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축구)
1. 개요
대한민국(러시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
2.1. 수원 시절
[image]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왼쪽은 안양 LG 시절의 최용수.
1994년 FC 사할린 홀름스크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995 시즌에 32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팀내 최다득점자에 올랐으나 팀의 강등으로 인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이 당시 러시아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수원의 창단 감독이던 김호 감독은 아직은 나이가 적은 편인 데니스를 데려와서 흔히 말하는 '육성형 용병'으로 써 보려 영입을 시도하였다. 당시 나이가 아직 19세에 불과했고, 그 당시 K리그에서 고졸 선수들을 보기 힘든 상황이었기에[2] 이 선수가 과연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96년 첫 시즌부터 20경기 출장 3골의 활약을 보이며 팬들에게 좋은 기대감을 품게 만들어주었고, 1997년에는 20경기 출장 3골 6어시스트를 남기며 K리그 도움왕 타이틀을 먹으며 수원의 외국인선수 중 장수용병 전설을 남기게 되었다.
다만 1998년에 흑역사가 하나 있는데, 바로 '김주성 목 밟기 사건'. 부산의 레전드였고 말년에 수비수로 전업한 김주성이 경기 중 수원 이병근 선수를 걷어찼고 이 광경을 본 데니스가 흥분해 김주성과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심판은 데니스에게 레드카드를 꺼냈고 이때 더 흥분해버린 데니스가 몸싸움 후 그라운드에 누워있던 김주성의 목을 밟아버렸다. 하필이면 이 경기가 TV 중계로 전국에 송출됐고[3] 성난 부산 팬들의 오물 투척으로 경기가 10여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데니스 선수는 출장정지 3개월에 벌금 500만원의 중징계를 받으며[4] 시즌을 접게 된다. 이해 성적은 18경기 5골 4어시스트.관련자료. 김주성 사건 사진자료도 있음
이 사건으로 거친 이미지가 되었지만 저게 유일한 K리그 퇴장이다. 더욱이 이날 경기에서 김주성이 저지른 더티 플레이는 데니스가 아니라 누구라도 화날만큼 심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2.2. 전설의 고. 데. 로 라인
1998년부터는 팀내에 고종수가 가세하고, 이때부터 슬슬 활약이 더욱 폭발하며 1999년, 2000년 K리그 올스타를 수상하게 되고, 2000년 시즌에는 산드로가 가세하게 되면서 데니스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하게 된다. 바로 K리그 리즈시절의 상징 고-데-로 라인의 형성이다. 플레이메이커이자 측면에서 정확한 크로스를 날리는 고종수와 왕성한 활동량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돌파력, 정확한 짧은 패스로 골과 어시에서 맹활약하는 데니스, J리그 가기 전까지만 해도 골넣는 기계였던 산드로의 조합은 K리그 수비수들에게 있어서는 공포 그 자체였고, 2001년에는 그 결과가 다음과 같을 정도였다.
고종수 - 20경기 출장, 10골 6어시
데니스 - 36경기 출장, 7골 3어시
산드로 - 33경기 출장, 17골 3어시
2.3. 성남으로 이적
그러나 2002시즌 중반 이후부터는 수원과 연봉 협상 문제로 트러블을 보이게 되고, 마침 지름신이 강림하신 성남 일화에서 이적 제의가 들어오게 되자 수원은 데니스를 이적료 150만달러(약 18억원), 계약금 50만달러에 성남으로 이적시키게 된다. (계약기간 2년(연봉 18만달러), 출전수당 경기당 2,500달러)
성남으로 이적한 후 성남 구단에서는 데니스에게 한국 국적으로의 귀화를 권했다. 이미 수원에서 5년 이상 뛰어서 자격조건을 갖춘 상황이었고, 한국어도 어느 정도 구사가 가능하였기에 데니스를 귀화시켜서 외국인 슬롯을 한 명 아낄 계획이었는데 그 당시까지만 해도 개인으로서도 러시아 국적보다 대한민국 국적이 더 유용하였기에 귀화 공부를 한 후 2003년 7월에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이 때 이름을 지을 때 성은 자신의 에이전트인 이영중 이반스포츠 대표의 성인 이氏 에서 따고, 이름은 자신의 현 소속팀인 성남 일화에서 따서 이성남으로 이름을 짓게 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민증으로 인증한 결과 그냥 데니스였다. 이성남은 당시 애칭으로 등록명이었다고 한다.
2003, 2004시즌의 이성남은 물 만난 고기마냥 활약이 좋았다. 윤정환, 신태용, 김상식, 김대의, 이싸빅, 샤샤 등 K리그 사기유닛만 모아놓은 상황의 성남에서 부담없이 공격을 하며 38경기 출장 9골 10어시, 20경기 출장 5골 7어시 등의 활약을 보이게 된다.[5]
2.4. 부산으로 임대, 그리고 수원으로 복귀
그러나 2005년부터 팀내에서 자리를 잃게 되고 결국 2005년에 예전 악연의 팀이었던 부산 아이파크로 한 시즌 임대이적하며 부활을 노리게 되나 실패, 결국 수원의 안효연과 트레이드되며 다시 수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잔부상 덕분에 예전의 좋은 폼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2007년에 인대 부상을 당하여 6개월동안 재활 운동을 하였으나 극복하지 못하며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하였고, 결국 방출당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2.5. 러시아 리그로 활약
2008시즌 후부터는 러시아 1부 리그의 FC 시비르 노보시비르스크로 이적하여 러시아 무대로 복귀하였으나, 두 시즌동안 27경기 출전에 그치며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러시아 리그에서 활약했고, 후에 아니라고 밝혀졌지만 당시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용병으로 취급받지 않기 위해서 다시 러시아 국적을 회복하며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였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6]
2011년에는 톰 톰스크[7] 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다.
2.6. 강원 입단, K리그로의 복귀
[image]
허나 2012년 강원 FC에 입단함으로써 K리그에 복귀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러시아 톰 톰스크에서 플레잉 코치로 활동했었지만 국적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적이여서 외국인 선수로 등록되어 있었다고. 2012년 강원의 외국인 스쿼드가 지쿠, 자크미치, 웨슬리, 시마다로 아시아 쿼터까지 꽉꽉 차 있는 걸 볼 때 여전히 한국인이 맞다. 2012년 나름대로 경험을 살려서 로테이션 자원 정도로 잘 활약했다.
그러나 2013년 시즌 들어 주전 경쟁을 이기지 못했고, 강등이 코앞이라 허덕이던 강원에서도 기회를 줄 수 없었는지 여름 이후 팀에서 방출되었다.
3. 코치 경력
방출된 이후 뭐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추석을 앞두고 체조 유망주인 딸 카트리나가 뉴스를 타면서 그의 근황도 함께 알려졌다. 현재는 은퇴하고 친정팀 수원의 제의를 받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유스팀인 매탄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했다고. 자신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 한국에 와서 살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한국 사랑이 레알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코리안 드림' 카트리나, 최고의 선수를 꿈꾼다
2014년에는 수원 U-12팀 리틀윙스에서 코치로 일하는 중.
2018년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의 지역 아마추어팀인 FSM에서 유소년 축구팀의 코치로 재직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
2019/2020 시즌 러시아 프로축구 3부리그(러시아 3부리그는 서부,중부,동부,남부,우랄 5개의 지역 리그로 나누어져 있음) 로디나(Rodina)의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팀은 현재 중위권에 위치해있다.#
2020/2021 시즌에도 로디나의 감독으로써 팀을 이끌고 있다. 2월 26일 현재 리그 5위를 마크하고 있어 승격이 아주 불가능한 위치는 아니다. 여담으로 자신의 아들 니키타가 로디나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써 뛰고 있다.[8]
4. 플레이스타일
주 포지션은 측면 공격수이나 중앙 공격수 역할 및 셰도우 스트라이커 역할도 소화할 수 있는 자원이었다. 스피드가 좋고 몸싸움을 즐겨서 측면에 공간이 마련되면 언제든지 치고 들어가며 골문 앞에서의 짧은 패스나 슈팅 능력이 좋아서 문전 앞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다만 볼달고 펼치는 개인기 자체는 썩 좋은편이 못돼서 드리볼 돌파로 수비수를 벗겨내는 식의 플레이는 보여주지 못했고 클래식 윙어라기보단 측면에서 활동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웠다. 축구 아이큐가 유달리 뛰어난 것도 아니라서 피지컬에 의지하는 경향이 컸고 때문에 노쇠화가 시작된 2005시즌부터는 전처럼 빠른 스피드로 측면을 유린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수비수들에게 막히는 경우가 급증했다.
90년대 그를 상대했던 수비수들이 술회한 바에 따르면 매우 무서운 공격수였지만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라 거칠게 마크하며 건드려주면 흥분하다가 자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고종수가 한방을 쓸때 밤에 홀로 엉엉우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회상한걸 보면 단순히 거친게 아니라 꽤 섬세하고 감상적인 성격인듯 하다.
참고로 2002년 월드컵 이전에 러시아 국가대표로 발탁된 적도 있다. 그렇기때문에 추후 귀화를 한 뒤에도 러시아 A대표팀 경력 때문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는 선발될 수 없었다.[9] 당시 일본과 한 조였던 러시아는 아시아 축구에 해박하며 당대 아시아 깡패팀 수원의 일원으로 아시아 리그팀을 쳐바르고 다녔던 데니스의 실력을 시험하고자 불렀는데 월드컵 명단에 들지는 못했다. 만약에 데니스가 러시아 대표팀으로 일본전에 출전했다면 결과가 어찌되었을지... 이후 월드컵이 끝나고 2002년 8월에 러시아 대표로 한 경기를 더 소화해 A매치 출전기록은 2경기다.
5. 관련 문서
[1] 이 이름(李城南)으로 귀화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선수 등록명이다.[2] 고종수나 이동국과 같은 천재 소리 드는 선수가 아니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한 후 K리그를 밟는 것이 1990년대 중후반의 K리그 분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고졸 선수는 즉시전력감이 되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여 영입에 소극적인 분위기였다.[3] 지상파 생중계는 아니었고 이 당시 지상파 프로그램 재송출과 스포츠 중계를 맡았던 KBS 위성2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오늘날로 비유한다면 스포츠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방송됐다고 보면 된다.[4] 원래는 1년 출장정지였다.[5] 그래서 그런지 오래 뛴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성남팬들은 호의적이다. 축구 웹툰작가&성남빠 샤다라빠는 이성남이 이적한 후 꿈에서 그를 보고 울었던 적이 있다고. [6] 대한민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생후적으로 얻으려면 원국적을 포기해야한다(다만 국적법에는 대한민국에 지대한 공헌을 하여 특별히 한국국적을 부여받은 특별귀화자의 경후 생후적으로도 복수국적을 인정받으면서 대한민국 시민권자가 될 길은 있다). 러시아는(의외로) 복수국적 허용국가이다(복수국적 문서 참조). 실제로 많은 러시아계가 러시아국적을 유지한채로 유럽, 북미국적을 갖고 해당지역에 거주하고있다. [7] 김남일이 한때 뛰었던 것으로 유명했던 팀.[8] 니키타 또한 대한민국-러시아 이중국적으로 소개되어있다.[9] 당시에는 친선전에 나섰어도 대표팀 변경이 허용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