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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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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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理國 (바이민족의 언어로 Dablit Guaif라고 읽는다. 국(國)을 제외하면 Dablit.)
현재의 중국 운남성 지방에서 937년 건국되어 약 300여 년간 지속된 왕국. 남조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운남 일대의 왕조이다. 중국어로는 다리(大理)라고도 불린다. 동쪽으로는 송나라, 북쪽으로는 토번, 즉 티벳과 인접하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대월(즉, 지금의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와 인접한 내륙국이었다. 종교는 불교의 일파인 아리(Ari) 불교로서, 국왕이 왕위를 물려주고 승려로 출가하는 전통이 있었다. 멸망 이후 태국, 라오스, 인도의 아삼 지역으로 이주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역사
나름 평화롭게 지내오다 1094년 보정제 단정명이 양의정에게 살해당하고, 그 양의정을 토벌한 권신 고승태가 대리국을 대중국(大中國) 으로 개칭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는 일이 벌어졌다. 근데 그 고승태가 1년 만인 1095년 병으로 쓰러지자(…) 단정순에게 왕위를 반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그리하여 1096년 문안제 단정순이 왕위에 올라 단씨 왕조는 지속되었지만 고씨 가문이 재상 자리를 지내며 왕권은 위축되었다. 이 시기를 기준으로 전한, 후한처럼 이전을 전대리국, 이후를 후대리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 1253년 몽골 제국에게 다른 나라들과 함께 사이좋게 멸망당해(…) 중국 권역에 통합되었다. 사실 이 희대의 깡패 제국만 없었더라면 더 오래 살아남았을지도 모르고 지금 중국과는 별개의 지역으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
대리의 주류 종족인 바이족들은 원대에도 민족적 정체성은 가지고 있었다. 원나라가 멸망한 후 운남에 고립되어 있던 몽골 대립정권인 양왕(梁王)의 정권을 명나라 홍무제가 멸망시켰을 때, 이 지역에서 몽골 황족들을[4] 도우면서 정권을 잡고 있던 대리 단씨는 양왕국을 배신하고 명나라에 붙어 그 공으로 재독립을 꿈꾸었다. 하지만 대리의 은광산에 눈독을 들인 홍무제 주원장은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직할령으로 만들어버렸다.
명나라는 바이족을 귀속시킨 이후로도 대리국의 왕족들에게 계속해서 도독, 제독, 진무 같은 벼슬을 주면서 현지의 토사(土司)로 삼았다고 한다. 현대에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로서 다리 바이족 자치주를 유지하며 명맥을 잇고는 있지만, 다른 소수민족 자치주나 자치구와 사정이 비슷해서 대리국의 후예들인 바이족의 숫자는 자치주 내에서 1/3에 불과하고 한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3. 평가
대리국은 남조와 구별해서 서술하는 경우도 많지만, 서로 민족 구성, 문화, 언어, 영토 등 많은 면에서 일치하기 때문에 같은 나라로 묶어서(대리국과 남조를 합치면 무려 515년을 존속한 셈이다. 류큐의 450년보다 더 길다.) 보는 경우도 많다. 한국어의 '대리석'은 이 대리국에서 왔을 정도로 자원과 식생이 풍부할뿐더러 8세기 당나라의 침공과 멸망할 때 몽골 침공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외세의 침략 없이 평화를 누렸다. 내륙 국가치고는 전쟁에 강했다. 이 점이 송나라가 침략을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대리국의 위치는 송나라 입장에서는 훌륭한 완충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런 점 때문에 송나라는 쓰촨 성까지 몽골에게 뜯기면서도 대리국을 장기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봤다. 그리고 몽골은 남송을 두들기다가 남쪽으로 쭉 내려와 대리국을 멸망시켰다.
역사에서 동남아 지역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한데, 몽골의 침략으로 대리국에서 동남아로 피난 온 타이족과 라오족은 태국과 라오스의 기원이 되었다.
4. 문화
대리국은 기본적으로 남조 때부터 이어져오는 반 당나라 기조를 이었으나, 중국적인 문화를 꽤 받아들인 편이었다. 문화적으로는 티벳 불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동북아와 동남아 문화권의 접경지로써 인접한 나라들에 문화적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대리국의 불교의 경우 티벳 색채와 더불어 미얀마와 태국 등과 유사한 점이 많다. 역사적으로도 상호 교류가 있었다고 하며, 중국에서는 보기 힘든, 가루다, 나가 같은 상징들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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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을 비롯하여 다양한 재료를 섬세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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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영향이 컸으며, 사진에서 보듯 미얀마에서 흔한 체디가 도시 중심에 있다. 물론 인접 고택들을 보면 중국의 가옥과 굉장히 비슷하다는것을 볼수있다. 사실상 동남아,인도쪽 남방문화와 인접한 중국의 문화를 퓨전한 모습을 볼수있는것이 바로 대리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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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상에는 팔이 34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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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을 비롯하여 중요한 건축물은 태국처럼 처마 끝을 위로 뾰족하게 만든다.
5. 여담
이들에게는 특이한 전설이 있는데, 바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과 겨뤘던 맹획이 사실 이 지역 군주였고, 그 유명한 칠종칠금도 사실은 정반대 내용으로 오히려 '맹획이 제갈량을 일곱번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카더라. 물론 어디까지나 지역위인을 떠받드는 구전전승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라 딱히 신빙성은 없다. 애초에 칠종칠금 자체가 신뢰성이 떨어지는 전승이긴 하다.
상업이란 말이 상나라에서 나왔듯이 대리석이란 말도 이 나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6. 매체
무협작가 김용은 대리국을 인상깊게 여겼는지 소설 천룡팔부의 주인공 중 하나로 대리국 제16대 왕인 단화예(단예)를 넣기도 했다. 거기다 영웅문 1, 2부격인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에선 그 단예의 손자인 단지흥이 천하오절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한국 무협지에도 대리 단씨는 간혹 나오는 편이다.
7. 역대 군주 목록
링크로 넘어가 보면 알겠지만 문서가 개설된 대리국 역대 황제는 대부분 김용의 무협소설 천룡팔부와 사조삼부곡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