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더
常德 (상덕)
영어 Changde
1. 개요
중국 중남부 후난성의 지급시. 창사에서 서북쪽으로 190km 떨어진, 장강의 지류인 위안장 (원강, 沅江)이 둥팅 호 (동정호)로 흘러들어가는 곳에 위치한, 인구 580만명의 도시이다. 수운 교통을 통해 우한, 창사, 웨양 등과의 교류가 잦으며, 면직 및 기계 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한나라 ~ 수나라 대까지는 무릉 (武陵)이라 불렸는데, 비록 큰 비중은 없지만 삼국지에 나오는 그 무릉이 맞다.[1] 도시에는 예나 지금이나 소수민족이 다수 거주하며, 초나라 (춘추전국) 때의 비석과 당나라 때의 사원이 남아있다.
2. 중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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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을 통과하는 중화민국군
창더는 북쪽으로 150km 떨어진 이창과 함께 화중 지방에서 쓰촨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는 입지조건 때문에 중일전쟁 시에 쓰촨으로 피신한 중국 국민당과 그를 멸하려는 일본군과의 접전이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 창더 전투 시에 도시는 중국판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며 중화민국과 일본간의 혈전이 이어졌다. 자세한 사항은 중일전쟁/전개 문서 참고
[1] 원래 형주자사의 근무처는 양양이 아닌 무릉이었으나 후한 말 유표가 본거지로 삼게되며 사실상 형주의 중심 역할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형남 지역과 남군을 지배한 유비가 공안을 본거지로 삼았으나, 형주 공방전-이릉대전 이후로는 무릉만 등의 이민족과의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며 오나라는 형주의 역량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다.