하로 쓰기도 한다. 참고로 유표도 장선을 극도로 싫어하여 혐오무장으로 설정되어 있고 다른 장수는 한숭이다.
삼국전투기에서 장수의 부하인 장선과 동일인물로 나온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47, 무용 36, 지모 45, 정무 55, 인사 41, 외교 49의 능력치로 162년생으로 나온다.
2.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張先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장수가 유표와 동맹을 맺고 남양, 강릉의 여러 현 등에서 봉기를 일으키게 하자 198년 여름 4월에 조조가 헌제를 뵙고 장수가 난을 일으켜 군사를 이끌고 정벌해야 한다고 상주해 진군했는데, 장수는 조조가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유표에게 호응해달라고 했고 이 때 장선은 뇌서와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적을 맞이하러 성을 나갔다.
장수가 조조를 도발하면서 조조가 크게 노해 허저를 내보자 장수의 명에 따라 허저와 싸우러 나갔다가 겨우 세 번 어울리고 허저에게 죽었다.
2.1. 미디어 믹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 등장하고 쭉 출연이 없었다가 삼국지 13 PK에서 오랫만에 복귀했다. 능력치는 59/68/48/35. 특기는 견수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견수이고 전법은 교란. 일러스트는 도검을 들고 허저와 맞서려는 모습이다. 생몰년도가 175~197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56, 무력 67, 지력 38, 정치 21, 매력 30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3, 무력이 1, 지력이 10, 정치력이 14 하락했다. 개성은 저돌, 주의는 아도, 정책은 성벽확장 Lv 2, 진형은 봉시, 전법은 없고 친애무장은 뇌서,[2] 혐오무장은 없다. 전작에 비해 사망년도가 198년으로 변경되었다.
진삼국무쌍 6 완성 전투 전편에서는 환영병이 나타나는 제기가 있는 장소에서 너희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대사를 하면서 복병으로 나타난다. 완성 전투 후편에서는 완성 바깥에서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뇌서와 함께 도개교를 확보하기 위해 쓰러뜨려야 하는 상대이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헬보이의 로저 더 호문쿨루스로 나온다. 장사태수 장선과 동일인물로 나오지만 장사태수일 때 행적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가상인물인 장선이나 다름없다. 남양군 출생으로 태생이 천해 유표에게 인정받지 못하자 장수 휘하에 들어갔다고 나온다. 완 전투 (6)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완 전투 때는 조조가 1진의 포위를 뚫고 육수를 넘으려고 할 때 2진으로 포위해 조조를 잡고자 하나, 조조를 탈출시키기 위한 전위의 부장 밤송이에게 저지당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결국 그 때문에 조조는 놓쳤지만 이후 밤송이가 재등장이 없는 걸로 보아 밤송이는 어떻게든 사살에 성공한 것으로 추측된다.
양 전투에서는 가후의 명으로 미리 동남쪽 성벽 부근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동남쪽으로 쳐들오온 조조군에게 일제히 반격을 가해 성벽에서 몰아낸다. 이후 유표군에서 보낸 문빙이 퇴각하는 적을 쫓으라고 하자 장선이 문빙과 조조군을 추격하는데, 문빙에게 너무 서두른다면서 조조군이 복병이라도 심어놨으면 어쩌냐고 염려했다. 문빙이 조조의 각 퇴각로를 따라 척후를 풀어놓고 복병이 있다면 미리 알린다고 해서 안심했지만 복병에 걸려서 패하게 되고, 장선은 이통에게 사살된다.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서는 장수의 부하로 세상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활을 잘 쏘며, 이준경이 형주의 외교를 하러 갔다가 형주의 다툼에 휘말리게 되면서 장수의 공격을 받게 된다. 장선이 이준경을 노렸지만 이준경을 호위하는 장수들에게 저지되었으며, 이후 일어난 등현 전투에서 이준경이 이끄는 군사와 싸우다가 전사한다.
3. 삼국시대 오나라의 일남태수
張善
(? ~ ?)
266년에 일남태수가 되었고 백성들이 황금 오리를 주워 바쳤는데, 장선은 박식하고 이치에 통달해 그 연도와 개월 수를 따져보아 그 황금 오리들이 진시황의 무덤에 있던 황금 오리임을 알았다.
진시황이 무덤을 만들 때 천하의 기이한 것들을 모으고 공인들을 생매장했는데, 진시황은 진귀한 보물들을 모두 무덤 속에 두면서 강, 바다, 산맥 등 지형의 모습을 만들었다. 나무로 배, 노를 만들고 금, 은으로 오리, 기러기 등을 만들었으며, 유리, 보석 등으로 거북, 물고기를 만들고 바다 속에는 옥으로 고래를 만들었다.
진시황의 장인들은 무덤에 생매장당했고 등촉을 대낮처럼 줄지어 밝혀놓았으며, 무덤 안에서 용, 봉황, 선인의 상을 만들면서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기록했다. 한나라 초에 발굴했고 전적을 통해 조사했지만 용, 봉황, 선인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없었으니, 생매장당한 장인들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3.1. 관련 사료
- 태평광기
- 습유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