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빙

 


文聘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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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로 는 중업(仲業). 유표 수하 장수이자 위나라의 장수.

2. 정사


남양의 완 출신으로 본래는 유표 휘하에 있었다. 주로 북방의 수비를 맡았으나 유표 사후 형주를 노린 조조가 남하하고 유표의 후계자, 유종이 항복하기로 하자 조조의 수하로 들어온다. 유종이 항복하러 갈 때 "제가 형주를 지키지 못했으니 여기서 죄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하고 조조가 한수를 넘은 다음에야 조조의 수하가 되었는데, 이때 유표, 유종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유비는 장판파에서 도망 중이었는데 조조는 문빙에게 호표기를 맡겨 조순#s-1과 함께 유비를 추격하는 임무를 맡긴다. 이때 이들은 하룻밤 사이에 3백 리를 달려 유비를 따라잡아 공을 세운다.
조조는 형주를 평정한 뒤 문빙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리고 강하태수[1]를 맡겼으며, 조조가 적벽에서 참패한 뒤 조인은 남군에서 주유와 싸울 때 관우가 북상해 형주 북부를 침공했으나 문빙은 심구에서 악진과 함께 이를 격퇴하여 연수정후로 봉해지고 토역장군이 되었다. 또한 한진에서 관우군 수송대를 털은 적도 있다.
이를 비롯해 강하를 맡게 된 순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장강과 접해있는 오나라와의 국경 지대인 강하를 '''수 십 년간''' 막아낸 '''철벽 수문장'''.
조조 사후 조비이릉대전에서 승리한 직후의 손권공격했으나 패배했을 때, 손권은 5만 여 병력으로 강하를 포위했지만 순우의 복병에 속은 손권의 삽질로 대승을 거둔다. 위략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성책이 무너졌음에도 백성들은 논밭일로 바빠 미처 성책을 보수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문빙은 일부러 조용히 있어 의심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여 자신은 집안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문빙의 계책대로 손권은 의심을 품어 물러갔다고 한다.[2] 또한 강하에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공경받았다고 한다. 군사면 군사, 정치면 정치 어디 한 군데 꿀리지 않는 올라운드형 장수다.
황충, 감녕과 더불어 유표의 아래에 있었던 명장인데 감녕은 황조의 휘하에서 홀대받다 손권에게 귀순해버렸고, 황충[3]은 대체로 한현의 부하로만 알려져 있어 유표의 부하로서는 문빙만 유명하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유표 밑에서의 대표적인 장수로 양양성을 지킨다. 채모가 유비를 죽이려고 할 때는 왕위와 함께 조운을 끌어내는 역할이 주어진다. 유표 사후에는 그의 아들인 유종이 뒤를 잇자 그를 모신다. 당시 피신 중이던 유비와 백성들의 양양성 입성을 채모가 거부하자 분노한 위연이 반기를 들었으나, 문빙이 위연에 대항해 싸운다. 사시부터 미시까지 싸워도 판가름이 나지 않았으나 위연의 병사들이 흩어지자 위연은 문빙에게서 몸을 뺀 뒤 한현에게로 의탁했다.
유종조조에게 항복한 후, 조조는 유표의 옛 장수들을 불렀는데 문빙만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조가 사람을 보내려고 할 무렵 뒤늦게 나타나자 조조가 늦은 이유를 물었는데, 문빙은 주군의 땅을 지키지 못했다며 탄식하고 눈물을 흘렸고, 조조는 문빙에게 충신이라며 감탄하고 문빙을 강하태수로 삼았다. 유표 휘하에서 함께 세트를 이루었던 왕위는 투항 후 유종을 호위하다 우금에게 죽기 때문에 항장 중에선 유일하게 활약한다. 이후 장판파 전투에서 유비군을 추격했으나 유비가 문빙을 알아보고 주인을 저버린 역적이라 꾸짖자 부끄러워하며 그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채모장윤에 비하면 엄청난 개념인 기믹.
뒤이은 적벽대전에서 정욱황개의 화공을 간파하자 자신이 수중전에 능하다며 자진해 나서서 배를 막으려 하지만 어깨에 화살을 맞아 물에 떨어지는 봉변을 당한다. 그래도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조조의 적벽 탈출 때에 뒤따르는 몇 안되는 장수 중에 하나이며 이후에도 형주에서 일어난 전투에 참전한다. 그러나 이후에서는 연의에서의 등장은 많지 않은데, 동작대 활쏘기 이벤트와 나중에 한중 공방전에 참여하고 모용열이라는 장군이 조운에게 죽을 때 그가 문빙의 부장이라는 기술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조비가 오나라를 침공하고 실패했을 때, 조비를 업고 후퇴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보통 연의에서 항장 출신 장수들은 일 대 일 대결에 동원되어서 사망하거나, 아니면 후반 스토리 비중이 높아서 살려두는데 문빙만은 특별히 활약시킬 것도 아니면서 왠지 어정쩡하게 살려두었다. 아마도 항복할 때 그나마 양심적으로 처신한 게 마음에 들었을듯?

4. 미디어 믹스



4.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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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도 등장하여 왕위와 함께 유비를 호위하는 조운을 따로 분리시키려 하는 것으로 첫 등장.

4.2.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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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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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서는 지력이 낮았으나 점점 상향되어 지력이 60대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변모한다. 시리즈 대대로 수전 능력이 갖춰져 있는데 유표 때 부터 위나라 때까지 평생 형주쪽에 있던 점을 반영한 거로 보인다. 유표군 소속일 때는 황충, 감녕, 위연과 함께 주력 무장이며 조조군 소속일때는 유일하다시피 한 수상전의 에이스.
삼국지 3에서는 지력이 20대 수준의 말도 안되게 낮은 지력이라 상당히 안습하긴 하지만, 그래도 무력과 육전지휘가 어느 정도 되기 때문에 채모와 더불어 유표군의 쌍두마차라 할 수가 있다. 능력치가 육전지휘 78/수전지휘 71/무력 84/지력 24/정치력 18/매력 65에 야망 7, 운 7, 냉정 9, 용맹 11이라 유표의 휘하에서는 꽤나 쓸 만하다. 유표 세력의 무장 중 무력 전체 1위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력은 손견, 손책은커녕 황개보다도 아래다. 채모와 마찬가지로 유표의 입장에서는 對손견전에서 중요한 활약을 할 장수인데, 한숭을 최대한 빨리 강하태수에서 짤라버리고 그 자리에 문빙을 앉혀야 한다. 그리고 손책이 임관하면 對손견전은 망하기 때문에 손책이 태어나기 전에 빨리 해결해야 한다.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82/지력 43/정치력 65/매력 66에 진형은 언월/'''수진'''이며 특기는 고무, 화계, 수계, 화시, 수습, 복병이다.
채모와 더불어 능력치는 무난하나, '''수진'''을 갖춘 장수가 워낙 귀하기 때문에 등용을 하면 좋다.여담으로 황충이 없거나 감녕이 손권 등 타국으로 등용됐을 경우 세력 내 가장 무력이 높다. 그래서 가상모드의 무술대회가 열릴 경우 유표가 출전하면 플레이어는 쾌재를 부르게 된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8/무력 84/지력 67/정치력 65. 분투, 연사, 누선을 가지고 있는 B+급 장수. 그 이외에 병법으로는 정란을 가지고 있다.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황충, 감녕, 위연이 유표군 소속으로 되어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면 유표군 에이스다. 대표적인 게 영웅집결이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2/무력 84/지력 62/정치력 66/매력 70. 유표군에선 단연 에이스급이다. 시나리오에 따라 유표군에 소속되어 있는 황충, 감녕, 위연한테는 밀리지만. 돌격이 없는 것이 아쉽지만 화시, 일제 특기가 있고 평시에는 치안 특기를 활용하여 치안 셔틀로 쓰면 된다. 강하 태수를 맡고 오나라를 막아낸 것을 반영하였는지 제독 특기가 있다는 게 특이점. 전체적으로 특기는 보수, 치안, 화시, 일제, 진정, 저지, 회복, 역공, 제독. 총 9개다. 이때부터 바이킹스러운 투구를 쓰고 나온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86/무력82/지력 66/정치력 69/매력 72의 딱히 빠질 것이 없는 만능 무장으로 나온다. 특기는 불굴. 적성은 극병이 S/창병, 수군이 A. 공격 계열 특기가 아닌 것은 아쉽지만, 높은 통솔력 덕에 나름대로 괜찮은 시너지를 발휘하여 유표군의 에이스로 활약한다.
삼국지 12의 전법은 궁군강사 궁군강사 중에서 무력이 가장 높아서 매우 강하다. 다만 다른 장수들의 통솔이 전체적으로 오르는 와중에 통솔력이 80으로 삼국지 11 때에 비해 6이나 깎인 것이 매우 아쉬울 따름. 일러스트는 강직한 모습을 한 채 두 손을 다리 위에 얹고 앉아있다.
삼국지 13의 능력치는 통솔력 81/무력 82/지력 69/정치력 69로 나름대로 균형잡힌 수치로 보인다. 하지만 정사에서 최고의 장수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작에서 최약을 찍었다. 이번 작품의 경우, 네임드들의 대우가 박해도 특기는 챙겨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빙의 경우 훈련 (5), 신속 (1), 수영 (4), 일기 (3)이 끝이다. 훈련과 수상전 아니면 써 먹기도 애매한데 이번작도 딱히 수상전을 벌일 일도 잘 없어서 별로 쓸 일이 없다. 그나마 능력치 덕분에 초반, 중반 시나리오인 유표 세력에서는 꽤 쓸 만하다. 여전히 유표 세력에서는 채모, 황충, 감녕과 함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장수.
적성은 창병 A/궁병 B/기병 B. 가뜩이나 별 좋지 않은 적성치에, 궁병이 B 인데 전법은 강궁으로, 궁 C임에도 궁병 전법을 가진 우금과 다를 게 별로 없는 상황이다. 또한 '강궁'은 자부대 한정 버프라 제 정신 박힌 플레이어라면 전법 발동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전법을 봉인하고 차라리 창병으로 나가서 몸빵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 중신특성은 없고, 전수 특기는 훈련.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83, 무력 82, 지력 66, 정치 68, 매력 70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2, 지력이 3, 정치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견수, 불굴, 견뢰, 절감, 주의는 왕도, 정책은 성벽확장 Lv 4, 진형은 어린, 방원, 충차, 전법은 분전, 철벽, 충차, 구축, 강습, 친애무장과 혐오무장은 모두 없다.

4.3.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선 중기병으로 2장 양양전투, 장판파2전투등에 등장하나 템빨이 없으니 그리 위협적이진 않다. 그래도 지력이 형편없는 대신 무력은 상당히 높으므로 잡장 기병대보다는 강하다. 양양에선 성채를 지켜 좀 버티긴 하나 장판파에서는 개활지에서 달려들기만 하니 체감내구가 낮아진다.
삼국지 공명전에선 장판파 전투에서 조조와 같이 등장하나 역시 일당백 조운한테는 위협이 되지 못한다. 어찌된 건지 엑스트라 궁병대 얼굴이 되었다(...)
삼국지 조조전에서는 장판파 전투에서 우군으로 등장하나 역시 별 존재감은 없다. 엄청 보기 힘든 이벤트지만 문빙과 유비가 인접하면 유비의 말빨에 밀린 문빙이 퇴각하며 하야하겠다고 하는데 어차피 하야 안 해도 문빙을 이후에 아군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별 의미는 없다.

4.4. 삼국전투기




4.5. 반삼국지


반삼국지에서는 어쩐지 조인, 조홍과 같이 자주 등장한다. 위군을 이끌고 끊임없이 촉군에 저항하지만 동아에서 사마의, 조인 등이 폭사한 이후 나머지 위군들을 이끌고 달아나려 하지만 장비의 아들 장포를 만나서 몇 합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고 만다. 어쩐지 반삼국지에선 찌질하게 묘사된다. 아무래도 작가가 촉빠인지라 유종을 따라 조조에게 투항한 문빙을 좋게 봐주지 않은 듯하다.

4.6. 용랑전


용랑전에서는 장료와 함께 유비를 추격하는 역할을 맡지만 '흑장호'가 소환한 강시귀에게 덩치에 걸맞지 않게 겁을 먹고 천시로에게 얻어맞는 모습까지 보인다.

4.7. 진삼국무쌍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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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어등급 일러스트
슈퍼레어 등급 일러스트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는 대대로 클론 무장으로 나오다가 진삼국무쌍 블라스트에서 참전하였다. 게다가 엠파이어스에서 참전한 순욱을 제외하고 현재 남성 무장 중 첫번째로 슈퍼레어 승급을 받아서 차기작 참전이 강력히 예상됐으나 신규참전 위무장은 역시 블라스트에서 데뷔한 만총과 조휴, 그리고 8편에서 발표된 순유 3명으로 확정되면서 문빙의 참전은 8편 맹장전이나 9편을 기대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래도 가족놀이가 너무 심해서 실제 군부 중진으로 활약한 왕평, 요화같은 무장들이 대체 언제 참전할수 있을지 감도 안잡히는 촉과 달리 위는 가족놀이가 심하지 않고 여자캐릭터들 제외하면 정말 참전할 만한 장수들만 참전시키기에 참전가능성이 밝은 편이다.
성우는 후루야 카신(古屋 家臣). 레어 시절에 드는 무기는 언월도였는데 슈퍼레어로 승급한 뒤 일러스트 이미지 대로 낭아봉을 받았다.
근육질의 몸은 언제든지 주군을 지킬 수 있도록 평소에 만든 것이라 한다.

4.8. 와이파이 삼국지


성우는 허예은. 적벽대전 개전 시작에서 첫 등장한다.(황개의 화공을 간파하며 화살 맞는 장면, 죽는 것처럼 나왔다.)[4] 담당 성우가 맡은 위 측 인물 중에 가장 비중이 높다. 적벽대전 이후의 등장은 거의 없다.
[1] 장강에 접해 있는 국경지대인 강하를 맡긴 이유는 그가 수군의 비중이 상당히 컸던 유표군의 장수였기 때문에 장강 이북 출신이 많아 수전에는 약한 조조군 장수진 내에서 수군에 가장 능한 사람중 하나이며, 또한 투항해 온 형주의 수군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2] 다만, 본전과 맞지 않다고 배송지가 지적했다.[3] 황충은 유표의 부하였을 때, 즉 유반과 함께 장사의 수비를 맡았을 때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유표의 부하였던 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4] 연의 기준으로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에, 원래대로면 유비의 양양성 입성 저지에서 나타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