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책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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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말, 호남성의 변법파인 황준헌(黃遵憲, 1848년 ~ 1905년)이 쓴 책으로 원제는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이지만 앞의 '사의'를 생략하고 ≪조선책략≫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강화도 조약 이후 새로운 국제 질서와 변혁을 맞이하게 된 조선에게 조언하기 위해 지어진 외교 관련 저서이다.
2. 내용
지구의 위에는 막대한 나라가 있는데, 아라사(俄羅斯, 러시아)라고 한다. 그 너비가 광대해서 3대륙에 걸쳐 있다. 육군 정예병이 백여만이고, 해군 거함이 이백여척이다. 다만, 나라를 북쪽에 세워서 하늘은 차고 땅은 척박하였다. 고로 빠르게 그 영토를 넓혀서 사직을 이롭게 하려는 생각을 가졌다. 선세로부터 피득왕(彼得王, 표트르 대제)이래 새로 강토를 개척하여 이미 이전보다 10배가 넘었다. 지금의 왕에 이르러서는 다시 4해를 관할하고 팔방을 병합하려는 마음으로 중앙아시아에 있는 회골(回骨, 위구르)의 모든 부족을 거의 잠식하였다.
천하가 모두 그 뜻이 작지 아니함을 알고 왕왕 합종하여서 서로 항거하였다. 토이기(土耳其, 터키) 한 나라를 러시아가 오랫동안 병합하고자 하였으나 영국과 법국(法國, 프랑스)이 협력하여 유지해 나감으로 러시아가 끝까지 굳세게 그 뜻을 얻을 수가 없었다. 바야흐로 서양의 여러 대국들, 독일·오스트리아·영국·이탈리아·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모두 호시탐탐 결단코 한 척의 땅이라도 러시아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러시아가 서양 공략을 이미 할 수 없게 되자, 이에 번연히 계획을 바꾸어 그 동쪽의 땅을 마음대로 하고자 하였다. 십여년 이래로 화태주(樺太州, 사할린)를 일본에게서 얻고, 중국에게서 흑룡강 동쪽을 얻었으며, 또한 토문강 입구에 주둔하여 지켜서 높은 집에서 물병을 거꾸로 세워 놓은 듯한 형세이고, 그 경영하여 여력을 남기지 않는 것은 아시아에서 뜻을 얻고자 함이다.
조선의 땅은 실로 아시아의 요충에 자리잡고 있어, 형세가 반드시 싸우는 바가 되니 조선이 위태로우면 극동의 형세가 날로 급해질 것이다. 러시아가 땅을 공략하고자 하면 반드시 조선으로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아! 러시아가 이리 같은 진나라처럼 정벌에 힘을 쓴 지 3백여년, 그 처음이 구라파에 있었고, 다음에는 중아시아였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 조선이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즉, 오늘날 조선의 책략은 러시아를 막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 것이다. 러시아를 막는 책략은 무엇과 같은가? 중국과 친하고(친중국) 일본과 맺고(결일본), 미국과 연결함으로써(연미국) 자강을 도모할 따름이다.
중국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동⋅서⋅북쪽을 대체로 러시아와 경계를 맞대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중국은 땅이 크고 물자가 풍부하며, 그 형세가 아시아 주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천하에 러시아를 제어할 나라로는 중국만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국이 사랑하는 나라로는 또한 조선만한 나라가 없다. 조선이 우리 번속(藩屬)이 된 지 이미 1000년이 지났다. 중국은 덕으로써 편안히 지내게 하고 은혜로써 품어줄 뿐, 한 번도 그 토지와 인민을 탐내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음은 천하가 함께 믿는 바이다. 하물며 우리 대청(大淸)은 동쪽 땅에서 제국을 일으켜, 먼저 조선을 평정하고 후에 명나라를 정벌해서 200여 년 동안 덕으로 소국을 아꼈고 조선은 예로써 대국을 섬겨 왔다. 강희, 건륭] 시대에는 무슨 일이든지 서로 묻지 않은 것이 없어서 내지(內地)의 군현과 다름이 없었다. 이는 문자가 같고, 정교(政敎)가 같고, 정의(情誼)가 친목할 뿐만 아니라, 또한 형세가 서로 접하여 신경(神京)을 껴안아 호위하는 것이 마치 왼팔과 같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환란을 함께하였다. 저 월남(越南, 베트남)과의 소원한 관계나 면전(緬甸, 미얀마)처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본래 몹시 차이가 있었다. 지난번 조선에서 일이 있을 때에는 중국은 어김없이 천하의 양식을 다 써버리고 천하의 힘을 다하여 싸웠다. 서양의 통례에 따르면, 양국이 전쟁할 때면 국외의 나라는 그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한편을 도와줄 수 없으나 다만 속국은 곧 예외이다. 오늘날 조선은 중국 섬기기를 마땅히 예전보다 더욱 힘써서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과 우리는 한집안 같음을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의가 밝혀지고 응원이 자연히 왕성해지면 러시아 사람은 그(조선의) 형세가 고립되지 않았음을 알고 조금은 돌아보고 꺼림이 있을 것이다. 일본 사람은 그 힘이 대적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 가히 더불어 연결하여 화친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필코 외국의 혼란은 슬며시 없어지고 나라의 근본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중국과 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맺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중국 이외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일본이다. 옛날 선왕이 사신을 보내어 통교한 나라는 맹부에 실려 있고, 그들은 대대로 맡은 일에 충실하였다. 근일에 이르러서는 즉 북으로 이리와 호랑이가 어깨와 등을 걸쳐 타고 있어 만일 일본이 혹여 땅을 잃으면 조선 팔도가 능히 스스로 보전할 수가 없을 것이다. 조선은 한번 변고가 생기면 구주(九州, 규슈)·사국(四國, 시코쿠)이 또한 일본의 차지하는 바가 되지 못할 것이다. 고로 일본과 조선은 실로 보거상의(輔車相依)의 형세에 놓여있다. 한(韓), 조(趙), 위(魏)가 합종(合縱)하자 진(秦)이 감히 동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오(吳)와 촉(蜀)이 서로 결합하자 위(魏)가 감히 남쪽으로 침략해 오지 못하였다. 저들이 강대한 이웃 나라의 핍박으로 순치(脣齒)의 교분을 맺고자 하니, 조선으로서는 작은 거리낌을 버리고 큰 계책을 도모하여, 옛날의 우호를 닦고 외부의 지원과 결합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양국의 윤선과 철선이 일본의 바다 위에 종횡으로 누비게 되면 외국의 업신여김은 절로 들어올 길이 없어질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일본과 맺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연결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일컬음인가? 조선을 동해로부터 가면 아메리카가 있는데 즉 합중국이 도읍한 곳이다. 그 근본은 영국에 속해 있었는데 백년 전에 화성돈(華盛頓, 조지 워싱턴)이란 자가 유럽사람의 학정을 받기를 원치 않고 발분 자립하여 한 나라를 독립시켰다. 이 뒤로부터 선왕의 유훈을 지켜서 예의로써 나라를 세우고 토지를 탐내지 않고, 남의 인민을 탐내지 않고, 굳이 남의 정사에 간여하지 않았다. 그와 중국과는 조약을 맺은 지 십여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조그마한 분쟁도 없는 나라이다. 일본과의 왕례에 있어서는 통상을 권유하고 연병을 권유하고, 약속을 고칠 것을 도와주니, 이는 천하만국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대개 민주국이란 공화로써 정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이 나라를 세운 시초는 영국의 혹독한 학정으로 말미암아 발분하여 일어났으므로 고로 항상 아시아와 친하고 유럽과는 항상 소원하였다. 그 인종은 실은 유럽과 동종이다. 그 나라의 강성함은 유럽의 여러 대지와 더불어 동·서양 둘 사이에 끼여 있기 때문에 항상 약소한 자를 부조하고 공의를 유지하여, 유럽사람으로 하여금 그 악을 함부로 행할 수 없게 하였다. 그 국세는 대동양에 두루 미치고 그 상무는 호로 대동양에서 성하였다. 또한 동양이 각기 제 나라를 보전하여 편안히 거하고 무사하기를 원하였던 까닭에 그 사절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으로서는 마땅히 항상 만리 대양에 사절을 보내서 그들과 더불어 수호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그들이 연달아 사신을 보내어 조선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뜻이 있음에랴! 우방의 나라로 끌어들이면 가히 구원을 얻고, 가히 화를 풀 수 있다. 이것이 미국에 연결해야 하는 까닭이다.원문
3. 설명
1880년, 수신사로 일본에 간 김홍집이 국제법 서적인 만국 공법과 함께 들여온 책이며, ≪조선책략≫은 당시 일본 주재 청나라(이하, 청) 공사관의 참찬(參贊; 오늘날의 서기관)이었던 황준헌이 김홍집을 만났을 때 건네준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간단하게 줄이면 "'''러시아는'''[1] 청과 조선에 위협적인 애들이니 조선은 청과는 당연히 친하게 지내고 일본도 가까운 애들이니 결속해야 하고 미국애들과도 연결해서 러시아와 맞서야 한다"는 내용이다. 요약하자면 친중국(親中國)ㆍ결일본(結日本)ㆍ연미국(聯美國). 이 관점은 일본을 견제하려는 이홍장의 판단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미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근거로는 미국은 영국의 폭정으로부터 독립하여 유럽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니 아시아와는 친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미국은 정의의 나라니까 조선을 이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 했는데, 여기엔 '애초에 미국은 영국의 폭정(暴政)에 반발하여 독립 및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열강)가 남(조선)을 소유한다는 개념 자체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성격을 갖고 있다'라는 부연설명도 적혀 있다. 국제정치에 정의가 어딨냐는 건 둘째치고, 당시 미국은 그냥 먼로독트린(1823)을 깨고 식민지 개척에 손을 뻗기 전이었을 뿐이다. 일본을 통해서 조선과 수교하려했던 미국과 조선의 수교를 대신 중계하면서 조선에 대한 청의 우위를 보이고 싶었던 것이 책의 진짜 목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청의 주선 하에 조선이 미국과 수교하고 이후 여러 국가가 청을 통해서 조선과 연결되니, 이 책의 의도가 어찌됐던간에 청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상황 전개였던 셈이다.
4. 영향
내용은 이렇게 간단했지만 조선에 미친 파급력은 상당하여, 조선의 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조선책략≫은 필독서가 되었다. 조정에서는 1880년 12월(양력 1881년 1월)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1881년 5월에 별기군(別技軍)을 설치하였고, 1881년에는 청나라에 근대식 병기 제조, 사용법을 배우러 영선사(領選使)를 파견하고, 일본에는 근대적 일본문물을 시찰하러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2] 을 파견하는 등 개화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본 위정척사파들은 만인소를 쓰는 등 대단히 불쾌하게 여겼다. 대표적으로 이만손(李晩孫; 1811년 ~ 1891년)[3] 은 영남만인소를 통해, '러시아는 본래 우리와 딱히 악감정도 없고[4] 미국은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인데, 이를 공연히 적으로 돌렸다가 일이 틀어지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강경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처럼 외래문물 도입 등의 개화 정책은 이를 반대하던 양반 유림 세력들에게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이런 개화 과정에서 빚어진 여러 가지 갈등은 결국 임오군란으로 폭발하게 된다. 사실 위정척사파가 주장해서 그렇지, 말하는 논지는 틀리지 않은 게 러시아는 효종 때 잠깐 투닥거린 거 빼면 일면식도 없는 나라고, 청은 조선을 반쯤 자기 속국으로 여기며 갑질만 하고 있고, 미국은 진짜 바다 저 멀리에서 건너온 외계인 같은 나라였고, 일본은 임진왜란 때 외교관계가 망한 걸 간신히 재건하긴 했지만 여전히 가끔 교역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정보도 없는 나라였다. 상식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하나 다굴 치자고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는 나라 셋이랑 연합하자고 하는 게 정상적인 소리로 받아들여졌을 리 없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세의 흐름은 조선책략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청은 임오군란, 갑신정변을 거쳐 청이 기존 사대관계에서 근대적 속국으로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였고 일본 또한 조선을 반쯤 속국 여기며 독자적인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청과 일본 또한 서로 협력하지 않고 대립하여서 결국 청일전쟁이 발발하였고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청은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다. 조선은 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인다. 조선이 러시아와 손을 잡자 당시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영국은 일본과 동맹을 맺어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도와준다. 미국은 조선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데다가 러시아가 극동 만주와 조선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하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을 밀어주었고 이들은 일본이 조선을 먹는 것을 묵인하였다.
다만 러시아에 대한 경계는 단지 조선책략뿐 아니라 그 몇십년전 고종이 즉위하고 몇년 안가서 남종삼 등이 대원군이 보낸 편지에서 러시아가 남으로 내려오니 프랑스와 수교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는걸로 보아 조선책략 이전에도 경계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가 이것으로 증폭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덕분에 일본은 경계 않고 답없이 러시아만 경계하는 이가 생겨 문제되긴 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