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손왕
辰孫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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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등 한국의 정사(正史)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일본 기록에 백제 초기의 왕족으로 근구수왕[2] 의 손자이자 진사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다. 왕인과 함께 일본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름은 지종왕(知宗王, 智宗王)이다.
신찬성씨록과 일본서기, 그리고 스가노노아손(菅野朝臣) 가문의 족보에 의하면 일본의 오진 천황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유교를 아는 학자를 보내달라 하니 근구수왕은 중국 출신 귀화인의 후손으로 유교 학자인 왕인과 논어 10권, 천자문 10권과 함께 사절단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때 자신의 손자인 진손을 함께 딸려보냈다고 한다. 다만 이 기록은 상당히 이상한데, 천자문은 오진 덴노가 죽은뒤 한참 뒤에 지어진 책이기 때문이다.[3]
삼국사기에는 진사왕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와 신찬성씨록, 속일본기 등에 왕인과 함께 입조한 귀수왕의 손자 진손에 대한 기록, 그밖에 스가노(菅野)씨, 후지이(葛井)씨, 후네(船)씨 등이 근구수왕을 시조라고 하거나 근구수왕의 손자를 시조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할아버지 근구수왕의 치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 당시 이미 15세는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진사왕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그는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눌러앉았다.[4] 아들 태아랑왕[5] 은 닌토쿠 덴노의 근시(近侍)였다.
그의 후손들은 진손왕의 4대손까지 일본에서 군의 작위를 받고 왕족[6] 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7][8] 고려나 조선에서는 왕의 4대손, 세자의 4대손, 대군의 증손자, 군의 증손자까지만 가까운 왕족으로 인정해서 군이나 정, 도정, 부정, 수, 부수, 중국에서는 황제와 태자의 4대손, 친왕의 증손자, 군왕의 증손자까지만 친왕, 군왕, 장군 등의 작위를 주는 것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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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사기 등 한국의 정사(正史)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일본 기록에 백제 초기의 왕족으로 근구수왕[2] 의 손자이자 진사왕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다. 왕인과 함께 일본으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름은 지종왕(知宗王, 智宗王)이다.
신찬성씨록과 일본서기, 그리고 스가노노아손(菅野朝臣) 가문의 족보에 의하면 일본의 오진 천황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유교를 아는 학자를 보내달라 하니 근구수왕은 중국 출신 귀화인의 후손으로 유교 학자인 왕인과 논어 10권, 천자문 10권과 함께 사절단을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때 자신의 손자인 진손을 함께 딸려보냈다고 한다. 다만 이 기록은 상당히 이상한데, 천자문은 오진 덴노가 죽은뒤 한참 뒤에 지어진 책이기 때문이다.[3]
삼국사기에는 진사왕에게 아들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와 신찬성씨록, 속일본기 등에 왕인과 함께 입조한 귀수왕의 손자 진손에 대한 기록, 그밖에 스가노(菅野)씨, 후지이(葛井)씨, 후네(船)씨 등이 근구수왕을 시조라고 하거나 근구수왕의 손자를 시조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한국에 소개되면서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할아버지 근구수왕의 치세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이 사실이라면 그 당시 이미 15세는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진사왕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그는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눌러앉았다.[4] 아들 태아랑왕[5] 은 닌토쿠 덴노의 근시(近侍)였다.
2. 기타
그의 후손들은 진손왕의 4대손까지 일본에서 군의 작위를 받고 왕족[6] 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7][8] 고려나 조선에서는 왕의 4대손, 세자의 4대손, 대군의 증손자, 군의 증손자까지만 가까운 왕족으로 인정해서 군이나 정, 도정, 부정, 수, 부수, 중국에서는 황제와 태자의 4대손, 친왕의 증손자, 군왕의 증손자까지만 친왕, 군왕, 장군 등의 작위를 주는 것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1] 위키백과 등지에는 356년 출생으로 나와 있으나, 근거는 없다. 애당초 진손왕은 출생년도 운운 이전에 실존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인물이다.[2] 일본의 신찬성씨록과 일본서기에는 귀수왕으로 나온다.[3] 오진 천황은 310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고 천자문을 지은 주흥사(周興嗣)는 46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게다가 애당초 오진 천황부터가 실존 여부가 확실한 인물이 아니다.[4] 일본서기에 의하면 진사왕이 일본 천황에게 거만하게 굴자 백제의 조신들이 진사왕을 살해했다 한다. 진사왕은 형 침류왕이 죽자 조카들이 나이가 어려서 왕위를 계승했지만, 아신왕은 삼촌이 찬탈한 것으로 간주했는 모양이다.[5] 태아량왕이라고도 한다.[6] 백제의 왕족이다.[7] 진손왕은 왕이 아닌데도 왕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물론 당시에 일본의 군주는 이미 자신을 천황이라 했기 때문에 친왕이나 군왕 같은 가벼운 존재로 왕의 작위를 내린 것으로 보여진다.[8] 근구수왕 - 진사왕 - 진손왕(본인) - 태아랑왕(太阿郞王) - 해양군(亥陽君) - 오정군(午定君) 또는 염군 - 진이왕(辰爾王), 미사(산)군(味沙(散)君), 마려군(麻呂君) 3형제, 근구수왕에게서 계산해도 6대손, 진사왕에게서 계산해도 5대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