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S-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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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들의 귀환 후 프리젠테이션
1. 소개
2. 수난
3. 발사
4. 수리 과정
6. 여담
7. 관련 문서


1. 소개


우주왕복선 프로그램 미션 코드명 : '''STS-125''' (비상 구조 미션 '''STS-400''')
허블 우주 망원경 미션 코드명 : '''HST-SM4'''
2009년 5월 11일 - 2009년 5월 24일
사용 우주선:아틀란티스
STS-107 이후 유일무이한 非 정거장 우주왕복선 미션이자, 최후의 허블 우주 망원경(이하 '허블') 보수 미션으로, 2009년 국제 천문의 해를 상징하는 사건이자, 그야말로 '''전미를 울린''' 우주왕복선 말년의 최대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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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난


당초 발사하려던 1986년 STS-61-J 아틀란티스 미션이 STS-51-L 챌린저 참사 이후 미션이 백지화된 뒤 이런저런 보정을 거쳐 1989년 STS-31 디스커버리에 실어 허블을 발사했다가 정작 보내온 사진이 개판[3]이라 다구리를 맞은 NASA는 1994년 STS-61 엔데버를 보내 첫 수리를 진행했다. 이에 사진의 질 면에서 매우 우수한 향상을 보이며 허블은 심우주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 이에 NASA의 과학자들은 정기적으로 허블을 수리하고 업그레이드하기로 한다. 일개 인공위성을 넘어 전국민적인 성원을 받는 망원경이고 학문적 성과도 탁월했기 때문에 NASA는 미르에 들락거리고 ISS 만드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런 허블 서비스 미션을 정기적으로 진행했다. 1997년에 STS-82/HST-SM3 디스커버리가 발사되어 업그레이드를 진행했고, 밀레니엄 전후로는 갑자기 자이로스코프 3개가 나가자 아예 서비스 미션 하나를 급조하여 정기 서비스를 STS-103 디스커버리와 STS-109 컬럼비아로 나누어 수행하기도 했다. 허블에게 보낸 이런 융숭한 대접은 가히 우주왕복선 역사상 가장 극진한 것이었고, 허블은 HST-SM1으로 정신을 차린 뒤에는 이런저런 통신 장비, 전력 문제 등에도 불구하고 NASA와 천문학계, 그리고 우주덕들의 기대에 십분 부응하며 NASA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STS-109를 마치고 정비를 거쳐 다음 미션에 나선 컬럼비아돌아오지 못했다. NASA와 전미가 뒤집어졌고, 우주왕복선은 챌린저 이후 가장 큰 참극으로 비행이 전면 보류되었다. 연료탱크 파편이 날개 부분을 타격하여 방열 타일이 탈락되었고 그로 인해 재돌입 중 열차폐가 불가능해지며 공중분해로 이어진 이 참사에 사고 재발 방지 연구가 진행되었고, 토머스 스태퍼드와 리처드 코비가 이끄는 사후 대책 연구팀은 STS-3xx로 일컬어지는 비상 구조 계획을 제시한다.
그런데, 허블은 궤도가 ISS와 확 다른 물건이다보니 셔틀의 기동으로는 도저히 랑데부, 그리고 ISS로의 대피가 불가능했다. 보고서를 받아본 '''션 오키프(Sean O'Keefe) NASA 국장'''[4]은 고심한 뒤 "ISS에 못 가면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허블 서비스 미션을 싹 백지화했다.'''
'''컬럼비아 발사 1주기를 앞두고'''[5] 중대발표를 한다고 기자들이랑 우주인들까지 소집해놓고 허블 보수를 안한다고 하니 모두가 벙쪘다. 전미가 허블을 잃는구나 하는 탄식에 잠겼고, 학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오키프 국장이 직권으로 내린 이 발표의 순간, 수석 연구원이자 미르 방문, 허블 수리 2회를 포함해 4회의 미션을 수행한 천문학자 출신 우주인 '''존 그런스펠드(John Grunsfeld)'''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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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을 살려낸 일등공신'''
그런스펠드는 빡돌아서 NASA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바버라 미쿨스키(Barbara Mikulski) 상원의원[6][7]에게 호소하여 미쿨스키, 그리고 여러 의원들의 허블 지지 성명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동료 천문학자들도 이에 부응하여 허블의 따끈따끈한 최신 서베이, 이름하야 허블 울트라 딥 필드 사진을 뿌렸다.
태초의 우주와 원시은하들을 담아낸 이 장엄한 서베이를 통해 전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우주망원경 연구원(Space Telescope Science Institute, STScI)과 미국 과학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미쿨스키를 비롯한 여러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이 사진을 공개하며 "이런 허블이 죽어가는데 NASA 국장이란 인간이 허블 죽게 내버려두재요ㅠㅠ" 하는 적절하기 그지없는 언플을 시전, 전미가 뒤집어졌다. 여러 언론들은 '''갈릴레오의 망원경 발명 이래 최고의 망원경''', '''캬... 여기 서비스 한번 더!''' 등의 지지 사설과 여론을 보도하였다. 물론 이들도 셔틀의 장기적인 퇴역 일정이 확정된 현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특히나 절박했다. '''마지막 한 번만 더...'''라는 절박한 여론몰이는 대성공. 결국 비난에 시달린 오키프 국장은 사퇴했고, '''허블 엔지니어 출신''' 마이클 그리핀(Michael Griffin) 국장이 취임했다.
하지만 이런 소동 가운데에서도 NASA는 여전히 '''어떻게 수리하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스펠드를 비롯해 여러 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사람을 못 보내면 아예 '''로봇'''이라도 보내자고 했을 정도. 하지만 STS-114, STS-121 두 차례의 리턴 투 플라이트 미션을 통해 셔틀의 사고 재발방지 능력이 검증된 뒤, 허블과 만나지 못한 유일한 오비터인 아틀란티스[8]를 써먹기로 결정하였고, STS-109의 그런스펠드와 마이크 마시미노(Mike Massimino), 사령관 스캇 올트먼(Scott Altman)이 주축이 되어 새 팀을 꾸렸다.
새 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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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마이크 마시미노(콜사인 Mass)[9], 마이크 굿(Mike Good, 콜사인 Bueno), 그레고리 존슨(Gregory C. "Ray J" Johnson, 파일럿), 스캇 올트먼(콜사인 Scooter)[10], 메건 맥아더(Megan McArthur)[11], 존 그런스펠드, 앤드루 포이스털(Andrew Feustel, 콜사인 Drew). 마시미노와 굿, 그런스펠드와 포이스털이 EVA 2개 팀을 짰다.

3. 발사


발사하자마자 수소 탱크 트랜스듀서에서 경고 알람이 뜨며 온 NASA가 식겁했다(...). 다행히 상황을 재빨리 판단하고 그냥 진행하기로 결정했지만, 전미의 관심이 집중된 미션에서 생중계 도중 경고 알람이 떴다. NASA에서는 아무 문제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까 다시 샅샅이 검사하기로 했다. 또한 발사 후 케네디 우주센터 LC-39A 발사대 점검을 진행하던 중 열차폐 코팅이 일부 벗겨졌음이 밝혀졌으나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4. 수리 과정



내셔널지오그래픽 허블, 25년간의 우주 여행 中
허블의 기존 카메라를 분리하는 과정[12]에서 카메라를 고정하는 볼트가 단단히 고정되어 풀리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여 조금이라도 세게 돌리면 연결부에 균열이 일어나 '''기존의 카메라를 영영 분리할 수 없는 상황.''' 볼트를 있는 힘껏 돌리라는 관제실의 허락을 받고 앤드루 포이스털이 렌치를 사용하여 볼트를 돌리자 정말 다행히도 볼트가 풀어져 카메라를 교체할 수 있었다.

5. STS-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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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38케네디 우주센터 비행 장면. 아틀란티스 저~ 멀리, ISS에 갔다온 뒤 최소한의 장비만 남겨둔 엔데버가 발사를 대기하고 있다. 참고로 발사와 ISS 건설 일정이 계속 꼬이다보니 록히드 마틴에서도 어지간히 똥줄이 탔는지 허블 구조 미션에 쏠 연료탱크를 ISS 미션용으로 먼저 써먹기를 반복하는 등의 혼란이 벌어졌고, 결국 저 탱크 하나 더 만드느라 몇 달이 더 미뤄졌다(...)
앞서 션 오키프 국장이 이 미션을 극구 반대했던 것은, 궤도가 워낙 달랐기 때문에 ISS로의 대피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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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경사각이 저렇게 다르고, 고도도 너무 다르다. 궤도에서 셔틀의 기동을 통한 ISS 대피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이전 두 차례에 걸친 우주왕복선의 실패와 공중폭발을 보고서도 미션 실패 시 백업플랜 없이 우주왕복선을 발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주왕복선이 우주에서 고장났는데 대피할 곳이 없다? '''우주왕복선을 하나 더 띄우면 되겠네!'''
진짜다. 그런 이유로 뒤의 발사대에 우주왕복선 한 대가 더 대기하고 있는 것. 우주왕복선이 무슨 동네 렌트카도 아니고, 발사대에 한 번 세워서 연료주입대기상태로 스탠바이 시켜놓는 것만 해도 예산과 인력이 무더기로 갈려들어가는 물건인데 구조대기용으로 한 대를 더 세워놓아야만 했으니, 이전 국장이 허블 미션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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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이 우주인들은 STS-126 ISS 건설 미션을 뛰고 왔다가 또 대기해야 했다(...)

6. 여담


  • 마시미노는 열렬한 어메이징빠로, 셰이 스타디움 시절 쓰인 홈 플레이트를 기념품으로 가져갔고, 돌아온 뒤 메츠 경기에서 시구를 하고 시티 필드에 해당 플레이트가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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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월드 시리즈 직관 때의 사진.
  • 갈릴레오의 첫 망원경 레플리카가 함께 탑재되어 우주에 갔다왔다.
착륙은 케네디 우주센터의 기상 상황이 안 좋아서, 3번의 착륙 시간 변경 끝에 에드워드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7. 관련 문서



[1] 솔직히 팽창 우주론만 봐도 영원히 승리할 자격 있다. NASA가 괜히 이분 이름을 붙인 게 아니다.[2] 이 시절만 해도 제임스 웹이 이렇게까지 질질 끌고 허블이 이토록 오래오래 굴러가리라고도 아무도 몰랐다.[3] 지상의 망원경들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4]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시절 테일후크 스캔들 이후 해군청장으로 선임되어 뒤처리를 담당했던 인물로 부시 가문에게 신임받은 전문 경영인이었다.[5] 발표일이 2004년 1월 16일이었다. 탱크 조각이 컬럼비아의 날개를 후려친 지 딱 1주기 되는 날이었다. 제깐에는 그런 일을 다시 보지 않겠다는 거였지만...[6] 허블의 관제센터인 고다드 우주비행센터(Goddard Space Flight Center)가 위치한 메릴랜드 지역구 출신으로 2004년 당시 NASA의 예산 심의를 맡고 있었다.[7] 참고로 오키프 국장은 2004년 대선 정국에서 NASA 고더드에게 지구 온난화 소리는 입 다물라고 지시했음이 폭로되어 논란이 되었다. 이래저래 NASA를 이끈 경력을 보면 대충 테드 크루즈와 비슷한 사람이라 보면 된다. 석유, 에너지 업계와 응큼한 유착관계가 있고 과학보다는 화성에다 성조기 꽂는 강려크한 미국을 바라는 극렬 공화당원이랄까. 허블 서비스 중단 역시 그와 비슷한 취지이다. 허블은 분명 유인 우주 탐사가 아닌 천문학 미션이기 때문.[8] 원래 STS-61-J를 쏘기로 했던 오비터였지만 이 1990년대 중반부터는 내내 미르, ISS만 들락거리고 있었다.[9] 혹시 얼굴이 친숙해서 의아하다면 빅뱅이론에서 하워드에게 "Fruit Loops"라는 별명을 붙이고 놀리던 그분이다. 본인 역할로 출연[10] 미 해군 F-14 전투조종사 출신으로, 히트작 영화 탑건 촬영 당시 스턴트 비행을 수행했다. 정작 본인은 해외 파병 나가느라 극장에서 보지도 못했다지만(...)[11] 어차피 동료 우주인이자 상용 우주선 프로그램에 선발된 밥 벤켄(Bob Behnken)과 결혼한 유부녀다. 미션 스페셜리스트 중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MS2로, STS-125 RMS 조작을 맡았다.[12] 카메라를 고정하는 볼트 하나를 풀면 되는 간단한 과정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