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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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9일 ~
새터민 출신 공학도, 대한민국의 개그맨 겸 사업가. 평안남도 강서군(북한 행정구역 기준 남포특별시 강서구역) 출신. 가족은 아내와 슬하 1녀
1. 생애
아버지가 군 장성으로 북한 항공협회 부회장, 어머니는 평양학원 교수인 좋은 출신성분 덕분에 북한의 명문대학교 중 하나인 김책공업종합대학 기계제작학부에 입학했다.# 국비로 동독의 드레스덴대학으로 유학을 갔으나 동독의 실상에 실망한 전철우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틈을 이용하여 친구 장영철과 함께 가까스로 망명에 성공한다.[1]
탈북 후 대한민국에 정착하여 1년간 국가안전기획부의 관리를 받다가,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여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자취를 하며 강동구 보안지도위원회 임원인 김씨의 양자가 됐으며,[2] 대학 진학 후 전자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MBC 개그맨으로 데뷔하며 방송활동을 시작하며 90년대 후반에 김용과 더불어 대표적인 탈북자 출신 연예인으로 유명해지게 된다.[3] 이후 선배 개그맨인 최양락의 권유로 북한 랭면 음식점을 시작으로 사업가로 발돋움 하게된다.
하지만 이후 알게된 지인에게 사업은 맡겨두라며 방송에 전념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 말을 믿고 사업을 맡겼다가 회계장부와 직원들을 전부 물갈이 당하는 뒤통수를 맞게 된다. 알고보니 믿었던 지인은 빚에 쫒기던 사람이었고 그를 이용해 벌어들인 사업 자금으로 빚을 다 갚았다고 한다. 거기다 조직폭력배까지 고용해 회사를 빼앗아 결국 사업은 실패했고 40억이나 되는 돈을 잃었다고 한다.
2000년에 김모 씨와 결혼을 했으나, 부인과 장모 간의 불화로 4년 만에 이혼했으며 양부 김씨와도 인연이 끊겼다. 이 과정에서 전철우가 천하의 개쌍놈으로 몰리게 되었으나, 이후 진실이 밝혀져 원인이었던 전 부인과 장모가 비난을 받았다.[4] 사업 실패와 이혼에 대한 충격으로 한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다행히 2005년 국밥 사업을 통해 재기에 성공했으며, 2006년에는 탈북한 친누나와 만난 뒤 2007년에 표진영과 재혼했다. 재기에 성공하면서 다시 방송에도 간간이 출연한다.
2. 기타
- 동독에 있다가 혼자 탈북한 탓에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부를 항상 걱정하고 있었다. 2006년에 누나와 매형 그리고 조카들이 탈북에 성공하여 남매가 17년 만에 해후하게 되었다.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택지로 80번에 과거 전철우 냉면집이 있었는데[5] 바로 앞에 사거리였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전철우 사거리』라는 별칭이 붙었다. 당연히 비공식인데 지금은 흔적이 사라졌지만 인근 주민들에게는 아직도 이 별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인근 가게들도 상호명 뒤에 '전철우 사거리점'이라는 말을 붙히고 인터넷에 이 구역 맛집을 검색하면 아무렇지 않게 '전철우 사거리 근처'란 표현이 나온다. 심지어 인근 관공서나 부동산에서도 쓰고 있어서 사실상 공식지명이 되어버린 상태(....) 참고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그 근처를 처음가는 사람들이 해매는 경우가 종종있다.
- 북한이 본격적으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기 전에 탈북했기 때문에 그 이후 북한의 사정을 다루는 프로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만갑 같은 데에는 몇 번 출연한 적이 있다. 오히려 이걸 역으로 이용해 북한 출신임에도 고난의 행군 이전 상황만 알고 이후의 상황을 몰라서 당황하거나 공격받는 개그 역할.
- 저서로는 <평양놀새 서울 오렌지>가 있다.
[1] 장벽이 무너질 당시 북한에서도 대사관을 통해 전화로 유학생들을 통제하였으나 오히려 반발심에 망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2] 이 사연은 2020년 1월 2일자 KBS1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다뤄졌다.[3] 그러나 양부 김씨는 개그맨 대신 공부를 통해 평범한 삶을 살길 바랬다고 한다.[4] 이 문제를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전철우가 연상되는 '귀순스타 룡호씨' 라는 제목으로 방영된적이 있다.[5] 대략 2000년대 초중반. 2020년 1월 기준으론 엔제리너스 커피집이 새로 건물을 세워 입점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