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표
"공명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요, 이밀의 진정표를 읽고 울지 않는 사람은 효자가 아니다."[1]
1. 개요
중국 삼국시대 말, 서진 초의 관료 이밀(李密)이 진나라 태시 3년(268년)에 진무제의 부름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기 위해 바친 표. 표(表)란,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일컫는다. 관직 제수를 기어코 사양하는 까닭을 표로 밝히고 있는데,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효행명문으로 통용된다. 상기한대로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며, 진정표를 읽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는 효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
2. 전문
공신력 있는 사이트에서 전문을 구하지 못한 바 정확하지 않거나 오자가 있을 수 있다. 한국어 번역 역시 최초 기여자가 임의와 윤문으로 고쳤으므로 더욱이 확실치 않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인증된 전문 및 번역을 요함.
2.1. 번역본
2.2. 원본
臣密言
신밀언
臣以險釁夙遭愍凶 生孩六月 慈父見背
신이험흔숙조민흉 생해육월 자부견배
行年四歲 舅奪母志 祖母劉閔臣孤弱 躬親撫養
행년사세 구탈모지 조모유민신고약 궁친무양
臣少多疾病九歲不行 零丁孤苦 至於成立
신소다질병구세불행 영정고고 지어성립
旣無叔伯 終鮮兄弟 門衰祚薄 晩有兒息
기무숙백 종선형제 문쇠조박 만유아식
外無朞功强近之親 內無應門五尺之童
외무기공강근지친 내무응문오척지동
焭焭孑立 形影相吊
경경혈립 형영상조
而劉夙嬰疾病 常在牀褥 臣侍湯藥 未嘗廢離
이유숙영질병 상재상욕 신시탕약 미상폐리
逮奉聖朝 沐浴淸化
체봉성조 목욕청화
前太守臣逵 察臣孝廉 後刺史臣榮 擧臣秀才
전태수신규 찰신효렴 후자사신영 거신수재
臣以供養無主 辭不赴命 會詔書特下 拜臣郞中 尋蒙國恩除臣洗馬
신이공양무주 사불부명 회조서특하 배신낭중 심몽국은제신선마
猥以微賤 當侍東宮 非臣隕首所能上報 臣具以表聞 辭不就職
외이미천 당시동궁 비신운수소능상보 신구이표문 사불취직
詔書切峻臣逋慢 郡縣逼迫催臣上道 州司臨門急於星火
조서절준신포만 군현핍박최신상도 주사임문급어성화
臣欲奉詔奔馳 則以劉病日篤
신욕봉조분치 즉[5] 이유병일독
欲苟順私情 則告訴不許 臣之進退 實爲狼狽
욕구순사정 즉고소불허 신지진퇴 실위낭패
伏惟 聖朝以孝治天下 凡在故老猶蒙矜育 況臣孤苦 特爲尤甚
복유 성조이효치천하 범재고노유몽긍육 황신고고 특위우심
且臣少事僞朝 歷職郞署 本圖宦達不矜名節
차신소사위조 역직낭서 본도환달불긍명절
今臣亡國之賤俘至微至陋 過蒙拔擢寵命優渥 豈敢盤桓 有所希冀
금신망국지천부지미지루 과몽발탁총명우악 기감반환 유소희기
但以劉日薄西山氣息奄奄 人命危淺朝不慮夕
단이유일박서산기식엄엄 인명위천조불여석
臣無祖母無以至今日 祖母無臣無以終餘年
신무조모무이지금일 조모무신무이종여년
母孫二人更相爲命 是以區區不能廢遠
모손이인경상위명 이시구구불능폐원
臣密今年四十有四 祖母劉今九十有六
신밀금년사십유사 조모유금구십유육
是臣盡節於陛下之日長 報劉之日短也
시신진절어폐하지일장 보유지일단야
烏鳥私情[6] 願乞終養
오조사정 원걸종양
臣之辛苦非獨蜀之人士及二州牧伯所見明知 皇天后土實所共鑑
신지신고비독촉지인사급이주목백소견명지 황천후토실소공감
願陛下矜愍愚誠 廳臣微志
원폐하긍민우성 청신미지
庶劉僥倖卒保餘年 臣生當隕 首死當結草
서유요행졸보여년 신생당운 수사당결초
臣不勝怖懼之情謹拜表以聞
신불승포구지정근배표이문
3. 그 외
- 이 표문은 상주문(上奏文)으로 사마염에게 올랐으며, 사마염은 감동하여 이밀에게 노비와 식량을 하사하고 신하들이 돌려 읽도록 했다. 이밀은 조모 사후 비로소 임관하여 상서랑, 현령 등을 차례로 지냈는데 한중태수를 역하던 중 황제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다. 당시 황제 역시 사마염이었다(...)
- 진정(陳情)이란 실정이나 사실을 진술한다는 뜻이므로, 진정표란 이름의 표문은 이밀의 전에도, 후에도 있었다. 때문에 본래 이밀진정표, 혹은 진정사표(陳情事表)라고 칭해야 하지만 통상 진정표라 하면 이것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