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볼든
[image]
[image]
'''Charles Frank Bolden, Jr.'''
1946년 8월 19일에 태어난 미합중국 해병대 출신의 군인, 관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주비행사 출신으로는 리처드 트룰리에 이어 두번째로 NASA국장이 되었다. 보통 친한 사람들에겐 찰리로 불린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출신으로 1964년에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1968년에 졸업하였다. 동기로는 마이크 멀린 前 합참의장, 마이클 헤이지 前 해병대사령관, 해군장관과 버지니아주 미국 상원의원을 지낸 제임스 웹(NASA의 레전드 제임스 웹과는 동명이인)이 있다. 미합중국 해병대에서 항공병과 조종장교로 복무했고[1] 베트남 전쟁에 가서 100회 이상 소티를 기록했다. 동아시아 쪽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지만 태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한국과의 인연은 없다. 주일미군 부사령관, 제3해병항공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총 비행시간은 6,000시간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큰 이력을 남긴 분야는 NASA 우주비행사로서의 활동이다. 1979년 해군 테스트 파일럿 스쿨을 수료하여 이듬해인 1980년에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4번째이며 파일럿 중에는 프레더릭 그레고리에 이어 두번째이다.[2]
우주비행사로서 총 28일 8시간 37분의 우주 체류 시간에 걸쳐 수행했던 미션들은 대체로 천문학과 관련된 미션들이다.
[image]
첫 미션인 STS-61-C(컬럼비아) 미션의 단체 사진. 볼든의 뒷줄에 있는 인물들은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로버트 센커, 플로리다주 연방 하원의원(...!) 빌 넬슨[3] , 미션 스페셜리스트 스티브 홀리[4] , 조지 넬슨[5] , 프랭클린 창-디아즈[6] . 가운데 볼든의 우측은 볼든의 멘토였던 미션 선장 로버트 깁슨이다.[7] 이 미션은 좀 독특한 이유로 유명한데, 로켓 문제나 날씨 문제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무려 4번의 카운트다운이 수포로 돌아가는 고난의 행군 끝에 예정일보다 한달이나 늦게 겨우 발사되었던 미션이다(...) 결국 이 다음으로 예정되어 있던 STS-51-L 미션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1월 28일에 좀 많이 쌀쌀한 날씨에도 어거지로 발사되었고, 그 결과는... 이 미션에 천문학자들이 들어간 것은, 국방부의 기밀 실험 등에 동원된 것도 있지만, 이 시기가 '''핼리 혜성이 다가오는'''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사고로 이어지는 STS-51-L 미션은 아예 핼리 혜성의 근일점 도달 시기에 맞춰 관측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image]
두번째 미션인 1990년 4월 STS-31(디스커버리)의 사진. 이 미션은 허블 우주 망원경을 궤도에 올려놓는 프로젝트였다. 좌측부터 볼든과 홀리(천문학 미션이니 또 투입되었다), 로렌 슈라이버[8] , 브루스 매캔들리스[9] , 캐스린 설리번.[10]
[image]
세번째 미션부터는 선장을 맡았다. 1992년의 이 미션은 STS-45(아틀란티스) 미션으로, 역시 천체물리학 미션이다. 볼든의 왼쪽은 신참 파일럿 브라이언 더피이고, 뒷줄은 MIT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바이런 릭텐버그[11] , 미션 스페셜리스트 마이클 폴(Michael Foale)[12] , 데이비드 리스마(David Leestma), 설리번, 디르크 프리무(Dirk Frimout).[13] 여러 나라에서 만든 우주망원경 설비를 테스트하는 미션이었다.
[image]
넷째 미션이자 볼든의 마지막 미션이었던 1994년의 STS-60(디스커버리)은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이후 최초의 미러 합동 미션인 미르-셔틀 프로젝트의 첫 미션이었다.[14] 앞줄은 파일럿 케네스 리틀러(Kenneth S. Reightler, Jr.)와 볼든, 가운데는 창-디아즈, 잰 데이비스, 윗줄은 로널드 마이클 셰가(Ronald Michael Šega)[15] , 로스코스모스 우주비행사 세르게이 크리칼료프. 이 미션에서는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이 우주 식량으로 나왔다.
1994년에는 우주비행사로서 한창인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해병대로 복귀했다. 2004년까지 해병대에서 복무했고 최종계급은 소장.[16] 2009년에는 허블 우주 망원경 보수 미션 STS-125가 완료된 뒤 버락 오바마에 의해 흑인으로는 최초로 NASA국장으로 임명되었다.[17] 취임 이후 '''화성을 도모하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드러내며 수많은 우주덕들의 로망에 불을 지폈고 큐리오시티 탐사선을 통해 화성에서 최초로 목소리가 방송된 인류라는 이색적인 기록도 갖게 되었지만 현실은 시궁창. NASA의 예산이 대거 삭감되고 우주왕복선 퇴역 때문에 자력으로 우주인을 올려보내지도 못하는데다 2014년 정치적 이슈 때문에 러시아와의 협력마저 중단되는 바람에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2014년 기준으로 NASA는 크고 아름다운 로켓 개발에 수많은 공돌이들을 갈아넣고 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18] 국민들의 NASA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19]
SLS/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 프로그램의 향방을 두고 아직도 구체적인 일정 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한다며 까는 NASA 전현직 관료들[20] 사이에서 최대한 실드에 나서고 있다. 2013년에는 오바마 집권 이후부터 함께 일했던 로리 가버 부국장이 발사체는 기업들에게 맡기고 신기술 연구에만 집중할 것을 주장하다가 SLS에 학을 떼고 그만두기도 했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중 2015년 청문회에서 테드 크루즈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상이 매우 흥했다(...)
2015년 6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계인은 있지만 AREA 51에 있는건 아니라구요'''라 주장했다. [21]
[image]
'''Charles Frank Bolden, Jr.'''
1946년 8월 19일에 태어난 미합중국 해병대 출신의 군인, 관료.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주비행사 출신으로는 리처드 트룰리에 이어 두번째로 NASA국장이 되었다. 보통 친한 사람들에겐 찰리로 불린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출신으로 1964년에 미국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1968년에 졸업하였다. 동기로는 마이크 멀린 前 합참의장, 마이클 헤이지 前 해병대사령관, 해군장관과 버지니아주 미국 상원의원을 지낸 제임스 웹(NASA의 레전드 제임스 웹과는 동명이인)이 있다. 미합중국 해병대에서 항공병과 조종장교로 복무했고[1] 베트남 전쟁에 가서 100회 이상 소티를 기록했다. 동아시아 쪽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지만 태국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한국과의 인연은 없다. 주일미군 부사령관, 제3해병항공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총 비행시간은 6,000시간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큰 이력을 남긴 분야는 NASA 우주비행사로서의 활동이다. 1979년 해군 테스트 파일럿 스쿨을 수료하여 이듬해인 1980년에 우주 비행사가 되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4번째이며 파일럿 중에는 프레더릭 그레고리에 이어 두번째이다.[2]
우주비행사로서 총 28일 8시간 37분의 우주 체류 시간에 걸쳐 수행했던 미션들은 대체로 천문학과 관련된 미션들이다.
[image]
첫 미션인 STS-61-C(컬럼비아) 미션의 단체 사진. 볼든의 뒷줄에 있는 인물들은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로버트 센커, 플로리다주 연방 하원의원(...!) 빌 넬슨[3] , 미션 스페셜리스트 스티브 홀리[4] , 조지 넬슨[5] , 프랭클린 창-디아즈[6] . 가운데 볼든의 우측은 볼든의 멘토였던 미션 선장 로버트 깁슨이다.[7] 이 미션은 좀 독특한 이유로 유명한데, 로켓 문제나 날씨 문제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무려 4번의 카운트다운이 수포로 돌아가는 고난의 행군 끝에 예정일보다 한달이나 늦게 겨우 발사되었던 미션이다(...) 결국 이 다음으로 예정되어 있던 STS-51-L 미션마저 차일피일 미뤄지다가 1월 28일에 좀 많이 쌀쌀한 날씨에도 어거지로 발사되었고, 그 결과는... 이 미션에 천문학자들이 들어간 것은, 국방부의 기밀 실험 등에 동원된 것도 있지만, 이 시기가 '''핼리 혜성이 다가오는'''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사고로 이어지는 STS-51-L 미션은 아예 핼리 혜성의 근일점 도달 시기에 맞춰 관측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image]
두번째 미션인 1990년 4월 STS-31(디스커버리)의 사진. 이 미션은 허블 우주 망원경을 궤도에 올려놓는 프로젝트였다. 좌측부터 볼든과 홀리(천문학 미션이니 또 투입되었다), 로렌 슈라이버[8] , 브루스 매캔들리스[9] , 캐스린 설리번.[10]
[image]
세번째 미션부터는 선장을 맡았다. 1992년의 이 미션은 STS-45(아틀란티스) 미션으로, 역시 천체물리학 미션이다. 볼든의 왼쪽은 신참 파일럿 브라이언 더피이고, 뒷줄은 MIT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바이런 릭텐버그[11] , 미션 스페셜리스트 마이클 폴(Michael Foale)[12] , 데이비드 리스마(David Leestma), 설리번, 디르크 프리무(Dirk Frimout).[13] 여러 나라에서 만든 우주망원경 설비를 테스트하는 미션이었다.
[image]
넷째 미션이자 볼든의 마지막 미션이었던 1994년의 STS-60(디스커버리)은 아폴로-소유즈 테스트 프로젝트 이후 최초의 미러 합동 미션인 미르-셔틀 프로젝트의 첫 미션이었다.[14] 앞줄은 파일럿 케네스 리틀러(Kenneth S. Reightler, Jr.)와 볼든, 가운데는 창-디아즈, 잰 데이비스, 윗줄은 로널드 마이클 셰가(Ronald Michael Šega)[15] , 로스코스모스 우주비행사 세르게이 크리칼료프. 이 미션에서는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이 우주 식량으로 나왔다.
1994년에는 우주비행사로서 한창인 4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해병대로 복귀했다. 2004년까지 해병대에서 복무했고 최종계급은 소장.[16] 2009년에는 허블 우주 망원경 보수 미션 STS-125가 완료된 뒤 버락 오바마에 의해 흑인으로는 최초로 NASA국장으로 임명되었다.[17] 취임 이후 '''화성을 도모하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드러내며 수많은 우주덕들의 로망에 불을 지폈고 큐리오시티 탐사선을 통해 화성에서 최초로 목소리가 방송된 인류라는 이색적인 기록도 갖게 되었지만 현실은 시궁창. NASA의 예산이 대거 삭감되고 우주왕복선 퇴역 때문에 자력으로 우주인을 올려보내지도 못하는데다 2014년 정치적 이슈 때문에 러시아와의 협력마저 중단되는 바람에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2014년 기준으로 NASA는 크고 아름다운 로켓 개발에 수많은 공돌이들을 갈아넣고 있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18] 국민들의 NASA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19]
SLS/오리온 다목적 유인 우주선 프로그램의 향방을 두고 아직도 구체적인 일정 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한다며 까는 NASA 전현직 관료들[20] 사이에서 최대한 실드에 나서고 있다. 2013년에는 오바마 집권 이후부터 함께 일했던 로리 가버 부국장이 발사체는 기업들에게 맡기고 신기술 연구에만 집중할 것을 주장하다가 SLS에 학을 떼고 그만두기도 했다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중 2015년 청문회에서 테드 크루즈에게 일침을 가하는 영상이 매우 흥했다(...)
2015년 6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계인은 있지만 AREA 51에 있는건 아니라구요'''라 주장했다. [21]
[1] 항공 병과는 해병대에서 소수라는 점 때문에 진급이 순탄치는 않은 편이다. 제임스 에이머스나 제임스 카트라이트처럼 대장에 올라 합참에서 활동한 사례도 있긴 하다.[2] 그레고리 역시 NASA 부국장/국장 직무대행까지 올랐다.[3] 민주당 소속. 美 연방 의원으로는 사상 두번째로 우주 비행을 했다. 첫째는 비슷한 시기 훈련을 받고 STS-51-D 디스커버리 미션에서 우주 비행을 한 유타주 연방 상원의원 제이크 간(Jake Garn, 공화당). 존 글렌, 해리슨 슈미트 같은 경우는 우주비행사로는 은퇴한 후 국회의원이 된거니 논외. 2015년 현재는 플로리다주 연방 상원의원이다. 이 미션이 끝나고 귀환할 때 자기 동네인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로의 귀환을 바랐지만 캘리포니아로 귀환했다보니 조금 아쉬워하기도 했다고. [4] 천문학자로, 샐리 라이드의 전 남편이다.[5] 홀리와 마찬가지로 천문학자. [6] 최초의 코스타리카 출생 우주비행사다. 실제 혈통은 중국계 혼혈이다. 통산 7회의 우주비행 경력을 자랑하는 산신령으로, 현재는 은퇴하고 차린 Ad Astra Rocket Company에서 NASA와 연계하여 차세대 플라즈마 엔진인 VASMIR를 연구하고 있다.[7] 볼든은 훗날 "누가 최고 파일럿이었나요?" 하는 질문에 "로버트 깁슨이랑 존 영이었지... 그 양반들은 비행기를 조종하는게 아니라 입고 날아다니더만ㄷㄷ" 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8] 원래 이 미션은 존 영이 수행할 예정이었지만 STS-51-L 미션의 폭발사고로 NASA의 예정되었던 미션이 싹 나가리된 뒤 재개될 시점에는 너무 나이가 많아져서 부득이하게 새 선장을 뽑았다.[9] 사상 최초의 무선 EVA를 수행했던 인물.[10] 미국 여성 최초의 EVA를 수행했던 인물이자, 2015년 현재 NOAA 청장.[11] 전문 우주비행사는 아니고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이긴 한데 이전에 STS-9 미션에서 이미 우주 임무를 수행했던지라 초짜는 아니다.[12] NASA 소속이긴 한데 영/미 이중국적자이며 영국에서 천체물리학 학위를 땄다.[13] 벨기에 출신 ESA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이자 자작, 즉 귀족이다(!) 작위까지 포함한 본명은 Dirk Dries David Damiaan, Viscount Frimout. 최초의 벨기에인 우주비행사이며, 응용물리학 전공자다.[14] 다만 실제 미르와의 랑데부나 도킹을 하지는 않았고, 양국의 협력체계를 처음 시작하는 수준이었다.[15] 미 공군 소장으로 공군부 차관까지 지냈다.[16] 미 해병대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장성까지 진급한 우주비행사이다. 사실 이것도 굉장히 대단한 기록인게, 미합중국 공군과 달리 해군에서는 NASA로 도망간(...) 우주비행사들에 대한 시선이 아주 곱지만은 않은 편이다. 앨런 셰퍼드 항목 참조.[17] 원래 부시 시절, 그리고 오바마 인수위에서도 하마평에 오르곤 했지만 STS-125가 계속 늦어지며 허블 엔지니어 출신인 전임 마이클 그리핀 국장이 유임되었다.[18] 2014년 10월 말경 안타레스 무인 화물 로켓이 시그너스를 태우고 ISS를 향해 발사된지 6분만에 폭발했다. 로켓 개발 외의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우주왕복선은 박물관에 들어갔다. 그나마 무인 발사와 착수 실험이 성공한 오리온은 실제 유인발사는 2020년대 이전엔 불가능하다.[19] 실망했다고 우주개발 예산 감축 같은 의견을 직접적으로 내는 이들도 없지는 않지만, 항공우주공학에 무지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NASA를 질책한다기보다는 '''안타까워한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국방예산도 슬슬 감축하는 마당에 NASA가 예산 더 달라고 크게 징징대기도 어려운지라...[20] 아폴로 시절의 원로들도 많다![21] 기사를 중간까지라도 읽어본다면 알겠지만 그냥 개드립을 목적으로 써제낀 낚시기사. 우주 어딘가엔 생명체가 있을 것이란 자신의 생각과 AREA 51은 존재하지만 그냥 평범한 연구시설일 뿐이라는 말을 영국 학생들 강연에서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