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기갑여단
[clearfix]필승!
1. 개요
제30기갑여단 대한민국 육군의 일곱 번째 독립 기갑여단으로서 2020년 12월에 창설되었다.#
2. 상세
국방개혁에 따라 제30기계화보병사단이 2020년 11월 30일 해체, '''30기갑여단'''인 기갑여단으로 개편되어 당일인 2020년 11월 30일 재창설되었다.[2]
여단장은 준장이며[3] , 부여단장과 참모장은 대령이다.
초대여단장(現 신창대 준장)은 2014년 4월 ~ 2015년 12월 제30기계화보병사단의 제92기계화보병여단(119기보대대, 29전차대대, 53전차대대) 여단장으로 근무하였다. 現여단장(신창대 준장)은 제92기계화보병여단장 보임 후, 제30기계화보병사단 참모장으로 보직이동하였다. 참모장 영전 후 장군으로 진급하였다.[4][5]
제30기계화보병사단 시절 기갑수색대대장(문기원 중령)과 제92기계화보병여단장 (신창대 대령)의 재회[6]
3. 예하부대
제30기계화보병사단 해체 후 2020년 10월 말 기준에서는 사단 직할대였던 기갑수색대대, 공병대대, 방공대대, 정비대대[7] , 의무근무대, 화생방지원대[8] , 90여단 소속 제51전차대대 번개, 제115기계화보병대대 백비호, 포병여단 소속 제315포병대대 웅비 등이 확정 예속되었다.
그러다가 다른 전차 여단들을 보면 최소 예속 부대 수가 2개 전차대대, 1개 기계화보병대대, 1개 포병대대 등인 걸로 보아 최소 전차대대 하나가 더 예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으며, 실제로 2020년 11월 중순경 90여단 예하 제53전차대대 천마가 추가로 확정 예속되었다.
전반적으로 해체 전 30사단 90기계화보병여단 예하 부대가 많다. 실제로 여단본부 부지로 선정된 곳도 구 90여단 본부였으니.
결국 서부전선의 기갑여단답게 개편 이후 제52전차대대 팬텀, 제311포병대대 하나, 제119기계화보병대대 쌍용등이 추가로 확정 예속되어 총 3개 전차대대, 2개 기계화보병대대, 2개 포병대대로 편제됐다. 30사단 시절 606포병대대는 2기갑여단으로 예속 전환.
3.1. 여단 직할대
여단본부는 과거 90기계화보병여단 주둔지였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해 있다.
- 본부대
- 방공대
- 공병대
- 화생방중대
- 기갑수색중대
- 정보통신대
- 전투근무지원대대 - 의무중대, 2개 정비근무중대, 보급수송중대, 119기보대대와 함께 주둔
- 정보중대
3.2. 제51전차대대 번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에 위치해 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동전사 예하의 동원사단인 제72보병사단 전차대대와 주둔지를 공유하고 있다.[9]
3.3. 제52전차대대 팬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해 있다.
여단 예하부대 중 유일하게 서울특별시 내에 위치한 부대며, 인근에 수도방위사령부 방패교육대가 있으며 다리 하나 건너 고양시로 가면 제56보병사단도 있다.
3.4. 제53전차대대 천마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해 있다.
3.5. 제115기계화보병대대 백비호
여단 본부와 마찬가지로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해 있다.
직할대를 제외한 예하부대 중 유일하게 여단 주둔지 내에 있다.[10]
3.6. 제119기계화보병대대 쌍용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해 있다.
3.7. 제311포병대대 하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에 위치해 있다.
3.8. 제315포병대대 웅비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위치해 있다.
4. 출신인물
4.1.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
포병대대와 제외한 나머지 예하부대들은 서울특별시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고 교통편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11] 전신(前身)이었던 제30기계화보병사단의 근무환경을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보인다.[12] 포병대대는 문산역에서도 택시 타고 20분 정도 더 들어가 있는 위치인 법원읍에 있어 30기갑에서는 격오지쯤으로 취급될 것으로 보인다.
5.2. 여단가
'''필승 기백 이어 받은 역사의 터전 위에'''
'''전선을 주름잡는 폭풍의 철갑부대'''
'''선봉의 필승 투혼 펼치자 만주벌판'''
'''배달 민족 맹렬 위용 세계에 떨치리라'''
'''필승 용사 가는 곳엔 승리뿐이다'''
'''아아 그 이름도 찬란한 무적의 30여단'''
'''30여단가(3절)'''[13]
6. 사건사고
7. 여담
[1] 전신인 제30기계화보병사단의 상징명칭을 그대로 계승했다.[2] 구 30사단 예하 90여단 자리에서 재창설[3] 12월 14일 초대 여단장이 부임하였다.[4] 한동안 초대 여단장 대행을 맡은 문기원 대령은 제90기계화보병여단장을 맡다가 제30기계화보병사단과 제90기계화보병여단이 해체되고 제30기갑여단 출범에 따라 여단장 권한대행을 맡다가 신창대 준장이 여단장으로 부임한 후 12월말 대령인사가 있기 전까지는 참모장 권한대행직도 맡아 수행했었다.[5] 되돌아보면 제30기계화보병사단 과도기 멤버들이 여단장, 여단장 권한대행 등으로 돌아온 셈--[6] 2014~15년 이후까지 대대장, 여단장, 참모장으로써 지휘관 회의 때 자주보는 사이였다. (조한규 사단장과 함께 테니스를 치던 테니스멤버이기도 했다.)[7] 1개 중대만 상주[8] 중대급으로 개편[9] 동원사단이라 평시 편제가 작아 72사 전차대대가 51전차대대 막사 한 켠에서 지내는 식으로 주둔 중이다. 그런데 또 P.X는 72사단 소속이라 72사단 P.X병 부재 시 51전차는 P.X 관리 권한이 없기 때문에 P.X 이용을 못하는 어려움도 있었다.[10] 그래서 그런지 여단 오분대기조를 전담하고 있다.[11] 버스, 지하철 등으로 20~30분 정도만 가면 서울시계를 넘는다. 본부 주둔지 인근에 전철역이 있어 출타가 편하다는 이 점도 있다. 과거 30기보사단 시절 사령부 주둔지도 근처에 화전역이 있어 매우 편리했다.[12] 정확히는 90여단 주둔지였음으로 그쪽에 더 가까울 듯.[13] 본래 3절은 없었다가 91년에 기보사단으로 개편되면서 생겼다. 그 뒤로는 3절만 가르치고 부르는 편이다. 이것을 집중 정신전력 교육 주가 되면 본부대 군악병이 군가교육 차 전 부대 돌아다니며 소개한다. 이와 관련된 웃픈 일화가 있는데 19년 중반 즈음 국방부 군악대가 위문 공연을 와서 사단가 1절을 준비해 제창했는데 정작 줄곧 3절만 불러온 사단 장병들이 1절 가사를 몰라(...) 적지 않게 당황했다고... 참고로 당시 행사 mc가 이창섭, 정진운이였다!! 30사단이 30여단으로 개편된 이후에는 사단을 여단으로 바꿔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