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베르투 시우바

 

'''지우베르투 시우바의 수상 이력'''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 2002'''

'''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이름'''
'''지우베르투 시우바
Gilberto Silva'''
'''본명'''
지우베르투 아파리시두 다시우바
Gilberto Aparecido da Silva
'''출생'''
1976년 10월 7일(48세) /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라구아디플라타
'''국적'''
브라질 [image]
'''신체'''
185cm | 78kg
'''직업'''
축구선수(중앙 미드필더, 센터백 / 은퇴)
''' 소속 '''
''' 선수 '''
아메리카 미네이루 (1988~1993 / 유스)
아메리카 미네이루 (1997~2000)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00~2002)
'''아스날 FC (2002~2008)'''
파나티나이코스 FC (2008~2011)
그레미우 (2011~2012)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13)
'''국가대표'''
93경기 3골(브라질 / 2001~2010)
1. 개요
2. 어린 시절
3. 커리어
3.1. 브라질에서
3.2. 아스날
3.3. 파나티나이코스
3.4. 다시 브라질로
3.5. 국가대표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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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국적의 전직 축구선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후반까지 활약한 선수 가운데 파트리크 비에라, 클라렌스 세도르프, 제 호베르투, 미하엘 발락과 함께 전술이해도가 뛰어난 선수로 꼽히며, 잘 언급되지는 않지만 카나리아 군단2002 한일 월드컵 우승과 아스날 FC의 2003-04 시즌 프리미어 리그 무패 우승의 숨은 주역이기도 하다.

2. 어린 시절


대장장이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고, 태어나 보니 이미 3명의 누나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살던 그는 형편이 어려웠고 누나들과 한 방을 써야 했다. 당연히 그는 자유로운 꼬맹이였고 하루 온종일 사촌이나 친구들과 공차는 게 일이었다. 개중에서 특출났던 지우베르투 시우바는 12세에 아메리카 미네이로의 유소년 팀에 입단할 기회를 잡게 된다. 중앙 수비수로 훈련받던 그는 15세 때 더 이상 아버지가 일을 못하게 되면서 그 동안 틈틈이 배워놨던 아버지의 기술을 이용해 가구를 만들며 가족을 부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마저 아팠던 것이다.
시우바는 목수, 막일꾼, 사탕공장 등을 전전하다 18세 때 꿈을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축구에 도전하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이 더 악화되면서 시우바는 다시 곧바로 사탕 공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허나 한국나이 22세 대학교를 정규과정에 맞춰 진학했다면 대학교 3학년과 동급일 때 시우바의 재능을 확신한 그의 친구에 의해 시우바는 다시 테스트를 받게 되고, 이번에야말로 풀타임 프로로서 아메리카 미네이루에 입단하게 된다.

3. 커리어



3.1. 브라질에서


아메리카 미네이루에서 입단하자마자 그는 핵심 중앙 수비수로 활약하게 된다. 팀은 다음 해 1부리그로 승격하게 되니, 비록 기복이 있었다는 비판은 받았지만 실로 천부적인 재능이다. 3년째 되는 해, 팀은 준우승을 거두게 되고 시우바는 다음 해 아틀레티코 미네이루로 이적하게 된다. 첫해는 부상을 당하며 세월을 보내게 된다. 허나 다음 해 시우바는 중앙 수비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옮기게 되고 이는 그에게 카나리아의 노란 유니폼을 입을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3.2. 아스날


[image]
'''2003/04 시즌 아스날의 프리미어 리그 무패 우승의 숨은 주역'''
2002년 여름. 아스날은 중원의 핵심멤버였던 패트릭 비에이라의 짝을 찾고 있던 상황이었고, PSV 아인트호벤마르크 반 봄멜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1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이적료에 부담을 느낀 아르센 벵거는 브라질 국가대표로 월드컵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보인 지우베르투 시우바에게 눈을 돌렸고 2002년 8월 450만 파운드라는 비교적 저렴한 이적료에 아스날 FC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시우바는 유럽에서의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러 실망하는 팬들도 있긴 했지만...
이적 후 활약은 그야말로 대박. 별다른 적응기도 없이 비에이라와 최고의 중원을 구성하여 이적 후 한시즌 만인 03/04시즌에는 '''무패우승'''을 이뤄낸 아스날의 핵심 멤버가 되었다. 뒤에서 묵묵히 수비적인 역할을 도맡으며 비에이라의 공격적 재능을 살려주는 역할. 무명에서 국가대표 승선, 월드컵 우승에 빅클럽이적 그리고 무패우승까지. 20대 초반, 축구를 그만둘 생각을 하던 청년의 기가 막힌 성공이었다. 실제로 아스날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시우바는 자기가 길고 긴 꿈을 꾸고 있는 듯 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 시우바의 파트너로 브라질 대표팀의 중앙 미드필더를 담당했던 클레베르손이 맨유에서 대 실패를 거뒀기 때문에 아스날에서의 시우바의 성공은 더욱 빛나 보였다.
아스날의 무패우승을 논할때 로렌, 콜로 투레등과 함께 잘 언급이 안되는 선수중 한명.
이후 05/06시즌 부터는 비에이라가 팀을 떠나고 세스크 파브레가스라는 새파란 유망주와 함께 중원을 이루게 되었는데, 당시 갓데뷔한 파브레가스는 그때도 패스 하나는 진퉁이었지만, 피지컬도 완성되지 않았고 수비능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중원 장악력이 걱정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역시 뒤에서 조용하게 쓸어담아주는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있었기에,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센세이셔널한 데뷔시즌을 보냈고, 시우바는 꾸준히 비에이라 이탈 후 흔들리는 아스날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후 06/07시즌에는 팀의 부주장을 맡게되는데 이때 주장인 티에리 앙리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하면서, 많은 경기에 완장을 차고 나오며 사실상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렇게 아스날의 레전드로서 순탄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듯 보였으나...
07/08시즌을 앞두고 코파아메리카에 브라질 대표로 차출된다. 그래서 07/08시즌 초반을 결장하게 되는데, 당시 시우바의 백업멤버는 만년 유망주 마티유 플라미니. 그러나 플라미니는 중앙미드필더보다는 주로 풀백에서 더 솔리드한 모습을 보였고 중앙미드필더에서는 헤매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에 아스날 팬들은 지우베르투 시우바의 컴백을 목놓아 기다리게 될 줄 알았는데...
'''플라미니의 포텐이 터졌다.'''
플라미니의 맹활약이 이어지고 팀도 '''무패 우승이후 4년만에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면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시우바가 복귀한 후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사실 시우바가 밀려난 이후는 단순한 실력 때문만의 문제는 아니라 스타일상의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지우베르투 시우바는 경기중에 거의 전진을 하지 않으며 포백을 보호하는 역할에 치중하는 전형적인 홀딩 미드필더였지만, 플라미니는 경기당 13km를 꾸준히 뛰어주는 미친 활동량을 앞세워 필드 이곳 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였다. 특히 공격적 성향도 강했기 때문에 상대편 진영으로 자주 침투를 하곤 했다.[1] 이렇게 시우바의 전진성이 약한 탓에, 파브레가스와 짝을 이루게 되면 파브레가스에게만 집중 견제가 이뤄지게 되고 공격력이 약화되는 현상이 있었던 것.
반면 플라미니의 경우 시도 때도 없이 전진과 침투를 해대는 통에 상대편 미드필더나 수비의 마크가 플라미니에게로 가는 사이에 파브레가스에게 좀 더 공간이 생기고 자유롭게 플레이 할 수 있게 되면서[2] 팀의 공격력이 상승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물론 수비력에서는 시우바의 영향력이 매우 크지만 당시 파브레가스는 수비력, 피지컬, 킥력 등 모든 능력치가 수직상승을 이뤄 완전체 미드필더로 향해가는 과정이었고 특히 수비력이 크게 향상되어 더이상 시우바의 수비가 크게 아쉬운 상황이 아니었던 탓도 있다.[3]
여하간 한순간에 후보로 밀려버린 지우베르투 시우바는 결국 07/08 시즌이 끝나고 6년간의 잉글랜드 생활을 마친 채 그리스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하게 된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07/08 시즌이 끝나고 플라미니가 보스만 룰로 AC 밀란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시우바는 잔류했더라면 다시 주전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았고 아스날은 한동안 중원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 해줄 홀딩 미드필더 자리를 찾지 못해 고생을 해야했다. 아부 디아비가 그나마 있었지만 그는 알다시피 유리몸이라서...
'''다소간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벵거가 시우바를 판매한 이유가 나이가 들면서 민첩성이 떨어지는 것을 통계적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양반이 말년의 아르테타나 플라미니를 끝까지 기용한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물론, 벵거가 자카에게 푹 빠졌던게 원인이기는 하지만...'''

3.3. 파나티나이코스


2008년 7월 17일 파나티나이코스로 이적하였다. 3시즌 동안 78경기 6골을 기록하였다.

3.4. 다시 브라질로


2011년 5월 23일 그레미우로 이적하였다. 그레미우에서 47경기 1골을 기록하였다.
2012년 12월 9일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이적하였다. 11년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3.5. 국가대표


2001년 10월 처음 브라질 A 대표에 호출되었다. 10월 7일 칠레와의 경기에서 A 대표로 데뷔하였다. 2002년 1월 31일 볼리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image]
잘 언급은 되지 않지만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필리페 스콜라리 감독에 의해 중용받아 대회 내내 주전으로 출전, 3R(히바우두-호나우두-호나우지뉴)편대가 마음껏 상대를 휘저을 수 있도록 수비밸런스를 완벽히 잡아주며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4. 플레이 스타일


위에서 서술했듯이 전형적인 홀딩 미드필더. 본래 센터백 출신이었고 아스날에서도 가끔 센터백을 본적이 있다. 그렇게 때문에 위치선정이나 대인방어, 태클링 등을 비롯한 수비적인 센스가 매우 좋은 편. 더욱이 장점은 이름난 수비형미드필더들이 대체적으로 카드캡터인 반면 시우바는 카드를 거의 받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한다. 활동량이 많진 않지만 그렇다고 체력이 약점은 아니고 축구지능과 수비센스를 포백의 부담을 덜어준다. 아르센 벵거감독이 당시 사용한 전술은 전형적인 아리고 사키4-4-2 전술로서, 미드필드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앙 미드필더 두 명에게 높은 전술 이해도를 요구했는데 패트릭 비에이라와 지우베르투 시우바는 전술 이해도와 축구지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선수였다. 거기에 둘다 탄력적인 피지컬의 우위까지가지고 있었고 비에이라가 중앙에서 공수 양면에서 힘을 보태고 시우바가 포백앞에서 부담을 덜어주며 공격을 전개해나가니 EPL의 중원을 씹어먹었고 49경기 무패라는 금자탑을 세울 수 있었다.
단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역시 공격력. 물론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공격력이 메인이 되는 단점은 아니겠지만, 현대축구 흐름상 침투든 패싱이든 어느정도 공격력을 갖춘 수비형 미드필더가 높게 평가받는 만큼 브라질리언임에도[4] 이런 부분들을 갖추지 못한 것은 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창의적인 패서는 아니었지만 공수연결고리가 될 정도의 무난한 패싱력과 실수하는 법이 매우 적었다.
워낙 침착한 선수라 아스날 시절에는 페널티킥을 도맡아서 찼다. 시즌 10골을 기록한 적도 있는데 대부분이 PK골이었다. 워낙 출중한 선수들이 많은 브라질 대표팀에서야 골 넣을 기회가 별로 없어 90경기를 출장했어도 3골에 그쳤지만 아스날에서는 200경기를 넘게 출장하면서 20골이 넘는 골을 넣었다. 비록 미드필더지만 화려한 침투나 혹은 헤더로 세트피스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골을 넣는 타입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벵거의 기준에서는 PK를 매우 잘찬다고 판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무패 우승 시절 아스날, 혹은 브라질 국가대표에서는 워낙 팀퀄리티가 좋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상쇄되었지만[5] 결국 위에 서술한대로 후에 플라미니에게 주전을 뺏기게 되는 이유는 공격력 때문.
그러나 오히려 아스날에서 쫓겨난 이후 이 부분이 보강이 된다. 2010 월드컵 브라질 대표로 뛰는 모습을 보면 예전의 그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아니었다. 수비적 능력이 여전한 건 물론 공격적 능력이 확연히 좋아졌다. 즉 당시 어렸던 플라미니는 30이 넘어서도 축구지능이 개선되지 않았지만 30이 넘은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오히려 그리스에서 축구변신을 했다. 정규교육도 거의 못 받고 사탕공장에서 사탕만들다가 22살에서야 겨우 프로로 뛰었음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된 천재답다.
멘탈은 매우 좋은 편. 거친 싸움을 해야되는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이지만 위에서 말한대로 거친 플레이를 하는 편이 아니어서 카드를 많이 받는 편도 아니었고, 경기장 내에서 거의 감정변화가 없는 선수다. 효율성이 높고 침착하며 상황을 읽는 능력이 좋다. 그래서 아스날에서도 부주장이 되었고 국대에서도 주장완장을 찬 적이 있다.
파울리뉴가 그의 후계자로서 거론되고 있다.
[1] 오히려 이것은 포텐폭발 전 플라미니가 욕먹는 이유 중 하나였다. 시도때도 없이 뛰쳐나간다고... 그러나 축구센스가 좀 생기면서 본디 가지고 있던 활동량과 침투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게 된 케이스. 현재 아스날의 핵심으로 성장한 아론 램지도 이런식으로 포텐이 터진 케이스. 물론 플라미니는 세스크와의 호흡이 매우 잘 맞았던 부분이 크다.[2] 이 때 엄청난 골 행진을 이어갔다. 신기한 사실은 올시즌 아르테타의 부상으로 플라미니와 호흡을 맞추게 된 램지 역시 엄청난 골 폭풍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3] 하지만 플라미니 - 세스크의 중원은 포백보호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긴 했다.[4] 루시우 페헤이라, 후앙, 최근에는 첼시의 다비드 루이스 등, 브라질리언은 센터백도 공격본능을 숨기기 힘든 경우가 종종있다.[5] 오히려 무패우승 시절에는 다들 한 패스 하는 선수들이다보니 그의 무난한 패싱력이 더욱 모자라 보여 더욱 단점으로 부각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