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락

 

'''최양락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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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부문 남자 코미디연기상'''
이경규
(1992년)

'''최양락
(1993년)'''

신동엽
(1994년)



'''성명'''
최양락 (崔揚洛)[1]
'''출생'''
1962년 5월 20일 (62세)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덕암리[2][3]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강화 최씨[4]
'''신체'''
183cm[5], 80kg, A형
'''배우자'''
팽수희 [6](1988년 결혼 ~ 현재)
'''자녀'''
최윤하 (1989년생)[7]
아들 최혁 (1994년생)
'''데뷔'''
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
'''학력'''
화천초등학교 (졸업)
도고중학교 (졸업)
온양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 / 전문학사)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통합치유)
'''취미'''
영화감상, 여행, 독서, 야구시청, 골프
'''별명'''
최알락, 초코양락, 똥손양락, 미친인간[8]
'''종교'''
무종교
'''링크'''

1. 개요
2. 상세 설명
3. 개그 스타일
4. 깐족
5. 기타
6. 출연작
6.1. TV
6.2. 라디오
6.3. 영화
7. 수상
8. 홍보대사
9.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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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코미디언 .
1980년대 초반부터 40년간 대한민국 코미디계에서 레전드급 활약을 보인 현역 희극인이다. 특히 그의 '''깐족'''[9]은 한국 개그맨 중 역대 최고이며, 충청도식으로 무심한 듯 절묘한 강약 조절로 뱉어내는 멘트로 터뜨리는 스타일이다.


2. 상세 설명


1981년 MBC 개그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당당히 대상을 수상[10]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MBC에서는 대선배이자 레전드였던 구봉서, 서영춘이 아직 현역으로 활동 중이었고, 최양락은 대상을 받은 기대주였음에도 MBC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전혀 내지 못했다. 그 즈음 경쟁사였던 KBS에서 이적을 제의받고 그 곳으로 옮겼다.[11]
이후 대부분의 활동은 KBS에서 했으며 KBS에서 활동하는 동안 쇼 비디오 쟈키유머 1번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촐랑거리고 깐죽대는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는데[12]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네로 25시'의 네로나, '고독한 사냥꾼'의 최우빈, '괜찮아유'의 최동학 등이 있다. 치킨 브랜드 페리카나광고 모델과 노래로도 유명했다.
대표적인 유행어는 부인이자 같은 코미디언인 팽현숙과 같이 호흡을 맞췄던 코너 '남 그리고 여'에서 만든 '''"있을 때 잘해! 나는~ 봉이야!"''', 고독한 사냥꾼의 "내가 이 카페를 자주 찾는 이유는, 이곳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 때문이지"(오프닝)/"에구에구... 그날 난 (당했다) 됐다."(엔딩)가 있다.
1984년 발매된 심형래의 코믹 캐롤이 성공한 후 코미디언들이 앞다투어 코믹송 앨범을 발표했던 시기에 최양락도 앨범을 냈다. 바로 '최양락 작품하나'.앨범 정보 1988년에 발매된 앨범으로 최양락이 만화 주제가를 자기식으로 부른 곡들로 채워져있다. 이 앨범은 '''대박이 났다.''' 최양락은 이 앨범을 100만장 팔았다고 밝힌바 있다.관련 기사[13] 페리카나의 치킨 광고도 이 앨범에 수록된 요술공주 샐리 주제가를 사용한 것이다. 최양락은 2009년에 위 앨범을 다시 리메이크해서 최양락 Night Fever!!!라고 다시 발매했다. 이 앨범은 그리 잘 되지 못했지만 음악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많다. 한겨레 기사.
동료 개그맨 김학래와 동기라서 둘이 자주 콤비로 나서기도 했다. 실제로 꽤 친한 사이라고... 참고로 나이는 김학래가 8세 위다. 극중에서 임미숙과 부부로 엮이는 경우가 많았으나, 실제로는 팽현숙과 결혼한 사이다. 임미숙은 반대로 개그맨 김학래와 부부 사이다.[14] 팽현숙과는 고독한 사냥꾼, 남 그리고 여에서 커플로 출연했고, 임미숙과는 네로 25시에서 황제와 황비로 출연했다. 덕분에 이를 이용한 개그도 곧잘 써먹었다. 부부 사이는 대체적으로 상당히 좋다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이 이뤄지게 된 첫 계기는 최양락의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최양락은 함께 개그를 하면서도 팽현숙을 후배로만 대한데다가 연습할 때도 합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아 욕을 무지하게 해서 팽현숙이 삐치거나 혼자 운 적이 많았다고 한다. 최양락은 이런 모습에 관심은커녕 "현숙이 쟤는 부족하면 열심히 해야지 맨날 섭섭해하기만 하고 개그가 발전이 안 되는데 왜 저러냐"고 생각해서 팽현숙에게 오히려 불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어느 날 시골에서 부모가 올라왔는데 혼자 사는 최양락을 보고는 안되겠다며 결혼을 재촉했다. 이에 최양락이 "아버지, 여자가 있어야 결혼을 하죠"라는 대꾸하자 아버지 왈, "너 왜 멀리서 찾니? 너랑 같이 일하는 현숙이라는 애, 아빠가 관상을 보니까 괜찮아. 오늘 당장 가서 유심히 한 번 봐봐라." 이에 최양락도 팽현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면서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일화는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최양락이 먼저 팽현숙에게 고백을 했고, 팽현숙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최양락이 의도적으로 기자들에게 흘려서 기사가 났다는 버전도 있다.[15] 참고로 아내와는 지금까지 각방을 쓴다는데 오로지 두 번만 합방해서 애가 둘만 있다며 섹드립을 친 적이 있었다.[16]
1991년 말 SBS 개국과 함께 SBS 희극인실 실장 자리를 받고 이적한 뒤 MC 위주로 활동했다. 1994년 4월 24일 첫 회부터 SBS의 일요 아침 예능인 좋은 친구들을 진행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첫회부터 1995년 10월 22일까지는 이봉원, 1995년 10월 29일부터 1996년 8월 18일까지는 정원관, 1996년 8월 25일부터 98년 10월 18일까지는 남희석과 함께 공동 MC를 맡은 바 있다.
하지만 1998년 10월 18일 방송을 끝으로 박수홍에게 바통을 넘겨주면서 하차한 데 이어[17] 2월부터 김미화와 함께 진행을 맡아왔던 KBS 2TV 코미디 세상만사에서도 스스로 하차하고[18]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가 1999년 8월 2일 SBS 코미디 살리기의 공동 진행을 맡아 컴백했다. 그러나 진부한 형식의 개그와 여러 차례의 언어폭력으로 거침없는 비판을 받아 4개월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으며 급기야 1999년 9월부터 김미화와 함께 다시 게스트로 합류한 코미디 세상만사는 SBS 기분좋은 밤 탓인지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고 다음 해 봄 개편 때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공교롭게도 2000년 2월 3일부터 기분좋은 밤 MC를 맡았던 박수홍은 좋은 친구들의 최양락 후임이었다. 게다가 최양락은 2000년 1월 22일 시작한 KBS 2TV 일요시트콤 반쪽이네로 첫 시트콤 출연을 했는데 대사나 연기, 장면설정 등이 모두 뭔가 어설픈 구석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으며 10%대 미만의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3개월(4월 29일) 만에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19] 박수홍도 KBS 2TV의 시트콤 마주보며 사랑하며로 첫 시트콤 출연을 했는데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다는 비난을 받았고 결국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종영했다.
최양락은 2000년 다시 MBC로 옮겨온 후, 일요일 낮에 코미디 닷컴이란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바둑 대국을 패러디한 알까기 대국으로[20] 또 한번 큰 인기를 얻었다. 이때 아내 팽현숙의 권유로 도전한 단발머리가 지금까지도 시청자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알까기 이후부터는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진행자로 계속 활동했다. 경인방송(ITV)[21] 외에는 TV 활동이 뜸할 뿐 방송 활동은 계속 하고 있었다.
마침내 2009년 야심만만 2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일명 '최양락 젖꼭지의 변'으로 웃음폭탄을 터뜨리면서 올드팬뿐만 아니라 최양락의 리즈 시절을 모르던 어린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이후 '''레전드의 복귀'''라는 화려한 상찬을 받으며 야심만만 2 MC까지 꿰찼으나[22] 오래지않아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완전 복귀는 실패했다. 그 전에 명랑 히어로 이봉원 회고전 편에 출연하여 오랜만에 엄청난 입담을 보여주며 MC 자리를 얻고 본인 역시 회고전까지 출연했으나...역시 오래지않아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라디오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2012년 12월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10년 진행한 공로로 브론즈마우스를 수상했으며,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2013년 3월 3일에 KBS 창사 40주년 특집 개그 콘서트에서 김학래, 임하룡, 장두석, 이봉원, 이경래 등 올드 개그맨들과 함께 오랜만에 개그 무대에 올라섰다. 본인의 히트작 <괜찮아유>와 <네로 25시> 등에 출연하여 녹슬지 않는 희극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네로 25시>에서는 김준호, 김대희, 홍나영, 신보라 등 개콘의 주축 후배 개그맨들과 놀라울 정도로 척척 맞는 개그 호흡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네로 25시, 괜찮아유
한동안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할 때 근처에서 간간히 목격담이 들려왔다. 근처 도농동 이마트가 입주한 건물에 있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봤다던가... 또 팽현숙이 현재 운영하는 음식점을 가면, 손님 접대하는 모습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현재는 가평군 청평면으로 거처를 옮겼다.
14년 간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갑자기 짤렸다.''' MBC 표준FM의 효자방송으로 10년을 넘게 군림하던 시사풍자 라디오였는데, 외압으로 인해 작별인사도 못 하고 짤린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배칠수안윤상처럼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 성대모사를 잘하는 개그맨들을 출연시켜서 라디오 꽁트를 자주 했는데, 여기서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희화화된다며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공격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때 생긴 꽁트코너라 노무현 역시 희화화되었었음에도 노무현정부 때는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가, 보수정권이 되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알기는 안 것이었는지, 마지막 날 방송의 끝곡이 '또 만나요'였으니... 2주 간 대타를 뛴 DJ는 학교 후배인 가수 박학기. PD저널의 폭로에 의하면 높으신 분들의 외압 때문이라고 밝힌 상태. 방송에서 잘리고 거의 한 달간은 위의 팽현숙이 운영하는 음식점 한구석에서 식음도 전폐하고 내내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고 한다. 후속 프로그램은 "원더풀 라디오 김태원입니다".
더 팩트의 보도를 따르면 라디오에서 퇴출당한 이후에 술로 날을 지새웠다고 한다. 아내 팽현숙의 권유로 현재는 가게에 나와서 주차관리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말하는 것 자체를 피할 만큼 대인 기피적인 모습도 보여 라디오 퇴출이 최양락 개인에게 상당한 충격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차 통보를 받기 전에 MBC 라디오국 간부들이 인사를 받지도 않고 무시하거나 딴청을 피우는 등의 '''알아서 나가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현재는 KBS2에서 방영 중인 살림하는 남자들JTBC1호가 될 순 없어에서 부인 팽현숙과 함께 출연 중이다.
2018년 11월 26일부터 TBN 한국교통방송 '최양락의 탄탄대로' 진행을 맡게 되어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종영 후 2년 6개월 만에 라디오 DJ로 복귀했다(관련 기사). 첫 방송 당일 아내 팽현숙이 게스트로 출연하여 "왕의 귀환을 축하한다"라는 화환을 전달하며 라디오 DJ 복귀 소감을 밝혔다. 한밤의 교차로 주말 DJ를 진행한 가수 추가열도 같이 출연했으며, 동료 코미디언 김보화, 김학래와 전화 연결하여 라디오 DJ 복귀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심지어 심형래도 출연했다.'''

매주 월요일에는 딸 최윤하가 고정 출연했으나 2020년 봄 개편으로 4월 17일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후임 진행자는 이숙영.
2020년 9월 25일자로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였다.

3. 개그 스타일


개그계의 트렌드에 따라 부침은 있었지만 '''순수하게 말로 웃기는 재능 하나만은 국내 최고'''로 타고났다고 평가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중견 개그맨들이 각자의 컨셉과 스타일이 있는 반면, 최양락은 딱히 그런 것 없이 정말 순수하게 본인의 타고난 센스와 입담으로만 승부보는 타입이다. 본인만의 독특한 화법에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와 충청도식 개그[23]가 결합되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진부한 일상 이야기도 최양락이 하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웃기다는 평이 많다. 특히 의성어나 의태어도 교묘하게 웃기려는 의도없이 웃긴다는 느낌을 살리도록 정확히 맞게 쓰며, 표준어 어휘를 쓰더라도 한 박자 쉬었다가 빠르게 들어가는 충청도 사투리 말투에 적절한 어휘를 매우 잘 고른다. 가히 천재적인 수준. 그 유명한 '젖꼭지의 변' 에피소드도, 따지고 보면 별 것 없는 일상의 평범한(?) 불상사일 뿐인데 맛깔나게 살려 레전드 에피소드로 승화시켰다. 개그맨 김학래라디오 스타에 나와 명명하길 '''"언어의 쌈마이"'''[24](…). 그 누구도 흉내 못낼 독특한 언어술사라고 한다.
덕분에 트렌드의 변화로 TV에서 다소 밀려난 이후에도 입담 하나만으로 라디오를 십수 년간 진행했다. 이경실은 운전하며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듣다가 너무 웃겨서 운전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 차를 길가에 세우고 웃은 적도 몇 번 있다고 하며, YTN에 출연하여 딱히 각 잡고 웃기려 하지도 않았음에도 앵커들이 웃겨서 진행을 곤란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상
다만 남의 개그나 캐릭터를 받쳐주거나 살려주는 능력은 사실상 전무하다. 아니 정확히는 '''본인부터가 그럴 생각이 없다.'''[25] 자신의 개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다[26] '내 개그는 내 개그, 네 개그는 네 개그' 식의 다소 보수적인 희극인 마인드를 갖고 있다보니 원맨쇼보다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과 협동심(?)이 더 중요한 오늘날의 버라이어티식 개그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 본인의 성격부터가 겸손이나 배려심과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기도 하고... 물론 입담은 어디 가지 않기에 단발성 게스트나 '혼자 떠드는' 식의 방송에는 특급이지만, MC나 고정 패널로는 곤란[27]하다. 요즘도 가끔 토크쇼에 나왔다 하면 빵빵 터뜨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안정적으로 복귀하지는 못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셈. 실제로 유튜브 등지에서 나도는 소위 '최양락 레전드' 영상들(명랑 히어로 출연분, 야심만만2 젖꼭지 에피소드, YTN 뉴스 게스트 출연 등)은 대부분 자기 혼자 썰 푸는 장면들이고, MC와 게스트가 주거니받거니 하는 타이밍에는 오히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천상천하 유아독존식 독불장군형 희극인이라 볼 수 있다. ~

4. 깐족



특유의 깐족거리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아랫사람이나 만만한 사람에게만 그런다면 비열하다고 욕 먹을 만 하겠으나, 윗사람(선배나 스승)이나 초면인 사람에게조차 그러는 걸 보면 그냥 본성인 듯 하다. 그것도 사회적인 군대 문화, 똥군기가 지금보다도 훨씬 심했던 1980~90년대에조차 가리질 않고 깐족거려서 선배들에게 구타도 많이 당했다. 얼마나 깐족거렸는지, 똥군기를 안 잡았던 천사같은 선배에게도 예외없이 맞았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앞뒤 상황 생각 안 하고 웃기려는 욕심이 너무 강해서라고 한다. 한마디로 어그로의 제왕인데 사람 약올리는 것에는 완전히 천재 수준이었다. 다음은 방송에서 밝힌 대표적인 일화들로, 그나마 지금은 최양락이 개그계의 어른 대접을 받지만, 아래의 일화들은 대부분 후배보다 선배가 훨씬 많았던 신인 시절의 일이다. 맞기도 많이 맞고 때리기도 많이 때린, 어찌보면 사고뭉치 스타일의 연예인이었다.
  • 명랑히어로에서 동기인 이경규가 밝힌 바로는 신인시절 두 사람이 코미디언실을 지나가는데 거기서 구봉서,서영춘 등의 선배들이 대본 읽는 것을 보자 최양락이 특유의 깐족대는 말투로 "야~ 코미디언이다~" 라고 해서 단체기합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조작된 냄새같다며 부인했지만...
  • 술자리에서 개그맨들끼리 야자타임을 하다가 주병진이 "자자, 이제 그만하지?"라고 했는데, 그때까지 한창 야자타임을 즐기며 까불던 최양락이 "그~만하기는 뭘 그만해 임마~잇"라고 하자 단단히 빡친 주병진이 바로 접시에 있던 족발을 던져 버렸다. 주병진의 말로는 의도치 않게 홧김에 던진 족발이 최양락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고 한다. 다행히(?) 코피는 안 났는데, 맞자마자 너무 아파서 체면이고 뭐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울었던 것으로 오해했으나 최양락은 정말 그냥 너무 아파서 울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때가 1981년 혹은 1982년이었다. 즉 햇병아리 시절에 저런 것이다. 참고로 주병진은 나이상으로는 최양락보다 3살 연상, 짬밥상으로는 4년 선배이다.[28] 한마디로 주병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해에 최양락이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 어느 날은 다른 방송사 선배인[29] 이홍렬과 같이 맞담배를 피웠는데 허락도 없이 이홍렬의 담배를 뺏어서 자기 담뱃불 붙이는데 써서 구두로 맞았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홍렬이 최양락과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 자신이 이경규와 맞담배를 피웠을 때 "이경규가 내 허락 없이 담배를 뺏어서 자기 불 붙이는 데 썼다"고 뒷담화를 깠는데 그걸 들은 최양락이 똑같은 짓을 하자 "이 XX가 더 나쁜 놈이네!"하면서 때린 것이다. 한마디로 매를 벌어서 맞은 것. 이홍렬은 비록 화나면 무섭긴 해도 평상시에 후배들한테 친절하기로 소문났었는데 그런 이홍렬이 빡쳐서 구두로 때릴 정도면 어지간히도 깐족거렸던 모양이다.[30] 최양락은 이 사건 이후 본인도 기분이 어지간히 나빴는지, 향후 몇 년간 토크쇼 방송에서나 사석에서나 이 일화를 널리널리 퍼뜨렸다고. 덕분에 이홍렬은 질린 나머지 금연을 결심했다고.
  • 비슷한 나이인 김형곤[31]에게도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때는 심하게 맞았는지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폭행 사건으로 신고되어 경찰 수사도 들어갔었고 당시 언론 기사로도 보도됐었다. 이후에 김형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보도가 없어서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당시에 한창 활동하던 김형곤이 감옥에 가진 않은 것으로 보아 벌금형이나 합의 정도로 마무리됐던 걸로 보인다.
  • 이성미임하룡에게 "노인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는데[32], 그 덕분에 많은 개그맨들이 임하룡을 노인네라고 불렀다고 한다. 임하룡은 원래 소심한 걸로 유명한데다 젊은 나이에 노인네라 불려서 속이 많이 상했었다.[33] 그러던 어느 날 임하룡이 후배인 최양락에게 빵과 우유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고 최양락은 순순히 심부름을 하고 사온 빵과 우유를 나눠주는데, 이때 최양략이 10살이나 많은 선배인 임하룡에게 "노인네야!"라고 놀리자, 임하룡은 "지금 뭐라고 했냐?"라고 말하니 거기에 한술 더떠서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깐족거리다가 결국 우유를 얼굴에 맞았다고 한다. 그 대인배로 유명한 임하룡마저도 최양락에게 화를 냈을 정도니 특유의 깐족거림이 극심했다는 일화로 봐야 할 것이다.
  • 심지어 전유성에게 "형님은 싸가지가 없어요"라는 폭탄 발언을 투척하고 뒷문으로 도망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것도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나온 것도 아니고 뜬금없이 "한 말씀 드려도 되겠냐"고 한 뒤 던진 것. 본인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쯤 되면 본능인 듯.[34] 이후 1호가 될 순 없어의 팽현숙에게 쪽파 맞은 에피소드에서 다시 자세하게 언급이 되었다. 당시 코너가 끝나고 최양락과 후배들이 선배들의 소품을 정리하고 소품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최양락이 끝나고 약속이 있는지라 빨리 정리하기 위해 전유성에게 소품 정리할거 있냐고 세 차례나 물어봤으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곧 소품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최양락에게 뒤늦게 말해서 결국 최양락은 다시 소품을 갖다놓느라 약속에 늦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최양락은 "선배 후배를 떠나서 형님은 싸가지가 없다"고 말하게 된 것이라고.
  • 이미 학창시절부터 이런 성격이었는지, 잘못을 해서[35] 선생에게 혼날 때도 그냥 얌전히 죄송하다고 하면 될 것을 그 순간을 못 참고 개그맨 흉내를 내며 개그를 치다[36] 한 대 맞을 걸 열 대 맞은 적도 많다고 한다. 당시 선생이 이성 날리고 죽어라 패서 학생들이 "선생님! 양락이 죽어요!!"라고 말하자 선생도 이성을 되찾고 아차차차 그만뒀을 정도로 제대로 선생을 분노하게 할 정도라고 토크쇼에 최양락 본인이 말했던 이야기다. 이 다음에 같은 반 아이들도 오히려 최양락을 보고 "선생님이 이해가 간다. 임마!"라고 날 탓하더라고 할 수준이었다.
  • JTBC 관찰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1호 부부 팽현숙 ♡ 최양락과 2호 부부 임미숙김학래는 1호 부부의 집에서 합동 김장을 했는데, 탈모로 머리에 오랜 트라우마가 있는 김학래에게 노래까지 부르며[37] 깐족거려서 결국 김치양념이 묻어 있는 절인 배추로 맞았다. 이후 같이 나오는 출연진 중 박준형이 머리를 심었다는 것을 알게되자마자 또 똑같은 노래를 불렀다.(...)
아무리 서열에 엄격한 개그계라도 이 정도면 어그로 끄는 실력도 갑인 셈이다. 의외로 성깔이 있는 편이었던 이홍렬[38]이나 주병진[39]은 그렇다 하더라도, 임하룡, 강석, 전유성은 개그계에서 손꼽히는 대인배로 후배들의 인망이 두터운 사람들로 당시 후배였던 개그맨들이 방송에서 회고하기로는, 그들은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부당하게 혼나는 경우에도 말리거나 막아준 적이 많은 걸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명랑히어로에서 밝혀진 것이지만, 김구라가 SBS 희극인실 소집에 안 나왔다고 식당 술자리에서 때린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최양락이 구두신은 발로 김구라의 무릎을 세게 차서 서 있던 중심을 잃게 만들었을 정도라고 한다.(대신 당시 최양락은 이날 김구라를 우연히 만나기 전에 이미 술을 많이 마신 상태였다고 한다.) 김구라는 대놓고 이를 "형님이 그때 제 쪼인트를 까셨다"라는 쌍스러운 어휘를 써서 이야기 했는데, 이에 대해 훗날 최양락은 "그냥 내가 당시 술에 많이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혼냈다고만 이야기하면 되지. 어떻게 방송에서 쪼인트라는 말에 깠다라는 말까지 쓰냐"며 적반하장격 항변을 했다. 김구라는 "아니 형님, 쪼인트를 쪼인트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합니까"라며 다시 항변했다. 물론 이게 잘한 짓은 아니지만 김구라의 무명시절 행태로 인해 제대로 패줬다는 농담도 있다.
똥군기/사례/개그계 항목에도 나와 있고, 이런 점과 더불어 본인 특유의 깐족대는 말투나 경솔해 보이는 행동 때문에 보수적인 기성세대들 중에도 이봉원[40]과 더불어 최양락을 싫어하던 사람들이 꽤 된다. 실제로 커리어 내내 방송국 간부 등 윗사람에게 찍혀서 밀려난 적이 수차례 있는데[41], 본인의 이러한 성격도 없지않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5. 기타


  • '알까기' 시절 특유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가 화제가 되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상한 남자 단발머리'하면 최양락일 정도로 남자 단발머리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는데, 단발머리의 환상을 가진 여성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주는(...) 존재다.[42]### 본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지들이 못생긴 걸 가지고 왜 나한테 그래??"# 라며 어이없어 했다(...) '알까기' 시절에는 찰랑거리는 단발에 색안경을 낀 스타일이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일자의 앞머리에 예전보다 더 짧은 단발, 뿔테 안경을 낀 스타일로 살짝 변화를 주었다.
  • 183cm의 장신인데다가 몸매라인도 예쁜 편이라, 옷태가 나는 스타일. JTBC 관찰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친한 형님 2호 남편 김학래가 명품 편집샵에 데려가 최양락에게 옷을 입혔는데, 옷이 날개라는 말이 딱 맞게 완벽하게 젊은이들 스타일로 변신했다. 패널들은 최양락의 성공적인 메이크오버에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 알까기에서 최양락이 쓰는 특유의 말투는 바둑기사 윤기현 9단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 2010년에 방송했던 '알까기 제왕전' 에서 후배 박명수에 의해 쌍꺼풀 수술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매몰법이라고.....
  • 천상개그맨 그답게 본업에 있어서는 굉장히 프로페셔널하다. 개그맨 후배에게 노하우를 설명할 때 꽤나 진지하다.
과거 2호 부부 임미숙김학래와 개그코너 <슈퍼차 부부> 를 했을 때 리더였다고 한다. 부인 팽현숙에 따르면, 연습하다가 잘 못하면 나머지 세 사람이 최양락한테 혼났다고 한다. 할 때는 하는 성향.
  • 최양락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웃기다고 하는 이경실, 지금은 절친인 이봉원은 각자 데뷔하기 전부터 최양락의 개그를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신봉선을 개그계로 이끈 우상이라고 한다.
  • 최양락 본인은 성대모사 개그를 좋아하는 듯하다. 1호가 될 순 없어를 통해 만난 트로트가수 김수찬이 여러 트로트가수 대선배들을 찰떡지게 따라한 모습을 보고 취향저격이었는지 빵 터지고, 스튜디오에서는 후배 장도연홍잠언 군을 따라한 모습을 보며 역시 빵 터지기도 했다.
  • 모 방송 중 한 팬이 자신의 이름을 최향락이라고 불러 크게 분노한 적이 있다.
  • MBC 개그콘테스트 대상이라는 화려한 데뷔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의 개그 감각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꽤 강하다. 물론, 1980년, 1990년대에 활동했던 개그맨들이 자신의 개그 프로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다른 개그맨들의 개그를 깔보는 경향들[43]이 심한건 있었다. 실제로 명랑 히어로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SBS에서 좋은 친구들에서 하차했을 때, PD의 하차 권고(통보)를 받았었고, 이로 인해 처음으로 자신의 개그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엄청난 자괴감을 받으며, 바로 옆에서 잘 하고 있던 코미디 세상만사를 자존심이 상해서 자기 멋대로 안하겠다고 하차하고, 그 길로 6개월간 호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실제 방송에서는 해당 프로그램들에 대한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시기나 정황상 두 프로그램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 2000년대 이후 방송에 복귀했을 때도 자신의 주 전공 분야였던 말로 웃기는 개그(토크쇼 계열)[44]를 주로 선보이는 버라이어티에만 간간히 출연하곤 했지만, 이 당시의 버라이어티는 대부분 정통 코미디보다는 몸으로 웃기는 버라이어티 예능이 대세가 되어 버리고, 토크쇼가 완전히 주춤하던 시기여서 결국 2010년 10월 MBC 개그 프로그램이었던 꿀단지이후로는 지상파 예능계에서 다시 보기가 어려워졌다. 상술했듯이 최양락의 개그 스타일 자체가 천상천하 유아독존 독불장군 1인식 토크 개그가 주 전공이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그 상대와 케미를 이뤄서 웃음을 뽑아내야 하는 21세기형 버라이어티에는 취약하며, 본인도 이 장르로의 도전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 팽현숙과의 연애 시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창 팽현숙과 연애하던 때에 아는 기자에게 딱 걸려서 연애 기사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결혼 확정도 아니니 신상 보호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정 쓸거면 "최양락 모 후배와 열애설!!" 요 정도까지만 쓰라고 했다고), 다음날 신문에 난 기사 제목이 '최양락, 동료 개그맨 팽 모씨와 열애중!'이라고 나와서(...) 결국 동네방네 열애설이 퍼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당연히 안 봐도 비디오인 셈. 이 일화를 말하던 최양락은 "대한민국팽씨 성을 가진 개그우먼이 팽현숙 밖에 더 있겠냐고!!!"하며 격뿜했다.[45] 이때 팽현숙이 은퇴했다는 소문을 고의적으로 퍼트려 팽현숙이 한동안 방송 출연을 하지 못했다.
  • 의외로 낯을 가리고 친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나마 친한 것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동기인 김정렬김학래, 함께 많은 방송을 진행했던 이봉원, 같은 충남 출신인 남희석 정도. 전유성과도 함께 여행을 가는 등 상당히 친한 듯하다.
  • 친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술을 좋아하면 종족을 불문하고[46] 친구로 여기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 친한 선배 개그맨 전유성은 그의 개그스승이자 우상이라고 한다.
  • 개그맨 김경민이 방송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가 신인시절 차 운전도 하고 심부름도 하면서 매니저처럼 선배인 최양락(당시 소속사가 없던 시기로 추정)을 보필하며 다닌 적이 있다고 하는데, 하루는 시간이 늦어져 최양락이 김경민보고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김경민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최양락이 "저~기 경민~아. 혹시~ 우리~ 집에서 금반지 못 봤니?"라고 했고 "네? 예 형님 못봤는데요."라고 답하자 "그래~ 경민아~ 우리 아이 돌잔치할 때 맞춘 금반지가 없어졌는데, 아무튼 너~는 아닐거야. 뭐 내가 어디다가 잘못 놨겠지~"라고 하며 끊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최양락은 매일 한두번씩, 직접 만났을 때 얘기하거나 전화를 해서 "저~기 경민아, 너~는 아닐거야~ 그치?"라는 말을 계속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김경민은 서러운 말투로 "형님, 저 진짜 아닙니다. 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매번 대답했지만, 다음날이면 또 전화가 오거나 직접 면전에서 의심하는 말이 날아왔다고 한다. 진짜 하루도 빠짐없이 전화나 면전에서 계속 그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몇주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경민은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선배를 모셔왔는데 도둑질을 할 거라는 그런 의심을 받은 게 황당하기도 하고, 너무 서러웠다고 한다.[47]
  • 과거 한참 LA 다저스에서 박찬호가 주가를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같은 충청도 출신에 야빠 기질을 가진 최양락은 우리 충청도의 자랑이라며 박찬호를 찬양하고 있었다. 하루는 박찬호가 선발등판해 대량실점해서 완패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속상해서 가진 남희석[48]과의 술자리에서 한다는 말이 "그...투수라는 게 말이지... 아무리 150, 158 던져봤자 아무 의미 없는겨. 그 직사각형 있지... 그 네모난 거... 거기에 넣어야 진짜 투수인겨"라며 남희석에게 푸념했다고 한다.
  • 과거 이홍렬 맞담배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골초였으나, 팽현숙이 자기야와 유튜브 등에서 밝히길 금연에 성공한지 꽤 되었다고 언급한다.
  • 배우 조재윤과 의외의 친분이 있다.
  • 배우 김응수와 대학 동기라고 한다.
  • 초등학교 시절 개에게 물린 적이 있어,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팽현숙 지인의 베들링턴 테리어 부부 아톰(수컷)•아롬(암컷)이 왔을 때 강아지에 대한 공포를 나름대로 견뎌가며 산책시켰다.
  • 주차를 잘 한다.
  • JTBC 관찰예능 1호가 될 순 없어에 출연하고 수많은 별명이 생겼다. 물론 대표별명은 초코양락. 개그맨은 캐릭터가 있는 것이 연예계 활동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에, 최양락 본인은 이 별명에 상당히 만족하는 모양.
별명 목록: 초코양락, 베짱이양락, 알콜양락, 쪽파양락, 버럭양락
  • 아침에 일어나면 모닝커피를 즐길 만큼 커피를 좋아한다.
  • 연예계 소문난 주당이다. 주당이더라도 김건모처럼 소주만 마시는 등 특정 술만 좋아하는 경우가 있는데, 최양락의 경우 종류를 가리지 않는 듯.
김학래와 같이 바버샵에 갔을 때, 바버샵에 진열돼 있던 몽골산 보드카에 눈이 번쩍였다. 그리고 수양딸로 삼은 우즈베키스탄 사람 유진 씨[49]에게 우즈베키스탄산 보드카를 선물받을 때도 무진장 기뻐하며 감사함를 표했다.
  • 나이보다 더 성숙해 보이는 얼굴에 은근한 컴플렉스가 있는 듯하다. 배우 동갑 친구 최수종과 있을 때는 장인어른(최양락)에게 하극상 하는 사위(최수종)같다는 평을 받기도 하고, 8살 친한 형님 김학래와 동갑내기 취급을 받기도 한다.
  • 의외로 노래실력이 있는 편이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희희양락>에서 그의 시그니쳐 캐릭터 네로황제 버전의 테스형을 불렀는데, 코미디언답게 코믹하게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음정과 박자가 정확해서 그의 노래실력이 괜찮다는 평을 받고 있다.
1호가 될 순 없어 36화에서 뮤직비디오를 출연하게 해준 트로트가수 김수찬을 초대했는데, 그 노래실력이 잘한다고 검증을 받았다.
  • 자신의 유튜브 채널 <희희양락>에서 '테스형' 을 부르고 트로트가수 김수찬 앞에서 '사랑은 눈물의 씨앗' 을 부른 것을 보아, 나훈아의 팬인 듯하다.
  • 팽현숙의 가게에서 가끔 일을 하기도 한다. 카운터나 주차요원을 한다고.

6. 출연작



6.1. TV


  • 1982년~1986년 KBS 젊음의 행진
  • 1983년~1991년 KBS 유머 1번지
  • 1986년 KBS 명랑소극장
  • 1987년~1991년 KBS 쇼 비디오 쟈키
  • 1987년 KBS 웃음꽃방
  • 1987년~1990년 KBS 코미디 하이웨이
  • 1990년 KBS 가족오락관
  • 1991년 KBS 공사창립 18주년 특집 KBS대행진
  • 1991년 KBS 코미디 청백전
  • 1991년 MBC 91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전야제
  • 1991년~1997년 SBS 코미디 전망대
  • 1992년 SBS 92 SBS배 어린이농구대회
  • 1992년 SBS 꾸러기 대행진
  • 1992년 SBS 추석특집 올스타 총출동
  • 1993년 SBS 깜짝 비디오쇼
  • 1993년~1996년 SBS 웃으며 삽시다
  • 1994년 SBS 설특집 두포졸전
  • 1994년~1998년 SBS 좋은친구들
  • 1996년 KBS 웃음천국
  • 1996년 SBS 코미디 펀치펀치
  • 1997년 KBS 신년특집 1997 코미디 출발
  • 1997년 KBS 열려라 코미디
  • 1998년~1999년 KBS 코미디 세상만사
  • 1999년 KBS 연예가중계
  • 1999년 SBS 코미디 살리기
  • 2000년 MBC 코미디 닷컴
  • 2001년 MBC 오늘밤 좋은밤
  • 2001년 KBS 추석특집 코미디 보물섬
  • 2001년~2005년 MBC 코미디 하우스
  • 2001년 MBC 박상원의 아름다운 TV얼굴
  • 2001년 경인방송 최양락의 코미디쇼
  • 2002년 ITV 코미디천하
  • 2002년~2006년 KBS 폭소클럽
  • 2003년 KBS 쇼 행운열차
  • 2004년 ITV 최양락, 이봉원의 금요천하
  • 2004년 KBS 디카페인
  • 2005년 KBS 코미디쇼 7080
  • 2006년 XTM 최양락의 엑스레이
  • 2008년~2010년 KBS 신동엽, 신봉선의 샴페인
  • 2008년~2009년 SBS 야심만만 2
  • 2008년 KBS 박중훈쇼 - 대한민국 일요일밤
  • 2009년 Mnet 최양락의 닷까기Z
  • 2009년~2010년 SBS 괜찮아U
  • 2009년~2010년 MBC 드라마넷 부엉이
  • 2010년 SBS플러스 최양락, 정찬우의 온에어
  • 2010년 MBC 꿀단지
  • 2011년 MBC 연애 위자료 청구사건
  • 2011년 SBS 스타 부부쇼 자기야
  • 2011년 OBS 나는 전설이다
  • 2011년 채널A 개그시대
  • 2015년 SBS 내일을 향해 뛰어라
  • 2015년 KBS 인간의조건 집으로
  • 2016년 전주MBC 코미디 파티
  • 2017년 부산MBC 아재토크 맛수다
  • 2017년 E채널 내 딸의 남자들: 아빠가 보고 있다
  • 2017년 KBS 살림하는 남자들
  • 2019년 MBC 더 뱅커 : 이봉원 역
  • KBS대전방송총국 거북이 늬우스
  • 2020년 JTBC 1호가 될 순 없어

6.2. 라디오


  •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2016년 5월 27일 종영)
  • SBS 러브FM 최양락의 개그세상 (2007년 4월 15일 종영)
  • TBN 최양락의 탄탄대로 (2018년 11월 26일 ~ 2020년 4월 17일)

6.3. 영화



7. 수상


  •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 대상 수상
  • 1987년 KBS 코미디대상 연기인기상
  • 1989년 KBS 코미디대상 남자연기상
  • 1992년 SBS 올해의 스타상
  • 1995년 SBS스타상 최우수연기상
  • 1996년 제23회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상
  • 1996년 SBS 코미디대전 베스트대상
  • 1996년 제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출연자상
  • 2000년 MBC코미디대상 최우수상
  • 2001년 제28회 한국방송대상 코미디언상
  • 2003년 ITV 송년특집 공로상
  • 2003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
  • 2009년 제14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남자라디오 진행상
  • 2010년 MBC 연예대상 남자 라디오 진행상
  • 2011년 S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50]
  • 2012년 MBC 라디오 골든마우스어워즈 브론즈마우스
  • 2012년 MBC 방송연예대상 라디오 부문 최우수상
  •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 2015년 제21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남자라디오 진행상
  • 2018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엔터테이너상[51]
  • 2020년 올해의 브랜드 대상 베스트 커플[52]
  • 2020년 SBS 연예대상 레전드 특별상
  • 2020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53]

8. 홍보대사


  • 2001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홍보위원
  • 2008년 안면도국제꽃박람회 홍보대사
  • 2009년 영등포세무서 일일명예민원봉사실장
  • 2009년 제48회 아산 성웅 이순신축제 홍보대사
  • 2009년 한화이글스 홍보대사
  • 2009년 자전거사랑전국연합회 홍보대사
  • 2017년 음성군 홍보대사
  • 2017년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교통안전 홍보대사
  • 2017년 홍천군 홍보대사
  • 2018년 남양주 일자리창출 홍보대사
  • 2019년 가톨릭관동대 평생교육 지원사업 체제 홍보대사
  • 2020년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홍보대사
  • 2020년 충주옥하우징 홍보대사

9. 경력


  • 가톨릭관동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초빙교수[54]

[1] 참조[2] 현재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덕암리.[3] 1991년 KBS 유머 1번지의 코너 괜찮아유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4] 강화 최씨 28세손 '洛'자 항렬이다. [5] 현재 기준으로도 좀 큰편인데, 80년대 당시에는 가히 남자 기준으로 따지면 매우 장신이다. 1호가 될 순 없어 22회에서 언급하였다. # 1호가 될 순 없어 3회에서 자신이 여러모로 최수종한테 꿀린다고 했지만 키만큼은 확실히 최수종을 압도하는 셈이다. 본인은 182cm라고 주장하는데 아내인 팽현숙이 방송에서 최양락 키를 183cm라고 언급하는걸 보고 왜 거짓말하냐며 지적했으나 팽현숙 성격상 거짓말한거 같지는않고 알고말한듯하다. 해당 링크가 달린 영상에서 183cm라고 말해도 최양락 본인은 지적하지 않았다.[6] 개명전 팽현숙, 2012년 개명했으며, 아내의 성인 팽씨는 3,000명을 밑도는 희성이지만, 양락의 성인 최씨는 흔한 성씨이다.[7] 개명 전 이름은 최하나. 직업은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실용영어학과 겸임교수이다. 집에서는 아직도 하나라고 불리는 듯 하다. 부모님 부부가 서로를 하나 엄마, 하나 아빠라고 하기 때문에 하나라고 잘 알려졌었는데 어머니처럼 개명을 했다.[8] 1호가 될 순 없어에서 팽현숙이 최양락에게 "이 미친 인간아!!"를 시전해서 생긴 별명이다.[9] 그의 깐족은 개그나 꽁트를 넘어서 혼연일체의 수준으로 최양락의 타고난 본성에 가깝다. 주병진은 족발을 던졌고, 임하룡은 우유를 던졌고, 김학래는 김치(?)를 던질 정도이니..[10] '직업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이란 제목으로 출전해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이번 콘테스트에서 직업에 따라 권투 경기 등을 보는 각도가 다르다는 점을 소재로 택했다. 마지막 대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잠시 동안 무대에서 정신을 잃는가 하면 트로피를 받아들자마자 눈물을 쏟던 그는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나를 가르쳤던 모든 담임선생님들께 이 기쁨을 전하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11] MBC의 모 PD가 별 활약이 없던 최양락을 보고는 “MBC가 눈이 삐었지,어떻게 1기 대상을 저런 놈한테 줬지?’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MBC입사 동기인 김정렬은 최양락의 이적에 대해 스카우트가 아니라 MBC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덧붙였다.[12] 어설프면서도 애교스런 개성적인 연기로 중·고등생 등 10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13] 위 기사에서는 앨범 4장을 냈다고 밝히고 있는데,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네로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네로 25시 팀이 부른 것이 있고, 꺼꿀이와 장다리라고 해서 코미디언 김정식과 부른 것이 있다.[14] 원래 동료 개그맨 조금산이 임미숙을 짝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미숙은 최양락과 같이 네로 25시에 메인으로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은 반면 조금산은 그냥 그저 그런 개그맨이였다. 조금산이 임미숙에게 접근한 시도는 본의 아니게 김학래와 임미숙을 연결시켜 준 꼴이 되었고, 결국 그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함으로서 조금산은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꼴이 되었다. #[15]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대해 주변의 시선이 관대하지 않았고, 특히 여자 연예인은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열애설이 퍼지면 진짜로 결혼까지 가지 않으면 이미지에 타격이 컸다. 그래서 몇몇은 악의적으로 이를 이용해서 일부러 소문을 낸 후 협박 아닌 협박으로 여성과 강제결혼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서세원과 양원경.[16] 이건 이 부부와 유명 코미디 코너도 했고 충청도 출신이기도 한 김학래, 임미숙 부부도 과거에 다른 방송에서 이미 친 적 있던 드립이다. 최근에 언제 뽀뽀했냐는 얘기가 나왔을때 김학래가 "언제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임미숙이 "뽀뽀 안 했다. 결혼하고 딱 한번 뽀뽀해서 아들 하나 낳고 다 끝났다(?)" 드립을 쳤다.[17] SBS 개국 당시, KBS에서 끌어왔던 개그맨들이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토사구팽 형식으로 용도 폐기했는데 최양락 역시 말려들었다. 아이러니한건 최양락의 좋은 친구들 후임인 박수홍도 KBS 출신이었다.[18] 이 과정에서 첫 회부터 MC를 맡아 온 김미화는 타의로 그만뒀다.[19] 이 작품은 출연진 대다수가 시트콤 첫 출연이었고 작가와 PD 모두 시트콤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같은 해 3월 초 방영 예정이었으나 전체적인 방송일정 변경 때문에 첫 회가 2000년 1월 22일로 앞당겨져 서둘러서 밤샘 제작을 해야 했다.[20] 2001년 봄 개편 때 <코미디 닷컴>이 폐지된 뒤 월요일 밤에 신설된 <오늘밤 좋은밤>으로 옮겨 계속 방송되었지만 '알까기', '추억은 방울방울' 등의 간판 코너가 2001년 9월 24일 종영된 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그 해 가을 개편(10월 29일)으로 막을 내렸고 MBC는 그 이후 1년에 2개 이상 코미디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않았다.[21] 2001년 가을 일본에서 돌아온 뒤 방송 활동 재개작이었던 SBS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의 조기종영 이후 실의에 빠진 이봉원이 <소문만복래>란 프로그램을 통해 최양락과 재회했고 이봉원은 해당 프로그램으로 TV 고정 출연을 재개했으며 그 이후에 한동안 경인방송 위주로 활동해 왔는데 김경식이 당시 최양락과 이봉원이 나온 iTV 고정 출연 프로그램( '소문만복래', '러브 러브', '코미디쇼 4막5장', '최양락 이봉원의 금요천하') 후보에 한때 거론되었으나 최양락, 이봉원 등 SBS 시절의 선배들과 같이 연기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고사했다.[22] 1999년 '코미디 살리기' 이후 SBS 고정 MC 복귀를 했는데 2001년 가을 '이주일 최양락 남희석쇼'로 SBS 복귀를 할 계획이었지만 이주일의 폐암 판정 때문에 무산됐다.[23] 느긋하고 넉살좋은 듯하면서 은근히 숨겨진 뒤끝과 촌철살인으로 대표된다.[24] 지상파 방송을 타기엔 다소 부적절한 단어지만, 이것 말고는 딱히 표현할 단어가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25] 명랑히어로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방송복귀의 의지는 보여줬지만, 본인이 게임을 잘 모르고 못하는데 이에 대해 받을 비난(역시 나이는 못속여 / 늙은 사람이 그렇지 뭐...)이 싫어서 예능형 버라이어티는 못하겠고, 오로지 토크형 버라이어티에 나가고 싶다고 프로그램을 가리는 모습을 보여줬다.[26] 위에도 나와있지만 그는 MBC 개그 콘테스트 1기 대상 수상자다. 굳이 최양락뿐 아니라 지상파 개그맨 초창기 세대들 상당수가 자신들의 개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일례로 밤이면 밤마다 프로그램에서 자기는 개그콘테스트에서 1등으로 데뷔했고 이경규는 간신히 컷트라인으로 데뷔해서 시작은 자기가 월등히 앞섰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27] 실제로 명랑 히어로 39회차 이봉원편의 게스트로 출연해서, 화려한 입담과 포복절도의 에피소드 방출 등으로 완전히 주객전도된 방송분량을 장악하더니, 47회차에서는 아예 본인이 주인공이 된 편이 만들어지고, 그대로 명랑히어로 독서토론회 코너에 고정MC로 합류했다. 하지만, 막상 합류해서는 MC들과의 티키타카를 전혀 보이지 못 했고 결국 최양락 합류 후 3회만에 프로그램이 종영(물론, 명랑히어로 자체가 높으신 분들의 외압이 살짝 작용했던 것으로 포맷이 변경되면서 시청률이 떡락했다는 것도 일부 있다.)되었다. 그리고 2009년 방영했던 야심만만2에서 이른바 "젖꼭지" 에피소드로 프로그램을 뒤집어 놓더니, 이후 야심만만2 고정 MC로 섭외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이 나오질 못한채 프로그램이 7개월만에 종영되고 말았다.[28] 사실 당시 개그맨들 똥군기를 생각했다면 주변 선배들에게 더 맞았을 행동이었다. 군기와는 거리가 먼 전유성임하룡이 옹호해줘 그나마 그정도로 끝난것.[29] 이홍렬은 데뷔는 TBC에서 했지만, MBC 특채 개그맨으로 주 활동도 MBC에서 했고 최양락은 데뷔는 MBC에서 했지만 주 활동은 KBS에서 했다.[30] 이홍렬은 비록 엄한 군기반장이긴 했지만 이경규가 신인때 자신이 개그맨인걸 주변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어해서 선배 개그맨들과 사진을 찍고싶었는데 혼날까봐 두려워서 감히 말 못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먼저 같이 사진을 찍어줄 정도로 이경규를 많이 챙겨준 사람이다. 게다가 손으로 기분나쁘게 뺨을 때린것도 아니고 구두를 벗어서 때린거는 나름(?) 배려를 한셈[31] 참고로 김형곤은 80~90년대에 개그맨 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통할 정도였고, 폭행 사건도 여러 번 일으킨 바 있다.[32] 나이는 이성미(1959년 생, 1980년 데뷔)가 임하룡(1952년 생, 1981년 데뷔)보다 7살 어리지만 개그맨으로는 1년 선배다. 현재는 장도연(1985년 생, 2007년 데뷔)과 정태호(1978년 생, 2008년 데뷔)의 관계가 이와 완벽하게 동일하다. [33] 비디오스타 91화 참고.[34] 다음날 마주친 전유성이 "너 어제 어디로 도망갔었니?"라고 물어보아서 건물 뒷편으로 도망갔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전유성은 "그래, 정말 잘했다! 어제 너 나한테 잡혔으면 맞아 죽었을거야"라며 넘어갔다고, 한 마디로 그날 걸렸으면 둘 다 다음날 신문 사회 면에 나왔을 정도로 천하의 인격자 전유성이 화가 났었다는 얘기. 그리고 한 때 전유성이 영화사에서 직원으로 일한적이 있는데, 최양락이 매일 전유성을 만나려고 찾아오는 바람에 영화사 사장이 나중에 최양락도 직원인줄 오해하고 출장을 보낸 썰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기도 하다.[35] 시험을 치르는데 답안지를 이름만 쓰고 백지로 냈다고.[36] 대표적으로 원로 코미디언 서영춘의 "에그머니나~?"와 표정 개그.[37] 본인 최애 가수인 나훈아의 테스형!을 개사해서 불렀다. [38] 이경규도 제일 무서운 선배로 이홍렬을 꼽았을 정도로 이홍렬은 개그맨들 사이에서 엄한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다. 그래도 이경규한테 그나마 잘해주던 선배였는데, 나중에 이경규가 이홍렬을 만만하게 보고 위에 기술한 담배 에피소드처럼 많이 까불기도 했다고.[39] 이홍렬보다 어리지만, 무서운 건 이쪽이 더 심했다. 이홍렬한테조차 까불었다던 이경규도 주병진과 방송하던 시절에는 쉬는 시간에도 전혀 까불지 못했으며, 당시 방송국 희극인실이 개그맨들의 수다로 시끄러울 때도, 주병진이 잠깐 나타나 조용히 하라고만 하고 가면 몇시간이 조용했다고 한다. 주병진의 친구이자 동시대 레전드 가수 이문세가 "사석에서 병진이가 후배들을 혼낼 때는 친구인 나도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고 했을 정도.[40] 여자한테 빌붙는 빈대&무력한 가장 이미지가 있는데 본인이 밝히길 방송용 컨셉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봉원은 최양락과 후배 대하는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90년대에는 가난한 무명 개그맨 후배들에게 보이기만 하면 용돈을 주고, 술집이나 식당 등에서 우연히 만난 다른 분야 연예인 후배들에게도 음식값을 계산하기 일쑤였으며, 술자리도 항상 다 계산하는 걸로 가장 유명한 개그맨이었고, 본인이 사업을 망했을때도 더 경제적으로 어려운 무명 개그맨 후배에게, 어쩌다 자신에게 들어온 행사 수입을 월세내라고 줘버려 부인 박미선의 속을 태웠을 정도로 후배들에게 많이 베풀어서, 후배들이 충성을 바친다할만큼 개그계에서는 이미지가 좋았다.[41] 당장 MBC 개그콘테스트 대상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음에도 얼마 안 가 MBC의 모 높으신 분에게 찍혀서 쫓겨났다고 한다. MBC에서 데뷔하고도 주 활동을 KBS에서 한 이유가 이것.[42] 오죽하면 최양락 머리 됐다라는 말이 단발로 잘랐는데 망했다란 뜻을 대체하고 있다.[43] 일례로 심형래의 경우는 자신이 한 개그 외에는 전부 역대 코미디 다 재미없다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단지 한 TV 프로에서 최양락의 개그 중 하나는 재미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드문 일인지 다른 동료 개그맨들도 몇 번이나 되물어봤다. 이와 같이 도량이 좁은 성질은 옛날 개그맨들의 경우 1시간짜리 프로에서 10분 정도 되는 콩트를 짜서 보여주는 형식인데 심지어 방송국이 2개뿐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한정된 TV 무대에 서기 위해서 경쟁이 극심할 수밖에 없었으며 방송가도 프로그램의 질을 위해 은근히 경쟁심리를 부추겼다.[44] 상위에서 언급한 야심만만 시즌 2에서 제대로 터뜨리고, 이후 MBC의 떼토크쇼(?)의 시초격인 명랑 히어로에서 이봉원의 게스트로 나와서 거의 자신 위주의 방송으로 빵빵 터뜨리는 등의 오리지널 토크쇼에서는 여전히 화려한 입담을 자랑했다. 당장 유투브에 "최양락 레전드"라고만 쳐도 옛날 전성기 시절 코미디외에는 대부분 위에 언급한 토크쇼 장면들이다.[45] 사족으로 팽씨 성은 국내에 3,000여명밖에 안되는 희성이다.[46] 부인 팽현숙의 지인이 부부반려견을 맡겼는데, 강아지용 맥주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동지애를 느꼈다.[47] 이거 말고도 김경민이 최양락한테 감정쌓인 에피소드가 몇개 더있는데, SBS에서 신인들을 밀고 이적 온 탑 개그맨들의 분량을 줄이다보니 견제 심리가 있던걸로 추측된다.[48] 역시 충청도의 아들을 자처하며 골수 한화 이글스팬이자 박찬호팬으로도 유명하다.[49] 1호 부부의 장녀 최윤하와 동갑이라고 한다.[50] 팽현숙과 함께 수상.[51] 팽현숙과 함께 수상.[52] 팽현숙과 함께 수상.[53] 팽현숙과 함께 수상.[54] 다만 강의 같은 것은 하고 있지 않다. 아마 아내인 팽현숙이 관동대에 재학중이라 이름만 올린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