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러 그로시치
1. 개요
헝가리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으로 현역 시절 매직 마자르의 일원이자 스위퍼 키퍼의 역할을 창조해낸 골키퍼다.
2. 선수 경력
헝가리 군대 산하의 클럽 부다페스트 혼베드 FC는 헝가리의 슈퍼스타들을 불러모았는데,[1] 그로시치도 그 중 하나였고, 헝가리 리그에서만 4회 우승을 하였다.
그로시치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매직 마자르의 수문장으로서 맹활약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53년에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3실점이나 했지만, 히데구티와 푸스카스의 활약으로 6:3으로 대파한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헝가리는 막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을 9:0, 서독을 8:3으로 박살내고, 8강에서는 브라질과 '베른의 전투'라고 불릴정도로 치열하고 폭력적인 경기 끝에 4:2로 승리했다. 4강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마저 격파하고 결승전에서 서독과 다시 대결한다. 초반에는 2:0으로 앞서갔지만, 결국 3:2 역전패를 당해 베른의 기적의 희생양이 되어 준우승에 그친다.
4년 후 1958년 월드컵을 기약했으나, 1956년 헝가리 혁명으로 인해 헝가리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로시치 가족도 헝가리를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고자 했으나 강제로 헝가리로 복귀해야 했다. 이후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에 참가한 후 1962년에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그로시치는 표범처럼 날렵한 움직임으로 훌륭한 선방 능력을 보여주었고, 훌륭한 발밑과 시야를 가졌기에, 최초의 스위퍼 키퍼 스타일을 선보인 선수였다. 현재 스위퍼 키퍼하면 마누엘 노이어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스위퍼 키퍼의 역할을 창조해냈다 할 수 있는 그로시치같은 선수들이 없었다면 노이어의 활약도 없었을 것이다.
4. 은퇴 이후
은퇴한 후, 그로시치는 여러 팀의 감독을 맡다가,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후 더이상 감독을 맡지 않았다.
헝가리가 1990년에 민주화가 되었을 때, 그로시치는 헝가리 민주 포럼에서 의회에 출마하지 못했다.
82세 때 그로시치는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와의 친선 경기에서 킥오프를 하면서 관중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교체되었다.
이후 2014년 6월 13일 88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