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몬 칼루

 


[image]
'''보타포구 FR No. 8'''
'''살로몽 아르망 마글루아르 칼루 [1]
(Salomon Armand Magloire Kalou) '''
'''생년월일'''
1985년 8월 5일
'''국적'''
[image] 코트디부아르
'''출신지'''
아비장
'''종교'''
이슬람
'''포지션'''
윙어/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86cm, 76kg
'''프로입단'''
2000년 ASEC 미모사
'''소속팀'''
ASEC 미모사 (2000~2003)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3~2006)
SBV 엑셀시오르 (2004, 임대)
'''첼시 FC (2006~2012)'''
릴 OSC (2012~2014)
'''헤르타 BSC (2014~2020)'''
보타포구 FR (2020~)
'''국가대표'''
97경기 / 28골
1. 개요
2. 선수 경력
3. 우승
4. 국가대표
5. 관련 문서


1. 개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 스트라이커는 물론이고 좌우 윙포워드에서도 잘 뛰는 선수. 풀네임은 살로몽 아르망 마글루아르 칼루. 줄여서 살로몽 칼루로 불리운다.

2. 선수 경력



2.1.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0년 ASEC 미모사에서 데뷔한 뒤 2003년 에레디비시페예노르트로 이적했으며, 2004년 SBV 엑셀시오르로 임대를 떠난 것[2]을 제외하고는 2006년까지 페예노르트에서 활동하였다. 이 당시 디르크 카윗과 더불어 팀의 공격을 이끌었으며, 2004-05 시즌 '요한 크루이프 프리스'[3]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네덜란드 국적 취득에 실패해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뒤 첼시 FC로 이적하였다.

2.2. 첼시 FC


첼시 FC에서 공격수나 윙어로 활약했으며, 주전보다는 주로 벤치에서 교체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플레이 스타일은 측면에서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이며 받은 공을 잘 간수하고, 수비 가담 능력이 뛰어난 전형적인 무리뉴 스타일의 공격수였다. 또한 의외로 득점 능력이 뛰어나 출전 경기 대비 스탯이 상당히 우수한 선수였다. 심지어 그의 득점 대부분은 경기의 결승골이거나 질 경기를 비기게 만드는, 그 순도가 굉장히 높은 것들이었다. 다만, 그의 불운이라면 같은 팀 내에 그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 존재한다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확실한 득점원으로서도, 윙포워드로서도 대성하여 홀로 우뚝 서지 못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무튼 첼시 시절에는 출전 부족이나 선수 본인의 여러 문제로 인하여 기량의 향상을 크게 이루지 못하고 들쑥날쑥한 경기력으로 팬들을 실망시키는 일이 잦았다.
칼루가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히딩크의 첼시 이후라고 봐도 무방한데, 자신에게 큰 기대와 신뢰를 보여준[4] 스콜라리 감독이 경질되고, 히딩크의 마법이 풀린 후 여러 정신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하드웨어적 이점이나 타 공격자원들에 비해 우수한 수비능력을 살려 차두리빅터 모지스처럼 윙백 및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더라면 더 빨리 첼시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도 있었다.
핵심선수들의 부상 및 혹사, 노쇠화가 겹쳐 첼시가 삐걱대던 10-11시즌 이후, 수비력에 큰 문제를 보이거나, 공격 가담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등 의욕이 없거나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마찬가지로 기량이 매우 저하한 말루다와 한데 묶어 '말칼족' 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이후 가끔 출전하였을 때는 때때로 자신의 처우에 대한 불만을 대외적으로 표시하곤 하였는데[5], 팬들의 입장에선 좋게 보일 수는 없었다. 이 시즌 리그에서는 10골을 기록했다.
이러저러하여 안첼로티 감독도 독이 든 성배를 견디지 못한채 경질되고,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이 첼시에 부임하였을 때, 칼루는 프리시즌의 아시아 투어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며 눈밖에 나는가 싶더니 결국 11년 말에는 리저브(2군)를 왔다갔다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AVB가 광속 경질되고 멘탈 치유사 로베르토 디 마테오 임시 감독 대행 아래서 칼루는 첼시에서의 마지막 빛을 보게 된다.기존의 레프트윙으로 뛰던 후안 마타가 디 마테오 체제에서 중앙 공미로 서게 되면서 레프트윙 자리가 비어있는데 마타 대신 이 자리에서 주전으로 뛰어야 할 플로랑 말루다가 아직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칼루를 이 포지션에서 실험해보았고[6] 말루다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이면서 기어코 주전 레프트윙 자리를 차지한다. 이는 주로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일이었는데, 챔피언스리그 8강 벤피카전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발로 나와 귀중한 원정골을 뽑아내는가 하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도 같았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 하는 하미레스 대신 라이트윙으로 나와 84분 동안 11명의 방패 중 하나가 되어 훌륭히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7][8]
말년이 좋지 않았기에 욕을 많이 먹는 선수이나[9], 그에게는 언제나 디디에 드록바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고, 첼시 FC의 잦은 감독 교체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세계 최고의 자리에 서는 영광을 얻고 칼루는 시즌 종료 후 릴 OSC로 이적을 완료했다.

2.3. 릴 OSC


에덴 아자르가 첼시로 떠나며 이렇다 할 에이스가 없어진 릴에서 공격과 수비가담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2013-14 시즌 리그에서 16골을 득점해 공동 2위에 오르는 등 맹활약을 펼쳐 빅 클럽들의 이적 제의를 받게 되었다.
2014년 3월 말 한 인터뷰에서 아스날로의 임대 이적을 제의받았으나 릴 OSC의 시즌 마무리와 다가올 월드컵을 우선시했다고 발표했다.

2.4. 헤르타 BSC


2014년 8월 31일 헤르타 BSC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시즌 13경기 10골을 터뜨리며 팀내 최다득점자로 완벽 부활중. #

3. 우승


  • 첼시 FC (2006 ~ 2012)
    • 프리미어리그 : 2009-10
    • 리그컵 : 2006-07
    • FA컵 : 2006-07 , 2008-09 , 2009-10 , 2011-12
    •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07-08
    • UEFA 챔피언스리그 : 2011-12
  •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
    •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준우승
    • 2015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우승

4. 국가대표


원래는 2006년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해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2006년 월드컵에 참가할 예정이었으나,[10] 최종적으로 귀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고 덩달아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지 못해 월드컵은 물건너갔다.[11]
이후 2007년 2월 6일 기니와의 경기에서 성인대표로 데뷔하였다. 네이션스컵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5. 관련 문서



[1] 국내에서는 살로몽 보다 압도적으로 살로'몬'으로 칭해지는 비율이 높아 해당항목도 살로몬 칼루로 작성되었다.[2] 참고로 엑셀시오르는 페예노르트의 위성 구단이다.[3] '올해의 영 플레이어 상'과 비슷한 상이다.[4] 칼루의 이적을 시도한 벵거 감독을 칭찬하며 칼루를 내어주지는 않겠다고 언론에 발표한다거나[5] 홈 구장에서 골을 넣고 세레모니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심지어 해트트릭을 한 경기에서도 썩 기쁘지 않은 표정으로 기뻐하는 팀원들과는 대조적인 미묘한 표정으로 대충대충 어울리고는 했다.[6] 이전에도 칼루는 양쪽 윙어를 소화 가능했다. 단지, 주전 자리를 차지한 적이 상당히 짧았을 뿐이다.[7] 실제로, 연장전에서 드록바의 패널티 파울의 경우 칼루와 교체한 토레스의 부족한 수비력을 커버하기 위한 행동의 결과라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8] 그리고 이 결승전 전반에서 첼시가 딱 한 번 뮌헨을 위협했던 날카로운 돌파와 크로스를 선보인 것도 칼루였다.[9] 물론 10-11시즌부터 폭삭 망해 역적 취급을 받던 말루다보다는 처지가 훨씬 나았다.[10] 여담으로 이 당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르코 반 바스텐요한 크루이프 등이 칼루의 네덜란드 국적 취득을 지원하기도 했다.[11] 참고로 2006년 월드컵에서 살로몬 칼루의 친형인 보나방튀르 칼루는 코트디부아르 소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기 때문에 당시 살로몬 칼루가 네덜란드 국적을 취득했더라면 보아텡 형제보다 먼저 월드컵에서 형제 대결을 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