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유 플라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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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국적의 은퇴한 축구선수.
주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며 양측 풀백도 소화 가능. 하지만 본인은 풀백으로 뛰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벵거의 만류에도 아스날을 떠난 이유 중에 자신이 풀백으로 기용되었던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어서였으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버지가 이탈리아인이다. 어머니는 프랑스인.
2.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 아스날 FC
2003년 프랑스 리그의 마르세유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마르세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4년 아스날로 이적하게 된다. 이후 아스날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기용되다가 05-06 시즌, 아스날의 수비진이 줄부상을 당하자 풀백으로도 기용되게 된다.[1] 당시 아스날은 4-4-2 플랫을 사용하였는데, 한 자리는 부동의 주전인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무패우승을 함께 일궈낸 지우베르투 시우바가 남은 한 자리를 꿰차고 있어서 플라미니와 롤이 겹쳤다. 덕분에 좀 더 범용성 있고 굴러들어온 돌인 플라미니가 땜방으로 돌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플라미니 본인은 이러한 포지션 기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2007년에 아스날을 떠나겠다는 선언을 하기도 하였지만, 감독인 아르센 벵거의 만류로 1년을 더 남아있게 된다.
07/08 시즌 벵거는 나이가 든 시우바보다는 플라미니를 선택했다. [2] 결국 경쟁에서 밀린 질베르투 시우바는 2008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파나티나이코스 F.C.로 이적하게 된다. 이렇게 주전자리를 완벽하게 확보한 플라미니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그러나 시즌이 끝난 이후 플라미니는 아스날과 재계약을 맺지 않고 자유이적으로 AC 밀란에 이적하게 된다. 밀란이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플라미니에게 당한 후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고액의 연봉을 제시했다. 세후 4.6m 유로였다고.
이 사건으로 아스날은 비에이라에서 이어진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의 계보를 상실한다. 물론 아르센 벵거 감독이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대체선수로 스페인 U.D. 알메이라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주던 펠리페 멜루의 영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작 멜루는 ACF 피오렌티나와 계약을 맺으며 영입에 실패하였고 [3] [4] 현대 축구에서 핵심이 되는 포지션인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가 공석이 된 아스날은 다른 의미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DDS시대를 맞이하며 무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2.1.2. AC 밀란
AC 밀란 이적 직후에는 가투소 등의 쟁쟁한 미드필더들에게 밀려 선발 출장보다는 주로 서브자원으로 이용되는 모습을 보여 왔으나, 09/10 시즌 후반 부상에서 돌아온 가투소의 폼이 완전히 떨어져 버린 틈을 타서 슬금슬금 주전으로 기용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은 박지성 마냥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으로 승부하는 타입. 패싱이나 수비력, 공격력 등 어느 하나 특출나게 뛰어난 부분은 없지만 엄청난 활동량과 체력으로 팀 동료들을 도와주고 커버해주는 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09/10 시즌 밀란-나폴리 전에서는 혼자 분신술을 쓰는 듯한 미친 활동 범위와 수비 커버를 보여주며 노쇠화로 인해 활동량이 최악인 밀란의 미들진이 나폴리 미들진과 그나마 대등하게 맞설 수 있게 하였다. 또한 그 전에 있었던 챔피언스리그 맨유전에서도 혼자 13km를 뛰는 독보적인 활동량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이 있음에도 전술 이해도가 상당히 떨어져서 감독 입장에서 쓰기가 힘든 선수라는 평이 있다.
웃기는게 수비형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인 주제에 풀백에서 더 인상 깊은 모습을 보인다. 다만 본인은 풀백을 싫어한다. 아스날을 떠난 이유가 주급도 있지만 벵거가 풀백으로 기용하려 해서(...) 풀백으로 뛸 때 능력하난 출중하다. 월드클래스급은 무리이나 리그탑은 가능. 실제로 05-06 시즌 아스날이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결승까지 무패행진을 이어가게 했던 포백의 일원로 활약했을 정도였으니 뭐...[5]
밀란에서는 결국 조금씩 능력을 장착해 가며 장식품에서 탈출하여 참고 쓸 만한 멤버 정도의 위치까지 올랐다.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과정에서 밀란이 재계약을 제안했으나 낮은 주급과 짧은 계약기간에 분노, 프리로 박차고 나온다. 밀란은 2년 계약을 제시했으나 플라미니는 3년 계약을 원했다. 밀란 팬들은 워낙 막대한 주급을 받으며 놀고 먹다 그나마 끝날 때쯤 되니 좀 뛰어줬던 터라 저거라도 잡아야 되긴 되는데 만족 못한다니 괘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스날때랑 마찬가지로 계약 전반기때는 고정포지션 없이 떠돌다가 계약 후반기쯤에나 점점 활용도가 올라가더니 마지막해에는 전술적으로 나름 중요한 위치까지 가놓고 프리 이적을 반복한 셈. 플라미니는 마르세유, 아스날, 밀란에서 나올 때 전부 '''프리'''로 나왔다 .
2.1.3. 밀란 탈출, 아스날 복귀
그 뒤, 아스날 훈련장인 콜니에서 벵거에게 '몸 만들게 해주세요!' 하고 졸라서 훈련하다가 눈에 띄어서 백업으로 영입되었다. 알려진 바로는 3년에 주급 5만 파운드라는 듯. 벵거 말로는 하도 졸라서 그냥 훈련이나 같이 시켜줬을 뿐 영입에 대해선 생각 자체가 없었는데 워낙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아스날에서 훈련한건 피트니스 코치 토니 콜버트와 훈련하기 위해서였다는데 훈련에서 생각외로 좋은 모습을 보이자 마침 미켈 아르테타의 부상으로 수비적인 역할을 할 미드필더가 부족했던 아스날과 3년 계약을 원했던 플라미니 상호간의 이익이 맞아 떨어져서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복귀전인 EPL 3R 토트넘 핫스퍼와의 북런던 더비에서 배탈이 난 윌셔 와 전반전 40분쯤에 교체되어 맹활약. 여전히 그라운드 위를 개처럼 뛰어다니며 익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아오 저딴 멘탈레기를 다시 업어와'라고 불만에 찼던 팬들도 경기를 보고 마음이 풀린 듯.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팀 동료들에게 소리를 빽빽 질러대며 지시를 하는 모습을 본 팬들이 '그라운드 위의 시어머니'라는 별칭을 붙였다나 뭐래나.
토튼햄과의 경기 이후에도 잘 뛰며 아르테타의 공백을 상당히 줄여줬다. 계약 당시 불만이던 팬들도 플라미니의 활약에 돌아선 모양새다.
스토크 시티전에 MOM을 먹고, 공짜로 영입했지만 펠라이니보다 훨씬 낫다 ! 라는 평을 들으며 승승장구이지만, 스완지 시티전에선 약간 문제점을 노출했다.
확실히 중원에서의 활동량과 밀란에서 배워온 위치선정으로 수비력에서만큼은 아르테타 이상이지만, 빌드업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 스완지전은 지루하게 이어졌는데, 아스날은 제대로 된 후방 빌드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외질이 후방자리인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자리까지 내려와서 빌드업에 관여했겠는가..
하지만 플라미니의 이러한 성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르테타가 플라미니에 비해 확실히 빌드업이 좋아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좋지만, 강한 피지컬적 압박에는 속수무책이라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6] 오히려 빌드업에 능한 아르테타와 앞에서 많이 뛰는 플라미니가 서로 경쟁하고 대체함으로서 아스날 입장에선 처한 상황에 따른 선수의 다양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건 몇경기보고 하는 말이고 플라미니를 놓친게 밀란의 실수라고 할순없다. 상기하였다시피 상당한 인저리프론으로 좀 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다쳐서 온전히 한 시즌을 보낸 적이 없고 안다치고 오래간다 싶으면 부진하는 등 기복도 심해서 그야말로 계륵이었다. 아니나다를까 2014년 지옥일정을 앞두고 드러누워 버렸다.
아스날 재이적후에 꾸준히 출중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칭송을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긴팔 유니폼을 잘라입어서 잡음을 일으켰다(...) 아스날은 원래 락커룸에서 주장이 긴팔 입을지 반팔을 입을지를 정하면 다 똑같이 입는 전통이 있는데, 긴팔 유니폼이 싫었던건지 '''가위로 긴팔 유니폼을 잘라서'''입고 나온것(..). 문제는 그날이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기념일이어서 경기후에 그 유니폼을 경매하기로 예정되어있었다(...) 그게 한번 킷 매니저에 의해 기사화되었는데, 다음경기인 챔스 마르세유와의 홈 경기에서도 여전히(..) 가위로 자른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플라미니의 행동에 대해 질책했다고 전해지는데, 질책에 따라서 다음 리그 경기에서는 긴팔 유니폼의 소매를 걷고 경기에 출전했다.
13-14 시즌 내내 로테이션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마지막 경기인 FA컵 결승전에서 벤치를 지켰지만 팀이 우승을 하면서 아스날 복귀 첫 시즌만에 우승을 했다.
2.1.3.1. 아스날 FC/2014-15 시즌
팬들에게 '''악의 근원''' 취급을 받고 있다. 포백 보호에 실패하면서 아스날의 실점 증가에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 하지만 위에 언급되었던 '시어머니' 성격은 어디 안갔다. 그 모습을 보고 게리 네빌은 "말은 많지만 공간 활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신이 있어야할 위치에 없는 선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후반기 들어서는 잠깐 부상을 입은 새 임대에서 긴급복귀하여 포텐이 만개한 프랜시스 코클랭에게 자리를 뺏겨서, 경기 후반 수비 강화용 카드로 교체 출전하고 있다. 코클랭이 포백 보호에 전념하기 때문에 좀 더 앞선에서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활동량을 보이며 수비적인 역할에 기여하고 있다. 계약 기간이 15년 여름까지인지 16년 여름까지인지 혼선이 있었으나 아마 옵션이 발동되어 16년 여름까지 팀에 남는 듯 하다. 이적의 가능성은 남아있다.
3월 15일 교체출전해서 첫번째 터치를 골로 연결시키며 팀의 3:0 승리와 함께 리그 1호골을 기록했다
2.1.3.2. 아스날 FC/2015-16 시즌
'''[플]'''
캐피털 원 컵 32강 북런던 더비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맹활약했다.''' 이후엔 코클랭이랑 산체스가 빠지면서 사실상 주전이 되어버렸는데, 그래도 완전히 맛간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사우스햄튼전에서 드디어 맛이 갔다.'''
아스날이 모하메드 엘네니의 영입에 근접했고 칼럼 체임버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쓸 계획이 있어서 플라미니가 주전으로 뛰는 모습을 다시 보기 힘들어질 듯 하다.
1월 25일 첼시전 홈경기에 선발출전했다.
2월 3일 사우스햄튼전 홈경기에 선발출전했다.
2월 24일 챔피언스 리그 바르셀로나와의 16강 1차전에서 후반 37분에 교체로 들어와서 1분만에 메시에게 발걸어 pk를 내주는 환상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경기장에 들어와서 공을 터치하기도 전에 메시의 정강이를 먼저 터치해 버렸다고(...). 덕분에 아스날은 캄프누에서 두골차 이상으로 이겨야...
이후 엘네니에 밀리며 계약이 만료되면 떠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016년 두 명의 레전드와 함께 아스날을 떠나게 되었다. 이번에도 이적료 없이...
2.1.4. 크리스탈 팰리스 FC
이적시장 마지막 날 크리스탈 팰리스 FC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1년. FA 영입이니 당연히 이적료는 없다.
리그 10경기, FA컵 3경기를 출장해 1도움을 올렸고, 시즌 종료 후 방출명단에 들어가면서 '''또다시 FA로 풀렸다.(...)'''
2.1.5. 헤타페 CF
이후 헤타페와 자유계약으로 합류했다. 시즌이 끝나고 자유 계약으로 풀리게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플라미니의 가장 큰 장점이자 '''유일한''' 장점은 바로 활동량이었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활동량이 장점이라고 서술되는 선수들은 차고 넘치게 많고 엄밀히 말해 그 포지션에선 기본적인 소양 중 하나이기에, 활동량이 장점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다소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플라미니는 '''정말로''' 활동량이 많은 선수였다. 요컨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아 보이는 수준으로 잘 한 것이다.
흔히 활동량의 대명사격인 박지성을 표현할 때, 매우 부지런하면서도 알짜배기로 영리한 움직임들만을 가져가는 '공간 체킹의 달인'이자 '세 개의 폐'라고 칭할 때, 그가 기록하는 활동량이 대략 11km~12km였다. 그리고 플라미니는 보통 '''13km'''씩 뛰어다녔다. 물론 거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 불순물없이 의미와 효율성이 있었던 영리한 박지성의 움직임에 비해, 플라미니는 '''그저 뛰고 또 뛰었을 뿐이다.'''
그는 발이 빠르다거나 몸싸움이 뛰어나다거나 하는 신체적인 능력은 평범했으나, 그와 별개로 태도에서부터 나오는 '기동력', 소위 말해 ''''빨빨거리는 태도''''가 뛰어났다. 또한 가투소 못지 않은 터프가이였으며, 경기 중에서도 내내 잔소리하고 고함치고 중얼중얼 욕을 달고 살았는데 그게 '''동료와 상대를 가리지 않았다.''' 축구는 전쟁이라는 격언처럼, 매우 진지한 태도로 자신이 전쟁터에 있는 군인인 것처럼 생사를 걸고 싸우는 듯이 격렬했다. 다만 가투소와는 다르게 수비적으로는 그렇게 거친 스킬을 보여주진 않았으며 오히려 무색무취했다. 재밌게도 훗날 이 둘은 AC 밀란에서 함께 뛰게 된다.
또한 그는 선입견과는 달리 빅리그 팀들인 아스날과 AC 밀란에서 자리 잡을 정도의 기본기는 갖추고 있었으며, 중거리 슛 골들도 기록하는 등 의외로 전성기 당시엔 안정감이 있었다. 30세 전후로 말년이 되어서야 신체능력과 체력이 떨어지면서부터 가진 밑천이 들어나자 잔실수가 늘어났다. 그의 경기 중 거의 모든 흥망성쇠는 체력과 활동량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그 활동량과 싸움꾼 같은 투지, 자기 몸을 갈아 넣다시피하는 헌신성을 가지고서 아스날에서 뛰었는데 20살의 나이 때부터 이미 패트릭 비에이라, 질베르투 실바, 에두 등을 대체하며 경기 출전 기회를 얻어 갔다.
04-05시즌부터 주로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았는데, 갖고 있는 무기나 장단점이 완전히 상극이었기에 둘을 붙여 놓으면 유달리 그 시너지가 엄청 났던 것이다. 당시 아스날은 늘 4-4-2에 2미들 체제였는데, 속히 말해 플라미니는 볼 찰 줄 모르고, 파브레가스는 보디가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플라미니는 포지션 개념에 있어선 다소 특이한 케이스였는데, 그 어떤 규격과 역할에도 포함시키기 애매한 선수였으며, 엄밀히 말해 ''''왜 이런 선수가 이렇게 높은 수준의 리그에서 뛸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질 정도로 자질을 의심케 하는 선수였다. 그는 전성기일 때도 흡사 ''''초보자''''같을 때가 있었다. 그는 흔히 수비적인 영역의 선수 취급을 받았지만 본질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적은 없으며, 단독으로 볼란테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은 더더욱 없었다. 그것이 아스날 시절 4-5-1 체제에선 그가 배척받았던 이유였다. 또한 본질적으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도 아니었다. 공격 진영에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동시대의 클로드 마켈렐레같은 홀딩 미드필더도 아니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같은 볼 위닝 미드필더도 아니었으며, 마이클 에시엔같은 박스 투 박스 유형도 아니었다. 똑똑하지도 않고, 피지컬도 평범하고, 공수에 있어서 모든 기술들은 그저 그랬음에도 딱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커버력'''이었다. 그는 역할이 분명히 정해진 3미들 체제에선 쓸모가 없는 선수였으나 놀랍게도 2미들 체제에서 그를 기용하면 3미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게 해주는 초인적인 '''커버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걸 어떤 식으로 제공했느냐하면 포지셔닝에 대한 감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으나 경기를 읽는 집중력은 좋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과 상대 편이 언제 볼을 잃는지, 즉 '''언제 서로의 공수가 전환이 되는지'''를 잘 파악했다. 공수가 전환이 되는 시점에 최대한 부지런히 자신의 후방과 상대 진영을 구간 반복하듯이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매 순간 아군에게 '''수적 우위'''를 조금이라도 제공하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흡사 '''인터벌'''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말도 안되는 활동량의 정체였다.[7]
수비 스킬이 특출난 것은 아니었으나 아군이 수비로 전환될 때 전방에서 압박하려고 서 있기 보단 먼저 수비 지역으로 내려 가서 수비 숫자를 늘리며 지연 움직임을 가져가고, 공격으로 전환되고 볼이 상대 지역으로 넘어갈 땐 패스 루트에 참여하기 보다는 몸은 상하 좌우를 안가리고 이 사람 저 사람 옆에서 더미 움직임을 가져가 주면서도, 태도 자체는 계속 빨빨거리며 안절부절한 채로 ''''이쪽으로 넘어오기만 해 봐.''''하며 상대를 속히 말해 담가버릴 태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기 데이터 상으로 그의 발자취는 분명 전방위적으로 찍혀 있지만 공수 밸런스가 갖춰진 능동적이고 계획된 움직임이 아닌 그저 '''본능'''적인 움직임이며, 주로 자신의 앞에 있던 유약하지만 창조적인 선수들이 자유롭게 피치 위를 유랑하도록 애스코트해주는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다.
전성기였던 아스날 시절엔 지표상으론 이 선수가 특별한 선수라고 보기 힘들었음에도, 젊고 창의적인 미드필더들을 중심으로 개편해가던 그들의 당시 경기 정신에 있어선 꼭 필요했던 타입의 선수였다. 질베르투 실바는 부지런한 선수이긴 했으나 플라미니처럼 그렇게 다면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는 선수가 아니었고, 플라미니처럼 완고하게 체력이나 활동량만을 내세우기엔 그는 너무 똑똑했다. 그는 '보디가드' 유형의 선수라기 보단 스스로 중원에서 거목처럼 단단히 중심을 잡아주는 묵직한 타입이었다. 따라서 그가 출전할 때 파브레가스는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고 라인을 맞췄으며, 필요에 따라선 아예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선수였다. 다른 모든 선수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파브레가스가 중심이 된 팀이었기에 오로지 파브레가스와의 궁합이 얼마나 더 잘 맞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라사나 디아라는 그 출중한 기량을 가지고도 플라미니에게 밀려 중용 받지 못하고 토사구팽 당했는데, 그는 갖고 있는 능력이 워낙 많고 대부분의 능력에 있어서 플라미니보다 몇 단계 위인 선수였다. 그럼에도 중원에서 주도적으로 뛰어야만 하는 선수였기에 포츠머스로 이적했고,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인 끝에 무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아부 디아비는 애초에 수비적으로 부족했으며, 데닐손은 전체적으로 아스날에서 뛸 기량이 없는 선수였고, 알렉스 송은 수비 능력이 좋고 점차 성장하면서 좋은 선수가 되어 갔으나 다소 중구난방으로 방향성이 없이 성장하면서 이상한 스타일을 갖게 된다.
이후 플라미니는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플레이스타일이 조금 더 다듬어지긴 하였으나, 플레이에 있어서 다소간 방향성을 상실했으며, 그 자랑하던 활동량이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명확히 들어나지 않을 정도로 무미건조해졌다. 물론 젠나로 가투소의 노쇠화와 잦은 부상으로 인해 그의 역할을 직접적으로 계승하고 대체하는 의미는 있었으나, 자유롭고 동선이 정해지지 않은 축구를 하던 아스날과 다르게 좀 더 전술적인 AC 밀란에선 모두가 특정 지역을 배분 받는 전술적인 경기 속에서 플라미니는 오히려 수갑을 찬 것과 같은 모습으로 영향력이 떨어져 갔다. 아스날에서의 일당백이 AC 밀란에선 그저 머릿수 이상의 선수가 아니었고, 수비적으로는 더 똑똑하게 수비하던 마시모 암브로시니라던지, 같이 뛰진 못했지만 정석적인 이탈리안 박스 투 박스 움직임을 보여주어 왔던 크리스티안 브로키의 발자취도 있었다. 이후 무난한 활약을 보이며 밀란 생활을 하다가 말년이 되었을 쯤 다시 아스날로 돌아 왔을 때, 그는 평범하디 평범한 선수가 되어 있었다. 그 이후 은퇴할 때까지 두 번 다시 전성기적 활동량을 낼 수 없었다.
그는 다분히 본능적으로 플레이하는 선수였으며 축구 선수로서 오히려 재능이 부족한 편이었고, 최첨단의 고도화 된 전술적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선수였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발 담그고 성장한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은 선수들을 믿어주고 함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팀이었으나,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고도의 훈련에는 집착하지 않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팀에 있었다면 빛을 보기 힘들었을 유형의 선수였다. 또한 중앙 미드필더로서 쓰임새가 매우 불안정하고 확실하지 않은 선수였으나, 그는 축구 선수로서 매우 강한 투쟁심과 멘탈리티를 갖고 팀에 없어선 안 될 에너지와 헌신을 제공했다. 그 에너지가 육안으로 보이고 마음으로 전해질 정도로 강렬 선수로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4. 국가대표 경력
2007년 11월 16일 모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로 투입되며 A매치에 데뷔하였다.
5. 이야깃거리
지금까지 이적을 모조리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 FA로 한 희한한 기록을 가졌다.
5.1. 축구 이외의 삶, CEO
2015년 11월 중순쯤,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축구선수로서의 플라미니가 아닌, 한 거대 기업의 공동 창업자 플라미니의 삶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8년 경, 플라미니가 아스날에서 AC 밀란으로 이적하던 해에 파스칼 그라나타와 함께 GF Biochemical[8] 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창업할 당시에 굉장히 많은 자금이 들어갔기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지난 7년 간 꾸준한 성장을 거쳐 현재는 400여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 기업은 고갈되어 가는 석유를 대체할 자원으로 유기산의 일종인 Levulinic acid(레불린 산)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높은 가치를 가진 기업으로 촉망받고 있다. 이 시장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은 약 200억 파운드 (약 36조원) 에 달한다고 한다. [9]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사실을 AC 밀란 동료 뿐만 아니라 아스날 선수들과 감독인 아르센 벵거에게까지 비밀로 숨겼다는 점. 벵거 감독도 이번에 있었던 론칭행사에서 그 사실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1] 특히 애쉴리 콜의 자리인 레프트백 위치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2] 질베르투 시우바가 이 시즌에 밀린 이유는 단 하나였다. 프리시즌 동안, 코파 아메리카 주전 멤버로 참전해 우승까지 하고 돌아왔더니 아스날에서는 세스크-플라미니의 조합이 세스크-질베르투 조합보다 더 잘 맞았기 때문. 실력으론 밀릴게 없었지만 전술상 이유로 부스케츠에게 밀려 맨시티로 떠난 야야 투레와 같은 케이스로 보면 된다. 자세한 것은 지우베르투 시우바 항목 참조.[3] 이전에는 멜루가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뒤 황금 쓰레기통 상을 받았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멜루가 황금 쓰레기통 상을 받게 된 것은 이후 09/10 시즌에 유벤투스로 이적한 뒤 유벤투스에서 지랄맞은 성격 등으로 인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 받은 것이지 피오렌티나 시절은 멜루의 마지막 리즈 시절이라고 평가될 정도였다.[4] 여담으로 멜루는 지랄맞은 성격이 문제여서 그렇지 실력은 있었다. 유벤투스에 이적하고 나서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장하기도 했다. 그 때나 그 다음시즌인 델 네리 시절이나 풀백들이 되도 않게 오버래핑하다 돌아오질 않는걸 막아내다 방전당하는 경우가 많았고 페레라는 그에게 되도 않는 레지스타 롤까지 시켰었다. 성질머리는 계속 문제였고 한계치가 드러났지만 더 정확히는 피를로와 비달이 유베에 오면서 밀려났다.[5] 당시 아스날의 포백중 주축이던 애슐리 콜과 솔 캠벨이 부상으로 빠져 습자지 수준의 수비라고 평가받았지만, 이들의 공백을 느낄 수 없을만큼 센데로스와 플라미니가 각각 센터백과 레프트백으로 맹활약했다. [6] 지난시즌 맨유전 루니가 아르테타를 강하게 압박하자 경기가 꼬였던 걸 기억하자[7] 재밌게도 이것은 '''풀백'''에게 가장 중요한 소양 중 하나인데, 재밌게도 플라미니는 한동안 오른발잡이임에도 왼쪽 풀백 자리를 땜빵으로 뛰면서 높른 평가를 받았다. 본인은 풀백을 보는 것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면서도 놀라운 재능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한동안 사람들은 그가 애초에 축구선수로서 포지션 진로를 잘못 잡은 게 아니냐는 의아함을 드러냈다. 따라서 플라미니를 볼 때 마치 '중원에서 뛰는 풀백' 같은 움직임이 있던 것이다.[8] G는 Granata의 G, F는 Flamini의 F[9]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3318339/Mathieu-Flamini-keeping-secret-seven-years-pioneering-company-revolutionise-energy-industry-make-20b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