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습

 

爨習
(? ~ ?)
1. 소개
2. 가문(건녕 찬씨)


1. 소개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 이회의 고모부.
건녕 사람으로 건녕현의 령을 지내다가 법령을 위반했는데, 찬습이 법을 어긴 것으로 인해 이회는 친척[1]이라 연루되어 파면되었지만 찬습은 그 지방의 호족이라는 점을 고려해 동화가 이 일을 불문에 부치면서 찬습은 사직되지 않았다. 당시 호족의 위세를 알 수 있다.
225년에 제갈량이 남쪽을 정벌할 때 등용되어 영군에 이르렀으며, 북벌 도중에 이엄이 거짓 보고로 제갈량을 모함하려다가 발각되었을 때 제갈량이 이엄을 탄핵해 제갈량이 상서대에 올린 공문에서 행참군편장군으로 언급되어 이엄을 해임하고 그의 관록, 절전, 인수, 부책 등을 없애 작위, 봉지 등을 박탈하는 것에 서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2. 가문(건녕 찬씨)


찬습 자체는 그야말로 삼국시대의 단역급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찬씨성 자체는 나름대로 지역에서 알아주는 가문이기는 했던 모양인지, 이회전에는 찬습의 가문이 그 지역의 대성(大姓) 가문이라고 언급된다. 아마 건녕군 일대 토착 민족의 유력 호족이라거나 하는 정도의 위치였던듯.
건녕 찬씨 가문은 이후 진서화양국지, 송서 등에서 아름아름 건녕 찬씨 가문의 인물들(찬곡, 찬능, 찬송자 등)이 언급되긴 하지만 별 다른 활약상은 없었는데 성한이나 위진남북조 시절에 자사, 태수직을 몇 차롄가 맡으면서 기틀을 다져 독자적인 정권을 이뤄 수나라 때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렸으며 찬씨왕조는 동찬(東爨) 오만(烏蠻)과 서찬(西簒) 백만(白蠻)으로 갈렸다가 오만은 이족의 시조가 되고, 백만은 바이족의 선조가 되었으며 백만에서 갈려나온 육조(六詔), 그리고 육조를 통일한 남조에게 멸망하였다.
청나라 시대에도 청사고에서는 남조 왕실인 몽(蒙)씨와 나란히 운남 지역의 유력 가문으로 언급하고 있다.

운남은 옛 전국(滇國)이다. 월휴(越巂)의 만이(蠻夷) 임귀(任貴)가 태수를 자칭하자 한나라 광무제는 곧 인수를 수여하였지만, 내지의 관리의 법식으로 대하지는 않았다. 찬(爨)씨이든, 몽(蒙)씨이든 모두 본토(本土)의 대성(大姓)으로, 누대로 관에 나아가 일방(一方)의 장(長)이 되었다.

청사고

청나라 시대에도 건녕 찬씨는 남중 일대에서 손 꼽히는 위상의 가문으로 있었던 것. 건녕이라는 행정소가 운남(남중)이라는 지역에 포함되어 있으니, 청대에는 아마도 '건녕에 찬씨 가문이라고 오래된 가문이 있는데, 운남에서 알아주는 가문이라더라.' 정도로 인식됐던 것 같다. 건녕군을 분할해서 진녕군을 설치한다던가하는 식의 행정지역 개편도 있었던걸 보면 꼭 건녕에만 모여 살았을 것 같지도 않긴 하지만.
비록 남조국성인 몽씨나 대리국의 국성 단씨같이 크고 아름다운 제국으로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천년이 훌쩍 넘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 꾸준히 지역 내에서 기반을 다진 성장형 토착 가문으로 역사에 영향을 주고 종적을 남겼으니 그야말로 굵고 짧은 왕조들보다 가늘지만 길게 간 지역 유지 끝판왕.

3.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유선에게 위나라로 출병하는 북벌을 허락받아 유선의 조서를 받고 승상부로 돌아와 장수들을 불러 명령했는데, 그 명단에서 편장군으로 언급되었다.

[1] 이회에게 찬습은 고모부라 찬습에게는 아내의 형제자매의 아들에 해당되기에 이자(姨子)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