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랜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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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피스 그리즐리스 No. 50'''
'''재커리 매켄리 "잭" 랜돌프
(Zachary McKenley "Zach" Randolph)
'''
'''생년월일'''
1981년 7월 16일 (43세)
''''''
206cm (6' 9")
'''체중'''
118kg (260 lbs)
'''출신학교'''
미시건 주립대학교
'''포지션'''
파워 포워드
'''드래프트'''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19순위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지명
'''소속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2001~2007)
뉴욕 닉스 (2007~2008)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2008~2009)
'''멤피스 그리즐리스 (2009~2017)'''
새크라멘토 킹스 (2017~2019)
'''등번호'''
50번
'''수상내역'''
All-NBA Third Team 1회 (2011)
NBA Most Improved Player (2004)
NBA All-star 2회 (2010, 2013)
'''2004년 NBA 올해의 기량발전상'''
길버트 아레나스

'''잭 랜돌프'''

바비 시몬스
'''멤피스 그리즐리스 영구결번'''
No. 50
1. 개요
2. 플레이스타일
3. 선수 생활
3.1. 사고뭉치
3.2. 사람이 달라진 멤피스 시절
3.3. 새크라멘토
3.3.1. 2017-18 시즌
3.3.2. 2018-19 시즌
4. 은퇴
5. 여담


1. 개요


NBA에서 뛰었던 파워 포워드. 촉망받던 유망주였으나 미성숙한 인성 때문에 리그 최고의 악동이자, 스탯만 아는 이기주의자로 비난을 받았던 선수로 될뻔 했지만, 멤피스 이적 후 리그 정상급의 파워 포워드이자 팀 플레이어로 거듭난 선수. 별명은 '''Z-Bo'''.

2. 플레이스타일


푸짐한 덩치에 걸맞게 골밑 진흙탕 싸움에 아주 강하다. 도약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튼실한 하체 힘으로 자리를 잡고 좋은 타이밍에 공을 잡아내는 탁월한 공격 리바운더인 동시에 포스트에서 노련한 스킬을 사용해 1:1로 득점하는게 가능하며, 손끝 감각이 좋아 터프한 몸싸움 후 볼을 림에 꾸역꾸역 우겨넣는 능력이 일품이다. 골밑 플레이뿐만 아니라 중거리 슛도 구사할 수 있다. 아주 높은 성공률은 아니지만 3점 슛도 가능하여, 잊을만 하면 성공시킨다. 패싱 센스가 좋은 파트너 마크 가솔과의 하이-로우 플레이는 멤피스의 주무기로 자리잡았다. 마크 가솔이 성장하고 랜돌프의 폼이 예전만 못하면서, 랜돌프가 하이포스트에 서고 가솔이 로우포스트에 서는 경우도 자주 보인다.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잭 랜돌프의 플레이스타일 덕분에 스몰볼-점프슛 위주의 팀을 수비할 때 굉장히 강력하다. 끈질긴 로우포스트 플레이와 특유의 우겨넣기 플레이는 이런 유형의 팀에 굉장히 위력적이어서 심지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상대로도 매우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포지션 대비 신장이 크지도 않고 운동능력이 뛰어나지는 않기에, 수비에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 여전히 강력한 수비수는 아니며, 속공에서도 빛을 발하기는 어렵다. 2012년에 오른쪽 무릎을 다친 이후에는 파괴력이 조금 줄어들기도 했다. 멤피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으며, 그 리더로 리그 최고의 파워 포워드로 올라서려는 찰나에 다친 것이라 본인과 팀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쉽게 느껴지는 부상이다. 대단한 스피드를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신체 대비 매우 빠른 퍼스트스텝과 포스트 무브를 이용하여 좋은 위치를 잡은 후 밀어넣고 우겨넣는 것이 장점이었는데, 이 플레이의 위력이 떨어졌다. 물론 나이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3. 선수 생활



3.1. 사고뭉치


고교 시절부터 재능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았던 선수였지만, 고향인 인디애나 주 미스터 바스켓볼 투표에서 수상자 선정에 실패하고 만다. 사유는 고향을 등지고 미시간 주립대학으로 전학한 괘씸죄에 더해서 경범죄로 30일간 거리 청소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던 전력 때문.
그래도 재능은 어디 안 가서 미시간 대학교 1학년 때 팀의 주전으로 뛰며 미시간 대학의 Final 4 입성을 이끌기도 했고, 이 해를 마치고 바로 NBA 진출을 선언했다. 본인의 기대보다는 다소 낮은 19순위에 포틀랜드의 지명을 받아 처음 프로 무대에 들어갔다. 대학 시절부터 공격 리바운드 능력이 주목받았는데, 공격리바운드와 수비리바운드의 비율이 1:1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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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시즌에는 팀의 주전 포워드로 이미 라쉬드 월러스가 뛰고 있었기에 많은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 월러스가 출장정지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전 파워 포워드로 출전하면서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되고, 결국 시즌 막판부터 팀은 월러스를 스몰 포워드로 내리고 랜돌프를 파워 포워드로 쓰는 빅라인업을 가동한다. 이 장신 포워드 라인은 댈러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포함해 그 다음 시즌 중반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라쉬드 월러스와 구단의 관계가 워낙 안 좋아진 때라 구단은 여차하면 월러스를 내보내려는 시점이기도 했고, 이후 팀의 주전 파워 포워드가 될 선수로 낙점받은 랜돌프가 있었기에 월러스는 2003-04 시즌 중반쯤 애틀랜타로 트레이드된다.
이렇게 비교적 빠른 시기에 주전으로 올라섰지만, 악동 기질은 프로 데뷔 이후에도 여전했다. 이미 2년차인 2002-03 시즌 도중에 팀 동료인 루벤 페터슨과 주먹다짐을 벌여서 2경기 출장 정지와 1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을 정도. 당시 포틀랜드의 별명이 Jail Blazers (교도소 블레이저스) 였던 만큼 선수들의 인성이 개판이던 시기라, 팀을 다잡아줄 베테랑이 딱히 없던 것도 악동 기질의 심화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실력은 진퉁이라 해당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0승 3패로 댈러스에 밀리던 포틀랜드를 이끌며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가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3-04 시즌에 완전한 주전으로 평균 20.1득점과 리바운드 10.5개를 잡으며 생애 첫 평균 더블더블을 기록했고, 그 해 MIP의 주인공이 되었다. 포틀랜드는 팀의 주역이 된 랜돌프에게 6년간 8,400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체포, 과속 및 난폭운전, 성추행, 스트립클럽 이용 후 돈 떼먹기 등등 각종 사고에 연루되었고, 게다가 팀의 기둥 역할이나 팀원을 위한 몸싸움에는 소극적이며 본인의 득점에만 집중한다는 비판까지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포틀랜드는 코트 안팎에서의 잦은 마찰에 지쳐 트레이드를 통해 그를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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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시즌 뉴욕 닉스로 건너온 랜돌프는 여기서도 그 습성을 고치지 못했다. 애당초 팀 자체가 자기 위주로 플레이하던 팀이었고, 이 시기 닉스의 감독은 그 유명한 아이재아 토마스. 멤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지독한 개인플레이뿐인 팀이라는 악명 그대로 27승에 그치면서 시즌을 망쳤다. 랜돌프 자신은 이 해도 평균 더블더블을 기록했지만, 저조한 팀 성적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고, 이기주의자라는 비판은 여전했다. 닉스의 센터 에디 커리와의 조합 역시 최악이었다. 2008-09 시즌은 LA 클리퍼스로 이적했으나 사정은 마찬가지. 본인은 평균 20득점을 넘게 기록했지만, 팀 성적은 고작 19승이었다.

3.2. 사람이 달라진 멤피스 시절


랜돌프가 2009-10 시즌 멤피스에 합류했을 때, 아무도 그의 이적에 주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물 간 왕년의 스타 앨런 아이버슨의 멤피스 이적이 더 화제가 되었다. 실제로 밀워키 벅스가 먼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지만, 구단 수뇌부에서 팀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며 반대했고, 이것이 그 시점까지 랜돌프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랜돌프는 당시 감독인 라이오넬 홀린스 감독과의 멘토링 이후로 완전히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팀을 플레이오프권에 올려놓으며 생애 첫 올스타 선정도 되었다. 자신의 득점뿐만 아니라 리바운드를 위한 박스아웃이나 공격 도중 스크린 세팅 등을 신경쓰면서, 팀 플레이에도 능한 '''멤피스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아무래도 아이가 10대에 접어들면서 책임감이 더 커진 면도 있고, 극성인 언론과 열정적인 팬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던 포틀랜드나 뉴욕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조용한 멤피스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역시 크게 작용했다.
2010-11 시즌에는 8위로 플레이오프 막차를 탑승한 후, 1위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4승 2패로 잡아내면서 NBA 역사상 네 번째로 8위가 1위를 업셋하는데 성공했다. 이 승리가 그리즐리스 농구단의 첫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였고, 여세를 몰아 컨퍼런스 세미파이널에서는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 7차전 접전을 벌였다. 랜돌프는 이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으로 리그 전체에서 인정받는 파워 포워드로 등극할 수 있었다. 비록 다음 시즌에는 부상으로 주춤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멤피스의 리더 자리는 그의 몫이었다.
2012-13 시즌에는 마침내 멤피스를 이끌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올라갔다. 비록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샌안토니오에게 0승 4패로 완패를 당했지만, 멤피스의 돌풍을 이끈 공적을 인정받으며 과거의 이기주의자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 냈다.
2014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2위 오클라호마와 맞붙었는데 6차전에서 루키 센터인 스티븐 아담스와 신경전을 벌이다 홧김에 주먹을 날렸고, 이로 인해 7차전 출장정지를 당한 뒤 팀 패배를 지켜봐야 했다. 플레이오프 마무리는 아쉬웠지만 멤피스에 남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2천만 달러에 계약을 2년 연장했다.
2016년 3월 19일 클리퍼스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2016-17 시즌부터는 나이도 많고 잔부상도 많아져서 식스 맨 보직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뛰어난 득점력을 뽐냈고, 불같은 성격은 드마커스 커즌스드레이먼드 그린 등 리그의 악동들이 랜돌프 앞에서는 분노조절을 잘 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2017시즌이 끝난 직후 7월 6일 멤피스에서 해왔던 큰 활약상을 멤피스 구단측으로부터 인정받아 매우 이례적으로 선수가 은퇴하기 전에 영구결번이 되었다.(확정되었다) 언론과 팬들은 그동안 멤피스에서 계속 해서 팀 내 연장자로서 보여준 모습으로나 선수로서 보여준 모습은 영구결번이 되어 마땅했다는 반응.

3.3. 새크라멘토


리빌딩에 들어간 새크라멘토 킹스와 2년 $24M 계약을 맺고 멤피스의 전 감독이자 킹스의 현 감독인 데이브 예거와 재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화나 소지로 체포되었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함과 동시에 "역시 사람의 천성은 바뀌지 않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했다.

3.3.1. 2017-18 시즌


'''베테랑의 품격, 암울한 새크라멘토 킹스의 원동력이 되다'''

3.3.2. 2018-19 시즌


2018-2019 시즌 중 킹스가 해리슨 반즈를 받아오면서 저스틴 잭슨과 함께 댈러스로 트레이드되었다가.. 바로 웨이브되었다.

4. 은퇴


19-20 시즌이 시작한 후에도 팀을 구하지 못하다가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5. 여담


현피실력이 상당하다고 평가된다. 느바판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이유없이 폭력적인 행동과 시비를 터서 악명이 높은 드마커스 커즌스는 그 큰 덩치가 아깝게도 랜돌프 앞에서는 아주 얌전한 신사로 변하는게 그 증거. 인상 자체는 커즌스가 랜돌프보다 훨씬 무섭게 생긴데다 몸무게도 더 나가는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