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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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趙)나라의 제3대 군주이자, 조씨 종주(趙氏宗主)로서는 제12대 종주. 조열후의 아들. 조무후의 조카. 조성후의 아버지. 그는 아버지 조열후가 죽을 때 어려서 숙부 조무후가 즉위했고, 조무후가 죽자 그 뒤를 조경후가 이은 것이다.
2. 재위 기간에 일어난 사건
조경후 원년(기원전 386년), 조무후의 아들 조조(趙朝)가 모반을 일으켰으나 패배해 위(魏)나라로 달아났다. 이때 위무후가 그것을 빌미로 출병해 한단을 쳤으나 위군이 패해 물러났다. 같은 해 도성을 중모(中牟)[1] 에서 한단(邯鄲)으로 옮겼다.
조경후 2년(기원전 385년), 조나라는 영구에서 제나라에게 이겼다.
조경후 3년(기원전 384년), 조경후는 위나라를 늠구에서 구원하고, 제군을 크게 격파했다.
조경후 4년(기원전 383년), 위군이 토대에서 조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같은 해 조경후는 강평에 성을 쌓아 위(衛)나라를 치려했다.
조경후 5년(기원전 382년), 제나라와 위(魏)나라는 위(衛)나라와 함께 조나라를 쳤다. 조나라는 강평성을 빼앗겼다.
조경후 6년(기원전 382년), 조경후는 초나라에게 병사를 빌려 위나라를 쳐서 위나라의 극포 땅을 취했다.
조경후 7년(기원전 381년), 제나라가 연나라를 쳐 상구 땅을 차지했다. 조경후가 위나라, 한나라와 함께 제나라를 치니 제나라는 연나라에게 돌려주었다.
조경후 8년(기원전 379년), 조경후는 위(魏)나라를 쳐서 황성을 차지하고 위(衛)나라를 습격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조경후 9년(기원전 378년), 조경후는 제나라를 쳤다. 같은 해 제나라가 연나라를 치니 조경후는 위나라, 한나라와 연합해 제나라를 쳐서 연나라를 구원했다. 병사는 영구에 이르렀다.
조경후 10년(기원전 377년), 조경후는 다시 일어난 중산국과 방사현에서 교전했다.
조경후 11년(기원전 376년), 조경후와 위무후, 한애후는 진정공(晉靜公)을 축출해 평민으로 만들었다. 그렇게하여 공식적으로 진(晉)나라는 멸망했다. 그리고 조, 위, 한이 진나라 땅을 나눠가졌다.[2] 같은 해 조경후가 중산국을 쳤다. 그래서 중인 땅에서 싸웠다.
조경후 12년(기원전 375년), 조경후가 죽고 아들인 조종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조성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